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평화불교연대

설조스님의 승의적 초월의 길, 단식 18일차 토요법회

담마다사 이병욱 2018. 7. 8. 09:06

 

설조스님의 승의적 초월의 길, 단식 18일차 토요법회

 

 

제발 단식을 중단하십시오.”

 

제발 단식을 중단하십시오.” 함께 간 의사의 말입니다. 설조스님 단식 18일 째를 맞아 7 7일 토요일 정의평화불교연대 샘들과 함께 단식장에 갔습니다. 정년을 지났지만 현재도 진료를 보고 있는 샘이 한 말입니다.

 



 

현업 의사가 단식중단을 요청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명에 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의사로서 당연히 단식 중단을 요청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목숨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임계점이 있다고 합니다. 한계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단식도 임계점이 있습니다.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 되돌아 올 수 없다고 합니다. 현재 88세의 노구의 단식이 19일 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습니다.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유언을

 

스님은 목숨을 건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날 단식장에 갔더니 마치 유언을 하듯이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도무지 멈출 것 같지 않습니다. 이를 지켜 보는 사람들은 애가 타들어갑니다.

 



 

우정공원에는 사람들이

 

설조스님 단식 18일 째인 우정공원에는 사람들이 계속 몰려 듭니다. 방문자들은 방명록에 기록을 하고 설조스님에게 삼배합니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멀리 지방에서 온 샘도 있었습니다. 경주에서 올라온 회원은 설조스님에게 삼배를 하고 건강하기를 기원했습니다.

 









템플스테이 회관 앞에서는

 

요즘 조계사 일주문 맞은편 템플스테이 회관 앞에서는 매주 두 번 법회가 열립니다. 목요일과 토요일입니다. 길거리 법회입니다. 이전과 다르게 문화공연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 대신 구호와 함성, 그리고 발언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 가고 있음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권승들이 성토 대상이지만,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는 스님들과 불자들도 대상입니다.

 



 

조계종은 임계점을 넘었다

 

누군가는 말합니다. 조계종은 임계점을 넘었다고. 여러 가지 지표가 증명합니다. 불자수 3백만명이 빠져 나간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이를 주식용어로 설명하면 데드크로스(Dead Cross)’가 발생한 것입니다. 이는 개신교와 비교한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매 10년 마다 시행되는 종교인구 총조사에서 처음으로 개신교에 추월당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개신교는 골든크로스(Golden Cross)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식에서는 추세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번 하향 추세가 발생하면 여간 해서는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호재가 있어도 하향추세를 멈출 수 없습니다. 온갖 악재가 다 드러나 더 이상 내려갈 수 없을 때, 즉 바닥을 칠 때 그제서야 상향추세로 갑니다.

 

현재 조계종은 추락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계속 추락하고 있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다고 하는데 어디까지 추락할지 알 수 없습니다. 조계종은 임계점을 넘은 것입니다. 이럴 때 추락을 멈추고자 하는 스님이 나타났는데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흔히 사즉생생즉사 (死則生生則死)라 합니다. 이 말은 죽으려고 나아가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는 말입니다. 이순신장군이 부하들을 독려하기 위해 한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설조스님은 죽기를 각오하고 단식하고 있습니다.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입니다. 자신의 한몸 던져 정법이 수호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바라밀행이라 봅니다.

 

대승불교에 육바라밀이 있습니다. 사전적 의미는 보살이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 해야 할 여섯 가지의 수행을 말합니다. ,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바라밀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전적 설명은 그다지 절박성이 없습니다.

 

2017년 초에 테리가타가 출간되었습니다. 빠일리원문과 주석을 모두 완역한 것입니다. 담마빨라가 주석한 것을 보면 십바라밀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육바라밀의 모태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십바라밀에서 가장 인상적인 문구가 목숨입니다. 바라밀행을 하되 목숨걸고 해야 함을 말합니다.

 

승의적 초월의 길 (dasaparamatthapāramī)

 

무엇이든지 목숨걸고 하면 성취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공부를 해도 수행을 해도 목숨걸고 하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보시도 목숨 걸고 해야 합니다. 단지 여유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보시할 정도를 말합니다. 그래서 보시바라밀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들, 아이들, 재물들을 기부하는 것은 일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손이나 발 등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은 우월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목숨을 보시하는 것은 승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다.” (보시바라밀, dāna-pāramī)

 

 

세 가지 초월의 길(pāramī)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반적 초월의 길 (dasapāramī), 우월적 초월의 길 (dasaupapāramī), 승의적 초월의 길 (dasaparamatthapāramī)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그런데 일반적 초월의 길을 보면 보통불자가 생각하는 보시개념과 완전히 다릅니다.

 

부처님이 보살로서 삶을 살 때

 

초기경전에서 보시하고 지계하면 하늘나라에 태어난다고 합니다. 이는 다름 아닌 봉사하는 생활과 도덕적 생활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끼는 것을 보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시를 해도 생색 낼 정도로 생계에 지장이 되지 않을 정도로 합니다. 주석에서처럼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값비싼 재물을 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본다면 일반불자들의 보시는 일반적 초월의 의 축에도 들어가지 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십바라밀에 따르면 최상의 보시는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이는 승의적 초월의 길을 가는 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보살로서 삶을 살 때 그랬습니다. 주석에 따르면 부처님은 정각을 이루기 전에 사아승지십만겁동안 목숨을 건 바라밀행을 했습니다. 이런 내용은 부처님의 과거생 이야기를 다룬 자따까에 실려 있습니다.

 

결정바라밀(adhiṭṭhāna-pāramī)에 대하여

 

보시를 해도 목숨 걸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처를 이룰 수 있습니다. 계행을 해도 목숨걸어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서라도 생명을 해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승의적 초월의 길은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이 길을 가야겠다고 결심 했을 때 목숨이 두렵지 않습니다. 다름 아닌 결정바라밀입니다. 십바라밀 중에서 결정바라밀에 대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들, 아이들, 재물들과 같은 외적인 대상의 파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결정이 일반적 초월의 길의 결정이고, 그들의 손이나 발 등과 같은 신체기관의 파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결정이 우월적 초월의 길의 결정이고, 그들의 생명의 파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결정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결정이다.” (결정바라밀, adhiṭṭhāna-pāramī)

 

 

이 세상에 자신의 목숨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재물이나 아내, 아이는 외적 대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외적 대상이 파괴되는 것은 일반적 초월의 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체가 파괴 될 정도로라면 흔들림 없는 믿음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손가락을 태운다든가 장기를 기증한다든가 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이보다 더 우월적인 행위는 자신의 목숨을 내 놓는 것입니다. 이것 이상 우월한 바라밀행이 없습니다. 그래서 승의적 초월의 길이라 합니다. 설조스님이 단식하는 것은 다름 아닌 승의적 초월의 길이라 봅니다.

 

이대로 죽는다면 한국불교의 수치

 

하루하루가 안타깝습니다. 단식 19일 째이면 이제 임계점을 넘었습니다. 2014년 세월호 사건에 났을 때 광화문에서는 유민아빠의 단식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진료 했던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이보라 의사는 이번에도 설조스님을 진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임계점을 넘었을 말합니다.

 




죽어 가는 사람은 살려야 합니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현직 의사는 설조스님에게 스님, 제발 단식을 중단해 주십시오.”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단호합니다. 이대로 죽겠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영상으로 유언까지 해 놓은 상태입니다.

 

하루하루 피를 말리는 하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권승들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스님들도 움직이지 않고 불자들도 움직이지 않습니다. 한 생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죽는다면 한국불교의 수치입니다.

 


 

2018-07-08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