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니까야모임

눈밝은 사람이라면 이런 기회를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1. 6. 07:44

눈밝은 사람이라면 이런 기회를


지금은 새벽 세 시대이다. 가장 좋아하는 시간대이다. 온전한 내시간이다. 아침 여섯 시까지는 진정한 내세상이다. 이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까?

새벽에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흙탕물이 가라앉으면 바닥의 자갈 등이 보이듯, 마음에 걸림이 없어서 좋은 생각이 샘솟는 것 같다. 올라온 생각, 흘러간 생각을 어떻게 해야 할까? 구슬도 꿰어야 보배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엄지로 붙잡고자 한다.

오늘 새벽에는 니까야모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금요모임이라고 한다. 매달 둘째주와 넷째주 금요일에 공부모임을 갖기 때문이다. 니까야를 합송하고, 설명을 듣고, 토론하는 모임이다. 2017 2월 부터 정식으로 시작되었으니 이제 5년 되었다.

매달 두 번 있는 모임에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고 있다. 참석하고 나면 반드시 후기를 작성한다. 마치 복습하는 것 같다. 들었던 것을 빠짐없이 노트하는데 노트한 것을 참고로 하여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쓸 때는 수많은 경을 참고한다. 각주를 따라가다 보면 이것 저것 붙어서 글이 길어진다. 어제도 그랬다.

 


여행을 하면 오감이 즐겁다. 그런데 더 즐거운 것은 후기를 작성할 때이다. 여행지에서 보고 들은 것과 사진 찍은 것을 자료로 하여 후기 쓸 때 한번 더 간 것 같다. 그래서 여행은 가기 전의 설레임, 여행지에서 오감으로 느끼는 즐거움, 그리고 다녀온 후에 후기를 작성하는 회상의 즐거움이 있다. 세가지 즐거움이다. 금요니까야공부모임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공부모임을 돌이켜 본다. 처음 모임에 참여했을 때는 2016년 광화문촛불이 한창이었을 때이다. 전재성 선생 아파트 거실에서 모임이 있었다. 다음해 2017 2월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서고겸 사무실에서 도현스님과 수행자들이 참여하여 지금까지 모임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5년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왕래했다. 그러나 빠짐없이 나오는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모임은 사람 머리수와 관계없이 오후 7시가 되면 가차없이 시작된다. "나모땃사 바가바또"로 시작되는 예불문과 빠알리 삼귀의와 오계, 그리고 십분간 입정순으로 의식을 치룬다. 이후 독송과 설명, 토론이 이어진다.

나는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어디서도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담마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을 통해서 접하기도 하지만 전재성 선생에게서 듣는 것이 더 크다. 그래서 말한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자 기록해 둔다. 지난 5년동안 기록한 노트는 수십권이다.

기록한 것을 바탕으로 후기를 작성한다. 경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비교적 길다. 그리고 꽤 학술적이다. 빠알리 원문을 분석해 가며 쓰기도 한다. 긴 글을 한데 모으면 책이 된다. 실제로 책을 낸 적이 있다. 2017년과 2018년 글을 모아 '원음향기 가득한 서고의 저녁'이라는 타이틀로 책을 만들었다. 문구점에 소량 인쇄와 제본 의뢰하여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두번째 책을 만들고자 한다.

요즘 책 만드는 것이 일이 되었다. 과거 써 놓은 글을 시기별로 카테고리별로 묶어서 책의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목차를 만들고 서문을 써서 책처럼 보이게 한다. 동네 복사집에다 인쇄와 제본 의뢰하여 딱 두 권만 만든다. 한권은 사무실에 보관하고 또 한권은 집에 보관한다. 어제 세 종류 여섯 권을 찾아왔다. 35, 36, 37번째 책이다.

이제까지 37번째 책을 만들었다. 앞으로도 계속 만들 것이다. 이런 추세로 가면 조만간 100권이 될 것이다. 지금도 매일 장문의 글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책 만들기는 언제 끝날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원동력은 어디서 나올까? 그것은 초기불교에 있다. 니까야와 아비담마, 청정도론, 사야도법문집을 참조하여 글을 쓰기 때문이다.

매일 의무적 글쓰기 하고 있다. 담마를 근거로한 글쓰기를 말한다. 글을 쓸 때 마다 느끼는 것은 가르침의 바다는 넓고도 깊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체계적이고 정교하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이런 가르침을 접하고 있는 것은 행운이다. 몰랐던 사실을 알았을 때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 같다. 마치 새로운 하늘과 땅이 열리는 것 같다. 우물밖에 나온 것 같다. 어제 후기 작성할 때도 그랬다. 다음과 같은 게송은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
세상 만물이 감각적 욕망이 아니라
의도된 탐욕이 감각적 욕망이네."(S1.34)

이 게송으로 인하여 고민이 풀렸다.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였던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지만 경전에서 확인해 주고 있다. 경전적 근거가 있는 것이다.

상대방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나의 마음이 오염되어 있기 때문에 번뇌가 생겨나는 것이다.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혐오하는 것도 나의 마음이 번뇌로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죄가 없다. 모든 번뇌는 접촉이 있어서 발생된다. 그래서 "접촉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원인이다.”(A6.63)라고 했다.

니까야와 주석서를 접하면 놀라운 가르침으로 가득하다. 여기에다 빠알리삼장에 통달한 전재성 선생의 설명까지 들으면 이 시대의 행운아라 아니라 할 수 없다.

요즘 이미우이 음악씨디를 인연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다. 이런 것도 나눔의 실천일 것이다. 좀더 확대하면 무소유의 실천이 된다. 왜 그런가? 법정스님은 "나눔은 무소유의 실천입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담마도 나눌 수 없을까?

이미우이 음악을 혼자 듣기 아까워 나누었다. 담마도 나누고 싶다. 어떻게 가능할까? 금요모임에 나오면 된다. 담마를 함께 독송하고, 담마에 대한 설명을 듣고, 담마에 대해서 토론하는 것이다. 문은 열려 있다. 매달 둘째주와 넷째주 금요일 오후 7시에 모임에 나오면 된다. 장소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이다. 장소는 삼송테크노밸리 B 348호이다. 지하철 3호선 삼송역 근처에 있다.

코로나로 인하여 비대면 줌모임을 했다. 이제 위드코로나 시대가 되어서 대면모임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담마를 독송하고 담마를 듣고 담마를 토론하는 것도 좋지만 청정한 분위기가 더 좋다. 부처님의 원음향기 가득한 서고의 저녁이다. 그러나 행운을 잡는 사람은 극소수에 지니지 않는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니까야모임도 그렇다. 세상에 수많은 니까야공부모임이 있지만 저자직강과 같은 모임은 없다. 삼장을 꿰뚫어 알고 있는 전재성 선생의 설명을 듣는 것은 이시대 행운중의 행운이다. 전선생은 번역에 바쁘지만 일부러 시간내서 소통하고 있다. 담마를 나누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눈밝은 사람이라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


2021-11-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