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이 서민 것을 팔아 주지 않으면
분갈이를 했다. 난에 열심히 물을 주지만 자꾸만 말라 죽어 가는 것 같다. 십년전 선물로 받은 관음란은 몇 해 꽃이 피었으나 이후 핀 적이 없다. 그럼에도 죽지 않았다. 물만 주었을 뿐이다. 잎이 무성해서 세 개로 나누어 화분에 담았다. 문제는 시장에서 사 온 것이다. 싼 맛에 사온 난은 일년을 넘기지 못했다. 육개월이면 수명이 다한 것이다. 이번에 시장에 산 난을 포함하여 기존 난과 함께 분갈이 한 것이다.
안양 중앙시장에서 난을 하나 샀다. 시장입구 노점에서 산 것이다. 가난하고 불행해 보이는 나이가 많이 든 할머니에게서 샀다. 이전에 산 난이 거의 다 죽어 가기 때문에 사무실에 새로운 활력을 넣기 위해서이다. 그렇다고 고급 난이 아니다. 잎파리만 커다란 멋 없는 난이다.
가격을 물어 보았다. 2만 5천원 달라고 했다. 오천원은 그냥 붙여 먹는 것으로 생각하고 2만원에 하자고 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난 장사는 노련했다. 2만천원을 불렀다. 중간에서 만나는 값도 아니고 그것 보다는 더 낮은 가격이다. 흔쾌히 수락했다.
예전에 ‘협상의 법칙’이라는 책을 읽었다. 미국 작가가 쓴 책이다. 책에서는 협상하는 방법에 대하여 예를 들어 잘 설명해 놓았다. 특히 일상에서 물건 값을 깍는 방법에 대하여 상세히 써 놓았다. 그때 당시 책을 읽고서 어떻게 하면 물건 값을 잘 깍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요즘은 시장에서 물건 값을 깍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 정찰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계비용은 어떨까? 거래가 이루어지려면 먼저 견적서를 제출해야 한다. 설계에 들어가는 비용과 마진을 붙여서 적정 가격을 제시한다. 너무 많이 붙이면 채택되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좋은 것은 고객의 마음에 들게 하는 것이다.
약간 손해 보는 듯 하게 견적을 내는 것이 가장 좋다. 대개 그렇게 견적 낸다. 그런데 어느 고객은 일단 깍고 본다. 마치 관광기념품 파는 가게에서 물건 값을 후려치는 것 같다. 그런데 한번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깍고 또 깍아서 허탈할 지경에 이르게 한다. 그럴 때 발끈한다. 그래서 고객에게 “설계가는 깍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해준다.
업계에서 설계비를 깍지 않는 것은 관행이다. 물건값 깍듯이 설계비용을 깍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설계가는 한두번 수정을 전제로 한 것이다. 개발이라는 것이 한번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하나의 제품이 완성된다. 설계비를 받는 다는 것은 무한책임이 전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관광상품 깍듯이 깍고 또 깍아서 허탈하게 만들었다면 나중에 수정이 생겼을 때 수정비를 따로 챙겨 줄 것인가?
시장에서 사 온 난을 두 개로 나누었다. 다섯 개의 화분에 분갈이 했다. 잔돌을 모두 쏟아 낸 다음 썩은 뿌리는 걸러내고 나무 비료와 함께 다시 만들었다. 이전 관음난은 세 개에서 두 개로 줄여 만들었다. 그리고 새로 사온 난은 하나를 두 개로 만들었다. 거의 수명을 다해 가는 난 하나는 작은 화분에 별도로 담았다. 모두 다섯 개의 화분을 책장에 올려 놓았다.
집에 화초가 있으면 생기가 돈다. 사무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 사는 곳에 식물이 없으면 매말라 보인다. 그래서 사무실에 이런 식물 저런 식물 사 놓다 보니 화분이 이십여 개 되었다. 작은 식물원 같은 느낌이다. 문을 열고 들어 가면 식물이 반겨 주는 듯 하다. 그렇게 정성껏 십삼년동안 키웠다.
이번에 난이 두 개 추가 되었다. 새로운 식구가 늘어난 것이나 다름 없다. 해야 할 일은 일주일에 한번 가량 물을 주는 것이다. 물 주는 것 외 달리 할 것이 없다. 그럼에도 식물들은 잘 자란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어떻게 물만 먹고도 성장할 수 있는 것인지.
화분을 만들어 놓고 나니 약간 후회의 마음이 들었다. 그것은 난 파는 할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다. 노인은 추운 겨울에도 뜨거운 여름에도 비바람 치는 날에도 노변에서 난을 판다. 어쩌다 산 것인데 너무 야박하게 깍은 것 같아서 되게 미안한 마음이 갑자기 들었다. 마치 관광지에서 깍고 또 깍은 것 같은 사람이 되었다.
설계비용을 깍는다고 발끈한 적이 있다. 깍아도 되는 것과 깍지 말아야 될 것도있다. 서민의 먹거리는 깍지 않는 것이 좋다. 콩나물 값 깍는 것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많이 팔아 주어야 한다. 마트에서 사는 것도 좋지만 십분의 일이라도 노점에서 산다면 생계에 도움이 될 것이다.
보잘것 없는 난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무려 20% 이상 후려쳤다. 물론천원 더 주기는 했지만 생각해보니 너무 야박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더 쳐 주는 것도 그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자존심을 해칠 수 있다.
난을 팔아서 이익을 본다면 얼마나 이익을 볼까? 난을 팔아서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닐 것이다. 보통 네고는 10% 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하는데 너무 한 것이다. 그럼에도 난 사주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민이 서민 것을 팔아 주지 않으면 누가 사 주겠는가! 다음에는 부르는데로 팔아 주리라.
2019-08-2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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