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무에게도 옷을? 헐벗은 자에게 자비를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1. 18. 13:41


나무에게도 옷을? 헐벗은 자에게 자비를

 

 

나는 굶주린 자에게 빵을 주었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주었다.” 이 말은 이집트 보물전에서 본 말입니다. 2017 2월 중앙박물관에서 이집트보물전이 열렸는데 상형문자로 써진 것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 통치자들의 애민정신을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입니다.

 



 

굶주리는 자에게는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는 입을 주는 것이 맞습니다. 또 거처가 없는 자에게 살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은 가진 자의 의무입니다. 똑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이전에 지은 행위와 행위의 과보로 인하여 차별이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좀 더 우월한 위치에 있는 자들은 자비를 베풀어 할 것입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급고독장자가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대부호이었습니다. 장사를 해서 큰 부를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일설에는 무역을 해서 큰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또 일설에는 금융업으로 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금융업에는 대출업도 들어갑니다. 급고독장자는 아나타삔디까를 한역한 것입니다. 앙굿따라니까에서는 수닷따 아나타삔디까(Sudatta anāthapiṇḍika)’에 대하여 보시하는 님 가운데 제일(dāyakāna agga)’로 알려져 있습니다.

 

급고독(給孤獨)이라는 말은 불쌍한 자에게 준다는 의미입니다. 빠알리어로는 아나타삔디까(anāthapiṇḍika)라 하는데, 이는’ anātha+piṇḍika’의 합성어입니다. 아나타(anātha)‘miserable; helpless’의 뜻이고 한역으로는 無怙的, 孤獨的입니다. 의지할 곳이 없는 불쌍한 사람을 뜻합니다. 또 삔디까(piṇḍika)‘piṇḍaka’의 형태로 ‘a lump of food’의 뜻으로 음식한덩어리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아나타삔디까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도움을 주는 자를 뜻합니다. 부처님 당시 대부호였던 수닷따장자에게 붙여진 칭호입니다. 그래서 수닷따장자에 대하여 보시하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 합니다.

 

이시대의 급고독장자들

 

대부호 아나타삔디까는 굶주리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자에게 입을 것을 주고, 잘 곳이 없는 자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가진자로서 의무를 다한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에서도 급고독이 있습니다. 헐벗고 굶주린 자들에게 주는 자들입니다. 작년 연말 처음 접한 사명당의 집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올해 1월과 2월 두 달 동안 사명당의 집 사람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매주 일요일 저녁에 을지로 굴다리에서 노숙자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봉사단체 작은 손길의 김광하 대표와 봉사자들과 함께 한 것입니다. 그러나 더 이상 하지 않습니다. 올해 3월 부로 15년 동안의 봉사활동을 회향했기 때문입니다.

 

작은 손길 김광화대표는 하나의 신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티를 내지 않고 봉사하는 것입니다. 금강경의 무주상보시정신을 현장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15년동안 노숙자음식봉사, 독거노인반찬봉사, 탈북청소년지원봉사 등을 했지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불자대상을 받고도 남을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는 연예인이나 스포츠스타, 사성장군 등 홍보효과가 있는 자들이 대상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묵묵히 자신의 할 바를 다하는 자는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이시대의 급고독장자들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을지로 굴다리에서

 

봉사단체 작은 손길의 사명당의 집 사람들과 봉사활동 두 달 동안 잔잔한 감동을 맛 보았습니다. 누가 보건 말건 누가 알건 말건 가장 낮은 자세로 봉사하는 사람들은 보살행의 실천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날씨가 이렇게 추워질 때 을지로 굴다리에서 본 노숙자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1월 추위가 절정에 달했을 때 을지로 굴다리에는 노숙자들이 음식을 타 가기 위하여 줄을 섰습니다. 약 백명 가량 되는 사람들이 백설기 한 개와 바나나 두 개를 타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따끈한 커피와 구수한 둥굴레차도 제공됩니다. 설날이 되었을 때는 내의와 양말이 제공되었습니다. 모두 자발적으로 보시한 자들에 의한 것입니다. 시대의 양심을 가진 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다 하는 현장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 날 따뜻하고 안락한 보금자리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합니다. 그러나 지난 추운 겨울 을지로 굴다리에서 본 노숙자들은 죽지 못해 사는 자들처럼 보였습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은 봉사자들의 도움으로 해결이 가능할 지 모르지만 거처까지 마련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불빛의 도시의 이면에는 마치 두더지처럼 웅크리고 밤을 지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배식이 끝나면 어디론가 뿔뿔이 사라지는데 어디에서인가 추운 밤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한명이 있습니다. 그는 배식을 할 때 거들어 주는 봉사자입니다. 노숙자가 노숙자를 도와 주는 봉사자인 것입니다. 그의 자리를 보았습니다. 굴다리 한켠에 마련된 자리에는 종이 박스만 깔려 있을 뿐입니다. 배식이 끝나자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겨울을 난 것입니다.

 

두 다리 뻗고 자는 것도 죄짓는 같아

 

사람들은 저마다 보금자리가 있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는 자라 하더라도 보금자리는 따스하게 마련입니다. 설령 춥게 지낸다고 해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다면 따뜻할 것입니다. 그러나 도심의 어둠 한켠에서 두더지처럼 지내는 자들은 따뜻함과 안락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두 다리 쭉 뻗고 자는 것도 죄짓는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갑자기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고 더구나 세찬 바람까지 불어 체감 온도는 영하 십도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렇게 날씨가 추워서인지 거리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토요일이어서 주말인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따뜻하고 안락하고 가족이 있는 집에서 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날씨가 추울 때 사람들은 전방의 군인들을 생각합니다. 철책을 지키는 병사들이 얼마나 추위에 떨까 걱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사들은 근무가 끝나면 따뜻하고 안락한 숙소로 돌아 갈 것입니다. 그러나 도시의 들개처럼 살아가는 노숙자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어둠 한켠에서 추위를 견디어 내야 합니다. 이렇게 추운 날씨가 되면 이제 전방의 병사가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집 없는 자들이 먼저 떠 오릅니다.

 

나무에게도 옷을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낙엽이 수북이 쌓입니다. 수 년간 관찰한 결과에 따르면 11 20일 전후해서 약 오일간입니다. 그런데 오늘이 그날 같습니다. 더구나 세찬 바람이 불어서일까 토요일 오전 인도에는 은행나무 낙엽으로 덮여 있습니다.

 




낙엽이 지는 때입니다. 앞으로 일주일만 지나면 은행나무는 앙상하게 변할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구청공원에 있는 나무들이 옷을 입었습니다. 누군가 나무 하나하나에 울긋불긋 옷을 입혀 놓았습니다.

 




낙엽이 진 나무를 보면 앙상하기 그지 없습니다. 낙엽이 짐에 따라 마음도 따라 지는 것 같습니다. 불과 몇 일전까지만 해도 왕자처럼 위풍당당한 모습의 커다란 나무가 뼈대만 남았을 때 마음이 허전해집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 주려함일까 누군가 나무에게 옷을 입혀 놓았습니다.

 






난자와 든자들의 의무

 

이집트 신전 벽면에는 상형문자로 나는 굶주린 자에게 빵을 주었고 헐벗은 자에게 옷을 주었다.”라는 문구가 있습니다. 어느 시대나 굶주리고 헐벗은 자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선진국이라 하여도 걸인은 있기 마련입니다. 또 잠 잘곳이 없는 노숙자들도 있습니다.

 

굶주리고 헐벗고 잘곳이 없는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소위 난자든자들의 의무입니다. 나목에 옷을 입히는 것처럼 이시대의 급고독장자가 되어야 합니다. 날이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을지로 굴다리 노숙자들 생각이 납니다.

 

 

 

2017-11-1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