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동기 장례식장에서

담마다사 이병욱 2019. 2. 22. 08:37


동기 장례식장에서

 



 

장례식장에 다녀 왔다. 동기 법우님 장례식장이다. 이제까지 친구나 동기의 부모 조사에 참석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같이 배웠던 동기 법우님의 죽음을 연락 받고 참석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이다. 죽음이라는 것이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그것도 아주 가까이 있는 것임을 실감했다.

 

동기법우님은 나이가 스무 살 가량 많다. 법우님은 60대 중반 늦은 나이에 불교에 입문했다. 2004년도 봄이니 지금으로부터 15년전의 일이다. 건축설계회사 사장으로서 수십명의 직원을 둔 성공한 사업가라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초대 동기회장을 맡았다. 나이도 가장 많고 재력도 됫받침되고 리더십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기법우님은 초창기에 활동했고 이후 뜸 했었다. 지금으로부터 4년전 총무를 맡고 나서 휴면법우님 연락작업을 했는데 그 중에 한명이 전회장이었다. 처음에 몇 번 모임에 나왔으나 나이 때문인지 자주 참석하지 못하고 또 뜸한 상태가 되었다. 그러다가 문자를 받은 것이다. 아마 스마트폰에 전화번호가 기록 되어 있었던 같다.

 

이런 사실을 현총무에게 알렸다. 카톡방에 공지가 떴다. 그러나 가겠다고 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애도를 표하는 짤막한 글은 줄을 이었지만 장례식장에 간 사람은 소수였다. 동기 부모가 상 당했을 때 많이 참석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런 현상은 다른 모임에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 말에 정승의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정승이 죽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났다.

 

장례식장을 찾지 않은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소원해서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가까우면 참석하고 멀면 참석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실이익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먼 곳에서 시간을 들여서 참석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참석하면 돈이 들어 가게 되는데 돈의 낭비가 될 것이다. 움직이는 것은 힘이 들기 때문에 정력낭비가 된다.

 

장례식장은 우중충한 분위기이다. 누구이든지 장례식장 분위기를 좋아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인지 장례식장 가는 것을 꺼리는 것 같다. 아주 친한 경우나 아주 가까운 경우가 아니면 멀리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반드시 장례식장을 찾는 사람이 있다. 아주 작은 인연이지만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바빠서 참석하지 못하면 봉투를 대신 전달하게 된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장례식장에 참석하는 사람과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마음 상태일까 하는 것이다. 동기장례식의 경우 동기 외에 가족들은 알지 못한다. 눈도장 찍을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찾아가서 조문을 하고 조의금을 전달하고 기록을 남긴다. 그런 가족들은 언제 볼 지 알 수 없다. 일회성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장례식장에 참석하는 것이 자신에게 어떤 이익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주 작은 인연이지만 이를 소중하게 생각하여 참석하거나 봉투를 전달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사람이 반드시 밥만 먹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때에 따라 사람으로서 도리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그것이 경사와 조사 때의 일이다. 특히 조사가 그렇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경사에는 참석하지 못하지만 조사만큼은 빼 놓지 않고 참석한다고 한다. 그런데 조사에 참석하는 것은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것이다. 평소 소원한 관계였다면 조사에 참석하면 달리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해 당사자가 죽었다면 어떻게 될까? 정승과 정승의 개의 경우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늘 듣는 이야기가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한다. 경사와 조사에 참석하는 것은 나누는 행위에 해당된다. 장례식장에 직접 참석하는 것도 봉투를 대신 전달하는 것도 나누는 행위이다. 나누는 행위에는 이익을 따지지 않는다. 이런 행위가 무익한 것은 아니다. 업과 업의 법칙에 따르면 나중에 과보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아비담마에서는 업보에 대하여돕는업방해업등으로 설명한다. 일을 할 때 생각지도 않게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과거 언젠가 도움을 준 것이 익어서 과보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하는 일 마다 되는 것이 없는 사람이 있다. 마치 누군가 방해하는 듯 하는 것이다. 이런 것 역시 업과 업의 과보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

 

장례식장에 참석한 법우님과 음식을 먹으면서 업과 업의 법칙에 대하여 이야기 나누었다. 비록 아무도 알아 주지 않고, 어떤 이익도 기대하지 않지만 분명한 사실은 인간으로서 도리를 다했다는 것이다. 봉투를 전달한 법우님들 역시 망자에 대한 도리를 다한 것이다. 인연을 맺은 법우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춘 이다.

 

 

2019-02-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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