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빠사나라는 고속도로를 타면, 우 에인다까 사야도 초청 서울특별법회 둘째날
우 에인다까 사야도 서울특별법회 둘째날이다. 어제 첫날에는 150명 이상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숫자이다. 동국대 대각전 수용인원이 150명인데 꽉 찬 것이다. 둘째날은 백명 이상 왔다. 방명록을 보니 100명 가까이 기록되어 있다. 기록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100명 이상으로 본다. 미얀마 고승이 한국에서 법회할 때 오륙십명 가량 된다고 하는데 배 이상 되는 수치이다. 방송사도 아닌 마이너 교계신문과 인터넷, 에스엔에스로 홍보 했음에도 이렇게 많이 온 것은 정법에 갈증도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2019년 6월 18일(화) 동국대 대각전에서 우 에인다까 사야도 두번째 법회가 열렸다. 법회 둘째날은 수행법문과 실수행, 그리고 인터뷰로 진행 되었다. 법회가 열린 날 저녁에는 간간히 가느다란 비가 내렸다. 우중충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오후 6시 30분부터 사람들이 밀려 들었다.
둘째날에는 새로운 얼굴이 많았다. 첫째날에 이어 둘째날까지 연이틀 참석한 사람은 삼분의 일이 되지 않는다. 둘째날 대다수는 처음 온 사람들이다.
멀리서 온 사람들을 위해 다과와 음료를 제공했다. 사단법인 자비명상 봉사자들이 지원했다. 방명록을 작성하도록 유도하고 먹을 것과 음료수를 제공했다. 저녁밥을 먹고 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떡도 준비 했다. 류남영 선생이 떡 백개와 드링크를 보시했다.
혜송스님은 이 법회가 있기까지 수고해 준 사람들을 소개 했다. 가장 먼저 주최자 중의 하나인 사단법인 자비명상을 이끌고 있는 마가스님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어서 이번 법회를 준비한 이학종선생과 이병욱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리고 사야도를 이곳까지 모시고 온 신성조 선생과 점심공양보시자, 원근각지에서 법회에 참석한 사부대중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스승의 조건과 제자의 조건
실수행에 들어 가기 전에 일종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수행을 해야 하는 이유와 수행방법에 대한 것이다. 수행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특별히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사야도에 따르면 세 가지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다. 첫째로, 빠리얏띠사사나 (pariyatti sāsana)라고 하여 율경론 삼장의 부처님의 말씀을 말한다. 둘째로, 빠띠빳띠사사나(paṭipatti sāsana)라고 하여 실천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셋째로, 빠띠웨다사사나(paṭivedha sāsana)라고 하여 가르침을 통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가르침은 위빠사나를 닦아야 완성된다.
부처님은 사마타와 위빠사나 모두 다 좋은 것이라고 했다. 이 중에서도 위빠사나를 닦으면 더 바람직하고 이익이 된다고 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열반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완벽한 스승이 있어야 한다. 부처님 제자들은 열반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길을 간다. 낯선 곳에 갈 때 지도와 네비게이션이 필요하듯이, 열반이라는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길을 잘 아는 스승에게 의지해야 한다.
불자들에게는 부처님이 스승이다. 만약 부처가 출현하지 않았다면 열반에 이를 수 없을 것이다. 열반의 길로 이끌어 주신 부처님 은혜를 항상 생각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스승이 없으면 위빠사나를 설할 수 없다. 열반에 이르기 위해서는 완벽한 스승에게 의지해야 한다. 이것이 스승의 조건이다.
둘째, 실천수행 할 수 있는 제자가 있어야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실천수행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제자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혜송스님은 “될 때까지 죽기아니면 살기로, 죽기아니면 까무러치기로”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와 과를 이룰 때까지 실천수행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제자를 강조한 말이다. 이것이 제자의 조건이다.
완벽한 스승이 있지만 실천수행할 수 있는 제자가 없다면 법은 성취되지 않는다. 실천수행할 수 있는 제자는 있지만 지도할 수 있는 완벽한 스승이 없어도 법은 성취되지 않는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스승도 완벽하고 제자도 완벽한 것이다. 이 두 가지 조건이 딱 맞아 떨어졌을 때 도와 과를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왜 복부 관찰하는가
사야도는 좌선하는 방법에 대하여 알려 주었다. 마하시전통에서는 복부관찰을 특징으로 한다. 사야도는 배의 불러옴과 꺼짐을 주관찰 대상으로 삼으라고 했다. 배에 마음을 집중하여 불러오는 느낌과 꺼지는 느낌에 주의 기울여 관찰하는 것이다.
사야도는 코끝 관찰도 설명했다. 이른바 ‘아나빠나사띠’를 말한다. 그렇다고 단지 들숨날숨에만 집중하는 사마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코끝 바람이 부딪칠 때 들어 가는 느낌과 나가는 느낌을 관찰하라고 했다. 코끝의 느낌을 관찰하는 것은 위빠사나에 해당된다.
마하시전통에서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을 권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복부의 불러옴과 꺼짐 관찰이 실제하는 성품을 보기 쉽기 때문이다. 복부관찰은 호흡과 연결되어 발생되는 것이기에 관심을 두기만 하면 언제든 쉽게 인지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복부 관찰하면 바람요소의 고유한 특성(움직임, 진동, 지탱)은 물론 일반적(공통적) 특성인 무상, 고, 무아를 경험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이유로 복부관찰을 기본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아나빠나사띠는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모두 가능한 수행방법이다. 마음을 호흡의 들어오고 나가는 데 초점을 모으면 사마타가 된다. 사마타는 개념을 대상으로 한다. 오로지 들숨과 날숨에만 집중한다면 개념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같다. 개념을 대상으로 하면 실제하는 성품을 볼 수 없다.
아나빠나사띠가 위빠사나가 되기 위해서는 코끝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공기가 콧구멍에 닿는데 그때 ‘닿음’을 관찰한다면 그것은 위빠사나 수행이 된다. 단순하게 들숨날숨을 관찰하면 사마타방식이고 닿음을 관찰하면 위빠사나방식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에인다까 사야도는 코끝 바람이 부딪칠 때 들어 가는 느낌과 나가는 느낌을 관찰하라고 했다.
마하시전통에서는 복부의 부르고 꺼지는 움직임을 주관찰 대상으로 한다. 복부를 관찰하다가 통증이 생겨나면 관찰대상이 바뀐다. 강한 대상으로 가는 것이다. 동시다발적으로 통증이 발생하면 그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을 관찰대상으로 삼는다. 이를 순발력 있게 바꾸라고 했다. 틈을 두지 말라는 것이다. 한순간도 사띠가 끊어지지 않아야 함을 말한다.
실제하는 성품을 관찰해야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먼저 생멸의 지혜를 말했다. 대상을 관찰하여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 했을 때 실제하는 성품을 볼 수 있다고 했다. 몸이라면 지, 수, 화, 풍 사대가 해당될 것이다.
마하시전통에서는 복부관찰을 원칙으로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담마마마까 법요집에 따르면 “일어남과 사라짐의 진행과정을 관찰할 때, 배의 겉모양은 완전히 무시해야 합니다. 숨을 들이 쉴 때 배속의 공기가 움직이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때 움직임이 뚜렸하면 뚜렸함을 관찰하고, 아주 강하면 강함을 관찰 해야하고, 약하면 약함을 관찰해야 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이렇게 복부 관찰하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실제 하는 성품(paramattha)’을 보기 위해서이다.
복부 관찰하면 불러옴과 꺼짐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풍대(風大)에 대한 것이다. 통증과 관련해서는 느낌을 관찰 할 수 있다. 마음과 관련해서는 탐욕과 성냄 등 갖가지 심소를 관찰할 수 있다.
몸과 느낌과 마음을 관찰하다 보면 실제하는 성품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하는 성품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무상, 고, 무아이다.
어떤 현상이든지 생겨난 것은 변화하여 사라지기 마련이다. 실제하는 성품도 마찬가지이다. 복부의 불러옴과 꺼짐을 관찰했을 때 풍대라는 실제하는 성품은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통증이라는 느낌을 관찰했을 때 괴로운 느낌이 발생하는데, 이런 느낌 역시 생겨났다가 사라진다.
이 세상에서 생겨났다가 사라지지 않은 것은 열반을 제외하고 단 하나도 없다. 이처럼 생겨난 것이 변화되어 사라져 가는 것을 아는 것에 대하여 ‘무상의 지혜’라고 한다.
느낌에는 세 가지가 있다. 즐겁거나 괴롭거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다. 어느 것이든지 생겨난 느낌은 변화되어서 사라지기 마련이다. 즐거운 느낌을 예로 든다면 지금 편하고 행복한 느낌일지라도 조건이 바뀌면 사라진다. 즐거운 느낌이 오래 지속되지 않아서 불만족한다. 즐거운 느낌을 괴로운 것이라고 아는 것은 ‘고의 지혜’에 속한다.
현상은 쉴새 없이 변한다. 한찰나도 가만 있지 않는다. 우리 몸과 마음에서는 지금 이순간에도 무수한 생멸이 있다. 그런데 이런 생멸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멈추게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제 성품대로 일어난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성품이 일어나고 사라지기 때문에 내것이 아니다. 내가 주인으로서 끼여들 여지가 없다. 이런 사실을 아는 것에 대하여 ‘무아의 지혜’라고 한다.
위빠사나라는 고속도로를 타면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은 실제하는 성품에 대하여 무상, 고, 무아로 알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강한 집중이 요청된다. 남의 다리 들여다 보듯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을 객관적으로 세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집중력이 생겨서 무상의 지혜, 고의 지혜, 무아의 지혜가 생겼을 때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위빠사나 고속도로에 들어 섰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다음 인터체인지까지 계속 그대로 죽 가게 된다. 그리고 고속도로는 속도가 매우 빠르다. 목적지까지 가장 빠르게 갈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고속도로이다. 마찬가지로 위빠사나라는 고속도로를 타면 최단시간에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우리 몸과 마음을 관찰하여 생멸하는 실제 성품을 관찰 했을 때 위빠사나 지혜가 생겨나서 도와 과라는 종착지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수행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좌선시간이 되었다. 시간관계상 30분만 하기로 했다. 혜송스님은 앉는 방법에 대하여 알려 주었다. 부처님의 경우 결가부좌로 앉았지만 각자 편한 방식대로 하면 된다고 했다. 어떤 자세이든지 고통스럽지 않게 앉으라고 했다. 여러 가지 앉는 방법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평좌(平坐)를 권했다.
눈은 감는다. 허리를 곧게 펴고 등과 목은 똑바로 한다. 왼손 위에 오른 손을 올려 놓고 배 앞으로 가져 온다. 두 엄지손가락은 닿을 듯 말 듯 유지한다. 이와 같은 반듯한 자세에 대하여 혜송스님은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자세”라고 말했다.
수행하는 모습은 아름답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귀한자나 천한자나 좌선 하는 모습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실제하는 성품을 관찰하는 수행자는 거룩해 보인다. 한발 한발 천천히 내딛으면서 의도와 움직임을 관찰하는 모습 역시 아름답다.
개념을 말하지 말고 느낌을
삼십분 좌선이 끝났다. 다음 삼십분은 수행점검시간이다. 영어로는 인터뷰라고 한다. 미얀마 수행전통에 따르면 수행자는 수행과정에 대하여 스승에게 보고 하게 되어 있다.
도와 과를 이루려면 자신이 체험한 것을 솔직하고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스승에게 보고 해야 한다. 수행이 올바론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점검 받는 것이다. 비록 삼십분이라는 짧은 시간이긴 하지만 모두 다섯 명이 보고 했다. 그 중에 두 가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질문자는 색계와 무색계에서도 위빠사나 할 수 있는지 물어 보았다. 이와 같은 질문은 적절치 않다. 그래서 통역을 담당한 혜송스님은 “몸의 변화에 대하여 질문하십시오.”라고 말했다.
위빠사나 수행처에서 늘 듣는 말이 있다. 인터뷰점검 할 때 질문자가 몸과 마음을 떠난 것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 “개념을 말하지 말고 느낌을 말하십시오.”라며 충고한다. 위빠사나 수행은 실제하는 성품을 보고자 하는 것인데 교리나 경전문구 등을 이야기하면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본다.
위빠사나 대상은 개념이 아니다. 위빠사나 대상은 실제 하는 성품을 보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 한다. 그럼에도 개념을 이야기하면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은 것으로 본다. 그래서 첫번째 질문자가 “색계와 무색계에서도 위빠사나를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어 본 것은 질문으로 적절치 않아서 채택되지 않았다.
인터뷰에도 요령이 있다
인터뷰에도 요령이 있다. 담마마마까 법요집에 따르면 “간단명료하고 솔직하고 분명하게 자신이 관찰한 것을 보고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전후사정이나 수식어, 자신을 알리고자 하는 말 등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오로지 자신이 관찰 한 것만을 보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부움직임과 관련해서는 짧게 느껴지거나 길게 느껴지는 것, 따뜻함과 시원함 등을 말하는 것이다. 통증이라면 쑤신다든가 시린다든가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보고 해야 한다. 행선에 대해서는 발을 들어 이동 했을 때 가벼운 느낌이나 무거운 느낌 등을 세밀하게 알려야 한다.
인터뷰할 때는 다른 사람을 위한 배려도 중요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면 짧고 명료하게 말해야 한다. 자신이 관찰한 그대로 간단명료하게 솔직분명하게 보고 해야 정확한 지도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니밋따에 대하여
두번째 질문자는 니밋따(nimitta)에 대하여 보고했다. 이전에 요가수행을 했다는 보고자는 호두마을에서 수행한 경험도 가지고 있다. 수행중에 니밋따를 보았는데 색깔이 변해 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에 따라 희열과 기쁨이 생겨났는데, 이런 행복감이 지속되기를 바랬다고 한다. 혼자서 1년 가량 수행했는데 이런 현상이 맞는지 물어 본 것이다.
사야도는 먼저 요가수행을 그만 둔 것은 잘한 일이라고 했다. 부처님이 가르친 것은 사마타와 위빠사나라고 했다. 그리고 니밋따를 본 것에 대해서는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복부의 움직임을 놓친 것이다. 복부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을 때는 느낌을 보라고 했다. 어떤 현상이든지 마음이 일을 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빛과 같은 니밋따가 떴을 때 이를 냉정하게 관찰해야 한다고 말 했다.
집중이 잘 될 때 좋은 느낌이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 좋아하는 마음을 냉정하게 알아차리고 복부 관찰로 복귀해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빛과 같은 니밋따를 따라 가는 것은 탐심(貪心) 때문이라고 한다. 사야도는 “길을 가다가 좋은 길도 있고 나쁜 길도 있지만 가장 이상적인 길은 ‘정확한 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 길이 정확한 길인지 아닌지는 인터뷰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고 했다.
사야도와 함께 기념촬영을
인터뷰를 끝으로 법회가 모두 끝났다. 사야도와 함께 사진촬영 시간을 가졌다. 사야도는 모델이 되어 주었다. 개인별로 단체별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한국불교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희유한 법회이다.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고 하는데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 보시공덕으로 닙바나에 이르기를!”
보시함을 만들었다. 법문을 듣고 누군가는 보시하고픈 마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사야도에게 별도로 보시할 수 있는 시간은 허락되지 않았다. 백명이 넘는 인원이 개별보시할 정도로 여유로운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대신 법회가 끝나고 자유롭게 자율보시 할 수 있도록 보시함을 준비했다.
첫날 150명 이상이 왔다. 모금함을 열어 보니 103만원이었다. 어느 봉투에서는 5만원짜리 2매가 보이기도 했다. 어느 봉투에서는 유로화가 나왔다. 미얀마돈이 나온 경우도 있다. 둘째날은 100명 이상이 왔기 때문에 첫날 보다는 적었다. 모두 합하여 166만 9천원이 집계되었다. 이 돈을 어떻게 해야 할까?
보시금액을 담마마마까 승가에 보시하기로 했다. 사야도가 머물고 있는 엠베서더 호텔을 향했다. 동국대 대각전에서 걸어서 칠팔분 거리에 있다. 이번 법회를 기획하고 사회를 본 이학종 선생과 자원봉사자 구본숙 선생과 함께 호텔 룸에 들어 갔다.
룸에는 정인(淨人)이라고 불리우는 깝삐야 (kappiya)도 있었다. 깝삐야는 빅쿠가 할 수 없는 일을 대신 해 주는 재가자를 말한다. 미얀마인 깝삐야는 사야도와 함께 한국에 왔다. 두 달 동안 머물다 떠 날 때까지 항상 사야도와 함께 한다. 사야도는 돈을 만질 수 없기 때문에 깝삐야가 대신 받는다.
봉투는 여법하게 전달해야 한다. 보시한 사람들을 대표하여 룸에 있는 다섯 사람이 봉투가 올려져 있는 받침대를 잡았다. 깝삐야는 옆에서 합장하며 지켜 보고 있었다. 사야도는 “이당메 뽕냥 아소왜케양 와항 호뚜”라며 축원 해 주었다. 이 말은 “이 선업 공덕으로 수행의 장애(탐, 사견, 치)가 소멸하기를!”라는 뜻이다. 이어서 사야도는 “이당매 다낭 닙바나싸 삣쎄요 호뚜”라며 또 축원해 주었다. 이 말은 “이 보시공덕으로 닙바나에 이르기를!”라는 뜻이다.
마음이 아름다운 수행자들이여!
이틀간 열린 법회는 모두 동영상으로 촬영되었다. 불교계 인터넷 사이트 ‘운판’ 운영자 김경호 선생이 촬영한 것이다. 모두 유튜브에 올릴 예정이다. 인터넷의 바다에 올려지면 시공간을 초월하여 누구나 볼 수 있다. 이틀간에 걸쳐서 250명 이상 왔지만 유튜브 조회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만큼 와서 본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불자들의 신심이다.
법회 시작에서부터 끝날 때까지 흐트러짐이 없었다. 모두 진지하게 경청했다. 맛지마니까야에 따르면 “세존께서 수백 명의 대중에게 가르침을 설하면, 세존의 제자들은 소란을 피우지 않고 기침소리도 내지 않습니다.”(M89)라고 말했다. 사야도가 법문할 때 대중들은 매우 진지한 자세로 경청 했다. 좌선 할 때에는 법당에 청정한 기운이 돌았다. 이런 모습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신심이다. 그것은 정법에 대한 갈망일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설하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에서 감동 받아서일까 자율보시함에는 불자들의 정성이 담겨 있었다. 보시하면 공덕이 따른 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훌륭한 법문을 듣고 신심이 생겨나서 기쁜 마음으로 보시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담마마마까 법요집에 있는 사야도 축원문을 올린다.
“마음이 아름다운 수행자들이여! 지금 여러분은 삼귀의와 9계(5계)를 서원함으로써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계장엄을 하였습니다. 이 공덕으로 아빠마데나를 완성하십시오. 아빠마데나란 부처님 일생의 가르침이며 유훈입니다. 아빠마데나란 걸을 때도 잊지 않고 싸띠하며, 서 있을 때도 잊지 않고 싸띠하며, 앉아 있을 때도 잊지 않고 싸띠하며, 누워 있을 때도 잊지 않고 싸띠하는 것입니다. 또 볼 때도 싸띠하고, 들을 때도 싸띠하고, 냄새에도, 먹을 때에도, 접촉할 때에도, 생각이 날 때에도, 잊지 않고 알아차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노력으로 24시간 이어지는 싸띠를 충분하고 완전하게 성취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9-06-19
담마다사 이병욱
'수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행은 간절한 마음으로 (0) | 2019.06.25 |
---|---|
우 에인다까 사야도 대각전특별법회 동영상 (0) | 2019.06.20 |
네 가지 좋아하는 길이 있는데, 우 에인다까 사야도 초청 서울특별법회 첫날 (0) | 2019.06.18 |
아줌마들도 명상을 한다, 미얀마 법문축제의 추억 (0) | 2019.06.16 |
명칭붙이기로 명상을 생활화 하기 (0) | 2019.06.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