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수행은 간절한 마음으로

담마다사 이병욱 2019. 6. 25. 12:03


수행은 간절한 마음으로

 

 

실제로 호랑이가 앞에 있다면 어떨까? 얼어 버릴 것이다. 호랑이와 두 눈을 마주 하는 순간 죽은 목숨이다.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아주 짧은 시간이 길게 느껴질지 모른다. 시간이 잘게 쪼개져서 점점 느려질지 모른다.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도 그럴 것이다.

 

기다릴 때가 있다. 들어 올 시간이 됐는데 나타나지 않는다. 점점 초조해진다. 시간은 흘러 가는데 도무지 올 줄 모른다. 이곳저곳 수소문 해 보지만 오리무중이다. 연락도 되지 않는다. 온갖 잡생각이 떠 오른다. 낙관적으로 생각해보지만 비관적 생각이 지배적이다. 홀로 골방에 누워 있지만 콩닥거리는 가슴을 지울 수 없다. 애간장이 탄다. 불안, 초조, 공포를 이기기 위해 호흡을 본다. 뚜렷하게 잘 보인다. 어느 순간 모든 것이 사라졌다. 깨어났을 때 어리둥절 했다.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잤다. 여기가 어딘지 내가 누군지 몰랐다. 멍한 상태에서 하나 둘 인식되기 시작 했다. 그러나 여전히 상황은 그대로이다. 초조와 불안,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그가 슬며시 들어왔다. 모든 것이 일시에 해소 되었다.

 

기다릴 때 간절함이 있다. 초월적 존재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다. 위기에 처했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애타게 찾는지 모른다. 배가 침몰할 때 각자 자신의 신을 애타게 찾고 부르짖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럴 때는 차라리 차분히 앉아서 자신을 관찰하는 것이 낫다. 호흡과 관련된 복부 움직임을 관찰하다보면 일시적으로 잊어 버린다. 그런 상태에서 죽음을 맞는다면 천상에 태어날 것이다.

 

상윳따니까야에 사뚤라빠 천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경에서는 그때 많은 싸뚤라빠 무리의 하늘사람들이 깊은 밤중에 아름다운 빛으로 제따바나를 두루 밝히며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왔다. 가까이 다가와서 세존께 예배를 올리고 한쪽으로 물러나 섰다.”(S1.31)라고 시작된다. 인연담은 다음과 같다.

 

 

한 때 선원 칠백명이 탄 상선이 있었는데 바다를 항해하던 중에 무시무시한 폭풍에 직면하였다.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선원들은 자신들의 신에게 미친듯이 매달리며 기도하였다.

 

그런데 그들 선원 중에 어떤 이는 마치 요기처럼 다리를 꼬고 두려움 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들은 그에게 어떻게 이렇게 태연할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그러자 그는 세 가지 피난처(삼보)와 다섯 가지 가르침(오계)에 떠 맡겼었기 때문에 그 어떤 두려움도 없다고 하였다.

 

그들은 그와 똑같이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그는 선원들을 백명씩 일곱 그룹으로 나눈 후에 각 그룹에 피난처들과 교훈을 주었다. 이렇게 삼귀의와 오계 수지가 완성되는 순간 배는 바다에 의하여 삼켜져 버렸다.

 

이와 같은 최종 행위에 대한 과보로서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속한 그룹의 리더와 함께 즉각적으로 삼십삼천에 태어났다. 그들은 리더들의 호의로 행운을 얻게 된 것을 알고나서 그들의 리더를 칭찬하기 위하여 부처님의 면전에 나타났다.” (Srp.I.54)

 



 

각주에 있는 빅쿠보디 영역을 우리 말로 번역해 본 것이다.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일종의 행동지침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죽음을 잘 맞이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죽는 순간까지 삼귀의하고 오계를 지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마음이 청정해질 것이다. 청정한 마음의 과보로 인하여 난파된 선원들은 모두 삼십삼천에 태어나 천신이 되었다. 그들은 부처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어둠속에서 빛을 내며 부처님 면전에 나타난 것이다.

 

기도는 간절히 하는 것이라고 한다. 대충대충 설렁설렁 하는 것이 아니라 호랑이가 앞에 나타난 것처럼 간절하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유명기도처는 막다른 곳에 있다. 절벽이나 바닷가나 동굴 같은 곳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유명기도처가 있다.

 

수행도 간절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충 시간이나 때우고, 때 되면 밥먹고, 때 되면 잠자고, 힘들면 쉬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한순간도 사띠를 놓치지 말라고 한다. 일어 날 때도 사띠하며 깨야 하고 잠잘 때도 사띠하며 잠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잠들면 사띠 할 수 없기 때문에 송장처럼 뒤척이지 말고 자라고 했다.

 

수행처에서는 말 하지 말라고 했다. 말하면 사띠가 깨지기 때문이다. 선원에서는 묵언이 요구된다. 이를 고귀한 침묵이라고 볼 수 있다. 40가지 사마타명상 주제중에 하나를 선정하여 집중하는 것이다. 두 번째 선정에서 사유(vitakka)와 숙고(vicāra)가 끊어진다. 따라서 고귀한 침묵에서는 일체 말이나 언어와 같은 개념이 발 붙일 수 없다. 그렇다고 입다물고 살라는 것은 아니다. 법담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잡담은 금지 되지만 법담은 장려돤다. 부처님은 가르침()에 대한 것이라면 밤샘토론해도 좋다고 했다. 선원에서 묵언을 원칙으로 하지만 인터뷰할 때는 허용된다. 가르침에 대한 토론은 허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골방에 홀로 앉아 있으면 숨이 쌔근거린다. 호흡에 따라 복부에도 움직임이 있다. 오롯이 움직임을 관찰하면 다른 생각이 나지 않는다. 움직임과 관찰하는 마음만 남게 된다. 이런 상태로 잠들면 죽음보다 깊은 잠을 자게 될 것이다. 그것도 불언과 초조와 공포가 극도로 달했을 때 도대체가 빠져 나갈 구멍이 없다. 마치 호랑이를 마주한 것처럼 생생한 현실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은 간절한 마음으로 하라고 했는가 보다.

 

 

2019-06-2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