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

티 내지 말고 보시하라고 했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2. 15:33

티 내지 말고 보시하라고 했는데


오늘 새벽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삶의 과정에서 남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해서 생각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베풀고 나누는 삶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물질적인 것은 시간 되면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정신적인 것은 남는다. 남는 장사를 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보시공덕을 지어야 한다. 이렇게 생각되자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쇠뿔은 단번에 빼라고 했다. 한번 목표가 정해지자 지체할 수 없었다. 오늘 당장 시행하는 것이다. 그 동안 미루어 놓았던 것을 해치우는 것이다. 사무실 빌딩 경비원들과 미화원들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아파트 경비원들에게도 선물하고자 했다.

 


오전 10시 안양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달려 갔다. 자주 와 보는 곳이다. 늘 가는 하나청과에 들어 갔다. 네 번가량 이용한 것 같다. 이제 단골이 된 것 같다. 주인은 얼굴을 알아본다.

제철에 나오는 것이 좋다. 청과사장에게 요즘 무슨 철입니까?”라고 물어보았다. 복숭아와 포도철이라고 한다. 제철 것을 사야 한다. 제철이 아닌 것은 가격도 비싸고 맛도 떨어진다. 복숭아 11박스를 주문했다.

사무실 경비원과 미화원에게 작년에도 선물한 바 있다. 그때는 찰토마토를 선물했다. 블로그에 모두 기록해 놓았다. 작년에 쓴 글을 열어 보니 8박스 선물했다. 경비원이 5명이고 미화원이 3명이다. 올해도 변함없을 것이다. 여기에다 아파트 경비원 2박스 추가했다. 한박스는 집에서 먹을 것이다. 11박스 산 것이다.

 


복숭아 만5천원짜리는 6박스 샀고 만3천원짜리는 5박스 샀다. 저렴하게 산 것이다. 제대로 사면 한박스에 25천원가량 한다. 농수산물 도매시장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이제 단골이 됐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복숭아 11박스는 양이 많다. 경차 뒷좌석에 가득 채웠다. 시동을 걸고 사무실이 있는 오피스텔로 달렸다. 기분이 약간 업 되었다. 약간 들뜬 상태가 된 것이다. 아마 보시의 즐거움일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행위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 상태일 것이다.

빌딩 경비원에게 물건을 전달했다. 경비대장 1명을 포함하여 4명이 경비를 서고 있다. 주로 주차터워가 있는 작은 공간에서 교대로 근무한다. 전달할 때 매번 제 차 빼 드리게 해서 감사의 마음으로 준비했습니다.”라고 했다. 점심시간 때마다 집에 가기 위해서 차를 빼는데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선물로 그 동안 미안함을 싹 날려 버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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층짜리 오피스텔에 미화원은 3명 있다. 너무 적은 것이 아닌지 염려된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늘 마주친다. 이제는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내가 주로 인사한다. 보통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 때로 제가 오늘도 일등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만큼 일찍 나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아침 7시 이전에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오피스텔에 8개를 풀어 놓았다. 다음 행선지는 아파트이다. 아파트 단지에 경비원은 2명 있다. 이전에 미리 파악해 놓은 것이다.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명분이 있어야 한다. 생각해낸 것은 이사 1주년 기념이다. 그래서 이사 1주년 기념으로 선물합니다.”라고 했다. 경비원은 어리둥절 하는 것 같았다. 이런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경비원은 몇 동 몇 호에 사십니까?”라며 물어보았다.

 


선물값으로 든 비용은 155,000원이다.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금액이다. 돈 많은 사람들 입장에서 본다면 식사비용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올해 설 날 때 선물하려 했으나 기회를 놓쳤다. 한번 기회를 놓치자 계속 밀렸다. 오늘 아침 불현듯 떠올라 당장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렇게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것도 티 내는 것이다.

금강경에서는 무주상보시를 강조한다. 티 내지 말고 보시하라는 것이다. 금강경 가르침에 비추어 본다면 상을 내는 것이 되고 티 내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나는 왜 티 내는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티 내는 첫번째는 매일 글을 쓰기 때문이다. 이를 의무적 글쓰기라고 말한다. 하루 한개 이상 의무적으로 쓰는 것이다. 형식과 의미를 갖춘 글쓰기를 말한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기승전결에 따른 글쓰기이다. 나중에 모으면 모두 책이 된다.

의무적 글쓰기에서는 그날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대상이 된다. 강한 대상이 글쓰기 소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늘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복숭아 박스를 구매하여 경비원과 미화원에게 선물한 것은 오늘 하루일과에 있어서 큰 사건이 아닐 수 없다.

티 내는 두번째는 불특정다수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린다. 인터넷에 공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터넷은 불특정다수가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안면 있는 사람들 모임인 단체카톡방이나 밴드와는 다른 것이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자랑하듯이 쓰는 것이다.

티 내는 세번째는 선한 영향력 확산에 있다.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오로지 자신과 가족만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 주변도 돌아보는 삶을 말한다.

후원금을 내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모임이나 단체에 정기적인 후원금을 매달 계좌이체하고 있다. 비록 소액이긴 하지만 능력껏 보시하고 있다. 그러나 피하는 것이 있다. 방송에서 광고하는 국제구호단체를 말한다.

국제구호단체에서는 비참한 영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만원 또는 2만원, 3만원의 후원자가 되어 달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 구호단체 보다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이웃에게 선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경비원과 미화원에게 선물하게 되었다. 이렇게 인터넷에 알리면 누군가 따라할지 모른다. 선한 영향력을 확산하기 위해서 티 내 본 것이다.

 

앞으로 선물을 많이 하고자 한다. 특히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더 열심히 하고자 한다. 수행에 진척이 없을 때 공덕이 부족함을 느낀다. 전생에 인색하게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선물도 받아 주어야 성립된다. 내가 아무리 아름다운 마음을 내어도 상대방이 받아 주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물은 받아 주어야 한다. 공덕 짓겠다고 하는데 거절한다면 공덕 지을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 된다. 선물을 받는다고 하여 자존심 상하거나 체면이 깎이는 것은 아니다. 자비의 마음으로 섭수했을 때 서로 공덕이 된다.

 


오늘 크게 마음 한번 내 보았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입출금통장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맡겨 놓았다면 어림없는 일이다. 통장이 마이너스통장이라도 내가 관리하기 때문에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다음 달에 수금되기 때문에 이번 달에 써도 문제없다.

돈은 벌어도 남아 나지 않는다. 그러나 선물하면 오래 남는다. 자신을 위해 쓴 것은 기억나지 않지만 타인을 위해 쓴 것은 기억에 남는다. 오늘 죽음을 맞이한다면 남에게 많이 베풀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을 것 같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베풀고 나누고 보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작은 선물하나 한 것 가지고 티를 내 보았다.


2021-08-0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