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불능 직업병 환자
직업병이 있다. 한직업을 오래 하면 병이 생긴다. 어떤 병인가? 그것은 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오랫동안 개발자로 살았다. 셋톱박스를 이십년 개발했으니 습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부품업체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니타난다.
개발하면 수십개에 달하는 부품을 승인해야 한다. 이는 개발자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부품업체 직원들은 부품승인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성능대비 가격이 싼 것을 강조하며 승인을 요청한다. 세컨드 벤더라도 등록해달라고 요청한다.
부품업체가 만나자고 할 때 귀찮다. 일은 쌓여 있는데 보자고 하면 짜증난다. 대개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며 상담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런 경우 커피한잔 대접하면서 빨리 보내고자 한다. 대답도 건성건성으로 한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위치가 역전되었다. 전에는 갑이었으나 을이 된 것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어느 날 고객과 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을의 위치를 망각하고 갑의 위치에서 말한 것이다.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며칠전 벽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업무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모임과 관련된 것이다. 합리적으로 설명했으나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여러모로 겸손하게 여러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민감하다'든가, '답답하다'라며 모욕적인 표현을 했다. 카톡으로 주고 받은 것이다. 그 사람은 교수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행위를 하면 업이 된다. 오래 반복하면 직업이 된다. 이런 세월을 5년, 10년, 20년, 30년 했다면 어떻게 될까? 굳어질 것이다. 특히 갑의 위치에서 오래 있었다면 은연중에 나타난다. 그 교수도 그런 것 같다.
갑의 위치에 있으면 을의 위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이른바 갑질하게 된다. 지위가 높을수록 심하다. 그러나 현직에 있을 때 뿐이다. 현직에서 떠나면 누구나 을의 입장으로 전락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벽을 바라보고 얘기하는 것 같다.
가장 낮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 바닥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봉사만큼 좋은 것이 없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를 위하여 가장 낮은 자세로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아상을 죽이는 것이다.
절에 가면 공양을 한다. 밥을 먹고 나면 식기를 닦아야 한다. 그럼에도 절에서 대접 받으려는 사람이 있다. 집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밥상을 받는 것이다. 꼴불견이다. 절에 왔으면 봉사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팔을 걷어 부치고 설거지부터 하는 것이다.
지난주 금요모임 때 서고 바닥을 닦았다. 마대를 빨아 물걸레 청소를 한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청소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한평생 대접만 받아 온 사람이 과연 마대자루를 쥘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힘드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피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나 대접받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에게 설거지를 하라거나 마대자루를 잡으라고 하면 흔쾌히 동의할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생각한다. 현직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현직에 있는 것처럼 행위한다. 직업병이라고 볼 수 있다. 한평생 학생만 대하던 선생이 타인도 학생 다루듯이 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직업병이라고 볼 수 있다. 주변에는 치유불능 직업병 환자들이 너무 많다.
2021-03-03
담마다사 이병욱
직업병이 있다. 한직업을 오래 하면 병이 생긴다. 어떤 병인가? 그것은 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오랫동안 개발자로 살았다. 셋톱박스를 이십년 개발했으니 습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부품업체에 대한 우월의식으로 니타난다.
개발하면 수십개에 달하는 부품을 승인해야 한다. 이는 개발자의 의무이자 특권이다. 부품업체 직원들은 부품승인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성능대비 가격이 싼 것을 강조하며 승인을 요청한다. 세컨드 벤더라도 등록해달라고 요청한다.
부품업체가 만나자고 할 때 귀찮다. 일은 쌓여 있는데 보자고 하면 짜증난다. 대개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며 상담실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런 경우 커피한잔 대접하면서 빨리 보내고자 한다. 대답도 건성건성으로 한다.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위치가 역전되었다. 전에는 갑이었으나 을이 된 것이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이 있다. 어느 날 고객과 싸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을의 위치를 망각하고 갑의 위치에서 말한 것이다. 다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며칠전 벽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업무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모임과 관련된 것이다. 합리적으로 설명했으나 먹혀 들어가지 않았다. 여러모로 겸손하게 여러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했으나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민감하다'든가, '답답하다'라며 모욕적인 표현을 했다. 카톡으로 주고 받은 것이다. 그 사람은 교수라고 불리는 사람이다.
행위를 하면 업이 된다. 오래 반복하면 직업이 된다. 이런 세월을 5년, 10년, 20년, 30년 했다면 어떻게 될까? 굳어질 것이다. 특히 갑의 위치에서 오래 있었다면 은연중에 나타난다. 그 교수도 그런 것 같다.
갑의 위치에 있으면 을의 위치에 대해 잘 모른다. 그래서 이른바 갑질하게 된다. 지위가 높을수록 심하다. 그러나 현직에 있을 때 뿐이다. 현직에서 떠나면 누구나 을의 입장으로 전락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갑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벽을 바라보고 얘기하는 것 같다.
가장 낮은 자세가 되어야 한다. 바닥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봉사만큼 좋은 것이 없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가장 낮은 자를 위하여 가장 낮은 자세로 봉사하는 것이야말로 아상을 죽이는 것이다.
절에 가면 공양을 한다. 밥을 먹고 나면 식기를 닦아야 한다. 그럼에도 절에서 대접 받으려는 사람이 있다. 집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밥상을 받는 것이다. 꼴불견이다. 절에 왔으면 봉사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팔을 걷어 부치고 설거지부터 하는 것이다.
지난주 금요모임 때 서고 바닥을 닦았다. 마대를 빨아 물걸레 청소를 한 것이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한 것이다. 청소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한평생 대접만 받아 온 사람이 과연 마대자루를 쥘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힘드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을 피하는 것이다. 어디를 가나 대접받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에게 설거지를 하라거나 마대자루를 잡으라고 하면 흔쾌히 동의할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사람들은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생각한다. 현직을 떠났음에도 여전히 현직에 있는 것처럼 행위한다. 직업병이라고 볼 수 있다. 한평생 학생만 대하던 선생이 타인도 학생 다루듯이 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직업병이라고 볼 수 있다. 주변에는 치유불능 직업병 환자들이 너무 많다.
2021-03-0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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