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는 길에 들렀습니다
코로나가 세상을 바꾸어 놓았다. 해마다 명절 때가 되면 공항은 북새통이었다. 매번 사상최대의 인파가 공항에 몰렸다고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에는 이런 뉴스를 듣지 않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지나치다. 정부 방역당국에서는 설을 쇠지 말라는 식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설을 가족끼리만 지내기로 했다. 동생네도 오지 말라고 했다. 처가에도 가지 않는다. 그대신 설 전날 오늘 처가댁을 다녀왔다. 홀로 사는 장모님에게 전달할 것도 있었고 전달받아야 할 것도 있었기 때문이다.
출발하기 전에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선물을 전달하는 김에 몇 군데 들러 볼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렇게 생각한 것은 자극 받았기 때문이다. 동네 작은 마트에서 선물 꾸러미를 보았기 때문이다. 보자기에 싼 선물용 과일박스를 말한다.
대형마트에 가면 선물용 기프트박스가 있다. 대게 참치나 햄, 식용유 등이 있는 종합선물 세트이다. 잘 포장되어 있다. 마무리는 쇼핑백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런데 동네 구멍가게 수준인 마트에서는 분홍색, 주황색, 황금색 등 보자기로 포장 되어 있었다. 이것이 강렬하게 마음을 끌었다. 평소 감사하게 여기는 사람에게 선물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이 들자 마음이 바빠졌다.
오전 8시에 창동을 향해 출발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대형마트는 문을 열지 않는다. 선물세트를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이다. 중형마트도 10시가 넘어야 문을 연다. 동네 마트는 어떨까? 그것이 궁금했다. 놀랍게도 이른 아침에도 문을 열었다.
동네마트는 중년부부가 운영한다. 40대 후반 부부이다. 부부가 열심히 사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 일부러 팔아준다. 작년 마늘철에는 한접을 일부러 사 준 적도 있다. 대형마트나 중형마트 가는 것보다 동네마트를 이용하면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이번에는 보자기에 마음이 이끌렸다. 같은 선물이라도 천편일률적인 쇼핑백보다는 보자기에 싼 선물박스가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선물을 받는 사람도 특별한 기분이 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정성이고 그것은 감동이다. 동네 마트부부는 정성과 감동을 판 것이다. 마트 이름은 싱싱마트이다.
선물 두 박스를 샀다. 하나는 청포도 박스이고 또하나는 천혜향이라는 제주 귤박스이다. 품질 좋은 상품이다. 각각 4만원 씩이다. 남자 주인은 황금빛 보자기에 싸 주었다. 계산은 재난 지원카드로 결재했다. 설을 앞두고 경기도에서는 인당 10만원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싱싱마트에서는 이런 점을 노린 것 같다. 마트 입구에 “재난 지원금 사용 가능합니다.”라고 써 붙여 놓았기 때문이다.
두 개의 선물 보자기를 누구에게 전달해야 할까? 마음 속으로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하나는 전재성 선생에게 전달하고, 또 하나는 사촌형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렇게 명절 전날 선물을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안양에서 창동까지는 41키로 50분가량 걸린다. 설 전날 연휴 시작일이기 때문에 밀리지 않았다. 제한 최고 속도로 달렸다. 창동에 준비한 선물세트를 전달하고 용돈도 드렸다. 장모님은 준비한 반찬 거리를 잔뜩 안겨주었다. 이런 일은 팔팔년 이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다음 행선지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KPTS)이다.
KPTS는 고양시 삼송역 부근 삼송테크노밸리 내에 있다. 알리지 않고 차부터 몰았다. “지나는 길에 들었습니다.”라고 말하고자 했다. 전재성 선생은 명절에도 쉬지 않고 번역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고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하니 29키로 거리로 30여분만에 도착했다. 그래도 전화는 해 보아야할 것 같았다. 도착해서 전화했다. 10시 이전에 도착했는데 너무 이른 것 같다. 전선생은 집에서 막 출발 하고 있었다.
10시 30분경에 전재성 선생과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명절 때도 쉬지 않고 번역을 하는데 벌써 20년 넘은 일이라고 한다. 현재 번역 중에 있는 자따까 이야기를 들었다. 게송이 많은데 난해한 부분이 많다고 한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은 일본어 번역을 중역한 것이라고 한다. 이번에 빠알리 원문을 번역하면 한국불교에 획기적 사건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상윳따니까야 정도 되는 방대한 분량으로 가르침에 목말라하는 불자들에게 갈증을 해소하게 해줄 것 같다.
다음 행선지는 부천이다. 역시 수도권외곽순환고속도로를 이용했다. 30키로 거리에 30분가량 걸렸다. 백부 7남내 중에 막내아들이다. 박근혜 전대통령과 나이가 같다. 매년 6월경에 고향에서 합동제사가 있는데 형부부가 하루 전에 내려 가서 준비한다. 합동제사는 벌써 10년째이다. 이제는 일종의 사촌모임처럼 되었다. 가장 적극적인 형부부가 있었기에 이제까지 원만히 진행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기에 일부러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부천 형네집에 도착 했을 때는 12시가 넘었다. 점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급작스런 방문이다. 역시 “지나는 길에 들렀습니다.”라고 말했다. 명절 선물 전달할 때 예고하고 가는 것보다 불시에 가도 크게 실례되지 않는 것 같다. 이때 둘러대기 좋은 말은 “지나는 길에 들렀습니다.”라는 말일 것이다.
오늘 세 군데 들렀다. 두 군데는 예고 없이 같다. 동네 마트에서 본 보자기 선물꾸러미가 자극제가 되었다. 보자기에 정성스럽게 싼 박스를 보자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 것이다. 싱싱마트 주인의 마케팅 전략에 넘어 갔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뿌듯했다. 재난지원금으로 동네마트 물건을 팔아 주어서 좋았다. 무엇보다 정성이 담긴 황금빛 보자기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평소 감사하게 생각했던 사람에게 “지나는 길에 들렀습니다.”라며 둘러대고 방문했다는 것이다. 일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것도 세상 살아가는 맛일 것이다.
2021-02-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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