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불교계 미네르바가 되고자

담마다사 이병욱 2021. 2. 1. 07:50

불교계 미네르바가 되고자


나라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본다. 먼저 나의 이미지이다. 나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이미지를 알고 싶다.

블로그에서는 이름과 얼굴을 숨겼다. 필명으로만 소통했다. 모임이나 단체 활동도 하지 않고 글만 썼다. 그렇다고 작가나 시인의 글이 아니다. 누구나 클릭 몇번 하면 만들 수 있는 것이 블로그이다. 블로그에 글을 쓴 것이다. 40대 중반 반백수가 되었을 때 그것밖에 할 것이 없었다. 일상에 대한 것부터 법에 대한 것까지 닥치는 대로, 내키는 대로 올렸다. 그래서 인터넷 잡문이라고 말한다.

블로그 글쓰기가 2-3년 되었을 때 올린 글이 인터넷에 깔리기 시작했다. 매일 쓰다시피 하다 보니 점점 축적되어 키워드 검색하면 걸리게 된 것이다. 주로 불교관련 글이다. 불교용어로 검색하면 일순위로 노출되다 보니 궁금했던 것 같다.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알고 싶었던 것 같다. 댓글에서 혹시 스님 아니세요?” 라든가, “교수님이세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글은 스님이나 학자가 쓰는 것일까? 필명으로 썼을 때 스님 또는 학자 이미지로 비추어 졌던 것 같다. 사람들은 글이라는 것이 스님, 학자, 작가, 기자의 영역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불교관련 글은 스님이나 학자의 영역으로 본 것 같다.

알고 나면 이미지는 깨진다. 더 이상 궁금하지도 신비하지도 않다. 스님도 아니고 학자도 아닌 것을 알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아마도 미네르바를 떠 올렸을지 모른다. 엠비(MB)시절 필명 미네르바를 말한다. 글로만 보아서는 학자나 경제전문가로 보았다. 그러나 잡고보니 인터넷 백수였던 것이다. 그것도 청년백수였다. 블로거에 대한 환상 역시 이런 것 아니었을까?

영원히 블로그에 글만 쓸 줄 알았다. 인터넷에 글만 쓴지 9년 되었을 때 나만의 세상에서 나오게 되었다.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결정적 계기는 불교계신문 사이트에 칼럼을 쓰고 나서 부터이다. 2015년의 일이다. 한번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자 자연스럽게 재가불교단체와 연결되었다.

알고 나면 신비는 사라진다. 모를 때는 대체 이 사람은 뭐하는 사람일까?”라며 궁금해하지만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글의 이미지와 현실의 이미지가 완전히 차이 나는 것이 미네르바충격과 맞먹었을 것이다. 특히 불교에 대하여 많이 안다는 스님과 학자들이 그랬던 것 같다.

세상에 노출되고 나니 호기심의 대상이 된 것 같았다. 특히 스님과 학자들이 관심이 컸던 것 같다. 미네르바 같은 사람이 스님이나 학자의 영역에서 글쓰기 하는 것으로 본 것 같다. 특히 불교경력이 짧은 것에 놀랐던 것 같다. 불교에 정식으로 입문했던 때가 2004년이니 그럴 만도 했다. 2006년부터 쓰기 시작했으니 입문하자 마자 쓴 것이나 다름 없다.

2007
년이 되자 인터넷에 글이 깔리기 시작했고 2008년이 되자 블로그 누적 조회수가 백만명이 넘어 갔다. 단지 블로그 글만 보고서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 보였다. 댓글에 차나 한잔 하자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공통적으로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알고 나면 별 볼일 없다. 그들은 미네르바 수준임을 알았을 때 안심했던 것 같다. 일부 스님과 학자는 노골적으로 무시하기도 했다. 알고 나니 더이상 신비스러운 인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떤 이는 재가자가 같잖게글을 쓴다든가, 또 어떤 이는 집착이 강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매일매일 의무적 글쓰기를 했다.

한때 이런 생각도 해 보았다. 늦은 나이이지만 공부를 해 보고자 한 것이다. 불교관련 대학원에 진학하여 석사를 따고 박사를 따면 권위가 갖추어 질 것 같았다. 없던 명예도 생겨날 것 같았다. 그러나 생업이 있는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았다. 학위가 단지 권위와 명예를 위한 것이라면 불순한 것이다. 굳이 시간과 돈과 정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뭐라하든 말든 나의 길을 가기로 했다.

페이스북에 글쓴지는 4년 되었다. 더 오래 전부터 쓰고자 했으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바람에 미루다가 2017년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페이스북 글이 긴 것은 블로그에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린다. 그결과 페이스북 글은 진지한 글이 되었다. 페이스북과는 맞지 않는 글쓰기이다.

블로그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 블로그친구들이 많다. 그 중에 어떤 친구는 재가불교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염려했다. 이미지가 망가지는 것에 대해 염려한 것이다.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잘 할 수 있는지에 대하여 걱정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설령 그것이 타의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도 완전연소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미지 관리를 위한 것인지 모른다.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 수행이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글과 행위가 일치하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글은 경전과 주석을 근거로 하여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의 내용이 글 쓴 사람의 인격과 일치하지 않는다. 이런 괴리를 좁혀 가야 한다. 수행으로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이제 글쓴이의 실체를 알고 있다. 더 이상 스님도 아니고 더 이상 학자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이는 그동안 환상 깨기 작업을 한 이유도 있다. 틈만 나면 생업을 소개하며 일인사업자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욕심이 있다면 수행자로 불리고 싶다. 놀랍게도 그렇게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명예와 지위를 중요시하게 여긴다. 타이틀을 자아와 동일시하는 사람도 있다. 꼬리표가 그 사람의 이미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미지 관리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스님이나 학자는 인터넷에 잡문을 쓰려 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시간에 논문을 쓰거나 책을 쓸 것이다. 블로그나 카페에 함부로 글을 쓰지 않는 이유라고 본다. 그러나 명예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글쓰기도 자유롭다. 그들이 책을 쓰고 논문을 쓸 시간에 인터넷 잡문을 쓴다. 누군가 공감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때로 이런 생각도 해본다. “블로그에만 전념했다면 어땠을까?”에 대한 것이다. 그렇게 했다면 베일에 가려진 신비한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밝혀지고 만다. 미네르바처럼.

매일 의무적 글쓰기를 하고 있다. 공감하는 글쓰기여야 한다. 무언가 하나라도 건질 수 있는 유익한 글쓰기가 되어야 한다.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글이 그 사람의 얼굴이고 인격이다. 그런 나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나는 불교계의 미네르바가 되고자 한다.


2021-02-01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