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언어가 폭력이 될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21. 3. 7. 22:43

언어가 폭력이 될 때


문자로 인하여 종종 오해받는다. 단도직입적으로 썼을 때 그렇다. 거두절미하고 요점만 쓰면 오해 받기 쉽다. 심지어 화났느냐는 말도 한다.

카톡 초창기 때 일이다. 아마 아시안게임 때였을 것이다. 인천아시안게임 때이니 2014년이다. 그때 당시 카톡이란 것을 처음 해 보았다. 문자소통에 익숙하지 않아 단답형으로 했다. 대답은 "."라고 했다. 무뚝뚝하다고 지적받았다. 다른 사람들 하는 것을 보니 "^^" 또는 "~"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스마일 이모티콘도 사용했다.

문자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직접 대면하여 말로써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문자는 오죽할까?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문자로 견해를 표출했을 때 오해받을 수 있다. 거두절미하고 요점만 표현했을 때 화가 난 것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이럴 경우 폭력이 된다. 이를 문자폭력이라 해야 할 것이다.

할말이 많음에도 필요한 부분만 잘라 말 했을 때 언어폭력이 된다. 이런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따옴표 처리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앞과 뒤를 잘라버리고 필요한 것만 가져가서 따옴표 처리했을 때 폭력이 된다.

누군가 "이것이야말로 진실이다."라고 말한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말했을 때 이것이 아닌 것은 거짓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것이야말로 진리이고 다른 것은 모두 거짓이다."가 되어 버린다. 이는 언어폭력이다.

 


문자로 소통하면서 언어폭력적 요소를 종종 발견한다. 편지 쓰는 것처럼 안부인사 묻는 것 등 서두없이 곧바로 들어 갔을 때 화난 것처럼 보인다. 사실을 알고 보면 그런 것은 아니다. 이처럼 견해 차이로 인하여 문자를 받게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 해야할까?

차이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문자적 표현의 한계로 인하여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것을 인정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지 표현되어 있는 워딩에서만 의미를 파악하려 한다면 오해하기 쉽다. 그럴 경우 차라리 전화를 걸어서 확인하는 것이 낫다. 가장 좋은 것은 직접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다. 언어는 가공 과정을 거친 것이기 때문에 진실에서 먼 것이 될 수 있다. 대면하면 표정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잘 파악할 수 있다.

문자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오해 소지가 없게끔 썼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 이런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말꼬리 잡듯이 표현된 문자에 집착한다면 오해하기 쉽다.

사람들 성향은 다양하다. 감관이 예리한 자가 있는가 하면 둔한 자도 있다. 행실이 착한 자가 있는가하면 악한자도 있다. 많이 배운 자가 있는가 하면 적게 배운 자도 있다. 이와 같은 차이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언어는 기본적으로 폭력적 요소가 있다.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말만 했을 때 언어폭력이 된다. 마치 사진을 보는 것과 같다.

"
사진은 권력이다." 이 말은 어느 블로그 제목이다. 오로지 사진으로 말하는 것이다. 사진만이 진실이라고 말한다. 그 어떤 말도, 그 어떤 글도 한장의 사진만 못하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다.

한장의 사진으로 역사가 바뀐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진은 선택적이다. 많은 장면 중에서 하나만 골랐기 때문이다. 마치 전후를 잘라내고 따옴표 처리하는 글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폭력이다. 사진폭력이다. "사진은 권력이다."가 아니라 "사진은 폭력이다."가 된다.

글이나 사진은 폭력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취향에 맞게 취사선택 되었을 때 이미 폭력적 요소가 내재되어 있다. 더구나 이를 타인이 보았을 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폭력적으로 비추어질 수 있다.

문자와 사진은 특정한 것만 취한 것이다. 전체를 반영하지 못한다. 제아무리 글을 잘 써도 극히 일부만을 표현한 것이다. 더구나 받아들이는 사람이 불쾌하게 생각한다면 폭력이 된다. 사진도 마찬가지이다.

문자를 대하는 두 가지 태도가 있을 수 있다. 한부류는 "그러려니" 생각하는 것이다. 문자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또 한부류는 불쾌하게 생각한다. 단지 문자의 워딩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쓰여진 것을 전체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문자로 표현된 것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다. 그럼에도 문자에 집착하여 전체로 본다면 오해하기 쉽다.

사람의 성향은 다르다. 문자 하나 사진 하나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대범하게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지 명예훼손이 아니라면 문제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실명과 사진에 얼굴이 나오는 것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 차이와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다. 매일매일 조마조마한 마음이다.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을 걷는 것 같다. 가능하면 비난이나 비방글은 삼가려고 한다. 그러나 비판글은 예외이다. 그럼에도 언어폭력으로 받아들인다면 차이와 다름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설령 그것이 그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일부분만 표현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는 언어폭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참사람은 첫째, 잘 설해진 것만을 말하고,
둘째, 가르침만을 말하고 가르침이 아닌 것은 말하지 않으며,
셋째, 자애로운 것만 말하고, 자애롭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고,
넷째, 진실한 것만을 말하고, 거짓은 말하지 않네.”(S8.5)


2021-03-0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