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꿈 꾼 유토피아는? 아나키스트 성지 용추사와 용추계곡
2019년 8월 18일 오전, 정평불 1박2일 하계수련회 다섯 번째 이야기 용추사
“한국 아나키즘은 일본강점기에선 테러리즘으로, 광복 후 우익에게는 공산주의 4촌으로, 좌익에게는 사이비 혁명주의로 매도ㆍ왜곡됐다.” 이 말은 아나키스트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접한 것이다.
1920년대부터 소개된 아나키즘은 그때 당시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와 함께 3대 독립이념 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런데 아나키즘은 심하게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암울한 시대에 한줄기 빛과 같았으나 테러리즘 등으로 매도 된 것이다.
아나키스트 성지 용추사를 향하여
2019년 8월 18일 정평불 수련회 팀은 고반재를 떠나 다음 행선지 용추사로 떠났다. 오전 10시에 출발했다. 용추사는 아나키스트 성지로 알려져 있다. 안의면에 있는 고반재에서 용추사까지는 12키로미터 거리에 차로 약 26분 걸린다.
폭염도 한풀 꺽였다. 햇살이 따갑기는 하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선선한 날씨였다. 용추사 가는 길에 보는 산하대지는 온통 초록으로 가득했다. 그것도 짙은 초록이다. 원래 세 곳을 보는 일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허락하지 않았다. 용추사 한 곳만 순례하고 일정을 마무리 하기로 한 것이다.
용추사 입구에 도착했다. 용추계곡 야영장 입구에 주차를 하고 용추사까지 걸어 갔다. 일요일 오전 계곡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오지임에도 어떻게 찾아 왔을까? 마지막 여름휴가를 보내려는 듯이 사람들은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용추사에 이르자 먼저 용추폭포가 눈에 띄었다.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물이 떨어지면 폭포(瀑布)라고 한다. 폭포라고 하여 모두일직선으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급경사면을 따라 거침없이 내려 가는 것도 폭포로 보는 것이다. 어느 면으로 본다면 폭류에 더 가깝다. 용추폭포도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용추폭포 아래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다. 더위가 한풀 꺽이긴 꺽였지만 완전히 꺽인 것은 아니다. 낮이 될수록 기온은 점점 더 상승했다. 그래서일까 폭포 아래 연못에는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튜브를 가지고 물놀이 하는 아이들도 볼 수 있었다. 아마 해방후 아나키스트들도 이곳에서 폭포를 감상했으리라.
아나키즘(anarchism)이란
용추사는 아나키스트와 인연이 있다. 해방후 1946년 4월 20일부터 4일간 용추사에서 전국 아나키스트 대표자 회의가 열렸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그때 당시 찍은 흑백사진을 볼 수 있었다.
흑백사진을 보니 ‘전국아나키스트대표자대회’라고 쓰여 있다. 아나키즘이 전국적 단위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대표자가 모였다고 하니 큰 규모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나키즘(anarchism)이란 무엇일까?
아나키즘에 대하여 검색해 보았다. 이전에 아나키즘이란 용어를 본 적이 있다. 소설 속에서 본 것이다. 소설 속의 아나키즘은 다소 낭만적으로 보였다. 비현실적 삶을 살아가는 철없는 사람들의 사조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또한 아나키즘 하면 무정부주의가 떠 올랐다. 그러나 이번 용추사 순례로 알게 된 아나키즘은 낭만도 아니고 무정부주의도 아니었다. 독립을 열망하는 사람들이 꿈꾸는 하나의 이상사회였다.
아나키즘에 대한 사전적 정의가 있다. 인터넷 사전에 따르면 “개인을 지배하는 모든 정치 조직이나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 정의, 형제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이나 운동”이라고 되어 있다. 그 어디에도 무정부주의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아나키즘에 대하여 무정부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한다. 아나키즘이 본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나 정부, 정당을 부정하는 것은 맞지만, 해방후 아나키스트들은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를 바랬고 또한 새국가를 만들기 위한 정당을 창당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라고 부른 것은 일제시대 때 잘못 번역되어 유통된 말이라고 보는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의 꿈과 이상은
안의면은 아나키스트들의 성지와도 같다고 한다. 안의면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나왔는데 그 중에는 아나키스트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안의면을 아나키스트들의 성지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안의면에 있는 학교가 말해준다. 해방후 아나키스트들이 세운 학교가 안의중학교인 것이다.
일제시대때 아나키즘은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와 함께 3대 이념 중의 하나였다. 해방후 1946년에 아나키스트대표자회의를 연 것은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존중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아나키스트들의 꿈과 이상은 무엇이었을까?
아나키스트 중의 하나였던 하기락 선생은 아나키즘을‘자주인사상’으로 불렀다. 아나키즘이 국가나 정부 등 권력의 속성이 있는 것들은 부정하지만 최소한 공동체(코뮌)를 이끌 자율기구는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주의에 따른 인민의 업악 이나 자본의 착취를 폭력으로 보았다. 아나키스트들은 국가폭력, 자본폭력에서 벗어나 최소한의 공동체를 만들고자 했다. 아나키스트들은 자율공동체를 만들어 서로 돕고 살아가는 이상사회를 꿈 꾼 것이다.
국가폭력 없는 평화로운 세상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에 대하여 더 알아 보았다. 놀랍게도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 중에는 신채호, 이회영, 박열 등 아나키스트들이 많았다. 특히 아나키즘 계열의 사람들은 무장투쟁으로 독립을 추진했는데 공포의 대상이었다. 박열의 경우 일왕세자의 약혼식때 폭탄을 투척하고자 계획을 세웠으나 밀정으로 인하여 무산되어 해방 될 때까지 무려 22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일제만행을 목격한 아나키스트들은 국가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해방이 되고 나서 1946년 4월 용추사에서 4일 동안 열린 전국아나키스트대표자대회에서는 열띤 토론이 있었다고 한다. 조국의 미래를 설계하기 위한 청사진 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나키스트들의 바램과 달리 나라는 남북으로 갈렸다. 남과 북에서는 서로 다른 정부를 만들었다. 그리고 전쟁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수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다. 아나키스트들이 전혀 바라지 않은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국가폭력인지 모른다.
이승만정권시절 한국에는 ‘한국판킬링필드’가 있었다. 킬링필드가 캄보디아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이승만 정권은 수많은 양민을 학살했다. 함양 안의면 바로 옆에 있는 거창에서 양민학살이 일어났다. 제주 4.3사건, 보도연맹사건 등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 달했다. 이런 학살은 1965년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에 의한 300만명 학살이나 1975년 캄보디아 폴포트 정권에 의한 200만명 학살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오늘날 국가폭력은 계속되고 있다. 해방후 지금까지 국가에서 저지른 폭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대개 독재자가 집권했을 때 정통성이 없는 권위주의 정부에서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공권력 자체가 폭력이라고 했다.
이 시대 아나키즘은 유효할까?
용추사를 참배 했다. 용추사는 신라 소지왕 9년(487년)에 각연대사가 창건한 절이라고 한다. 한국전쟁때 소실 되었는데 1959년 재건 했다고 한다. 아나키스트대표자대회가 열렸을 때는 건재한 것이다.
용추사는 아나키스트대회가 열린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상적 사회를 꿈꾸고 대회가 열렸지만 이상적 세상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아나키즘은 그것으로 끝난 것일까? 놀랍게도 1988년 서울올림픽이 끝난 직후 열렸다고 한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세계아나키스트대회가 열렸는데 17개국에서 참가한 것이다.
요즘 세상에서 아나키즘은 유효할까? 모든 권위를 부정하고 모든 폭력을 싫어한다면 여전히 유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다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다면 현대판 아나키즘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나키스트들이 선 그 자리에서
용추사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었다. 1946년 아나키스트들이 선 바로 그 자리에서기념촬영을 했다. 시차가 무려 73년이나 차이가 난다. 그때 당시와 지금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민주주의를 지켜 내지 못하면 권위주의 세상이 된다. 권위주의가 득세할 때 아나키즘도 득세할 것이다.
이상사회를 꿈꾸었던 아나키스트들은 용추계곡에서도 토론을 벌였을 것이다. 암반으로 된 계곡이다. 용추계곡에 앉았다. 삼삼오오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물놀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점심은 미리 준비한 주먹밥으로 먹었다.
주먹밥은 고반재를 출발하기 전에 만든 것이다. 아침밥을 지어먹고 남은 밥과 반찬을 비벼서 볶음밥 형태로 만든 것이다. 김을 한장 싸서 주먹만하게 만들어 각자에게 나누어 준 것이다.
암반계곡에 앉아 주먹밥을 먹었다. 비용도 절감되고 시간도 절감되었다. 무엇보다 친환경적이다. 음식물 쓰레기를 남기지 않은 것이다. 잘 먹고 편하자고 수련회에 온 것이 아니다. 수련회는 문자 그대로 몸과 마음을 닦는 것을 말한다. 수행처나 선원에 가면 수행자처럼 하루를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용추사에서 1박2일 수련회를 마무리 했다.
현대판 아나키스트대회가 다시 한번 열리기를
아나키스트들은 폭력 없는 이상적 사회를 꿈꾸었다. 용추사에 모여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새나라를 건설하고자 열띤 토론 했다. 용추계곡 너른 바위 위에 앉아서 이상사회를 꿈꾸었다. 그러나 73년전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적 사회는 실현되지 않았다.
아나키스트들의 꿈은 좌절된 것일까? 국가폭력이 난무하고 개인의 자유가 억압되는 세상이라면 아나키즘은 여전히 유효하다. 용추사에서 현대판 아나키스트대회가 다시 한번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2019-08-2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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