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내려 놓았을 때 저절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2. 7. 17:00


내려 놓았을 때 저절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

 

 

수험생은 합격을 목표로 공부합니다. 반드시 붙는다는 확신이 있어야 붙는다고 합니다. 반신반의 하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의지에 불타 올랐을 때 이미 붙은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사업은 성공을 목표로 합니다. 단계적인 목표를 정해 놓고 달성하고자 합니다.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투지로 불 탈 때 못할 것이 없습니다. 죽 그 길로 나아가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시험이든 사업이든 그 어떤 무엇이든 여건을 마련 해야 합니다. 기반조성을 잘 하는 것입니다. 기도만 열심히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수험생이라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조건을 역시 마련 해 주어야 합니다. 되고 안되고는 알 수 없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而待天命)입니다. 깨달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깨달음에 집착했을 때

 

앙굿따라니까야에우빠바나의 경(A4.175)’이 있습니다. 우빠바나 존자는 리뿟따 존자에게 벗이여, 싸리뿟따여, 명지에 의해서 종식이 이루어집니까?”라며 물어 봅니다. 이에 싸리뿟따는 벗이여,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명지(vijjā)란 무명(avijjā)의 반대말입니다. 무명이 타파 되면 깨달은 자가 됩니다. 명지를 이루면 자연스럽게 괴로움과 윤회의 종식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런데 싸리뿟따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우빠바나존자는 덕행에 의해서 종식이 이루어집니까?”라며 또 묻습니다. 싸리뿟따존자가 또 부정적으로 대답하자 이번에는 명지와 덕행에 의해서 종식이 이루어집니까?”라며 또 묻습니다. 이번에도 부정적인 대답입니다. 싸리뿟따존자는 세 번이나 물었음에도 부정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우빠바나존자가 네 번째 물었을 때 싸리뿟따존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벗이여, ‘명지에 의해서 종식이 이루어진다.’라고 한다면 그는 집착으로 가지고 종식을 이루는 것입니다. 벗이여, 벗이여, ‘덕행에 의해서 종식이 이루어진다.’라고 해도, 그는 집착으로 가지고 종식을 이루는 것입니다. 벗이여, ‘명지와 덕행에 의해서 종식이 이루어진다.’라고 해도, 그는 집착으로 가지고 종식을 이루는 것입니다. 벗이여 명지와 덕행 이외에 다른 것으로 종식이 이루어진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범부의 종식을 이루는 것입니다. 벗이여, 범부는 명지와 덕행이 없어, 덕행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또한 보지 못합니다. 덕행을 갖춘 자는 있는 그대로 알고 또한 봅니다. 있는 그대로 알고 또한 볼 때 종식이 이루어집니다.”(A4.175)

 



 

여기서 핵심어는 집착(upādāna)’입니다. 집착을 가지고 끝장(antakara)’을 보려 하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지 집착이 개입 되면 괴로움이 발생합니다. 깨닫겠다고 하여 집착을 가졌을 때 깨달음은 저 멀리 도망가 있을 것입니다. 명지만 이루면 깨달을 것 같지만, 그 집착으로 인하여 결코 깨달음에 이를 수 없음을 말합니다.

 

명지라는 말은 깨달음을 이루기 위한 필수 요소입니다. 일반적으로 삼명(三明) 또는 육신통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에 대하여 삼명이라 하여, 이와 같은 세 가지 명지로 괴로움과 윤회를 끝장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명지가 집착의 대상이 되었을 때 결코 깨달음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출세간의 깨달음은 세간적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간에서는 시험이나 사업 등 목표가 있어서 목표에 대한 집착을 하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출세간에서는 집착하면 집착할수록 더욱 더 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명지와 덕행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명지와 덕행 그 자체에 대하여 집착하면 절대 깨달음을 이룰 수 없을 것이라 합니다. 명지와 덕행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았을 때 깨달음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수행하면 알 수 있습니다.

 

죄선수행하면 일반적으로 호흡에 집중합니다. 그러나 집중하려 하면 할수록 잡념만 생겨납니다. 잘 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안 되는 것이 수행입니다. 호흡에 집중하여 고요함을 맛보려 하지만 마음은 더욱 더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마치 시험공부하듯, 마치 사업하듯 고요함을 맛보려 하는 것입니다.

 

시험공부하면 원하는 성적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장사를 열심히 하면 돈은 벌리게끔 되어 있습니다. 세간적인 일은 누구나 열정을 가지고 애를 쓰면 쓸수록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정반대입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애를 쓰면 쓰면 쓸수록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차라리 내버려 두는 것이 낫습니다.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 놓는 것입니다.

 

연기법이 조건법이라면

 

부처님은 정진의 경(Sn3.2)’에서 악마와 싸웠습니다. 악마는 번뇌를 상징합니다. 부처님은 내게는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stn.440)라 했습니다. 부처님이 싸운 것은 번뇌라는 악마이지 깨달음을 얻겠다는 집착이 아니었습니다. 숙명통, 천안통, 누진통이라는 삼명을 얻으려는 집착이 아니라 깨닫기 위한 조건을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는 연기법으로도 설명됩니다.

 

연기법을 조건발생이라 합니다. 연기법을 뜻하는 빠알리어가 빠띳짜사뭅빠다 (paiccasamuppāda)인데, 이는 조건에 따라(paicca: )’라는 말과 함께 일어남(samuppāda: )’이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그래서 연기법을 조건법이라고 말합니다.

 

연기법이 조건법이라면 조건만 잘 갖추어 놓으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것도 공부할 조건만 잘 갖추어져 있다면 합격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설령 이번에 실패 하더라도 조건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다음에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찬가지로 사업하는 것도 환경을 잘 갖추어 놓으면 돈을 잘 벌 수 있습니다. 설령 지금 돈을 못벌더라도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돈을 벌 수밖에 없습니다. 깨달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깨달음의 첫번째 조건은?

 

수험생이나 사업하는 자나 조건이 잘 갖추어져 있다면 성공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 조건 중에서 가장 큰 것을 들라 한다면 부지런함(不放逸)’을 것입니다. 수행자 역시 불방일이 깨달음의 첫번째 조건일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최후의 말씀에서 불방일정진(不放逸精進)’하라고 했습니다.

 

게으른 자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게으른 자가 시험에 붙을 수 없고 사업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게으른 자가 깨달을 수 없습니다. 모든 세간적 성공이나 출세간적 깨달음의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은 불방일(appamāda)’입니다.

 

불방일이 왜 기본중의 기본일까? 그것은 모든 선법에 있어서 선구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태양이 떠 오를 때 그 선구이자 전조가 되는 것은 바로 새벽이다.” (S45.54)라며 새벽의 비유를 들었습니다. 태양이 떠 오르기 전에 먼저 전조가 새벽인 것처럼, 깨달음의 전조가 바로 불방일이라는 것입니다.

 

게으르지 않는 것, 부지런한 것이 모든 성공의 전제조건입니다. 성공에 대하여 집착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성공하기 위한 조건만 마련해 놓으면 됩니다. 그 조건 중의 조건이 불방일입니다.

 

매일 꾸준히 쓰다 보니

 

어떤 일이든지 부지런하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 그 자체에 집착하면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이는 성공한 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이렇게 성공할 줄 몰랐다고 합니다. 열심히 하다 보니 성공했을 뿐이라 합니다.

 

블로그를 만든지 12년 되었습니다. 2005년 당시 블로그만들기가 유행이던 시절에 나도 블로그라는 걸 하나 만들어 볼까?’라고 시작했습니다. 블로그를 시작할 때 불교계 제일의 블로그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욕망은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쓰다 보니 점점 알려 지게 되었고 조회수도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블로그 만든지 12, 블로그에 글을 쓴 지 11년 된 현재 블로그 누적 조회수는 578만명에 달합니다. 불교계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불교계에서는 넘버원 블로그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교계언론에서는 파워블로거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파워블로거를 목표로 하지 않았습니다. 블로그에 처음 글을 쓸 때 나도 글이라는 걸 한번 써볼까?’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단지 글쓰기가 좋아서 글을 썼습니다. 글쓰기 해서 돈을 번다거나 유명블로거가 되리라고 생각하면서 쓴 것은 아닙니다. 매일 꾸준히 쓰다 보니 알려지게 되었고 동시에 조회수도 늘어나서 오늘날 불교계 넘버원 블로그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덩달아 파워블로거라는 칭호도 받게 되었습니다.

 

내려 놓았을 때 저절로

 

성공하려면 먼저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해 놓아야 합니다. 성공은 나중 문제입니다. 그런 조건 중에 불방일은 필수입니다. 수행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깨닫는 것은 나중의 일입니다. 우선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마지막 말씀으로 불방일정진!”이라 한 것입니다.

 

연기법은 조건발생입니다. 조건이 형성되면 결과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성공하기 위한 조건을 마련해 놓았을 때 성공의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라는 식으로 세간에서나 통용되는 조건입니다. 세간에서 아무리 성공한다고 해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출세간에서 성공조건은 세간과는 정반대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조건소멸입니다. 출세간에서는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면 형성이 소멸하고라는 식이 되어, 조건소멸하다 보면 깨달음에 이르게 되어 있습니다.

 

세간에서는 성공해도 괴로움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출세간에서 성공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세간에서 성공은 집착의 산물이라 볼 수 있지만, 출세간에서는 놓아 버렸을 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범부는 깨달음에 대해서도 세간적 성공의 방식대로 이루고자 합니다. 깨달음이 집착의 대상이 되었을 때 결코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깨달음은 깨닫겠다는 집착을 내려 놓았을 때 이루어집니다. 깨닫기 위한 조건을 먼저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좌선할 때 호흡에 집중하는 것도 조건일 것입니다. 집중하기 위해서는 부지런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여건이 마련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내려 놓았을 때 저절로이루어질 것입니다. 마치 부지런한 자가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에 다 되어 있는 것처럼.

 

 

2017-12-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