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마음 밭을 가는 수행자와 스님의 밥값
하루라도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밥을 먹으려면 일을 해야 합니다. 월급생활자들은 자신의 시간을 바치는 대가로 돈을 받습니다. 그런데 월급의 반은 욕먹은 대가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노예계약처럼 일한 대가로 돈을 받았을 때 사실상 자유가 없는 노예와 같은 신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일하는 과정에서 겪는 노동은 물론 수모와 모욕도 돈이라는 보상이 따르기 때문에 얼마든지 견뎌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의 수중에 들어 온 돈은 노동의 대가가 반이고 모욕과 수모의 대가가 반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피와 눈물로 얼룩진 돈을 받아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것이 월급생활자들의 삶입니다. 사업자의 삶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스님
페이스북에서 일하는 스님을 보았습니다. 제주도에 사는 스님은 감귤 수확철이 되면 감귤농장에서 일합니다. 건설현장에서는 노동자로 일합니다. 스님의 신분이지만 노동자들과 똑같이 일한다는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일하는 스님은 페이스북에다“다시는 보살님들 지갑에서 돈꺼내 쓰지 않겠다.”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노동으로 벌고”라 하여 자급자족하겠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건설현장 일정을 보면 오전 5시에 토굴을 나서서 오전 7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9시간 반 가량 일하는 현장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일하는 스님의 고백을 보면 지금까지 스님의 이미지를 확 바꾸는 것 같습니다. 스님들은 놀고 먹는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근면하게 정진하는 스님도 있고 일선포교 현장에 서 있는 스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불교가 이렇게 추락한 것은 스님들 탓이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신도들이 무지한 탓도 있지만 한국불교는 사실상 스님의, 스님에 의한, 스님을 위한 불교이기 때문에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스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비록 사이버공간이기는 하지만 실시간 문자와 사진과 동영상으로 소통할 수 있어서 현실과 조금도 차이가 없는 듯합니다.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남겨진 자료를 보고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글이나 사진 등 자료가 그 사람의 얼굴이고 그 사람의 인격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일하는 스님을 보고 백장청규를 떠 올렸습니다. 백장청규는 중국 선종의 의식과 규율을 정한 책입니다. 당나라 시절 백장화해가 선종의 사원의 규범을 성문화 한 것으로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라는 말로 유명합니다. 이를 선농일치라 하여 일하고 먹는 것도 수행의 한 방편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백장청규정신대로라면 한국의 스님들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옛날에는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아야 했으나 요즘은 옛날과 다르기 때문에 어떤 노동이든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동을 해 보면 돈의 가치에 대하여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사는데 노동을 통해서 쌀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은 생명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들은 일하기 싫어해서 게으르고 남들이 보시한 것으로 살고”
본래 스님들은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는 부처님 당시부터 내려 오는 계율입니다. 테리가타에 따르면 장로니 로히니가 출가하기 전에 아버지와 대화한 내용이 있습니다. 로히니의 아버지는 수행자들에 대하여 대단히 부정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로히니의 아버지는 로히니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일하기 싫어해서 게으르고
남들이 보시한 것으로 살고
잔뜩 기대하며 맛있는 것만을 원하는데,
왜, 네게 수행자가 사랑스러운가?”(Thig.273)
로히니의 아버지는 수행자들이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르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탁발이나 청식 등 남들이 주는 음식으로 빌어 먹고 살고 있음에도 맛 있는 것만 탐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로히니가 수행자를 찬양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로히니 아버지가 말하는 수행자는 빠알리로 ‘사마나(samaṇā)’를 말합니다. 한역으로 사문(沙門)이라 합니다. 영어로는 ‘a recluse’라 하는데 은둔자를 뜻합니다. 부처님 당시 육사외도를 포함하여 걸식에 의존하며 유행하는 모든 수행자에 대하여 사마나라 한 것입니다. 이런 사마나에는 부처님의 제자들인 빅쿠도 해당됩니다. 이런 이유로 로히니 아버지는 사마나들이 놀고 먹는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마음의 밭을 가는 수행자
로히니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부처님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했습니다. 수행자라 하여 다 똑같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소녀 로히니가 알고 있는 수행자는 어떤 것일까요? 테리가타 로히니장로니에 실려 있는 게송 중의 하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일하기 좋아하며 게으르지 않고
최상의 일을 행하는 자로서
그들은 탐욕과 성냄을 버립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Thig.275)
출가하기 전의 소녀 이었던 로히니는 아버지에게 부처님의 제자들은 다른 사마나들과 다름을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로히니에 따르면 부처님 제자들은 일하기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숫따니빠따에서 부처님이 마음의 밭을 가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숫따니빠따 ‘까씨 바라드와자의 경(Sn1.4)’에 따르면 부처님도 농사를 짓는다고 했습니다. 바라문 까씨가 부처님에게“수행자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습니다. 그대 수행자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드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일을 하지 않는 자에게는 음식을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부처님은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뒤에 먹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부처님도 농부들처럼 밭을 갈기도 하고 씨도 뿌리는 등 일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습니다.
“믿음이 씨앗이고, 감관의 수호가 비며,
지혜가 나의 멍에와 쟁기입니다.
부끄러움이 자루이고, 정신이 끈입니다.
그리고 새김이 나의 쟁기 날과 몰이막대입니다.”(stn77)
“몸을 수호하고 , 말을 수호하고,
배에 맞는 음식의 양을 알고,
나는 진실을 잡초를 제거하는 낫으로 삼고,
나에게는 온화함이 멍에를 내려 놓는 것입니다.”(stn78)
“속박에서 평온으로 이끄는
정진이 내게는 짐을 싣는 황소입니다.
슬픔이 없는 곳으로
도달해서 가서 되돌아오지 않습니다.”(stn79)
“이와 같이 밭을 갈면
불사의 열매를 거두며,
이렇게 밭을 갈고 나면
모든 고통에서 해탈합니다.”(stn80)
부처님도 밭을 갈았습니다. 그것은 마음의 밭입니다. 마음의 밭을 갈기 위하여 믿음, 감관의 수호, 지혜, 새김, 진실, 온화함, 정진 등의 수단이 등장합니다. 농부가 농사도구를 이용하여 밭을 갈듯이, 부처님도 마음의 도구를 이용하여 마음을 계발했습니다. 농부나 부처님이나 밭을 가는 것에 있어서는 같은 농부라 볼 수 있습니다.
로히니는 사마나에 대하여 일하기 좋아하고 게으르지 않은 것을 찬탄했습니다. 최상의 일을 위하여 마음을 가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최상의 일이라는 것은 다름 아닌 마음의 번뇌를 소멸하여 열반을 실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탐욕과 성냄을 버립니다.”라 했습니다. 로히니가 본 사마나는 마음의 밭을 가는 수행자였습니다.
노동은 수행이다
백장청규에서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말은 자급자족 공동체 정신을 말합니다. 이는 동아시아 불교의 한 특징이기도 합니다. 동아시아로 불교가 전래 되었을 때 인도와 달리 자연환경이 달랐습니다. 사계절이 뚜렷한 동아시아는 우기와 건기로 대표되는 인도의 몬순기후와는 다릅니다. 이런 이유로 탁발하기 곤란해서 사원에서 음식을 지어 먹게 된 것입니다.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사원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밖에 없는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탁발에 의존하는 인도와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사원에서 음식을 조리해서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선농일치라는 백장청규정신이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 정신은 노동이라기 보다 수행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주도 스님이 감귤농장에서 일하는 것은 생계를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탁발의 전통이 사라진 동아시아불교에서 탁발 못지 않는 수행의 방편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백장청규정신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수행자가 굶지 않는 이유
수행자는 보시로 살아 갑니다. 수행자에게 한덩이 음식을 건네는 것은 양자에게 이득이 됩니다. 음식을 건네는 자는 보시공덕을 쌓아서 좋고 음식을 받는 자는 복전이 되어서 좋습니다. 재가자는 재보시하고 출가자는 법보시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공부하는 자에게는 베푸는 아름다운 전통이 있습니다.
수행자는 굶어 죽지 않습니다. 시험공부하는 자에게 아낌 없이 베풀듯이, 마음의 밭을 가는 수행자에게도 보시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부하는 자에게는 음으로 양으로 도움의 손길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굶지 않고 정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굶지 않는 것은 청정한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청정한 삶을 실현 하는 데는 탁발이 최상이라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을 때 청정한 삶을 실현 하는 가장 빠른 길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로히니는 사마나에 대하여 “자신의 소유를 저장하지 않고, 줄 준비된 것만을 구합니다.”(Thig.283)라 했습니다. 저장하지 않는 삶입니다. 얻어 먹기 때문에 옷 세 벌과 발우만 있으면 됩니다. 저장하지 않기 때문에 돈도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금화도 받지 않고 금도 은도 받지 않습니다. 생겨 나는 것으로 생활합니다.”(Thig.283)라 했습니다. 그때 그때 걸식해서 생명을 영위함을 말합니다.
수행자가 밥값을 못했을 때
어느 시대나 어느 나라에서나 보시에 의존하는 수행자들은 놀고 먹는 집단으로 비추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수행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을 때 입니다. 공부하라고 쌀을 주고 생활비를 주었는데 하라는 공부는 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면 지원이 중단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수행자에게 수행을 잘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었음에도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실망해서 떠날 것입니다. 수행자가 밥값을 못한 것입니다. 수행자는 보시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밥값을 해야 합니다. 밥값을 한다는 것은 다름 아닌 복전이 됨을 말합니다. 테라가타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쁜 곳으로 이끄는
많은 악업을 짓고
아직 그 업보에 맞딱뜨리지만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Thag.882)
이 게송은 맛지마니까야 ‘앙굴리말라의 경(M86)’의 게송과 병행합니다. 게송에서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anaṇo bhuñjāmi bhojanaṃ)”라 했습니다. 이 말 뜻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하여 주석을 보면 “네 가지 즐김이 있다. 1)도둑질 한 것을 즐김, 2)빚진 것을 즐김, 3)유산의 즐김, 4)자기 것을 즐김이다. 번뇌가 부수어진 즐김은 자기 것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부채가 없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바로 자기 것을 즐기는 것이다.”(Pps.III.343) 라 되어 있습니다.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는 것은 밥값을 한 것입니다. 수행을 하여 성자의 흐름에 들었을 때 밥값을 한 것입니다. 복전(puññakhetta)이 된 것입니다. 복전이 되면 어떤 음식을 수용해도 떳떳하게 먹습니다. 비록 얻어 먹는 것일지라도 자기 것을 즐기는 것이라 했습니다.
수행자는 밥값을 해야 합니다. 계행이 엉망인 자가 음식을 먹는 것에 대해서는 도둑질 한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도둑질 한 것을 즐김(theyyaparibhogo)’이라 합니다. 그런데 계행을 지키긴 지키되 음식을 받아 먹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반조하지 않는다면 ‘빚진 것을 즐김(inaparibhogo)’에 해당된다고 했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출가에서 다비까지
요즘 한국불교에 회자되는 말 중에 ‘출가에서 다비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치 ‘요람에서 무덤까지’완전한 복지시스템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전한 복지시스템은 공무원 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번 공무원이 되면 고용보장, 신분보장, 연금보장이라는 삼중축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출가사회에서도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연상케 하는 ‘출가에서 다비까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스님이 되면 죽을 때까지 생계는 물론 수행할 수 있는 환경까지 책임 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현재와 같이 승가가 부익부빈익빈이 계속 된다면 어느 누구도 출가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출가에서 다비까지 먹고 입고 살 곳이 보장 되어 있다면 한국의 사찰에서는 출가자들로 넘쳐 날 것입니다. 그러나 계행이 엉망인 자가 단지 먹기만 한다면 그는 승가안에서 도둑이라 볼 수 있습니다. 또 먹고 살기 위해 출가한 생계형 출가자나 정진을 게을리 하는 출가자가 있다면 그는 빚쟁이와 같습니다.
스님들이 출가하면 먹을 것과 입을 것, 그리고 잠 잘 곳이 보장됩니다. 이는 정진하는 스님들에게 해당됩니다. 이렇게 의, 식, 주가 보장되는 것은 자신의 정진에 대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무엇 보다 부처님의 유산을 즐기는 것이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유산을 넘은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유산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이제 자신의 것을 즐기는 자들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성자가 된 들입니다. 이처럼 성자가 되었을 때 출가에서 다비까지 완전한 복지시스템의 혜택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들입니다.
마하깟싸빠존자와 나병환자 이야기
성자들은 복전입니다. 복전에게 공양하면 큰 공덕이 됩니다. 숫따니빠따 ‘라따나경(Sn2.1)’에서는 “네 쌍으로 여덟이 되는 님들이 있어, 참사람으로 칭찬받으니, 바른 길로 가신 님의 제자로서 공양 받을 만하며, 그들에게 보시하면 크나큰 과보를 받을 수 있습니다.”(stn.227)라 했습니다.
복전이 된다는 것은 의지처, 귀의처, 피난처가 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 상윳따니까야 ‘깃발의 경(S11.3)’에서는 승가에 대하여 “공양받을만하고 대접받을만하며 보시받을만하고 존경받을만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S11.3)라 했습니다. 이처럼 복전인 성자에게 공양하는 것은 커다란 공덕이 됩니다. 그런데 성자는 일부로 복을 짓게 해 주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마하깟싸빠존자와 나병환자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마하깟싸빠 존자가 어느 날 탁발 나갔습니다. 탁발하러 가는 도중에 나병환자를 발견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마하깟싸빠 존자는 나병환자 앞에 공손히 서 있었습니다. 탁발할 때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문 앞에 서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는 집이 없습니다. 탁발 할 때는 차례로 일곱 집을 돌아야 하나 나병환자는 집이 없기 때문에 차제걸이에 해당되지 않습니다.
마하깟싸빠 존자가 밥을 먹고 있는 나병환자 앞에 선 것은 복전이 되고자 한 것입니다. 복전에게 음식 등을 보시하면 크나큰 공덕을 짓기 때문에 일부로 집이 없는 나병환자에게 공덕 지으라고 앞에 선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환자가 먹고 있는 음식도 얻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똑 같은 걸식자입니다. 그럼에도 깟싸빠존자가 나병환자에 앞에 조용히 서 있는 것은 나병환자에게도 공덕을 지을 기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나병환자는 자신의 앞에 발우를 들고 서 있는 깟싸빠존자를 보았습니다. 얻은 것을 먹고 있었는데 그 중에 남는 것을 발우에 건네 주었습니다. 그런데 나병환자의 썩은 손가락이 발우에 떨어진 것입니다. 이에 대한 테라가타 게송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드러진 손으로 그는,
나에게 그의 음식의 일부를 건넸다.
음식의 일부를 발우에 던질 때에
그의 손가락도 그 곳에 떨어졌다.”(Thag.1061)
세상에 가장 비참한 자가 나병환자입니다. 아무도 가까이 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나병환자가 오면 돌팔매질 하며 쫓아냅니다. 그런데 성자는 일부로 나병환자에게 다가가서 복을 짓게 만들고자 했습니다. 마침내 음식이 발우에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썩은 손가락도 함께 들어 왔습니다.
마하깟싸빠존자는 나병환자가 건네 준 음식을 먹었습니다. 물론 나병환자의 썩은 손가락도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맛이었을까요? 이어지는 게송에서는 “담장의 아래에서 나는, 그 음식을 한주먹 먹었는데, 먹으면서도 먹고나서도 나에게 혐오가 일어나지 않았다.”(Thag.1062)라 했습니다. 썩어 문드러진 손가락을 먹었어도 구토를 한다든가 하는 현상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마하깟싸빠존자의 신통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설명해 놓았습니다.
수행자들의 밥값
부처님 당시 수행자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걸식에 의존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걸식자라도 차이가 있습니다. 육사외도나 바라문 수행자도 걸식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도 걸식했습니다. 똑 같은 걸식자들입니다. 그러나 차이 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청정’입니다. 이와 같은 차이에 대하여 상윳따니까야 ‘걸식자의 경(S7.20)’에 따르면 차이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걸식을 한다고 때문에 걸식자가 아니니 취가 나는 가르침을 따른다면 식 수행자가 아니네. 덕마저 버리고 악함도 버려 정하게 삶을 영위하며 혜롭게 세상을 사는 자가 야말로 걸식 수행승이네.”(S7.20)라 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이 타수행자와 걸식에 있어서 차이 나는 것은 ‘청정한 삶(Brahmacariya)’을 추구한다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열반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그런데 가르침을 실천하여 사쌍발배의 성자가 되었을 때 더 이상 걸식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쌍팔배가 되면 범부에서 성자로 계보가 바뀌기도 하지만 동시에 걸식자에서 복전으로 바뀝니다.
군대에서 장군이 되면 수 십가지 대우를 받는 다고 합니다. 큰회사에서 임원이 되면 수 십가지 예우가 따른다고 합니다. 어느 단체에서나 지위가 높아 지면 그에 합당하는 대우와 예우를 받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사쌍팔배의 성자가 되었을 때 달라지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음식에 대한 것입니다.
탁발이든 청식이든 어느 경우라도 수행자는 음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계행이 엉망인 자는 음식을 도둑질 하는 것이고, 정진하지 않는 자는 밥값을 못하기 때문에 빚진 자라는 것입니다. 성자의 흐름에 들었을 때 비로소 부처님의 유산을 즐길 자격을 가진 자가 됩니다.
모든 번뇌가 사라진 자는 자기음식을 즐기는 자라 했습니다. 밥도둑도 아니고 밥에 빚진 자도 아니고 유산을 얻어 먹는 자도 아닌 자신의 밥을 먹는 자를 말합니다. 그런데 마치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한 복지시스템을 구축했을 때 천상과도 같은 삶을 사는 자에게 분발할 수 있는 노력이 있을까요? 탁발의 전통이 사라진 한국불교에서 출가에서 다비까지 모든 것이 구족 되었을 때 성자가 출현한다는 보장이 있을까요? 과연 우리 스님들은 밥값을 하고 있을까요?
2017-11-2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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