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의천에서 층층나무꽃을 보고
꽃을 보았다. 어제 밤 학의천 산책을 하다가 층층나무꽃을 발견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생태하천으로 변모한 학의천에 이런저런 나무가 있지만 이런 곳에 층층나무가 있을 줄 몰랐다. 딱 한 구루 있다. 대체 누가 심어 놓았을까? 반가운 마음에 위치를 기억해 두었다. 다음날 날이 밝으면 찾아서 사진을 찍어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월의 꽃은 무엇일까? 당연히 벚꽃이 될 것이다. 앙상한 가지에 흰꽃이 먼저 핀다. 꽃이 지고 나면 그제사야 잎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런 사월은 여전히 추운 계절이기도 하다. 사월때까지 내복을 입는다.
오월의 꽃은 무엇일까?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다. 모란과 같은 커다란 꽃잎을 가진 꽃은 취향이 아니다. 요염한 자태의 여인을 보는 것 같다. 꽃이 질 때면 지저분해진다. 추한 여인을 보는 것 같다.
오월에는 무어니무어니 해도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해서 피는 꽃에 마음이 간다. 대개 흰꽃을 특징으로 한다. 동그란 공모양의 불두화가 아름답다. 부처님 정수리를 연상케 하는 흰꽃은 언제 보아도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이와 쌍벽을 이루는 꽃이 있다. 그것은 층층나무꽃이다.
층층나무꽃은 도시에서 보기 힘들다. 산에서 자생하는 것이 보통이다. 관상용으로 재배하기도 한다. 궁궐에서는 ‘말채나무꽃’이라 하여 고급 관상수로도 알려져 있다. 좀처럼 보기 힘든 층층나무꽃을 처음 접한 것은 9년전 청계사 계곡에서 였다.
층층나무꽃은 시루떡을 연상케 한다. 층층이 켜켜이 쌓여 있는 꽃무더기를 보면 시루떡이 층층이 포개져 있는 것 같다. 어느 스님의 글에 따르면 절집에서 층층나무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꽃을 따서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귀한 관상수 층층나무꽃을 보고 마음이 설레였다. 아침이 되자 일부로 그곳까지 걸어갔다. 마치 짝사랑 하는 사람을 몰래 훔쳐 보는 것 같다. 한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은 미인을 보는 것 같다. 요염한 자태의 미인이 아니라 흰색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은 소박한 시골처녀 이미지의 꽃이다.
이제 막 피어 나고 있다. 꽃은 벌어지고 나면 끝이다. 봉오리져서 막 피어 나려 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지금이 그때이다.
꽃이 피고 나서야 층층나무의 존재를 알았다. 학의천을 십년이상 산책 했음에도 그 존재를 알지 못했다. 이제야 존재를 발견했으니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찾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탐욕이고 집착일 것이다.
어느 수행승이 탁발나갔다가 아름다운 연꽃을 보았다. 수행승은 탁발 나갈 때마다 연꽃이 있는 것으로 갔다. 눈으로 보는 것도 모자라서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러자 이를 지켜 보고 있던 하늘사람(天神)이 “그대는 향기도둑이네.”라고 말했다. 주지 않는 것을 취했으니 ‘향기도둑’이라 한 것이다.
수행승은 억울했다. 꽃이 있어서 단지 코만 댄 것뿐인데 향기도둑이라니! 꽃을 꺽어서 가져 간 것도 아니다. 꽃이 좋아서 냄새를 맡은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하늘사람은 도둑질 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하늘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때묻지 않은 사람,
언제나 청정함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머리털만큼의 죄악이라도
구름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네.”(S9.14)
수행승은 해탈과 열반을 추구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청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탁발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다.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꽃에 코를 댔다는 것은 주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천신은 향기도둑이라 했다.
수행자의 허물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크게 보인다. 청정한 삶을 살기로 맹세한 자에게 탐욕과 분노는 커다란 허물이다. 일반사람들이 꽃이 좋아 꽃을 꺽어가도 허물이 되지 않지만 수행자에게는 커다란 허물이 된다. 꽃이 좋아 자주 쳐다 보는 것도 탐욕이 개입된 것이다. 더구나 냄새를 맡았다면 주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이 되어 역시 큰 허물이 된다.
하늘사람은 수행승에게 향기도둑이라 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수행승을 가엽게 여겨서이다. 그런 행위를 내버려 두면 오늘도 내일도 그 꽃 있는 곳으로 가서 코를 댈 것이다. 이렇게 되면 탐욕으로 인하여 갈애가 일어나게 되어 있다. 갈애가 집착이 되면 해탈에 장애가 된다.
법은 법을 지키는 자를 보호해 준다. 부처님 가르침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담마는 담마를 따르는 자를 보호해 준다. (Dhammo have rakikhati dhammacāriṃ)” (Thag.303)라 했다. 이런 논리로 따지면 “계를 지키면 계가 보호해준다.”라는 말이 된다. 더 나아가 “계를 지키면 하늘사람이 보호해 준다.”라는 말이 된다.
한 수행승이 한 우거진 숲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그 수행승에게서 악하고 불건전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다. 세속적인 죄악에 대한 것이다. 이를 가엽게 여긴 하늘사람은 그 수행승을 일깨우고자 앞에 나타났다. 나타나서 “불만족을 버리고 새김을 확립하라.”(S9.1)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감각적 욕망의 티끌로 자신을 타락시키지 말라.”(S9.1)라고 말했다. 수행승은 화들짝 놀랐다. 마치 수호천사처럼 나타나서 그를 꾸짖어 정신을 차리게 만든 것이다.
상가마위자야(saṅgāmavijaya)라는 말이 있다. 전쟁의 승리자라는 말이다. 번뇌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혼자 힘으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하늘사람의 힘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일까 빤딧짜 스님의 ‘11일간의 특별한 수업’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출가하려 할 때 하늘사람이 “아, 어느 지방에서 어떤 부모의 아들딸이 지금 출가하려 한다.”(437p)라고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출가수행자는 이런 소리를 듣지 못할까?
출가를 하면 하늘사람이 보호해 준다. 열심히 수행정진하여 아라한이 될 때도 큰 소리를 지른다고 한다. 소리가 안들리는 것은 열심히 수행정진 하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하늘사람이 이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에 대하여 ‘상가마위자야’라하는데 이는 번뇌와의 전쟁에서 패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축구나 야구경기를 보면서 소리지르면서 응원하듯이, 마찬가지로 하늘사람들도 수행승들을 응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하면 격려하고 못하면 “아이고 아쉽네.”라며 안타까워한다는 것이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출가한다는 것은 우주적 관심사라 볼 수 있다. 하늘사람들이 일거수일투족을 지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잘못하면 따끔한 충고를 주는 것이다. 수행을 게을리 하는 자에게는 “수행승이여, 일어나라. 왜 누워 있는가? 잠잔들 무슨 소용 있는가? 독화살을 맞아 상처받은 자, 병든 자에게 잠이란 무엇인가?”(S9.2)라며 일깨워 주는 것이다.
향기도둑으로 내몰린 수행승은 하늘사람의 소리를 들었다. 크게 뉘우치며 “그대가 그러한 행위를 할 때마다 다시 말해주시오.”(S9.14)라며 요청했다. 그러자 하늘사람은 “우리는 그대에 의지해 살지 않고 또한 당신에게 고용된 하인도 아니네. 행복한 세계로 가는 길을, 수행승이여, 그대가 스스로 알아야 하네.”(S9.14)라며 요구를 일축했다.
일터로 가는 길, 학의천 길에서 아름다운 층층나무꽃을 보았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을 전후하여 피는 층층나무꽃은 보면 볼수록 탐스럽다. 그렇다고 코를 대지 않았다. 향기도둑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눈으로 감상하는 것도 주지 않은 것을 취하는 것이 될 것이다. 꽃이 아름답다고 자꾸 쳐다 보는 것은 탐심에 따른 것이다. 해탈과 열반을 추구하며 청정한 삶을 사는 자에게는 허물이 된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키 높은 나무에서는 흰꽃이 피어난다. 보배경에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Vanappagumbe yathā phussitagge
Gimhānamāse paṭhamasmiṃ gimhe,
Tathūpamaṃ dhammavaraṃ adesayi
Nibbānagāmiṃ paramaṃ hitāya,
Idampi buddhe ratanaṃ paṇītaṃ
Etena saccena suvatthi hotu.
와납빠굼베 야타- 풋시딱게
기마-나마-세 빠타마스밍 기메
닙바-나가-밍 빠라망 히따-야
이담삐 붓데 라따낭 빠니-땅
에떼나 삿쩨나 수왓티 호뚜
“여름날의 첫 더위가 오면,
숲의 총림이 가지 끝마다 꽃을 피어내듯,
이와 같이 열반에 이르는 위없는 묘법을 가르치셨습니다.
부처님 안에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인해서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stn233)
2019-05-0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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