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일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담마다사 이병욱 2021. 3. 9. 09:16

일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

 

 

손맛이 짜릿하다. 이게 얼마만인가? 이른 아침부터 일터에 나와 모니터를 바라 보고 있다. 클릭하는 손에 힘이 넘쳐 난다. 오랜만에 큰 일감을 맡았다. 거의 반달 먹고 살 만한 중작이다.

 

일이 없으면 초조하다. 처음 이삼일간은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일감이 없으면 슬슬 걱정된다. “왜 일이 없지?”라며 초조해 하는 것이다. 이럴 때 글을 쓴다. 일감이 없으면 글의 수는 늘어난다. 하루에 두 개도 좋고 세 개도 좋다.

 

어제 저녁 고객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받았다. 긴급으로 해달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무조건 오케이(OK)이다. 밤을 세워서라도 납기를 맞추어 주어야 한다. 고객감동을 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오랜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일을 하다가 잠시 멈추고 글을 쓰고 있다. 일인사업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직장이라면 어림도 없다.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한다는 예비군 구호가 있듯이,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자는 라우팅 도중에도 글을 쓴다. 의무적 글쓰기 때문이다.

 

 

일을 하면 마음이 차분하다. 왜 그럴까? 이것도 일종의 삼매에 들기 때문일 것이다. 대상에 집중하면 모두 삼매가 된다. 그러나 이것은 세속적 삼매 또는 세간적 삼매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일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잡념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 있어도 생각은 일어난다. 마음은 잠시도 가만 있지 않는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 마음이다. 마음을 내버려 두면 악하고 불건전한 마음이 되기 쉽다.

 

 

흔들리고 동요하고 지키기 어렵고

제어하기 어려운 마음을

지혜로운 사람은 바로잡는다.

마치 활제조공이 화살을 바로 잡듯.”(Dhp.33)

 

 

법구경 게송을 보면 마음은 제어하기 어렵다고 했다. 마음은 흔들리고 동요하기 때문에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왜 마음이 흔들릴까? 그것은 마음이 형상, , 냄새, 감촉, 사실()과 같은 대상과 관련하여 흔들리기 때문이다. 눈이나 귀 등으로 끊임없이 자극받기 때문에 흔들리기 쉽다.

 

또한 마음은 동요되기 쉬운 것이라고 했다. 마음은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아기가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하고 움직이는 것과 같다. 마음은 한 주제에 머물지 못하고 동요하는 것이다.

 

제어하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다. 한시도 가만 있지 않고 즐거운 대상을 찾는 것이 마음이다. 한 가지 대상에 마음을 멈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마치 남자는 여자를 찾고, 여자는 남자를 찾는 것과 같다.

 

마음은 내버려 두면 엉망이 된다. 마음은 본래 불선(不善)한 것으로 악하고 불건전한 것(akusala)’에 마음이 가게 되어 있다. 왜 그런가? 인간은 탐, , 치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오온에 집착된 상태로 태어났기 때문에 탐욕을 뿌리로 하는 마음, 분노를 뿌리로 하는 마음, 어리석음을 뿌리로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은 제어하지 않으면 항상 악하고 불건전한 대상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흔히 마음을 닦는다고 말한다. 이는 본래 마음이 청정한 것이기 때문에 거울에 묻은 얼룩을 닦아 내듯이 마음의 때를 닦아내야 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마음은 닦는 다기 보다는 제어하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이는 법구경 마음의 품(cittavagga)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부처님은 마치 활제조공이 화살을 바로 잡듯마음을 제어해야 한다고 했다.

 

법구경 찟따왁가에서는 마음의 본성에 대하여 여러 게송으로 표현되어 있다. 마음의 본성은 본래 불선한 것임을 말한다. 이는 원하는 곳에는 어디는 내려앉는 제어하기 어렵고 경망한 마음”(Dhp.35)이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마음은 항상 동요하고 움직이는 본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마음을 제어하기 힘들다. 끊임없이 즐거운 대상을 찾아 가는 것이 마음이다. 마음을 제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상에 묶어 두어야 한다. 그것이 명상이다.

 

마음을 대상에 묶어 두면 마음은 동요하지 않는다. 비로소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는다. 더구나 기쁨과 행복이 생겨난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마음을 대상에 묶어 둘 수 없다. 일상에서는 또 다시 즐거운 대상으로 마음이 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띠가 필요하다. 보는 즉시 알아차리는 것이다. 물론 듣는 즉시 알아차려야 하고 냄새 맡는 즉시 알아차려야 한다.

 

현자는 마음을 제어할 줄 안다. 이에 대하여 마치 활제조공이 화살을 바로 잡듯.”(Dhp.33)이라고 했다. 활제공은 화살을 만들 때 머리카락도 쏘아 맞출 수 있도록 조절한다.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현자는 본래 동요하고 움직이는 속성을 가지고 있는 마음을 다룬다. 어떻게 다루는가? 그것은 멈춤(samatha)과 통찰(vipassana)로 가능 한 것이다.

 

일을 잡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마치 뜨개질을 하면 뜨개질 삼매에 빠져 마음이 편한해지는 것과 같다. 일을 하는 것도 일종의 삼매이다. 그러나 멈춤과 통찰이라는 출세간적 삼매와는 다른 것이다. 번뇌가 있는 삼매이다. 일을 벗어나면 다시 마음은 동요하고 움직일 것이기 때문이다.

 

라우팅 작업을 하고 있다. 패턴형성 작업을 말한다. 업계에서는 PCB설계업에 대해서 아트워크(Artwork)라고 말한다. 예술작품을 만들듯이 설계작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일은 설계도 되고 디자인도 된다는 것이다. 어쩌면 디자인에 더 가까운 말인지 모른다. 그러나 한글로 표현할 때는 설계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트워크는 오로지 한 고객만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작품이 공유되지 않는 것이다. 작업을 하고 나면 고객사의 재산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은 다르다.

 

글은 공유가 가능하다.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오픈되기 때문에 공유가 되는 것이다. 돈이 되는 것은 공유되지 않지만 돈이 되지 않는 것은 공유가 되는 특징이 있다. 글이 그렇다.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듯이, 일인사업자는 설계 도중에 잠시 짬을 내서 글을 쓰고 있다. 직장인이라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자영업자의 특권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일이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일에서 해방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힘이 있는 한 일을 하고 싶다.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정신건강에도 좋다. 일을 잡고 있으면 잡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이순이 지난 나이에도 일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아직도 나는 현역이다.

 

 

2021-03-0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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