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분노

담마다사 이병욱 2017. 6. 14. 10:59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분노

 

 

본능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는 식입니다. 욕망대로 사는 자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욕망을 최대한 억제합니다. 배고프다 하여 먹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며 먹습니다. 잠을 잘 때 역시 알아차리면서 자고 알아차리면서 일어납니다. 일거수일투족을 알아차릴 때 욕망이 발 붙일 틈이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것이 맞다고 합니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배고프니 밥을 먹고 졸리니 잠을 자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어떠한 경우에라도 화를 내서는 안됩니다. 설령 그것이 자비의 분노라 할지라도 분노인 것만은 틀림 없는 사실입니다.

 

분노하면 자신만 손해

 

분노하면 자신만 손해입니다. 분노는 감정 표출을 넘어 파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에 분노의 경(A7.64)’에 따르면, 분노하면 하면 일곱 가지 불이익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이를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그는 추악해진다.

2)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그는 괴롭게 잠을 잔다.

3)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그는 오랜 세월 불익과 고통으로 이끌어진다.

4)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정당한 재물을 얻더라도 왕들은 그것을 국고에 귀속시킨다.

5)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명성이 있더라도 그는 명성에서 멀어진다.

6)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친구와 동료와 친지와 친척을 지녔더라도 그들을 그를 멀리 회피한다.

7)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악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하고,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앙굿따라니까야 분노의 경(A7.64)에서)

 

 

 

 

 

 

분노하면 가장 먼저 추악해진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절세미녀라 해도 분노하는 모습이 아름다울 리가 없습니다. 눈을 부릅뜨고 분노하는 순간을 거울로 본다면 악마가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분노하면 그는 추악해진다.”라 했습니다.

 

분노하면 적에게만 이롭습니다. 적에게 , 이 자는 고통스러운 잠을 자기를!”하며 저주를 한다면 그 순간 분노의 마음에 지배당하여 오히려 자신이 잠 못 이루는 밤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분노하면 그는 괴롭게 잠을 잔다.”라 했습니다.

 

분노하면 자신만 손해입니다. 단적인 예가 고객과의 관객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고객과 싸우면 안됩니다. 고객과 다투는 순간 그 고객은 다시는 찾지 않을 것입니다. 분노하면 결국 불이익 받습니다. 그래서 분노하면 그는 오랜 세월 불익과 고통으로 이끌어진다.”라 했습니다.

 

분노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분노하면 모든 것이 파괴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분노하면 인간관계의 단절을 가져 옵니다. 아무리 친한 친구사이라도 분화를 내면 소원해집니다. 덜 친한 사람이라면 다시는 만나려 하지 않을 겁니다. 분노하면 외톨이가 됩니다. 그래서 친구와 동료와 친지와 친척을 지녔더라도 그들을 그를 멀리 회피한다.”라 했습니다.

 

분노하면 가장 큰 불익은 내세에 대한 것입니다. 분노하면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악행을 짓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과보로 악처에 태어날 것이라 했습니다.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분노

 

분노는 자신을 추악하게 만들고, 거래처를 끊어 버리고, 인간관계를 단절시킵니다. 한마디로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합니다. 분노하면 악처에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분노가 일어났을 때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게송에서는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분노야말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분노야말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분노야말로 성직자를 살해하고

분노는 또한 어리석은 범부를 살해하네.”(A7.64)

 

 

분노하면 눈에 뵈는 것이 없습니다. 분노를 뜻하는 빠알리어 ‘kodha’는 격노(激怒)의 뜻입니다. 눈을 부릅뜨면 순간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분노가 폭발했을 때 우발적 살인이 일어납니다. 순간적인 분노는 부모도 살해할 수 있습니다.

 

부모를 살해하면 오역죄라 하여 무간지옥에 태어납니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사이지옥이라 하여 부처가 출현하기 전에는 한번도 빛이 들어 오지 않는 곳이라 합니다. 우주가 성주괴멸 되는 일겁 동안 암흑에서 지옥고를 겪을 것이라 합니다.

 

분노하면 모든 것이 파괴적으로 작용합니다. 화를 내면 인간관계의 파탄을 각오해야 합니다. 부부사이에 화를 내면 부부관계가 파탄나고, 부모자식간에 화를 내면 소원해지거나 절연됩니다. 친구에게 화를 내면 다시는 만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객과 싸우면 다시는 주문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분노하면 인간관계를 단절시키고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립니다.

 

분노하면 자신만 손해입니다. 자비의 분노라 하여 정당화 하는 이도 있지만 상대방은 나에게서 멀어져 갈 뿐입니다. 그래서 분노하는 자는 자신을 살해하네.” (A7.64) 라든가 분노에서 파멸이 생겨나네.” (A7.64)라 했습니다.

 

분노를 극복하는 방법은?

 

화를 내면 무조건 손해입니다. 화를 내는 순간 인간관계는 단절되고 고객은 떨어져 나갑니다. 그렇다면 분노를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청정도론 자애명상수행편(Vism.9.21)에도 소개 되어 있는 앙굿따라니까야 원한의 제거에 대한 경(A5.161)’바로 그것입니다.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 그 사람에 대하여 자애를 닦아야 한다.

2)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 그 사람에 대하여 연민을 닦아야 한다.

3)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 그 사람에 대하여 평정을 닦아야 한다.

4)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 그 사람에 대하여 새김을 놓아버리고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는다.

5) 어떠한 사람에 대하여 원한이 생겨나면. 그 사람에 대하여 행위가 주인이라는사실을 이와 같이 이 사람에게 행위가 주인이고, 행위가 상속자이고, 행위가 모태이고, 행위가 친족이고, 행위가 의지처이다. 선하거나 악한 행위를 하면, 그것이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인식해야 한다.

 

(앙굿따라니까야 원한의 제거에 대한 경(A5.161)에서)

 

 

부처님은 원한을 제거하기 위해 사무량심을 설했습니다. 그런데 기쁨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분노가 상대되는 사람을 향해서 아직 제거되지 않아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Mrp.III.294) 라 했습니다. 사무량심에서 기쁨만 빼고 상대방에 대하여 자애, 연민, 평정의 마음을 가지면 원한이 제거 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네 번째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는 것과 다섯 번째 행위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원한 맺힌 자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를 것입니다. 이럴 경우 가급적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악하고 불건전 한 대상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에 대하여 새김을 놓아버리고 정신활동을 기울이지 않는다.(asati amanisikāro)”라 했습니다. 분노의 대상에 대하여 신경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분노가 일어난다면 행위가 주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악한 행위를 한 자는 악한행위가 작용하는 원리에 따라 과보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위에 대한 과보는 연민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원한 맺힌 자에게 분노해 보았자 자신만 손해입니다. 상대방을 향하여 , 이 자는 추악한 모습을 지니기를!”라며 저주를 해 보지만, 그 분노의 마음으로 인하여 자신만 용모만 추악해질 뿐입니다. 상대방에게 , 이 자는 고통스런 잠을 자기를!”하며 분노해 보지만, 그 분노의 마음으로 인하여 자신만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원한 맺힌 자에게 저주의 마음과 분노의 마음을 내 보지만 그 분노의 마음으로 인하여 분노의 마음에 지배되어 결국 자신에게 손해로 되돌아 옵니다. 그럴 경우 차라리 연민의 마음을 내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하여 과보를 받을 것을 생각하면 연민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분노에 지배당하고 분노에 정복되면

 

어떤 이들은 화가 나면 화를 표출하라고 말합니다. 화가 났을 때 화를 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낫다는 것입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입니다. 실컷 화풀이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방과는 단절을 각오해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화를 내면 인간관계가 파탄 난다는 사실입니다. 부부간에도, 부모자식간에도, 친구간에도, 거래처간에도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됩니다. 분노함으로써 분노에 지배당하고 분노에 정복됩니다.

 

 

분노하는 자는 추악하고

고통스럽게 잠을 이룬다.

또한 이익을 취했지만

그는 불익을 얻는다네.

 

그러므로 분노하는 자는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파괴를 일삼고

분노에 정복되어

사람은 재산을 잃는다네.

 

분노의 취기에 취하여

그는 명성을 잃고

친지와 친구, 벗들은

분노하는 자를 피하네.

 

분노는 불익을 생겨나게 하고

분노는 마음을 동요시킨다.

안으로 생겨난 위험을

그 사람은 깨닫지 못한다.

 

분노하는 자는 이익을 알지 못하고

분노하는 자는 원리를 알지 못한다.

분노가 사람을 정복하니

그때 암흑과 맹목이 그를 지배하네.

 

분노하는 자가 파괴를 일삼으면

쉽게 부수든 어렵게 부수든

나중에 분노가 떠난 후에

불에 연소된 것처럼 괴로워하네.”(A7.64)

 

 

 

2017-06-1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