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삼보일배, 촛불은 계속되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회견, 삼보일배,
촛불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물론 여법(如法)한 법회를 가져야 합니다.
불자들은 가르침(Dhamma)대로 살아야 합니다.
가르침은 경전에 잘 설명 되어 있습니다.
가르침대로 사는 것이 여법한 삶이고,
법다운 삶이고, 정의로운 삶입니다.
기고문에 가르침을
인용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이를 문제 삼는 것은
불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모든 행위의 기준은 가르침입니다.
나의 행위가 가르침에 맞는 것인지
끊임없이 반조해야 합니다.
또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라며 경전을 열어 보아야 합니다.
율장의 성립은
‘수범수제(隨犯隨制)’에 따른 것입니다.
재가자의 승가에 대한 지적입니다.
여법하지 않은 행위를 보고서
‘비난하고 분개하고 혐책했다’라는
내용이 이를 말해 줍니다.
비난 받을 행위를 했을 때
계율이 만들어집니다.
수행자에게는 일반사람들 보다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가 적용됩니다.
상윳따니까야 ‘향기도둑의 경’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 (S9:14)
해탈과 열반을 위하여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들의
계행에 대한 것입니다.
탁발을 마친 비구승이
연꽃향기에 취해서
매일 냄새 맡는 것을 보고
천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이 연꽃의 향기를 맡을 때
그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네.
이것은 도둑질의 한 가지이니,
벗이여, 그대는 향기 도둑이네.”(S9:14)
아주 작고 사소한 행위가
반복되면 해탈과 열반의 길에서
멀어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입니다.
재가자가 출가자의 범계행위를
비난하고 분개하고
혐책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율장에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수행자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재가단체의 구성원들도
수행자 못지 않게
도덕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법하지 않은 삶,
정의롭지 않은 삶을 살면
비난을 면치 못할 겁니다.
진리를 추구 하는 자들은
세상과 싸우지 않습니다.
다만 세상이 싸움을 걸어 올 뿐입니다.
진리를 말하는 자들은
세상 누구와도 싸우지 않습니다.
다만 여법하게, 법답게,
정의롭게, 가르침대로 살 뿐입니다.
2018-01-1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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