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미얀마 스님들에게 시위대열에 앞장서라고 하는데

담마다사 이병욱 2021. 4. 10. 16:27

미얀마 스님들에게 시위대열에 앞장서라고 하는데

한때 안티들이 있었다. 안티카페도 있었고 안티블로그도 있었다. 처음에는 우호적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스토커로 돌변했다. 아마 생각이 달랐던 것 같다.

같은 불교라고 해도 같은 불교가 아니다. 같은 불교인이라고 해도 이념이 서로 다르다. 근본 가르침을 드러낼수록 불편해 하는 것 같다. 그들은 진보적 이념을 표방할 때마다 노골적 불만을 드러냈다. 블로그에서 그랬다. 특히 동아시아불교로 무장되고 보수적 이념을 가진 불자들은 지속적이다.

요즘 미얀마 사태가 전세계적으로 핫이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미얀마 돕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미 1980년 광주에서 비극을 겪은 바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측은한 마음으로 지켜 보고 있다. 이런때 어떤 이들은 미얀마 스님들은 뭐하느냐는 식으로 말한다.

전세계적으로 민주화 운동 바람이 불면 종교인도 참여 했다. 그러나 적극적 참여는 하지 않는다. 이는 종교의 속성인지 모른다.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려 하는 것이 종교인 같다는 것이다. 만약 종교인이 세상사에 이것저것 관여 한다면 정치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이렇게 보았을 때 종교인의 현실참여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최근 1980년 5월 광주를 다룬 소설 '광주 아리랑'을 보았다. 소설에서 본 광주항쟁의 주역은 하층민들이었다. 그것도 스무살 안팍의 청년들이었다. 이른바 시민군이라 하여 총을 든 사람들은 용접공, 구두닦이, 재수생, 고교생, 넝마주이 등 밑바닥 인생이 많았다. 물론 대학생도 총을 들었고 지식인들도 총을 들었지만 비율로 보았을 때 소수였다. 그런데 여기에 성직자들은 거의 없었다는 것이다.

성직자들은 총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소설에서 어느 시민군은 성직자들이 가장 비겁하다고 했다. 그러나 성직자는 수도 적을 뿐만 아니라 사회에 대해 어느 정도 거리를 두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요즘 사람들은 미얀마 사태를 두고서 미얀마 승가가 앞장 서지 않는 것을 성토하고 있는 것 같다.

미얀마에서 매일 사상자가 나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럴때 미얀마 스님들이 모두 봉기한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미얀마의 정신적 지도자 스님들이 군부에 대해 반대 의사만 표현해도 분위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미얀마 스님들은 출가자들이다. 세속을 떠나 출세간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특히 팔정도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요즘 팔정도경을 암송하고 있다. 빠알리 팔정도경을 암송하면 마음이 새로워진다. 천수경이나 반야심경을 암송하는 것처럼 청정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팔정도경을 보면 정사유에 넥깜마쌍깝뽀, 아브야빠다쌍깝뽀, 아위힝사쌍깝뽀가 있다. 각각 욕망을 여읜 사유, 분노를 여읜 사유, 폭력을 여읜 사유라고 한다. 팔정도 수행을 하는 수행자들이 시위대열에 합류 하기가 쉽지 않은 대목임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다.

한국스님들이나 한국불자들이 미얀마 스님은 뭐하고 있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가혹한 것 같다. 종교인은 어느 정도 사회와 거리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적극 개입하지 않는다고 비난 하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을 포기하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승과 속이 둘이 아니기 때문에 자비의 마음으로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아시아불교와 초기불교와는 여러 모로 다르다. 한국불교에서는 세속오계라 하여 별도의 룰을 만들어 놓고 현실참여를 정당화 하고 있지만 부처님 근본 가르침에 충실한 테라와다불교에 까지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한국불교에 호국불교가 있다. 전쟁이 났을 때 스님들도 총칼들고 싸울 수 있음을 말한다. 실제로 사명대사는 칼을 들고 싸웠다. 승병들의 활약상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부처님 가르침 입장에서 본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는 높게 평가한다. 후세 사람들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는 승속이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있다. 차라리 승복을 벗고 싸웠으면 어땠을까에 대한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비구계를 반납하고 싸우는 것이다.

스님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그것은 계율대로 살겠다는 것을 말한다. 특히 비구계를 말한다. 이백수십가지 비구계를 지키는 삶을 산다면 총칼을 들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현실참여도 있을 수 없다. 그럼에도 미얀마 스님들에게 시위대열에 앞장서라고 말하는 것은 가혹하다. 그러기에 앞서 먼저 비구계를 반납해야 할 것이다.

미얀마 스님들에게 앞장서라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 한국의 호국불교를 생각하며 그런 말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팔정도 수행하는 스님이라면 곤란할 것이다. 비구계를 반납하고 일반인 신분이라면 앞장 설 수도 있을 것이다. 미얀마 스님들에게 시위대열에 동참하라는 말은 비구계를 반납하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고통받는 중생을 위해 자비의 마음을 낸다면 못할 것도 없을 것이다.

2021-04-1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