작은손길의 아름다운 회향을 위하여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돌아갈 집이 있습니다. 아무리 누추하도 편안하고 안란한 곳입니다. 밖에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북풍한설이 와도 안심입니다. 함께 해야 할 가족이 있기에, 또 지켜 내야 할 가족이 있기에 편안하고 안락한 곳입니다. 그러나 편안하고 안락한 잠자리도 지켜 내야 할 가족도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길거리의 노숙자들입니다.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는
노숙자 따비(봉사) 세 번째 입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 8시 30분 을지로 굴다리에서 음식따비가 있는 날 입니다. 작년 12월 니까야 강독모임에서 이야기를 들은 후 3주 만에 처음 찾았고 이번에 내리 세 번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토록 그곳을 찾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한마디로 ‘연민’의 감정입니다.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 누구는 호사를 누리고 누구는 처절한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입니다. 편안한 잠자리를 가져도 따뜻한 음식을 먹어도 자꾸 그 사람들 생각이 나는 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일 것입니다.
그 동안 노숙자 얘기를 많이 접했습니다. 주로 TV를 통해서 입니다. 또한 서울역 지하도나 종로 3가 탑골공원 뒤에서 노숙자들을 마주쳤습니다. 남루한 옷차림에 꾀죄죄해 보이는 것이 특징입니다. 몸과 마음이 무너져서 아무런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듯이 보입니다. 차가운 바닥에 종이상자 박스 등을 깔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모습이 한눈에 보기에도 충격적이었습니다. 저들은 어쩌다 저런 신세가 되었을까에 대한 의문과 연민이 들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마치 못 볼 것을 본 듯 피해갑니다.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노숙자들은 게으른 자들입니다. 사지가 멀쩡해 보임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는 그들을 동정하기 보다 경멸의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들은 게으른 자들이고 이 세상의 루저, 패배자들입니다. 가족도 재산도 지켜 내지 못하고 자신도 지켜 내지 못한 밑바닥 인생입니다. 바닥에서 자니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는 ‘바닥인생’이 노숙자의 삶입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는 삶입니다.
‘사명당의 집’에서
1월 22일 일요일 점심을 먹고 신설동으로 향했습니다. 노숙자들과 독거노인과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사명당의 집’입니다. 을지로 굴다리 따비에 사용될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서입니다. 일요일 저녁에 음식배급 봉사 보다는 직접 음식 준비하는데 참여 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미리 연락을 하고 출발 했습니다.
신설동역에서 내렸습니다. 한겨울에 바람이 차갑습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날 같습니다. 신설동풍물시장 정문에 서 있으니 제영법사(석명용)님이 마중 나왔습니다. 사명당의 집은 풍물시장 정문 바로 부근에 있습니다. 주변에는 작은 빌딩이 서 있는데 유일하게 70년대쯤 지은 2층 가옥형태의 주택입니다. 10년 전에 월세를 들어 지금까지 활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안으로 들어 가니 운경행님이 반겨 줍니다. 처음 을지로 갔을 때 보았던 여성봉사자입니다. 이날 음식 준비에는 제영법사, 운경행님, 본인 이렇게 세 명이서 준비 했습니다.
음식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작은손길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제영법사님은 나이가 손아래지만 거의 비슷한 또래입니다. 그런 제영법사는 한때 스님이었습니다. 청년시절 출가하여 팔구년 정도 수행자로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또한 불화를 그리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처음에는 단청으로 시작 했지만 법당 내부의 후불탱화를 그리는 작가입니다. 이를 ‘불모(佛母)’라 합니다. 이처럼 특이하고 독특한 이력을 가진 제영법사님은 사명당의 집에서 거의 상주 하다시피 하며 여러 해 동안 봉사에 올인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날 작은손길 여운(김광하) 대표님은 장모 제사로 자리를 비웠습니다. 여운대표님은 작가 박완서님의 둘 째 사위라 합니다. 박완서 작가는 여러 해 전에 작고 했습니다. 작가의 소설을 감명 깊게 읽은 바 있습니다. 작가의 자전적 성장소설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입니다. 책으로 읽은 것이 아니라 소리로 들었습니다. 이른바 ‘소리소설’이라 하여 오디오북을 다운 받아서 들었습니다. 오디오북에서는 나레이션하지만 때로 대화체로 말하기도 합니다. 책으로 읽는 것 보다 더 실감 났습니다. 소설을 읽고 감동 받아 녹취한 것을 바탕으로 몇 편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텅빈도시의 절대고독,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2013-02-16)’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소설은 작가의 유년에서부터 1.4후퇴까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표현한 것입니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작가는 1.4후퇴로 텅빈 도시를 바라보며 “이 큰 도시에 우리만 남아 있다.”라 했습니다. 그리고서 “증언할 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라 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삶에 대한 의지가 엿보입니다. 마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주인공이 “내일에는 내일의 태양이 떠 오를거야”라며 삶에 대한 막연한 의지를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작가는 소설의 말미에 자신이 체험한 것을 글로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했습니다. 실제로 작가는 그때 당시 베이붐시대에 아이를 여럿 나아 의무를 다한 다음 사십이 넘어 늦은 나이에 등단 했습니다. 그 작가의 둘째 사위가 여운대표님입니다.
음식준비를 하고
저녁에 있을 을지로 따비를 위해 준비한 것은 바나나 270개, 백설기 250쪽, 둥굴레차와 커피 각 100여잔, 촌지, 양말셋트입니다. 을지로 따비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백설기입니다. 약 80에서 100명 가령 모이는 거사(노숙자)님들을 위해서 따끈따끈한 백설기 두 쪽을 제공합니다. 교회 등 다른 단체에서는 빵과 우유를 제공한다는데 작은손길에서는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제영법사님에 따르면 명절을 앞두고 특식을 준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번 설의 경우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삼계탕이나 오뎅우동 등 따끈한 음식 대신에 양말을 준비 했습니다. 두텁고 목이 긴 양말입니다. 마트에서 7,000원에 해당되는 양말세트입니다. 겨울철이기 때문에 노지에서 사는 자들에게는 적절한 설선물이라 여겨집니다.
운경행님과 함께 바나나를 포장했습니다. 두 개씩 비닐에 넣어 포장하는 작업입니다. 모두 100명 분을 준비 해야 하니 포장하는 것도 일입니다. 먼저 바나나를 일일이 분리 해야 합니다. 이때 소위 삼겹살 가위라 불리우는 가위로 꼭지를 자릅니다. 그런데 바나나가 수입산이다 보니 약간은 역겨운 암모니아 냄새가 납니다. 그래서 물기와 약품처리 된 것을 제거하기 위해 수건으로 일일이 깨끗이 닦습니다. 다음으로 포장입니다. 비닐에 두 개씩 넣습니다.
바나나를 비닐포장하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거사님들에 대한 배려 입니다. 바나나를 낱개로 하여 나누어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받는 입장에 따라서는 모욕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수고스럽지만 일일이 포장하는 것입니다. 또 한가지 이유로 쓰레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바나나를 낱개로 주었을 때 먹고 난 다음 아무 곳에나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닐 포장을 해 놓으면 먹고 난 다음 껍질을 비닐에 넣어 버릴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수고스럽지만 바나나를 일일이 닦아서 비닐에 포장하는 이유라 합니다.
을지로에 여러 봉사단체가 있지만 과일을 제공하는 단체는 작은손길이 유일할 것이라 합니다. 거사님들은 돈이 없기 때문에 과일을 사먹기가 쉽지 않다고 합니다. 사과 등 달고 맛있는 과일을 선택할 수 있지만 바나나나 귤을 선정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거사님들 대부분이 치아가 좋지 않기 때문이라 합니다. 그럴 경우 부드러운 바나나나 귤이 제격이라 합니다.
운경행님과 바나나를 포장할 때 제영법사님은 둥굴레차를 끊였습니다. 경동시장에서 사온 둥굴레 뿌리 한 주먹을 커다란 솥에 넣어 끓입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맛 보는 티벡의 둥글레차와 맛이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둥굴레차를 끓이는데 있어서 노우하우를 가지고 있는 제영법사님의 둥굴레 차맛은 한마디로 깊고 그윽한 것에 있습니다. 마시면 더부룩하고 거북한 것이 쑥 내려 가는 듯 합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서 인기 메뉴입니다. 거사님들은 보온병이나 페트병을 이용하여 많이 담아 가기도 합니다.
지행합일의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는 사람들
모든 것이 준비 되었습니다. 저녁 6시가 되자 식사 하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세 명이서 풍물시장 내에 있는 푸드코트로 갔습니다.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장터 같은 곳입니다. 음식 메뉴를 보니 대부분 5천원입니다.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시 사명당의 집에 돌아 오니 얼마 안 있어 또 다른 봉사자가 왔습니다. 음식물을 실어 나르기 위해 차를 가져 온 니르바나 오케스트라 단장님과 실장님입니다.
을지로 따비가 8시 반이기 때문에 사명당의 집에서는 7시 반 정도에 출발하면 됩니다. 교통 등을 감안하여 30분 이전에 도착하여 대기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출발하기 전까지 니르바나 오케스트라 강형진단장님과 심소현실장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분은 이미 필명을 알고 있고 더구나 오래 전부터 글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고마운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인지 무척 궁금했다고 합니다. 글은 날카로운데 직접보니 부드럽다고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그 사람이 진실한지에 대하여 알려거든 직접 겪어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이 지혜로운지 알려거든 토론해 보면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직접 부딪쳐 보기 전에는 제대로 알 수 없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무엇 보다 ‘지행합일’입니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일치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기에다 상이 없다면 금상첨화 일 것입니다. 아마 작은손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지행합일의 무주상보시를 실천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자유! 그것 하나 때문에
시간이 되자 을지로로 이동했습니다. 운경행님은 귀가하고 제영법사님, 니르바나 오케스트라 단장 강형진님, 실장 심소현님, 그리고 본인 이렇게 네 명이서 차를 탔습니다. 차는 늘 그 자리에 도착했습니다. 굴다리 아래에는 벌써 긴 줄이 서 있습니다. 몇 십분 전에 대기 하는 이유는 교통이 막히는 것도 감안 한 것이지만 거사님들에게 안도감을 주기 위한 목적도 있다고 합니다. 만일 차가 시간이 됐는데 도착하지 않았다면 불안해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에서 대기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것은 노숙자의 삶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에 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보호소로 들어 가지 않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이구동성으로 ‘자유’를 들었습니다. 보호소에 들어 가면 통제가 따른다고 합니다. 마치 군대나 감옥에서처럼 정해진 룰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참기 힘든 것은 옆에 자는 사람이 매일 바뀌는 것이라 합니다. 옆 사람이 매일 바뀌는 것은 두렵고도 공포스러운 일이라 합니다. 홀로 자면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거사님들은 왠만 하면 길거리에서 노숙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자유’ 때문이라 볼 수 있습니다. 통제를 가하고 명령이나 지시에 따르는 삶 보다는 비록 굶주리고 추위나 더위에 고통받을지라도 혼자 있으면 자유롭기 때문에 기꺼이 거리에서 자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몸이 망가져 더 이상 거동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보호소로 가게 될 것입니다.
활기 넘치는 을지로 따비
8시 15분이 되자 제영법사님이 먼저 굴다리로 갔습니다. 미리 왔음을 알리고 인사말 등을 하기 위함입니다. 8시 25분이 되자 차가 굴다리로 이동했습니다. 정확하게 30분이 되어서 차가 줄이 서 있는 곳에 도착 했습니다. 도착하니 낯 익은 얼굴들도 있고 새로운 얼굴들도 있습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회장님이 오셨습니다. 또 도인처럼 보이는 전회장님의 지인인 홍석환님도 함께 했습니다. 벽암 김경숙님과 이병관님 부부도 함께 했습니다. 특히 벽암님의 경우 여성 노숙자 몇 분에게 촌지 전달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명절 때가 되면 여성노숙자를 찾아가서 적은 금액을 남 모르게 슬쩍 전달한다고 합니다.
거사님 봉사대로서 종문님, 혜룡님, 병순님이 함께 했습니다. 특히 병순님의 경우 수염이 점점 시커멓게 되어 갑니다. 물어 보니 영화에서 청나라 장수로 캐스팅 되었다고 합니다. ‘남한산성’이라는 영화가 촬영중인데 3월달에 촬영될 것을 대비하여 수염을 기르라 하여 기른 것이라 합니다. 엑스트라로서 삶을 살고 있지만 수입이 늘 불안정하여 노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격이 쾌활하여 봉사자들과 스스럼 없이 어울립니다. 그리고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두 번 줄을 선 사람들을 알려 주어 이중으로 음식이 나가지 않게 하는 역할도 합니다.
1월 22일 을지로 따비는 활기가 넘쳤습니다. 그것은 봉사자가 많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제영법사님, 강형진단장님, 심소현실장님, 전재성회장님, 홍석현님, 김경숙님, 이병관부부님, 그리고 거사봉사대로서 종문님, 혜룡님, 병순님 이렇게 모두 12명이 참가 했습니다. 이날 음식을 타간 거사님들은 80여명 됐습니다.
“모든 존재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거사님들에게 백설기와 바나나, 커피, 둥글레차를 제공했습니다. 여기에다 설명절을 앞두고 특별히 양말세트를 제공했습니다. 늘 그렇듯이 15분만에 상황이 종료 됐습니다. 남은 떡과 커피와 차를 마시면서 간단히 환담 했습니다. 그리고 행사를 마무리하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모두 둥글게 원을 그리고 말 없이 서로 합장하고 반배했습니다. 이어서 사방을 향해 합장하고 반배했습니다. 이런런 행위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자애와 연민에 대한 것이고, 또 하나는 공덕을 회향하는 것입니다.
자애와 연민을 합하여 ‘자비’라 합니다. 법구경 인연담을 보면 자비의 축원 장면이 있습니다. 사미 띳사가 탁발을 나가서 “나는 그대의 행복을 기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길 바랍니다.”(Dhp.75, 인연담) 라고 한 것입니다.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기원하는 것은 자애의 마음이고, 모든 존재가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연민의 마음입니다. 둥글게 모여 합장을 하고 고개숙인 것은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모든 존재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이라고 바라는 마음일 것입니다.
왜 공덕을 회향해야 하는가?
사방을 향해 합장하고 고개 숙이는 것은 공덕을 회향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는 타종교와는 다른 것입니다. 똑 같은 자리에서 타종교에서는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참여하여 예배와 찬송을 하지만, 작은손길에서는 봉사자들만 간단히 합장하고 공덕을 회향하는 간단한 의식만을 할 뿐입니다.
흔히 무주상보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상을 내지 않고 보시한다는 말입니다. 속된 말로 하면 ‘티내지 않고’ 주는 것을 말합니다. 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그냥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냥 주는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 주는 것이 보시이지만 결국 자기자신에게 주는 것이 보시입니다. 축생에게 보시하면 백배의 갚음이 따른 다고 했습니다. 인간에게 보시하면 비교 되지 않을 갚음이 따를 것입니다.
보시를 하면 보시공덕이 따릅니다. 앙굿따라니까야 ‘음식의 보시에 대한 경’에따르면 “수행승들이여, 음식을 보시하는 고귀한 제자는 보시 받는 자들에게 내 가지 은혜를 베푸는 것이다. 생명을 보시하는 것이고, 아름다움을 보시하는 것이고, 행복을 보시하는 것이고, 힘을 보시하는 것이다.”(A4.59) 라 했습니다. 그런데 남에게 보시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도 베푸는 것이 되기 때문에, 보시를 하면 자신도 역시 생명, 아름다움, 행복, 힘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아름다운 보시는 ‘회향’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은 모든 공덕을 이 세상을 살다 간 유주무주의 고혼에게 돌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시공덕은 조금도 줄어 들지 않습니다. 물질과 재물은 나누면 줄어 들지만, 보시공덕은 아무리 나누어도 줄어 들지 않습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더 커지는 것이 보시공덕입니다. 이는 쿳다까니까야 ‘담장 밖의 경’에서 “넘치는 강물이 바다를 채우듯 이처럼 참으로 보시가 이루어졌으니 가신 님들을 위해 유익한 것이나이다.” (khp.7) 라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공덕을 회향하면 가신 님들에게도 이익이고 자신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회향을 위하여
을지로 따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월 네 째 주 일요일에 모두 회향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독거노인 반찬봉사는 지난해 12월 모두 회향한 바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을지로 따비와 탈북자청소년 따비만 남았습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기 마련입니다. 절에서 기도할 때도 입재가 있으면 회향이 있듯이, 봉사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회향을 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게 됩니다. 10년간 빌린 집은 계약 만료와 함께 비워 주면 됩니다. 통장의 잔고는 플러스마이너스제로시스템을 유지하기 때문에 역시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일까 제영법사님 말에 따르면, 여운대표님께서 “우리가 제일 잘한 일 중의 하나는 건물 가지지 않은 것이지요”라 했다 합니다. 이는 기존의 봉사단체와 정반대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기존 단체에서는 일을 벌리고 쌓는 일에 열중했습니다.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최대한 지원을 받고 각종단체나 기관으로부터 후원을 받는 등 몸집을 불리고 조직을 확장하는데 열을 올립니다. 그 결과 큰 건물을 가지게 되었고 명성은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일체 지원금을 받지 않고 그 달 들어 온 후원금으로 그 달에 모두 소진하는 시스템에서는 쌓일 수가 없습니다.
물이 흘러 가지 않고 고이면 썩기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돈이 자꾸 쌓이면 썩기 쉽습니다. 돈이 쌓이면 다툼과 분란의 소지가 있습니다. 초심과는 다르게 이득과 명예와 칭송을 추구하게 되면 권력화 되고 세습화 됩니다. 이는 무주상보시의 본질과는 어긋난 것입니다. 흘러 가는 물처럼 쌓이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쉽게 회향할 수 있습니다. 일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더 어려운 것은 아름다운 회향입니다.
을지로 따비가 회향되면 누군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아마 교회가 들어 올 것이라 예측합니다. 현재 을지로에는 대부분 교회와 성당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불교계에서는 유일하게 작은손길에서 이제까지 봉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지행합일의 무주상보시의 정신을 이어 받은 단체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비의 종교인 불교에서, 무주상보시를 강조하는 한국불교에서 그 자리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 봅니다.
2017-01-2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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