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거니 뒷서거니 대화파트너를 바꾸어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끝까지 망설였다. 일감이 있어서 일을 해야 하는데 산행모임에 참석해야 할지 망설였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가기로 했다. 수락산이 있는 당고개역으로 차를 몰았다.
등산 갈 준비는 했었다. 사무실 갈 때 등산복을 입고 베낭을 챙기고 스틱까지 준비했다. 마음 속으로는 가기로 한 것이다. 급한 작업을 하나 처리해놓고 잠시 여유를 가졌다. 가기로 했다. 일은 내일 아침 일찍부터 하면 되지만 모처럼 맞는 산행을 포기할 수 없었다.
외곽순환고속도로로 달렸다. 58키로 54분이 찍혔다. 오전 10시 이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이 보였다. 시간이 지나자 낯익은 얼굴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주먹인사를 했다. 이게 얼마만인가? 작년 6월 옥류동천 모임 이후 처음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일체 대면 모임이 금지된 이래 1년 4개월만에 해후한 것이다.
지금 시각은 10월 11일 11시 47분이다. 샤워를 끝낸 후 편안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 일과를 복기해 보고 있다. 왜 모임에 참여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모임에 참여하면 좋은 것이다. 모임에 참여해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모임 중에 최상의 모임은 산행모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근사한 곳에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좋고, 맛집에서 음식을 즐기는 모임도 좋지만 산행모임만 못하다. 왜 그런가? 이를 정적모임과 동적모임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정적모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소극적이고 수동적이기 쉽다. 반면 동적모임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이다. 이렇게 본다면 모든 운동모임은 동적모임에 해당된다. 축구모임도 그렇고 골프모임도 그렇다. 등산도 운동모임 범주에 들어간다고 본다.
공을 이용한 운동모임은 하지 않는다. 둥근 것을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큰 이유이다. 그러나 산행은 즐겨한다. 주말이나 쉬는 날에는 산에 가는 것을 의무적으로 하고자 한다. 산행이야말로 현대인에게 있어서 완전운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혼자서도 산행할 수 있다. 이왕이면 안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 좋다. 왜 그런가? 같은 길을 가는 동반자가 되기 때문이다. 목표도 같고 목적지도 같으면 도반이 된다. 산행을 함께 하면 도반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당고개역에서 별내로 이동했다. 수락산 동쪽에서 시작하여 서쪽으로 종주하고자 위함이다. 세 개의 폭포와 내원암, 수락산, 석림사, 노강서원에 이르는 코스이다. 장암역에서 해산하는 일정으로 잡았다.
목적지는 정해졌다. 목표를 향해 가기만 하면 된다. 정의평화불교연대 회원 9명이 출발했다. 오랜만에 만난 익숙한 얼굴들이다. 전쟁과도 같은 코로나 상황속에서도 산행을 감행한 것은 이제 더이상 코로나는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 2차 접종을 마친 것도 큰 이유가 된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산행했다. 그때마다 대화 파트너가 바뀌었다. 힘들게 올라가며 나눈 대화는 값진 것이다. 마치 같은 길을 가는 도반같은 느낌이 든다. 이는 커피점에서 단지 커피만 마시며 대화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같은 길을 가는 도반끼리 나누는 대화는 공감과 배려가 있다. 한마디로 정감있는 것이다. 이를 우정(友情)이라 해야 할 것이다.
우정에는 남녀노소 차별이 있을 수 없다. 빈부귀천의 차별도 있을 수 없다. 우정은 자애의 마음이다. 자애를 뜻하는 멧따(metta)는 본래 우정의 뜻이 강하다. 이는 사랑과는 다른 것이다.
우정은 부모와 자식과의 조건 없는 사랑과 다른 것이다. 우정은 신과 피조물과의 절대적인 사랑과도 다른 것이다. 우정은 길을 함께 가는 사람에게 있다. 길(道)과 경지(果)를 지향하는 불교는 기본적으로 우정의 종교이다.
수락산 정상에서 점심을 먹었다. 각자 싸온 것을 꺼내 한데 모아 놓고 나누어 먹는 것이다. 산행 아니면 볼 수 없는 것이다. 마치 탁발자들이 각자 탁발한 것을 한데 모아 나누어 먹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불교가 우정의 종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네 시간가량 산행했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파트너를 바꾸어 대화했다. 시국에 대한 것도 있었다. 경선불복종에 대한 것이 큰 이슈였다. 모두 한목소리를 냈다. 이런 면에 있어서는 같은 길을 가는 것이 분명하다.
수락산 정상에 서니 세상이 발 아래 내려다 보였다. 저 멀리 산이 첩첩이 쌓여 있다. 하늘에도 구름이 첩첩 쌓여 있다.
첩첩산에 첩첩구름은 끝이 없다. 첩첩산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첩첩운 저 너머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을 보면 한계를 느낀다.
한계는 경외감을 넘어 신비함을 자아낸다. 나의 지성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무한을 보았을 때 범접할 수 없는 자연의 숭고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네 시간에 걸친 산행이 끝났다. 이대로 집에 갈 수 없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식당에 들어 갔다. 한식탁에 여섯 명 이상 앉을 수 없다. 자연스럽게 주류파와 비주류파로 분리되었다. 나중에 합류한 사람까지 합하여 13명이 되었다.
오랫만에 만났다. 일부는 커피점으로 향했다. 식당보다는 분위기가 좋다. 도봉산 만장봉이 병풍처럼 바라보이는 2층 카페에 자리잡았다. 여전히 이슈는 경선에 대한 것이었다. 다들 우려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일이다.
도봉산 만장봉에 어둠이 깔렸다. 언제 보아도 장쾌한 도봉산이다. 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다. 그러나 하늘은 변화무쌍하다. 하늘이 만들어 내는 조화는 신비롭다. 검은 산의 실루엣을 보면 원초적 두려움을 보는 것 같다. 마치 "그가 과거에 저지른 악한 행위가 마치 커다란 산봉우리가 저녁무렵에 지상에 걸리고 매달라고 드리워지는 것"(M129)처럼.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지 관계를 맺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홀로 살고자 한다면 위험하다. 자신만의 생각에 빠질 수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집을 떠나는 것이다.
집을 나서서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을 만나서 우정을 쌓아야 한다. 함께 같은 길을 가는 도반을 만들어야 한다. 산행보다 좋은 것이 없다.
2021-10-11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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