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의 교만과 수행승의 교만, 처음처럼 초심(初心)으로
며느리의 교만
어느 조직이나 단체에 들어가게 되면 처음에는 조신(操身)하게 됩니다. 몸가짐을 조심스럽고 얌전하게 행위합니다. 시집 온 며느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앙굿따라니까야 ‘며느리의 경(A4.74)’에 이런 가르침이 있습니다.
Seyyathāpi, bhikkhave, vadhukā yaññadeva rattiṃ vā divaṃ vā ānītā hoti, tāvadevassā tibbaṃ hirottappaṃ paccupaṭṭhitaṃ hoti sassuyāpi sasurepi sāmikepi antamaso dāsakammakaraporisesu. Sā aparena samayena saṃvāsamanvāya vissāsamanvāya sassumpi sasurampi sāmikampi evamāha – ‘apetha, kiṃ pana tumhe jānāthā’ ti!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며느리가 시집오면, 바로 그 날 밤이나 그 날 낮 동안은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와 남편과 심지어는 하인이나 일꾼들에게까지 아주 부끄러워하고 창피스러워한다. 그러나 함께 살게 되고 친밀해지면서 나중에는 시어머니와 시아버지와 남편과 심지어는 하인이나 일꾼들에게까지 ‘비켜요, 당신들이 무얼 알아요.’라고 말한다.”(A4.74)
앙굿따라니까야 ‘며느리의 경’을 보면 부처님 당시나 오늘날이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합니다. 신참자들이 조직이나 단체의 문화와 전통에 익숙해지면 그 때부터 제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아는 것이 별로 없는 노인이나 일꾼 들을 무시하기 시작 한다는 것입니다. 경에서는 ‘비켜요, 당신들이 무얼 알아요.’라 합니다.
며느리는 대체 무엇을 알기에 시부모와 일꾼들에게 “당신들이 무얼 알아요”라 했을까요? 초불연에서는 “저리 가세요, 당신들이 무엇을 알아요?”라 번역했습니다. 시부모와 일꾼들이 대체 무엇을 모르기에 무시당하는 것일까요?
며느리가 ‘비켜요, 당신들이 무얼 알아요.’라 한 것은 빠알리 문구 “apetha, kiṃ pana tumhe jānāthā”을 번역한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pana’입니다. 빠알리어 빠나(pana)는 ‘life; breath; a living being’의 뜻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비켜요, 당신들이 살림에 대해 알아요?”가 됩니다. 집안 살림을 총괄하고 있는 며느리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라 봅니다. 빅쿠보디는 “Go away! What do you know?”라 번역했습니다.
세 번역을 보면 공통적으로 “저리가요, 당신들이 무엇을 알아요?”라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빠알리 원문을 보면 “apetha, kiṃ pana tumhe jānāthā”라 되어 있어서 빠나(pana)가 집안일에 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집안일을 잘 아는 며느리에게서 교만이 일어난 것입니다.
수행승의 교만
아는 것이 힘이라 했습니다. 해당 분야에서 남보다 많이 알면 힘을 발휘합니다. 힘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힘을 행사하고 싶어 합니다. 주먹이 센 자는 자신의 주먹을 과시하고자 합니다. 권력을 쟁취한 자는 자신에게 도전하는 자에게 본 때를 보여줍니다.
아는 것이 많은 자들은 아는 체 하기 마련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은 배우지 못한 사람을 무시하기 쉽습니다. 학력이 높은 자에게 배운자의 교만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시집은 며느리가 처음에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눈도 마주치지 못했으나 해가 갈수록 집안 살림에 대하여 아는 것이 많아 졌을 때 교만이 생겨났습니다. 새로 들어온 새내기 빅쿠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부처님은 수행자의 교만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Evamevaṃ kho, bhikkhave, idhekacco bhikkhu yaññadeva rattiṃ vā divaṃ vā agārasmā anagāriyaṃ pabbajito hoti, tāvadevassa tibbaṃ hirottappaṃ paccupaṭṭhitaṃ hoti bhikkhūsu bhikkhunīsu upāsakesu upāsikāsu antamaso ārāmikasamaṇuddesesu. So aparena samayena saṃvāsamanvāya vissāsamanvāya ācariyampi upajjhāyampi evamāha – ‘apetha, kiṃ pana tumhe jānāthā’ ti!
“수행승들이여, 이와 마찬가지로 세상에 어떤 수행승은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하면, 바로 그 날 밤이나 그 날 낮 동안은 수행승과 수행녀와 재가의 남자신자와 재가의 여자 신자와 심지어는 승원에서 일을 돕는 사미승에게까지 아주 부끄러워하고 창피스러워한다. 그러나 함께 살게 되고 친밀해지면서 나중에는 스승에게도 친교사에게도‘비켜요, 당신들이 무얼 알아요.’라고 말한다.”(A4.74)
수행승(bhikkhu)들도 처음에는 조신합니다. 그러나 승원생활에 익숙해지면 교만이 생겨나게 됩니다. 일종의 배운 자의 교만이라 볼 수 있습니다. 출가하면 재가에 있을 때 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은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숫따니빠따에서는 “하늘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백조의 빠름을 따라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재가자는 멀리 떠나 숲속에서 명상하는 수행승, 그 성자에 미치지 못한다.”(stn221)라 했습니다. 갓 출가한 새내기 수행승이라도 수행의 진전은 재가자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기 때문에 백조의 비유를 들어 설명한 것입니다.
갓 출가한 새내기 수행승은 누구에게나 조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수행이 진전 됨에 따라 교만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켜요, 당신들이 무얼 알아요”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스승(ācariya: 阿闍梨)’이나 ‘친교사(upajjhāya: 戒師)’ 보다 더 높은 경지를 체험 했거나 삼장에 대하여 많이 알게 되었을 때 일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apetha, kiṃ pana tumhe jānāthā’에서 빠나는 존재(living being) 대한 것입니다. 존재일반에 대하여 잘 아는 수행자에게서 교만이 일어난 것입니다.
처음처럼 초심(初心)으로
새내기 며느리나 새내기 수행승은 조신하게 행동하고 고분고분합니다. 그러나 차츰 익숙해지고 아는 것이 많아 질수록 교만이 생겨납니다. 그것은 “니들이 무얼 알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아래 사람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어른들까지 안하무인식으로 대합니다.
많이 가진 자일수록 부자의 교만이 생겨나고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면 태생의 교만이 생겨나는 것처럼, 많이 아는 자는 아는 것에 대한 교만이 일어납니다. 마찬가지로 며느리가 집안 일을 많이 알게 되었을 때, 수행승이 교학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많이 알게 되었을 때 교만이 일어납니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adhunāgatavadhukāsamena cetasā viharissāmā’ ti. Evañhi vo, bhikkhave, sikkhitabba” nti. Tatiyaṃ.
“그러므로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이와 같이 ‘처음 시집온 며느리와 같은 마음으로 지내리라.’라고 배워야 한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배워야한다.” (A4.74)
부처님은 처음 시집온 며느리처럼 마음을 내라고 했습니다. 다름 아닌 초심(初心)입니다. 처음 가졌던 마음으로 되돌아 가야 함을 말합니다. 며느리가 처음 시집왔을 때 부끄럽고 창피하여 얼굴을 못 들고 눈도 못 마주칠 정도로 조신하게 행위 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수행승들도 처음 승원에 들어왔을 때와 같이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 자세를 가지라는 것입니다. 처음처럼입니다.
2017-12-0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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