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가에서 다비까지? 재정의 출재가역할분담 없는 불교개혁은 사상누각
출가에서 다비까지, 참 좋은 말입니다. 마치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연상됩니다. 최상의 복지시스템을 말합니다. 최근 불교신문에 따르면, 조계종 19교구본사 화엄사에서 ‘출가에서 다비까지’구호를 내 걸었습니다. 교구 내 모든 스님들에게 완벽한 복지를 보장하겠다는 것입니다. 마치 한번 공무원이 되면 고용보장은 물론 신분보장, 심지어 연금보장까지 해주는 삼중축복을 연상케 합니다.
출가하면 입을 것과 먹을 것과 잘 곳을 제공해 줍니다. 공부하는 자에게는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수행자에게 먹을 것 등을 보시하는 것은 큰 공덕을 짓는 것이라 했습니다. 탁발전통에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자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재가자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그랬고 남방 테라와다불교에서도 그렇습니다. 동아시아 불교에서는 기후조건 등으로 인하여 탁발 등 재가자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백장청규에서는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을 수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공부하지도 않고 수행하지도 않는 자, 무위도식 하는 자에게 출가에서 다비까지 보장해 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출가자는 공무원이 아닙니다. 공무원처럼 고용보장, 신분보장, 연금보장이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만일 공무원처럼 삼중축복을 준다면 우리나라는 출가자로 넘쳐 날 것입니다. 취직이 안되어서 출가하거나, 사업 하다 실패 해서 출가하거나, 가정이 파괴되어서 출가하는 등 생계형 내지 도피형 출가자로 넘쳐 난다면 승려의 질적 저하는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요즘은 스님도 광고를 내서 모집하는 것 같습니다. 미남미녀 스님을 모델로 하여 구인광고 내듯이 스님광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출가에서 다비까지’ 완전한 복지시스템을 내건다면 갈 곳이 없는 자들이 몰려 들 것입니다. 더구나 처자식을 가질 수 있다면, 소위 어중이 떠중이, 심하게 말하면 개나 소나 다 몰려 들 것입니다.
율장을 보면 출가시켜서는 안될 유형이 있습니다. 강도, 도적, 빚진 자, 생계형 아동 등 구족계를 받기에 부적합한 자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출가자가 줄어 든다고 하여 마구잡이로 받아 들인다면, 더구나 ‘출가에서 다비까지’환상적인 복지시스템을 제시한다면 생계형과 도피형 출가자를 양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님 숫자가 적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스님 같지 않은 스님을 쳐 내서 스님 같은 스님만 남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비구계와 비구계를 지키는 스님에 대해서만 스님으로서 인정하는 것입니다. 구족계를 받았지만 이 시점에서 비구선언 또는 비구니선언을 다시 해야 합니다. 스스로 ‘나는 비구이다’ 또는 ‘나는 비구니이다’라고 선언한 자에게만 스님으로서 대우를 해주는 것입니다.
비구선언한 자에게는 가사를 달리 해야 합니다. 남방식 가사를 수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입니다. 기존의 회색승복 대신에 비구선언을 한 자에 대해서는 부처님 당시의 가사를 수하게 하는 것입니다. 가급적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출가에서 다비까지, 참 좋은 말입니다. 작년 뜻있는 불교인들은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때 출가에서 다비까지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마치 출가에서 다비까지 복지스시스템이 이루어지면 불교개혁이 다 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착각에 불과합니다.
새로 구성된 조계종 집행부에서는 ‘출가에서 다비까지’ 복지시스템을 구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번에 화엄사에서는 교구 내 전 스님을 대상으로 출가에서 다비까지 복지시스템을 실시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전 교구로 퍼져 나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출가에서 다비까지 복지시스템이 시행된다면 불교개혁은 완성되는 걸까요?
작년 불교인들은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루어진 것이 없습니다. 다만 적폐가 있음을 알린 것은 큰 성과라 볼 수 있습니다. 요구조건 중에는 ‘출가에서 다비까지’항목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임 집행부에서는 ‘출가에서 다비까지’를 시행하려 하고 있습니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촛불을 든 의미를 퇴색하기에 충분합니다.
불교개혁은 ‘출가에서 다비까지’ 승려복지 시스템이 목적이 아닙니다. 진정한 불교개혁은 출가와 재가의 재정에 대한 역할분담입니다. 현재와 같이 비구승이 모든 것을 쥐고 있는 한 불교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비구승이 재정권을 가지고 있는 한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돈을 만지고 있는 한 처자식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갈 곳이 없는 생계형 출가자와 도피형 출가자가 돈을 만졌을 때 감각적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불교개혁은 출가에서 다비까지 승려복지스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출가와 재가의 재정에 대한 역할분담으로 완성됩니다. 재가전문가가 사찰과 종단의 운영과 재정을 담당하고, 출가에서는 일을 잘 하는지 감시하면 됩니다. 출재가역할 분담 없는 불교개혁은 사상누각입니다.
2018-01-12
진흙속의연꽃
'한국불교백년대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디수첩에서 낱낱이 밝혀 주기를 (0) | 2018.04.24 |
---|---|
기자회견, 삼보일배, 촛불은 계속되어야 (0) | 2018.01.15 |
불자대상과 재가불자상, 참여불교재가연대 초대를 받고 (0) | 2017.12.16 |
종교인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분노, 조계종 적폐청산 시민연대 시즌2 (0) | 2017.12.12 |
최승호피디의 MBC입성을 보고 (0) | 2017.12.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