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

돌아갈 집도 반겨줄 가족도 없는 사람들, 작은손길 을지로따비에 참가하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 16. 09:15

 

 

돌아갈 집도 반겨줄 가족도 없는 사람들, 작은손길 을지로따비에 참가하고

 

 

밤공기가 싸늘합니다. 화려한 불빛의 대도시 중심가에는 인적이 끊어지다시피 했습니다. 손발이 시릴 정도이니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것 같습니다. 2017 1 15일 일요일 저녁 8 30분 다시 을지로 굴다리에 갔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노숙자 자원봉사 팀에 합류한 것입니다. 오늘은 작은손길김광하님과 석명용님 두 분만 나왔습니다. 부족한 일손은 노숙자 중의 자원봉사자 도움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문제 없을 것입니다.

 

 

 

 

 

 

 

 

굴다리 컴컴한 곳에는 긴 줄이 서 있습니다. 매주 일요일 이 시간에 맞추어 거사(노숙자)님들이 미리 와 있는 것입니다. 오늘 제공할 음식은 백설기 두 쪽과 귤 세 개, 그리고 봉지커피와 둥굴레차입니다. 백설기는 떡집에서 가져온 것으로 따끈따끈 합니다. 따끈하기 때문에 빵 보다 더 낫다고 합니다. 떡집과 계약을 해서 쌀을 가져다 주면 비닐포장까지 다 해 주어서 나누어만 주면 됩니다. 그러나 귤은 세 개 단위로 비닐 포장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합니다. 봉지커피는 현장에서 작업해야 합니다. 먼저 종이컵을 탁자위에 신속하에 가득 올려 놓습니다. 봉지커피를 한 주먹 들고 가위로 잘라 신속하게 종이컵 위에 쏟아 붓습니다. 물을 타서 잘 휘저은 다음 건네드립니다. 대체로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커피와 함께 제공되는 음료수가 하나 더 있습니다. 둥굴레차 입니다. 그렇다고 종이컵에 티백을 넣은 것이 아닙니다. 둥굴레 재료를 시장에서 구입해서 솥뚜껑 같은 커다란 통의 끓는 물에 넣는다고 합니다. 현재 작은손길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석명용님 담당입니다. 오랫동안 이 작업을 해서 맛있고 잘 끓이는 노하우를 터득한 것 같습니다.

 

커다란 원통형 철제 통에는 따끈한 둥글레차가 가득 들어 있습니다. 가장 인기 있는 음료수로서 만드는데 공이 많이 들어간 것입니다. 만드는데 노하우가 있어서인지 맛이 좋습니다. 마치 한약을 마시는 듯 합니다. 마시면 더부룩한 것이 쑥 내려 가는 듯 합니다. 그래서일까 어느 거사님들은 미리 준비한 보온병에 가득 담아 가기도 합니다. 추운 곳에서 지낼 때 뜨끈한 둥글레차 한잔 마시면 추위를 견디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합니다.

 

거사님들 중에 자원봉사자가 두 명 있습니다. 떡도 나누어 주고 질서유지 역할도 합니다. 이들의 도움을 받기에 일이 신속히 처리됩니다. 그 중에 수염이 새까맣게 난 사람이 있습니다. 구렛나룻에 콧수염, 턱수염까지 있어서 한눈에 보기에도 터프하게 생겼습니다. 주로 단역 엑스트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합니다. 대화 없는 장군역할도 맡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늘 수입이 불안정해서 방세 등 고정적으로 들어 가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노숙한다고 합니다.

 

현재 노숙자는 크게 두 군데에 몰려 있다고 합니다. 서울역과 을지로입니다. 서울역의 경우 무료 급식센터가 있고 거친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을지로에는 무료급식센터는 보이지 않아 자원봉사자들에게 의존하는 것 같습니다. 을지로에는 나이든 사람들이 많아 대체로 점잖은 편이라 합니다.

 

이날도 약 100명 가량이 모였습니다. 배급이 시작된지 15분 만에 상황은 끝났습니다. 순식간에 흩어져 다들 각자의 영역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김광하님은 지난주 을지로따비에 대하여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오는 길에 운경행님은 거사님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한사람 한사람이 서로 떨어져 있는 섬(독도)과 같은 생각이 든다고 했습니다. 거사님들은 늘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집단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서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합니다독도가 되는 것은 서로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배려인지, 아니면 급식이나 기부를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조금은 경쟁관계에 서야 하기 때문은 아닌지요. 우리는 잠시 차 안에서 거사님들의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김광하님, 2017 1 8 일요일 을지로 따비)

 

 

 

 

 

 

 

 

15년 동안 지행합일의 무주상보시를 실천하고 있는 김광하님의 글입니다. 노숙자들은 각자 말못할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 가기에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긴 줄을 섰을 때 웅성이거나 잡담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무표정하게 어둠속에 긴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작은손길에서는 따비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작은손길에서는 을지로따비’ ‘독거노인따비’ ‘탈북청소년따비이렇게 세 가지 따비를 하고 있는데 따비가 무슨 뜻인지 매우 궁금했습니다. 혼자 생각하기를 혹시 따뜻한 자비의 준말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김광하님에게 물어 보았더니 순수한 우리말로서 농기구 중의 하나라 합니다. 농촌에서 농사지어 본적이 없는 사람들은 생소한 용어입니다.

 

따비에 대하여 사전을 찾아 보았습니다. 찾아 보니 “[농업] 풀뿌리를 뽑거나 논과 밭을 가는 농기구의 하나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쟁기보다는 조금 작고 보습이 좁아서 쟁기로 갈다 남은 구석진 땅이나 소가 들어가지 못하는 좁은 땅을 가는데 쓰이는 도구가 따비라 합니다.

 

 

 

 

(사진: 농업신문)

 

 

 

작은손길의 을지로따비, 독거노인따비, 탈북청서년 따비는 정부나 단체의 정식 구호의 손길이 못미치는 곳이 대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작은손길에서는 사단법인이라든가 봉사단체 등록을 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일체 보조금을 받지 않습니다. 이런 사실은 결산보고서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지난주 을지로 따비에 참가하고 난뒤에 후원금을 냈습니다. 그랫더니 메일로 지난달 결산내용을 보내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적립된 금액이 없었습니다. 그달 들어온 후원금은 그달 소진되는 것이 원칙인 듯합니다. 만일 정부나 지자체 등에서 후원을 받는다면 수천만원 또는 수억원의 후원금이 쌓여 있을 것입니다. 또한 번듯한 건물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봉사단체 등록도 하지 않고 오로지 후원자들의 힘으로만 유지되고 있어서 결산하면 플러스마이너스제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손길 봉사자 두 분에게 음악씨디를 선물했습니다. 이미우이 음악을 선곡한 것입니다. 마침 음악을 좋아한다기에 잘 되 것 같습니다. 말기암 환자들도 우이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치유효과가 있는 음악임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이 음악을 듣다 보면 중독성이 있어서 다른 불교테이프 음악을 치우게 될 것이라는 것도 얘기해 주었습니다. 다음주에는 신설동에 있는 사명당의 집을 방문해서 준비하는 과정에 참여해 볼까 합니다. 사명당의 집은 신설동에 있는 가옥을 전세내서 독거노인반찬봉사, 노숙자봉사, 탈북청소년봉사를 하는데 있어서 음식을 만드는 등 자원봉사자들의 활동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작은손길에서는 노숙자 급식봉사 뿐만 아니라 독거노인 반찬봉사, 탈북청소년 봉사를 10년 이상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회향할 때가 된 듯 합니다. 반찬봉사는 지난해 12월 모두 회향되었고 다음달에는 노숙자봉사도 회향한다고 합니다. 15년 동안 줄기차게 지행합일(知行合一)’의 무주상보시를 실천한 보살들입니다.

 

봉사를 마치고 귀가하고 했습니다. 그러나 참관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매주 10년 이상 무주상보시한 사람들에 비하면 구경꾼입니다. 몇 년 전 해외성지순례 갔었을 때 어느 법우님은 그래도 돌아 갈 집이 있어서 다행입니다.”라 했습니다. 돌아갈 집과 가족이 있기에 마음 놓고 여행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돌아갈 집도 반겨줄 가족도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줄을 서서 무표정하게 먹을 것을 챙겨서 어둠속 어디론가로 총총히 사라지는 사람들입니다.

 

 

2017-01-1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