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행합일

글을 쓴 대가로

담마다사 이병욱 2021. 8. 4. 15:01

글을 쓴 대가로

 

 

택배를 하나 받았다. 사무실 문 앞에 놓여 있다. 어디서 온 것일까? 주소지를 보니 경북 김천시라는 글씨가 눈에 띄었다. 순간적으로 청암사에서 온 것임을 알았다.

 

택배 박스를 열어 보았다. 커다란 박스에는 계간 청암 세 권과 어성초 액 세 통이 들어 있었다. 어성초는 작년에도 받은 것이다. 탈모에 좋다고 잘 알려져 있다. 집에서 요긴하게 쓰고 있다. 청암사 혜소스님이 보낸 것이다.

 

 

3주전 혜소스님으로부터 개인카톡을 받았다. 계간 청암(靑巖)’에 게재할 글을 써 달라고 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귀찮다고 생각하여 거절하면 그만이다. 그럴 수 없다. 혜소스님은 전재성 선생의 금요니까야강독모임 멤버이기도 한다.

 

혜소스님은 강독모임이 열리는 날이면 저 멀리 원주에서 차를 몰고 고양까지 왔다. 요즘 같은 비대면 시기에는 줌모임으로 함께 했다. 그러다 보니 가깝고도 익숙하다. 거절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당연히 보내 드려야지요.”라며 흔쾌히 답신했다.

 

스님은 글 주제를 주었다. 경전독송에 대한 것이다. 콕 집어서 독송의 행복에 대한 글을 써 달라고 했다. 자신 있는 주제에 대한 것이다. 요즘 경을 매일 암송하고 있기 때문에 쓰는 데는 문제없다.

 

글은 계간 청암 여름호에 실릴 것이다. 당연히 기한이 있다. 710일까지 써 달라고 했다. 그런데 주제와 날자를 받고 나니 마음이 급해졌다.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은근히 스트레스로 작용했다.

 

마감일을 하루 남겨 놓고 원고를 발송했다. 원고 제목은 자타가 수호되는 암송의 행복이다. A4 사이즈로 2장 약간 넘는 분량이다. 평소 쓰던 대로 쓴 것이다. 이미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올린 바 있다.

 

스님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잠시 망설였다. 절에서 돈을 받는 행위가 타당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본 것이다. 일단 받가로 했다. 그 대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글을 써서 돈을 받아 본적이 별로 없다. 오래 전에 미디어붓다에 칼럼을 연재할 때 돈을 받아 보았다. 이학종 선생이 대표기자겸 사장으로 있었을 때이다. 그때 당시 미디어붓다에서는 한국판 허핑턴포스트를 표방했었는데 블로그 영역에서 한명을 선정한 것 같다.

 

이학종 선생 배려로 20152월부터 24개월 동안 130편에 달하는 글을 올렸다. 원고료 명목으로 한달에 두 장 받았다. 생애 처음으로 글을 써서 돈을 받은 것이다.

 

사람들에게 두 장 받았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대부분 2백만원으로 생각한다. 그 정도 금액이면 전업작가로 뛰어도 될 것이다. 2십만원 받은 것이다. 돈을 받았을 때 모두 기부하고자 했다. 소액으로 하여 여러 군데 정기후원금을 내고자 했다. 그러나 실행되지 않았다. 일부금액만 낸 것이다.

 

청암사에서 받은 원고료를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돌려주어야 할 것이다. 배로 돌려주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이에 계좌이체를 했다. 기간은 2년으로 했다. 물론 소액이다. 이렇게 조치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돈을 받고 글을 쓰면 부담이 될 것 같다. 청탁자의 입맛에 맞추어 주어야 하고 기한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매일 자유롭게 쓰고 싶은 것만 쓰다가 주제와 날자를 받았을 때 강한 압박감을 느꼈다. 날자가 다가올수록 점점 초조해졌다. 글 쓰는 사람의 고충을 알 것 같다.

 

글을 써서 돈을 받는다면 노동이 될 것 같다. 기자가 대표적이다. 기자는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글을 생산해 내는 것으로 본다. 기자가 글을 쓰지 않으면 존재감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써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도와 과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면 돈을 받고 글을 써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부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시를 읊은 대가로 주는 것을 향유하지 않으리.

바라문이여, 그것은 올바로 보는 님에게 옳지 않네.

시를 읊은 대가로 주는 것을 깨달은 님들은 물리치네.

바라문이여, 원리가 있는 한 그것이 진솔한 삶이네.”(S7.9)

 

 

부처님은 바라문에게 법문을 해 주었다. 이에 바라문은 감사의 마음으로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시를 읊은 대가로 주는 것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부처님이 대가를 바라고 법문을 해 주었다면 이는 무소유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탁발하고 난 다음 법문해 주는 것은 가능한 일이다. 재가자는 재보시하고 출가자는 법보시 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경우 출가자는 짧게 아유 완노 수캉 발랑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말은 장수하시고, 아름답고,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라는 뜻을 지닌 축원문이다.

 

글을 쓴 대가로 돈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돈을 받고 글을 쓰면 쓰고 싶은 것을 쓸 수 없다. 가장 잘 쓴 글은 대가를 받지 않고 쓴 글이다. 어느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쓴 글은 자기검열 할 필요가 없다. 이제까지 이렇게 글을 써 왔다.

 

 

계간 청암 여름호를 열어 보았다. 필진을 보니 기라성 같다. 법인스님도 보이고이병두 선생도 보인다. 법인스님의 글을 읽어 보았다. 글의 품격이 느껴진다. 마치 글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의 글과 비교해 보니 너무 차이가 난다.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법인스님은 시인스님으로 잘 알려져 있고 또한 학승 스님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청암사는 비구니 수행도량이다. 승가대학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특히 율학승가대학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혜소스님은 승가대학원 학인이다.

 

비구니 승가대학은 청암사뿐만 아니라 청도 운문사도 있고, 수원 봉녕사도 있고, 계룡산 동학사도 있다. 그런데 청암사만이 유일하게 유튜브에 채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절에서 유튜브 채널을 가지고 있는 곳은 드물다. 청암사는 청암사TV(https://www.youtube.com/user/asoka9511 )를 운영하고 있다. 7개월 전에 생겨난 것이다. 현재 구독자는 천2백명이다. 삼보사찰로서는 해인사TV(https://www.youtube.com/channel/UCEqTBBPi8qwCH4p-k3iteNw )와 통도사TV (https://www.youtube.com/channel/UC2UlLAemsoOdHgtnE95qLrw )가 있다. 송광사는 보이지 않는다.

 

유튜브 청암서TV를 보면 편집이 수준급이다. 내용도 매우 알차다. 무엇보다 활기가 넘친다. 갖가지 법문이 실려 있고 학인스님들의 갖가지 활동도 올려져 있다. 이런 열정이 있어서일까 고품격 계간지 청암이 생겨났을 것이다. 참고로 계간 청암은 1996년부터 시작되었다. 오늘부터 청암사 후원자가 되었다.

 

 

2021-08-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