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

찰토마토 여덟 박스를 미화원과 경비원에게

담마다사 이병욱 2020. 7. 8. 14:52

 

찰토마토 여덟 박스를 미화원과 경비원에게

 

 

불쌍한 할머니유. 돈 좀 있으면 좀 조유.” 안양아트센터, 예전에는 안양문예회관이라 불리우는 곳으로 산책가다가 들은 말이다. 나이가 80대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가 대로 코너에서 말을 붙인 것이다. 걸인 같지는 않다. 폐지 주어서 사는 할머치처럼 보였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지갑에서 5천원을 건네 주며 많이 못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고마워유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왜 여러 사람 중에 유독 한사람을 지목해서 말했을까?

 

돈을 주고 나자 홀가분했다. 아깝지도 않았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지나칠 수 없었던 것은 0.5초 동안 짧은 순간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혹시 모르지않는가. 할머니가 관세음보살 화신일지.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를 강조한다. 보시를 하되 대가를 바라지 말라는 것이다. 티내지 않고 주라는 말과 같다. 이렇게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도 티를 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오늘 아침 미화원 아주머니와 마주쳤다. 사무실에 일찍 나오기 때문에 마주치는 경우가 많다. 거의 매일 마주치다 보니 이제 서로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짤막한 인사를 나누다가 미화원이 몇 명인지 물어보았다. 세 명이라고 했다. 세 명이서 18층짜리 오피스텔 청소를 다 하는 것이다. 아마 층별로 구역을 나누어서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매일 마주치는 미화원은 항상 같다. 그러나 오래 다니다 보니 모두 얼굴을 알고 있다.

 

 

미화원에서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것은 페이스북에서 어느 페친이 선물이야기를 올렸기 때문이다. 미화원인 페친에 따르면 건물의 어떤 사람은 때가 되면 과일 등을 선물한다고 했다. 이런 글을 읽고 한번 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숫자를 파악한 것이다.

 

테라가타에 따르면 토해서 버려진 것을 내가 다시 삼킬 수 없으리.(Thag.1131)라고 했다.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당장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과일이 좋을 것 같았다. 제철에 나는 과일을 말한다.

 

찰토마토 한박스씩 돌리면 될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에 이르자 마음이 바빠 졌다. 그런데 갑자기 경비원들 생각이 나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경비원들도 추가하기로 했다. 먼저 인원파악을 해야 했다.

 

 

목표지는 귀인동에 있는 안양농수산물시장이다. 시장에 가기 위해서는 차를 빼야 한다. 주차타워에 주차해 놓았다. 지하에 주차장이 있기는 하지만 방이 300개 이기 때문에 통로 주차히기도 힘들다. 그래서 별도로 주차타워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하루에도 최소 두 번 이상 넣었다 빼었다를 반복한다. 그래서 주차타워 경비원들은 안면이 익숙하다. 그것도 일이년이 아니다. 어느 분은 칠팔년 되는 것 같다.

 

오피스텔에 입주한 것은 200711월이다. 이후 내리 13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다 보니 터줏대감처럼 되었다. 한쪽 날개에서 복도를 중심으로 작은 사무실이 열 개 가량 있다. 그런데 일년이 멀다하고 입주자가 바뀐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가장 오래 된 사람이 되었다.

 

 

경비원들 얼굴도 익숙하고 미화원들 하고도 얼굴이 익숙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한번도 그들을 위해서 선물해 본 적이 없다. 페이스북에서 어느 미화원이 전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듣고 실천해 보고자 한 것이다.

 

차를 빼면서 당직 경비원에게 몇 명인지 물어보았다. 다섯 명이라고 했다. 타워 주차에만 4명이 24시간 2교대하는 것이다. 한명은 현관에서 주간에만 근무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다섯 명이 추가 되었다. 당초 세 명 예상했는데 모두 여덟 명이 된 것이다. 찰토마토 여덟 박스를 사야 하는 것이다.

 

농수산물시장에 도착했다. 안양에서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농산물시장에는 제철 과일로 가득했다. 복숭아가 가장 많아서 복숭아 철처럼 보였다. 찰토마토 한박스는 얼마일까? 가격을 물어보니 13,000원이다. 박스도 크고 무게도 상당했다. 한사람이 들고 집으로 귀가하기에는 너무 커서 난감했다.

 

한박스를 두 개로 나누는 작업을 했다. 작은 박스 두 개를 만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작은 박스 하나에 10개 가량 들어 간다. 비용은 6,500원이 된다. 테이프로 손잡이도 만들었다.

 

 

모두 아홉 박스를 만들었다. 여덟 박스는 미화원과 경비원에 줄 것이다. 한박스는 집에서 먹을 것이다. 박스 작업을 하는 청과 주인에게 미화원과 경비원에게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좋은 일 하시네요.”라고 말했다. 듣는 사람도 기분 좋고 말하는 사람도 기분 좋은 것이다.

 

 

물건은 팔아 주어서 기분 좋고 팔아서 기분 좋은 것이다. 한박스에 6,500원 하기 때문에 아홉 박스가 되면 모두 58,500원이 된다. 주인도 기분이 좋았는지 1,500원 깍아서 57,000원에 해 주었다.

 

차 트렁크에 아홉 박스를 실었다. 차가 999cc 밖에 되지 않는 경차이기 때문에 다 들어 갈지 의문이었지만 차곡차곡 쌓으니 다 들어 갔다.

 

 

차를 몰고 사무실로 향하는 도중 내내 기분이 업되었다. 마치 날아 갈 듯 상쾌한 기분이 되었다. 미화원들과 경비원들에게 줄 것을 생각하니 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이는 간접기부와 직접기부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 간접기부를 했다. 구호단체나 자선단체에 매월 만원 이상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소액으로 하다 보니 여러 곳에 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체 금액은 많지 않다. 능력껏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 있는 단체에 기부하다 보니 그다지 보람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간접 기부를 하다 보니 가슴에 와 닿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기부를 하니 느낌이 다르다. 운전을 하는 내내 날아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먼저 경비원들에게 박스를 전달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받아서일까 내심으로 놀라는 눈치였다. 늘 보는 사람들이다. 그것도 일이년이 아니다. 수년동안 안면이 익었지만 이렇게 감사의 표시를 한 것은 처음이다. 당직 경비원은 잘 먹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다음으로 미화원 사무실을 찾아 갔다. 지하2층에 있는 휴식공간이 미화원들이 머무는 공간이다. 세 박스를 전달해주었다. 역시 잘 먹겠다고 말했다.

 

 

보시는 티내지 말고 하라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무주상보시 정신에 위배 된 것이다. 마치 어머니가 일기장에 아이에게 맛 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어서 착한 일을 했다.”라고 적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업을 짓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은 것 같다. 이런 계기를 마련해 준 페이스북 친구의 글에 감사를 드린다.

 

 

2020-07-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