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모임 가는 날에
금요모임 가는 날이다. 한달에 두 번 있는 금요니까야강독모임이 있는 날이다. 모임이 있는 날 오후에는 약간 들떠 있다. 이전과 달리 한시간 먼저 도착해야 한다.
약속시간에 가능한 늦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5분 먼저 도착하면 좋다. 교통사정 등 여러 변수를 감안하면 생각하는 것보다 30분 일찍 출발하는 것이 더 좋다. 늦는 것 보다는 이른 것이 낫다. 공항에서는 1시간 30분 전에 도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딱 맞추어 가다 보면 놓칠 수 있다. 약속시간에 일찍 도착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금요모임은 저녁 7시에 시작된다. 매월 둘째주와 네번째주가 금요모임날이다. 한달에 한번이면 너무 먼 듯한 느낌이다. 한번 빠지면 두달만에 가게 된다. 일주일에 한번 모임을 가지면 너무 자주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한달에 두번이 적당한 것 같다.
금요모임이 있는 금요일 오후가 되면 마음은 금요모임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한시간 일찍 도착하기 위해서는 4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저녁에 먹을 것도 준비해야 한다.
모임에서 저녁밥을 제공하지 않는다. 각자 해결해야 한다. 늘 시간에 쫓기다 보니 밥 먹을 시간이 없다. 이럴 경우 햄버거가 가장 좋다. 4시 이전 3시 반에 사무실 근처에 있는 롯데리아에 간다. 늘 사먹는 것은 데리버거 햄버거 세트이다. 햄버거와 고구마칩과 콜라가 세트로 되어 있는데 4,900원이다. 5천원 이상 식사를 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늘 데리버거가 대상이 된다. 삼송테크노밸리 주자장에서 빠른 속도로 식사를 해결한다.
종종 먹거리를 가지고 오는 사람들도 있다. 함께 나누어 먹는다. 대다수가 저녁을 못 먹고 오기 때문에 허기를 때우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러나 강독에 몰입하다 보면 허기는 잊게 된다.
밥만 먹고 살 순 없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다. 상윳따니까야 ‘자양분의 경’(S12.11)을 보면, 네 가지 식사가 있다. 물질적 식사, 느낌의 식사, 의도의 식사, 의식의 식사를 말한다. 어느 것 식사 아닌 것이 없다. 모두 행위에 대한 것이다. 모두 윤회의 원인이 된다. 이 중에서 식식(識食)이 있다. 일종의 정신적 식시라고 볼 수 있다.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듯이 사람들은 알음알이의 식사를 한다. 강독모임은 일종의 정신적 식사라고 볼 수 있다. 해탈을 위한 식사가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육체적으로는 허기가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포만을 느낀다. 아마 정신적 식사를 해서일 것이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순 없다.
삼송테크노밸리를 향하여
오후 4시 삼송테크노밸리를 향하여 출발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가 있는 곳이다. 외곡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면 1시간 반 걸린다. 막히지 않으면 1시간가량 걸린다. 상습 정체구간이 있다. 부천지역을 통과할 때이다. 한강다리만 건너면 최고속도로 달린다.
하늘은 맑고 쾌청하다. 어제 비가 많이 왔다. 금년 들어 가장 많이 온 것 같다. 남쪽지방에서는 물난리를 겪었을 정도로 많이 온 것이다. 아침까지 간간히 뿌렸다. 오후가 되자 상황은 반전되었다. 비 개인 후 날씨가 그렇듯이 빛나는 날이 된 것이다. 하늘은 높고 흰구름은 떠가는 청명한 날씨가 되었다.
마치 비가 모든 오염원을 쓸어 가 버린 것처럼 공기는 청정하다. 살 맛 나는 날이다. 늘 흐린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날씨는 변화무쌍하여 매일매일 다르다. 아니 시시각각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청명한 날이라도 사흘나흘을 못 가는 것 같다. 공기가 먼지로 오염되고 하늘에는 구름이 끼기 시작한다. 구름은 비가 된다. 이렇게 매일매일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날씨이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날씨에 따라 사람의 마음도 변한다. 날씨가 흐리면 마음도 흐려지는 것 같다. 날씨가 청명하면 마음도 깨끗해지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은 주가에 따라 마음이 변한다고 한다.
주가에 민감한 사람들이 있다. 주가가 폭락하면 아무리 청명한 날씨일지라도 마음은 어두어질 것이다. 반대로 주가가 폭등하면 비오는 날이라도 즐겁기 마련일 것이다. 그 사람이 즐거워 보이면 주가가 오른 것이고, 그 사람의 표정이 어두워 보이면 주가가 내린 것이라고 예측할 수도 있다.
금요모임 가는 날에 왜 이렇게 마음이 들뜨는 것일까? 가만 생각해 보니 세 가지 요인이 있다.
도반에 대한 들뜸
마음이 들뜨는 첫번째는 도반을 만나러 가기 때문이다. 강독모임날 도반들과 이야기할 기회는 별로 없다. 듣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말없는 가운데 말을 하는 것 같다. 침묵의 대화일 것이다. 함께 있는 것 자체가 대화인 것이다.
자주 보면 정드는 것 같다. 이는 얼굴이 익숙해져서 일 것이다. 자주 보아 낯이 익어서 반가운 것이다. 이는 용모와 관련이 없다. 그리고 지위와도 관련이 없다. 함께 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함께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도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반과 친구는 어떻게 다를까?
여기 친구가 있다. 친구는 어려울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또 친구는 연민할 줄 알아야 친구라고 했다. 이렇게 본다면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 친구가 되는데 있어서 나이와 성별을 따질 수 없다. 누구나 연민할 줄 알면 친구가 된다. 그렇다면 도반의 조건은 어떤 것일까?
도반은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이다. 도와 과의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을 도반이라고 할 수 있다. 법우라고도 말할 수 있다. 빠알리어로는 ‘깔야나밋따(kalyāṇamitta)’ 라고 한다. 우리말로 좋은 친구가 된다. 한자어로는 선우(善友)가 된다.
불교에서 선우는 어떤 의미일까? 영어로 말한다면 베스트프랜드가 될 것이다. 요즘말로 하면 ‘절친’이라고 할 것이다. 불교에서 절친의 의미는 무엇일까? 디가니까야 31번경에 언급되어 있듯이 비밀과 관련이 있다. 비밀을 말 할 수 있고, 비밀을 지켜 줄 수 있는 친구가 절친이 될 것이다. 또 절친의 조건은 “목숨도 그를 위해 버립니다.”(D31.16)라고 했다.
비밀을 털어 놓고, 비밀을 지켜 주고,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 친구는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아직까지 그런 친구는 없는 것 같다. 아는 사람은 많아도 친구는 적고, 친구는 있어도 절친은 희귀하다.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선우, 즉 깔야나밋따는 절친 이상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가? 부처님은 “좋은 친구, 좋은 동료, 좋은 도반을 사귀는 것은 인생의 전부에 해당된다.”(S3.18)라고 했기 때문이다.
인생의 전부에 해당되는 친구가 있을까? 인생의 반이 되는 사람을 절친이라고 했을 때, 인생의 전부에 해당되는 사람은 함께 길을 같이 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를 깔야나밋따, 즉 좋은 친구 선우인 것이다.
금요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벌써 4년째이다. 저녁에 술좌석 한번 가진 적이 없고 별도로 모임 한번 가져 본 적이 없지만 함께 길을 가는 깔야나밋따라고 볼 수 있다.
담마에 대한 들뜸
두 번째로 마음이 들 뜨는 것은 배움에 대한 것이다. 오늘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한 것이다. 이는 담마의 맛을 알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교재 '생활속의 명상수행'을 보면 법수대로 실려 있다. 본래 앙굿따라니까야는 법수별로 편집되어 있다. 모두 11개의 법수가 있다. 현재 4년째 진행중인 금요모임에서 현재 네 번째 법수가 진행 중에 있다. 오늘 한 개만 하면 다섯 번째 법수로 넘어간다. 이런 추세로 하면 아마 4년은 더 해야 할 것 같다.
금요모임은 4년째가 되었다. 2017년 2월부터 시작했으니 3년 반가량 된 것이다. 거의 개근하다시피 했다. 그리고 모임이 끝나면 반드시 후기를 남겼다. 책으로도 만들었다. 비록 문구점에 인쇄와 제본 의뢰한 것에 지나지 않지만 ‘원음향기가득한 서고의 저녁’이라는 책을 만들었다. 2017년과 2018년 금요모임에 대한 기록이다. 앞으로 2019년과 2020년 기록을 한데 묶어서 ‘원음향기가득한 서고의 저녁II’를 만들려고 한다.
금요모임 이전에도 모임이 있었다. 2016년 ‘토요모임’을 말한다. 그때는 전재성회장 홍제동 아파트 거실에서 모였다. 한달에 한번 열리는 모임이었다. 반년 가량 지속되다가 중단되고 금요모임으로 대체 되었다.
토요모임 시절부터 친다면 5년째 니까야 강독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토요모임의 유일한 생존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니까야강독모임의 산역사가 되었다. 그래서 총무아닌 총무역할을 하고 있다.
한번이라도 모임에 참여한 사람을 대상으로 단체카톡방도 만들었다. 그리고 모임을 홍보도 하고 있다. 그러나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적은 것 같다. 관심을 가졌더라도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한번 인연을 맺었지만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더욱더 드물다. 그래서일까 모임은 늘 10명 내외가 된다. 오히려 이런 분위기 나은지 모른다. 사람이 많아서 좋은 것도 있지만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모여서 담마를 듣고 토론하는 분위기가 더 좋은 것이다.
교재 생활속의 명상수행에 실려 있는 경을 접하면 늘 새롭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앙굿따라니까야에서 선별된 경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늘 새로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진리이기 때문일 것이다. 진리의 말씀은 아무리 접해도 질리지 않는다. 법구경에 실려 있는 423게송은 언제 열어 보아도 가슴을 울리게 만든다.
심난할 때 경전 아무 곳이나 열어 보면 몇 게송 읽지 않아 다른 마음이 된다. 가르침이 약이 될 수 있음을 말한다. 반드시 우울증 약만 먹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우울한 마음이 일어났을 때 가르침을 접하면 우울한 마음이 달아나는 것 같다. 그 자리에 기쁨이 들어 앉는다면 이미 치유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부처님을 의왕(醫王)이라 했을 것이다. 이렇게 담마에 대한 기대로 모임이 나간다.
이 시대의 행운
세번째로 들뜨는 마음이 드는 것은 전재성회장을 보는 것이다. 보는 것이라기 보다는 설명을 듣는 것이다. 경을 접하는 것도 새롭고 경의 해설을 듣는 것도 새롭다. 더구나 전재성회장은 사부니까야를 완역하고, 쿳다까끼니까야 상당수를 번역했고, 여기에다 율장 다섯 권을 완역했다. 또 니까야주석서이자 동시에 수행지침사라고 볼 수 있는 청정도론을 완역했다. 이렇게 빠알리 삼장을 꿰뚫고 있는 사람에게 한마디 듣는 다는 것은 이 시대의 행운이라고 본다.
저 멀리 북한산이 점점 가까이
한강다리를 건너자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달리다 보니 저 멀리 북한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 온다. 파주 인터체인지가 가까워지면 정면에 우뚝 서 있는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이 잘 생긴 산이다. 온통 암반으로 이루어진 산에서는 강렬한 에너지를 내 뿜는 것 같다.
북한산을 늘 한쪽 면만 보았었다. 서울에서 동북쪽에 산 사람들에게는 북한산은 삼각산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봉우리가 늘 세 개로 보이는 것이다. 이런 봉우리는 사람을 압도하게 만든다.
북한산의 거대한 바위를 보면 장쾌하기 그지 없다. 바위산에서 엄청난 힘이 나오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다녔던 초등학교 교가에서는 “북한산 정기받아”로 시작된다. 근처 어느 학교든지 북한산 정기받지 않은 학교가 없을 정도이다.
북한산을 뒷면에서 보았다. 사실 산에는 앞도 없고 뒤도 없다. 앞산 또는 뒷산은 명칭붙이기 나름이다. 서북쪽에서 바라본 북한산은 삼각산 모양은 아니다. 사람을 압도하게 하는 큰 바위산의 모습이다. 북한산의 또 다른 모습을 본 것이다. 진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7. 눈 있는 자가 되기 위하여
누군가 “이것만이 진리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길거리 전도사가 예천불지(예수천국불신지옥)를 외쳤을 때 진리를 한쪽면만 본 것이 된다. 불교인이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한쪽면 보게 되었을 때 이것만이 진리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면 다른 것은 무엇일까? 거짓이 될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 당시 외도들은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했다. 영원주의자라면 “세계는 영원하다.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Ud.66)라고 했다. 이는 진리의 한쪽면만 본 것이다. 마치 선천적으로 눈먼 봉사가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것과 같다.
눈 있는 자들은 전체를 볼 줄 안다. 있는 그대로 보는 자들이다. 그러나 눈이 먼 들은 코끼리 다리, 몸통, 꼬리, 귀 등을 만지면서 이것이 코끼리라고 한다.
진리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은 눈 먼 자와 같다. 견해에 집착된 자들은 한쪽 면만 보고서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말한다.
여러 각도에서 북한산을 볼 수 있다. 한쪽 방향만 보고서 “이것이 북한산이다.”라고 말할 수 없다. 북한산은 동북방향에서 보아야 삼각의 세 봉우리가 되기 때문에 삼각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서북방향에서 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 그래서 이것이 북한산이라고 말할 수 없다.
북한산이 고속도로 전면에서 점점 크게 다가 온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갈 때가 된 것이다. 파주인터체인지에서 빠져서 통일로로 달리다 보면 10분 내로 도착된다. 오늘은 어떤 담마를 접하게 될까? 눈 있는 자가 되기 위하여 들뜬 마음으로 멀고 먼 길을 달려 간다
2020-07-25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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