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

추위와 굶주림의 형벌 같은 삶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 17. 08:17

 

 

추위와 굶주림의 형벌 같은 삶

 

 

지난주 일요일 노숙자 음식봉사 했습니다. 사실상 구경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대게 봉사라 하면 베푼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통 입니다. 그러나 노숙자 봉사현장에서는 나눈다는 의미가 더 크게 다가 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 놓는 뜻이 더 강하기 때문 입니다.

 

현장에서 귤을 나누어 주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노숙자 중의 자원봉사자는 바로 옆에서 백설기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온통 수염으로 가득한 털보 입니다. 그는 우리가 생각하는 노숙자가 아닙니다. 대단히 쾌활 합니다. 주로 단역배우를 하며 먹고 삽니다. 배식을 할 때 도와 주며 질서유지도 해줍니다. 노숙자가 노숙자를 돌보는 역할을 합니다.

 

털보옆에서 귤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세 개를 미리 비닐봉지에 싼 것입니다. 털보는 아무 소리도 않고 떡을 나누어주기만 합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노숙자가 노숙자에게 나누어 주면서 맛있게 드세요라 하는 것이 어색할 수 있기 때문 입니다. 귤을 나누어 주면서 간간히 맛있게 드세요” “귤 가져 가세요라며 했습니다. 그러나 눈을 맞출 수 없었습니다. 물론 상대방로 눈을 맞추려 하지 않습니다. 음식을 받아 신속히 빠져 나가는 것이 예의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노숙자 중에는 분명히 여자도 있었습니다. 이는 김광하님의 을지로 따비에 대한 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15일 일을 기록한 작은손길 카페 글을 보면 다음과 같이 써 놓았습니다.

 

 

일요일 저녁 여느 때와 같이 황학교 다리에 앉아 있는 청계보살을 찾았습니다. 보살님은 옷을 잔뜩 껴입고 맨 바닥에 얇은 자리를 깔고 앉아 있습니다. 우리는 지나면서 작은 종이 상자에 보시금을 두고 왔습니다. 이 돈은 문수각 보살님이 보시한 성금입니다. 운경행님이 돈을 놓으면서 일부러 인기척을 내보았지만, 졸고 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청계보살을 본 지 벌써 3년입니다. 여성노숙인 쉼터에 갈 수도 있을 텐데, 굳이 다리 위에서 노숙을 선택한 사연이 무엇인지 답답합니다. 그저 오늘 하루 탈 없이 지내기를 불보살님들께 기도했습니다.”

(김광하님, 1월 15 일요일 을지로 따비)

 

 

 

 

 

글을 보면 을지로에도 여성노숙자가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귤을 나누어 줄 때 모자를 쓰고 빨리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 중에는 분명히 여성노숙자도 있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안락을 추구 합니다. 돌아갈 집이 있고 기다리는 가족이 있어 서 그 힘으로 살아 가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당장 먹을 것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거리의 노숙자들 입니다. 어떤 이들은 이들에 대해 못마땅해 합니다. 게을러서 그렇게 된 게 아니냐고 말 합니다 . 분명히 그런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수년간 봉사한 분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세상을 살 수 없을 정도로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합니다.

 

2주전 새끼손가락을 다쳤습니다. 아마 뼈에 금이 간 것 같습니다. 당장 장애가 왔습니다. 컴퓨터 자판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평소 새끼 손가락은 그다지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글자판에서 쌍자음을 칠 때는 꼭 필요합니다. 새끼손가락으로 콘트롤 키를 누른 상태에서 다음 동작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끼손가락에 장애가 생기니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자신의 힘으로 살아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남들이 도와 주지 않으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세상을 살아 갈 수 없습니다. 지금 계단 앞에 있는 다리 장애자에게는 2층으로 올라 가기가 에베레스트산에 등정하는 것 보다 더 난감할지 모릅니다. 노숙자들도 마찬가지라 합니다. 비록 사지가 멀쩡해 보여도 육체적 정신적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노숙자들은 이 세상을 살아 갈 힘을 상실한 자들 입니다. 정상적 생활이 힘들어서 사실상 생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한때는 돌아 갈 집이 있었고 기다리고 있을 가족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모든 희망을 포기한 사람들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힘도 이 세상을 살아 갈 용기도 없는 사람들 입니다. 그저 하루 하루 연명할 뿐 입니다. 그저 세상의 흐름에 내 맡겨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한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디서든 자고, 때 되면 끼니를 해결 하기 위해 줄을 섭니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장애인이 되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육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 그저 세상에 내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작은손길이라도 내민다면 매우 고마워 할 것입니다. 대게 무표정하게 음식을 받아 가지만 그 중에는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 갈 수 없는 장애를 가진 자에게 있어서 세상은 형벌과도 같은 삶입니다. 조금이라도 삶에 대한 의욕이 있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이 생에서 더 이상 희망을 보지 못했을 때 세상의 흐름에 몸을 내맡기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노숙자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겨울 추위에도 가족과 함께 안락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라도 사람의 일은 알 수 없습니다. 이전에 지은 행위에 대한 과보가 익으면 어떤 일이 일어 날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나도 한때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라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월감에 따른 자비의 마음으로 그들을 대할 수 없습니다. 한량 없는 과거생에 한때 저와 같은 사람이었고, 미래에도 저와 같은 사람일 수 있기 때문에 단지 불쌍하다라거나, 자비의 시선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나도 저와 같은 사람이었다라거나, ‘나도 저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공평합니다.

 

지금 이 시각에도 화려한 도시의 사각지대에는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추위와 굶주림에 형벌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럴 때 작은손길을 내민다면 한줄기 빛과 같을 것입니다. 많이 소유하여 호사를 누리는 것도 행복이지만, 더 큰 행복은 나누는 것입니다. 거친 행복보다 잔잔한 행복은 훨씬 더 오래 갑니다.

 

 

 

2017-01-1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