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가가 아니라 블로거
매일 긴 글을 쓴다. 그렇다고 소설처럼 긴 글은 아니다. 길어 보았자 A4로 10페이지 이내이다. 폰트 사이즈 12로 한다. 5페이지 쓰면 3시간가량 걸리고 10페이지가량 걸린다. 주제는 불교에 대한 것이다. 경전과 주석을 읽고 감명 받은 것을 적는다.
요즘은 인터넷시대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인터넷의 바다에 띄울 수 있다. 블로그에 글쓰기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을 블로거라고 한다. 블로거로서 글을 쓴다.
요즘 소설을 읽는다. 전에 없던 일이다. 소설 읽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었다. 너무나 바쁜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소설읽을 시간이 없었다. 섬세한 표현을 읽는 것도 고역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소설 읽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다. 아마 마음이 급한 이유라고 본다.
무엇이든지 한번에 다 하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끝장 보려 하는 것이다. 소설을 하루밤 안에 다 읽으려 한다면 소설과 멀어지게 된다. 소설은 머리 맡에 두고 틈틈히 읽어야 한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억을 되살려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단번에 다 읽어 버리면 읽자마자 잊게 되어서 남는 것이 없다. 이런 행위는 심각한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글을 읽으면 자신의 삶속에 녹아 들게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독후기를 쓰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은 밑줄 긋거나 따로 메모해 놓아야 한다. 독후기를 위한 소설읽기가 되는 것이다.
소설가는 정력이 왕성한 것 같다. 한편의 소설이 완성되면 바로 그 다음편이다. 매년 글을 생산해 낸다. 과연 작가는 강철같은 체질의 소유자일까?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그것도 긴 글이다. 글이 길면 보지 않는다. 더구나 교학이나 교리에 대한 글은 외면 받는다. 공감 반응으로 알 수 있다. 이런 글쓰기에 대해 어떤 이는 체력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정반대이다. 골골하다시피 하며 사는 저질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니터 앞에 몰입하면 힘이 난다. 아픈 것도 잊어 버린다. 아마 필력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매년 작품을 내 놓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만일 작가가 작품을 내놓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마 작가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본다.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신체적 또는 정신적 문제가 생긴 것을 말한다.
작가는 매일 글을 쓴다. 작가는 매년 책을 내다시피 하고 있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저작물은 금지탑을 이룬다. 이런 작가의 열정에 대해 염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개 "이제 좀 쉬시지요."라는 말이다. 이런 말은 작가에게는 모욕으로 들릴 것이다.
작가가 아무런 이유 없이 저술활동을 중단한다면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작가는 끊임없이 글을 생산해 낸다. 멈추는 법이 없다. 강철체질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힘이 붙었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이를 필력이라고 한다. 운동을 하면 근력이 생기는 것과 같다.
근육이 생기면 남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 수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일 좌선 하는 사람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10년, 20년, 30년 했다면 남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를 수행의 힘, 수행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작가는 필력이 있다. 그것도 10년, 20년, 30년 했다면 힘이 붙은 것이다.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이다. 글쓰는 사람이 매일 쓰는 것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쓴 글을 동시에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있다. 그런 나는 작가일까?
한번도 작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시인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면 "저는 작가가 아닙니다. 저는 블로그입니다."라고 일깨워 준다. 요즘에는 이런 말 하기도 귀찮아서 내버려 둔다.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블로거도 글을 쓰기 때문에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히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책 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무난한 것은 '블로거'라는 말이다.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쓰는 블로거라는 말이 좋다.
일하면서 쓰고, 쓰면서 일한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일상이다. 틈만 나면 쓴다. 두세 시간 여유가 생기면 "이거 글 하나 나오는데?"라며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쓰기 때문에 잡식성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향하는 것은 있다. 그것은 담마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 근본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고자 쓴다. 그래서 방대한 니까야를 뒤져서 글로 만든다. 대개 공감한다. 어제 올린글에 대해 어떤 이는 "불교신자가 아니고 내용이 심오해서 2번 정독을 하였습니다. 제인생에 불분명했던 부분을(?) 무엇인가 찿은듯한 느낌 입니다..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런 글을 보면 힘을 받는다. 글쓴 보람을 느낀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작가는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블로거 역시 콘텐츠가 생명이다. 글을 써서 이득을 취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명예에 지나지 않다. 어쩌면 자기만족이라 할 수 있다. 쓰다보니 불교계 넘버원 블로거가 되었다. 지난 16년 동안 누적 조회수가 750만명 가량된다. 아직까지 이것 이상은 발견되지 않는다. 매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렇게 밝히는 것도 자만일 것이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 블로거이다.
2021-03-11
담마다사 이병욱
매일 긴 글을 쓴다. 그렇다고 소설처럼 긴 글은 아니다. 길어 보았자 A4로 10페이지 이내이다. 폰트 사이즈 12로 한다. 5페이지 쓰면 3시간가량 걸리고 10페이지가량 걸린다. 주제는 불교에 대한 것이다. 경전과 주석을 읽고 감명 받은 것을 적는다.
요즘은 인터넷시대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이 생각한 것을 인터넷의 바다에 띄울 수 있다. 블로그에 글쓰기하는 것도 누구나 할 수 있다. 시나 소설을 쓰는 사람을 작가라고 한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을 블로거라고 한다. 블로거로서 글을 쓴다.
요즘 소설을 읽는다. 전에 없던 일이다. 소설 읽는 것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했었다. 너무나 바쁜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에 소설읽을 시간이 없었다. 섬세한 표현을 읽는 것도 고역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소설 읽지 않은지가 오래 되었다. 아마 마음이 급한 이유라고 본다.
무엇이든지 한번에 다 하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끝장 보려 하는 것이다. 소설을 하루밤 안에 다 읽으려 한다면 소설과 멀어지게 된다. 소설은 머리 맡에 두고 틈틈히 읽어야 한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아야 한다. 기억을 되살려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단번에 다 읽어 버리면 읽자마자 잊게 되어서 남는 것이 없다. 이런 행위는 심각한 시간낭비에 지나지 않는다.
글을 읽으면 자신의 삶속에 녹아 들게 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독후기를 쓰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은 밑줄 긋거나 따로 메모해 놓아야 한다. 독후기를 위한 소설읽기가 되는 것이다.
소설가는 정력이 왕성한 것 같다. 한편의 소설이 완성되면 바로 그 다음편이다. 매년 글을 생산해 낸다. 과연 작가는 강철같은 체질의 소유자일까?
매일 글을 쓰고 있다. 그것도 긴 글이다. 글이 길면 보지 않는다. 더구나 교학이나 교리에 대한 글은 외면 받는다. 공감 반응으로 알 수 있다. 이런 글쓰기에 대해 어떤 이는 체력이 좋은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정반대이다. 골골하다시피 하며 사는 저질체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니터 앞에 몰입하면 힘이 난다. 아픈 것도 잊어 버린다. 아마 필력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매년 작품을 내 놓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만일 작가가 작품을 내놓지 않는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마 작가의 신변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본다. 글을 쓰지 못할 정도로 신체적 또는 정신적 문제가 생긴 것을 말한다.
작가는 매일 글을 쓴다. 작가는 매년 책을 내다시피 하고 있다. 그동안 쌓이고 쌓인 저작물은 금지탑을 이룬다. 이런 작가의 열정에 대해 염려 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개 "이제 좀 쉬시지요."라는 말이다. 이런 말은 작가에게는 모욕으로 들릴 것이다.
작가가 아무런 이유 없이 저술활동을 중단한다면 직무유기에 해당된다. 작가는 끊임없이 글을 생산해 낸다. 멈추는 법이 없다. 강철체질이라 그런 것이 아니다. 힘이 붙었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이를 필력이라고 한다. 운동을 하면 근력이 생기는 것과 같다.
근육이 생기면 남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 수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매일 좌선 하는 사람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10년, 20년, 30년 했다면 남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이를 수행의 힘, 수행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작가는 필력이 있다. 그것도 10년, 20년, 30년 했다면 힘이 붙은 것이다.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힘이다. 글쓰는 사람이 매일 쓰는 것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쓴 글을 동시에 페이스북에도 올리고 있다. 그런 나는 작가일까?
한번도 작기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시인도 아니고 소설가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작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럴 때면 "저는 작가가 아닙니다. 저는 블로그입니다."라고 일깨워 준다. 요즘에는 이런 말 하기도 귀찮아서 내버려 둔다.
글을 쓰는 사람은 모두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블로거도 글을 쓰기 때문에 작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히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책 내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무난한 것은 '블로거'라는 말이다. 쓰고 싶은 것을 마음껏 쓰는 블로거라는 말이 좋다.
일하면서 쓰고, 쓰면서 일한다. 나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일상이다. 틈만 나면 쓴다. 두세 시간 여유가 생기면 "이거 글 하나 나오는데?"라며 생각한다. 무엇이든지 쓰기 때문에 잡식성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지향하는 것은 있다. 그것은 담마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 근본 가르침을 세상에 알리고자 쓴다. 그래서 방대한 니까야를 뒤져서 글로 만든다. 대개 공감한다. 어제 올린글에 대해 어떤 이는 "불교신자가 아니고 내용이 심오해서 2번 정독을 하였습니다. 제인생에 불분명했던 부분을(?) 무엇인가 찿은듯한 느낌 입니다..감사합니다.."라는 댓글을 페이스북에 남겼다. 이런 글을 보면 힘을 받는다. 글쓴 보람을 느낀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한다. 작가는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 블로거 역시 콘텐츠가 생명이다. 글을 써서 이득을 취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명예에 지나지 않다. 어쩌면 자기만족이라 할 수 있다. 쓰다보니 불교계 넘버원 블로거가 되었다. 지난 16년 동안 누적 조회수가 750만명 가량된다. 아직까지 이것 이상은 발견되지 않는다. 매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렇게 밝히는 것도 자만일 것이다. 나는 작가가 아니라 블로거이다.
2021-03-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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