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스폰지 같은 사람

담마다사 이병욱 2021. 3. 7. 07:55

스폰지 같은 사람


며칠전 JB타임에서 들은 것이다. 전검찰총장이 정치적 행보를 했을 때 대응을 자제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여당에서는 맞대응 하기 보다는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이를 스폰지에 비유했다. 스폰지처럼 흡수해 버리라는 것이다.

때로 스폰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불편과 불쾌를 유발하는 대상에 대하여 스폰지처럼 흡수해 버리는 것이다. 일종의 무대응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면전이라면 미소 정도로 충분할 것이다. 비웃어서서는 안된다. 자비의 미소여야 한다. 자비의 마음으로 흡수하는 것이다.

자비무적이라고 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비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화내는 이에게 화내지 말라고 했다. 하수는 맞대응 하는 사람이다. 상수라면 받지 않는다. 대신 자비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분노의 밥상을 받지 말라고 했다. 받지 않으면 그 사람 것이 되어 버린다. 그러면 이기기 어려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했다. 상윳따니까야에 나오는 말이다.

작년 총선 때 어느 정치인이 유튜브 방송을 했다. 선거를 사흘 앞두고 호소 방송을 했다. 나름대로 준비한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댓글 창도 동시에 열어 놓았나 보다. 누군가 댓글에 비난하는 글이 있었었던 것 같다. 정치인은 갑자기 흥분했다. 댓글 단 이에게 ", XX놈아!"라고 욕을 하는 것이었다. 이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감정표출한 것에 놀란 것이다. 이런 모습을 유권자들이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선거결과 그 작은 정당은 폭망했다.

화가 난다고 화를 내면 될까? 모든 것을 감정적으로 처리하면 싸움 그칠날 없을 것이다. 이럴 때 잠시 멈추어야 한다. 즉각 대응하지 말고 한호흡, 두 호흡 멈추어야 한다. 그 사이에 생각이 치고 들어온다. 부처님 가르침이라면 더 좋다.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는 가르침을 떠 올리면 가장 좋을 것 같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이는 돌이킬 수 없음을 말한다. 친구 사이라도 벌컥 화를 낸다면 소원해질 수 있다. 부모자식간에도 화를 내면 멀어진다. 고객과 싸우면 다시는 주문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라도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회복불능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럴 때 스폰지 전략을 써야 한다.

스폰지는 물을 흡수한다. 스폰지 같은 사람은 도량이 넓은 사람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지혜와 자비가 넘쳐나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 보기 어렵다. 대부분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동물적 본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나도 스폰지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먼저 그릇을 키워야겠다. 그러나 한번 태어난 성격은 고칠 수 없다. 이 몸과 이 성향으로 일평생 살아가야 한다. 죽어서나 끝난다. 그러나 살아 있을 때 족보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범부에서 성자의 흐름에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수행으로 성취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수행이라는 말이 '바와나(bhavana)'인 것이 의미가 있다.

수행을 뜻하는 바와나는 본래 'becoming'의 뜻이다. 되어감을 말한다. 어떤 더러운 것이 있어서 닦는다기 보다는 어떤 존재로 되어감을 말한다. 수행을 하여 범부에서 성자의 흐름에 들었다면 계보가 바뀐 것이다. 전혀 딴 사람이 된 것이다. 얼굴 모습은 그대로일지 모르지만 성향이 완전히 바뀌어서 딴 사람이 된 것이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자신을 바꾸기 위해 하는 것이다. 수행을 해도 변한 것이 없어서 그 모양이라면 수행의 효과가 없다. 수행은 본래 깨끗한 그 무엇이 있어서 더러워진 거울을 닦듯이 마음을 닦는 것이라기 보다는, 수행은 본래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을 제어하여 다른 존재가 되는 것이다. 수행을 뜻하는 빠알리어 바와나가 'becoming'의 뜻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오늘도 하루 일과가 시작되었다. 홀로 일하다 보니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지금은 사이버시대이다. 가상공간에도 친구들이 있다. 실시간으로 소통되는 에스엔에스에서는 갖가지 인생을 만난다. 글로서 소통하는 것이다.

글은 그사람의 얼굴이고 인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글로서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글은 필터링 된 것이기 때문이다. 대면해 보아야 알 수 있다. 호불호와 쾌불쾌는 즉각적이다. 언어 이전의 것이다. 느낌과 지각은 말로 표현하는 것 보다 더 빠르다. 얼굴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에스엔에스 시대에 문자로 소통한다. 문자는 감정표현에 서툴다. 언어로서 자신의 마음을 다 담아 내기 어렵다. 그래서 언어를 폭력이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말만 커팅해서 표출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속아서는 안된다.

분노한다면 하수 중의 하수이다. 마음에 늘 섭섭한 감정을 달고 있다면 수행이 덜 된 사람이다. 수행이 된 사람이라면 스폰지처럼 흡수해야 할 것이다. 자비의 마음에 대적할 자 없다. 자비의 마음은 모두 흡수해 버린다. 스폰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2021-03-0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