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에 현혹되지 말자
각자 인생이 있다. 각자 세계가 있다는 말과 같다.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내가 눈을 감으면 세상도 파괴될 것이다.
그사람 인생은 그사람 것이다. 내가 개입할 것이 아니다. 그사람이 어떤 행위를 하든 그사람의 과보가 될 것이다. 설령 핏줄이라 해도 개입해서는 안된다.
요즘 남의 인생을 들여다본다. 페이스북에 흔적 남기는 것을 본다. 그러나 다 알 수 없다. 이미지 관리하기 때문이다. 불리한 것은 숨기고 유리한 것은 드러낸다.
페이스북에 남긴 흔적만 보고서 그사람을 다 안다고 볼 수 있을까? 비밀은 꽁꽁 숨겨놓고 자랑만 했을 때 몇 프로나 알 수 있을까? 그럼에도 속일 수 없다. 글은 그사람의 얼굴이고 인격이기 때문이다.
두 가지 글쓰기 패턴이 있다. 하나는 사진위주이고 또하나는 생각위주이다. 페이스북 정책은 후자이다. 생각을 물어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진 위주이다.
사진으로 말하는 글쓰기를 피하려고 한다. 자랑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사진 없는 글쓰기는 생각이 되기 쉽다. 글쓰기가 내면을 향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진보다 생각을 읽고 싶어 한다.
페북 글쓰기 만으로는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만나 보아야 한다. 만나서 얘기해 보아야 한다. 아마 한시간만 얘기하면 밑천이 드러날 것이다. 그사람이 지혜로운지는 토론해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을 믿으면 실망하기 쉽다.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사람과 실제로 만난 사람과는 차이가 있다. 특히 이미지 관리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렇다.
요즘 이미지시대이다. 가능하면 좋은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한다. 학력이 좋으면 학력을 드러내고자 한다. 생애 최고 지위에 올랐다면 그 지위로 불려지길 원한다. 그러나 재산을 밝히지는 않는다.
명예는 드러내고 재산은 숨긴다. 학력과 경력은 자랑해도 재산만큼은 꼭꼭 숨긴다. 명예 보다 재산이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
만약 그가 재산을 밝힌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타겟이 될지 모른다. 끝까지 지키고 싶은 것은 명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재산일 것이다. 재산이야말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페북에서 67만원으로 살아간 사람 이야기를 보았다.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하다 시피하고 있는데 특별하게 돈 들어갈 일이 없다고 한다. 노령연금 30만원과 국민연금 37만이 수입의 전부라고 한다. 군에서 생계비 지급 신청하라고 했는데 거절했다고 한다.
나의 생활비는 얼마나 될까? 아파트에서 살다보니 아파트관리비가 꽤 나온다. 사무실 임대료와 관리비도 만만치 않다. 여기에다 각종 공과금과 세금이 있다. 부지런히 벌지 않으면 큰 일 난다. 백만장자도 아니고 고액 연금 생활자도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 있으면 신용불량자가 되기 쉽다.
67만원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물론 시골에서 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도시에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인지 인당 최저 생계비를 따진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수입을 밝히지 않는다.
차가 있다. 모닝차이다. 배기량이 999씨씨이다. 이렇게 차를 밝히는 것은 차가 작기 때문이다. 누군가 배기량이 큰 차를 타고 다닌다면 자신있게 밝힐 수 있을까? 학력과 경력은 밝혀도 재산은 밝히지 않는다. 비밀이기 때문이다.
비밀을 굳이 밝힐 필요가 없다. 왜 그런가? 비밀이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비밀이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친에게는 밝힐 수 있다. 절친은 비밀을 지켜 주기 때문이다. 또 절친은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 수 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에도 친구가 있다. 이를 페친이라고 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친구가 될 수 있다. 페친을 정말 친구라고 볼 수 있을까?
친구의 조건이 있다. 필요할 때 도움이 되는 사람이 친구이다. 연민할 줄 아는 사람이 친구이다. 최소한 이 두 가지 조건은 만족해야 한다.
필요할 때 도움을 주고 연민할 줄 안다면 친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조건은 나이와 무관하다. 남녀와도 무관하다. 지위나 재산과도 무관하다. 그렇다면 페친의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공감이다. 공감할 줄 알면 친구인 것이다.
페이스북에서 머무는 때가 많다. 한번도 직접 대면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오로지 공개한 자료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자료가 거의 없으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다.
공감할 줄 모른다면 친구라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솔직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이 친구이다. 한번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이다. 만나서 밥을 사고 싶은 사람이다. 그러나 대화하기 전에는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이미지 관리한다. 만나서 대화 하기전에는 알 수 없다. 사람을 믿으면 실망하기 쉽다. 이미지에 현혹되지 말자.
2021-03-0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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