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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권 담마의 거울 2012 V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1. 22. 11:57

39권 담마의 거울 2012 V

 

 

2012년은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때 쓴 담마에 대한 글을 책으로 엮는 작업하면서 서문을 쓰기 위해서 회상에 본다. 그때 나는 무엇을 했었을까?

 

한존재의 시기를 무엇을 기준으로 나누어야 할까? 학창시절이라면 초등학고,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로 나눌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의 경우 3년이기 때문에 3년간 일어났던 일이 기억날 것이다. 직장생활을 했다면 어느 회사를 다녔는지로 판가름할 수 있다.

 

내년에 국민연금 대상이 된다. 그에 앞서 조회를 해 보았다. 놀랍게도 직장이력이 있었다. 몇개나 될까? 한번이라도 월급을 받아먹은 회사까지 포함하면 무려 13개나 되었다. 이렇게 많이 옮겨 다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치 나의 업경대를 보는 것 같았다.

 

이런 말이 있다. 죽으면 과거에 지은 행위가 마치 거울로 비추어 보듯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이른바 업경대이다. 업에는 공덕이 되는 행위도 있을 것이고 악덕이 되는 행위도 있을 것이다. 모두 자신이 지은 것으로서 업이 자신의 주인이고, 자신은 업은 상속자인 것이다. 나의 업경대는 어떤 것일까?

 

진실되지 않은 자의 업은 불선업이기 쉽다. 설령 공덕이 되는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과연 나는 얼마나 남들에게 얼마나 기쁨이 되고 얼마나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아왔을까?

 

대부분 각감적인 삶을 산다. 이는 이기적은 삶을 사는 것과 같다. 더구나 수명이 길수록 불선업은 더 높이 쌓여 갈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오래 산다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은 아니다.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공덕짓기 위해서이다. 오래 살면 살수록 악덕만 짓게 된다면 장수하는 것이 죄악이 된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으로 가득한 자가 오래 살았을 때 그 모습은 보기가 매우 흉할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나 선업 공덕을 쌓고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 , 치를 소멸하는 삶을 사는 자는 오래 살면 살수록 더욱 더 공덕은 많아질 것이다. 남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삶을 산 자는 보기에도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

 

2012년에 글을 가장 많이 썼던 것 같다. 쓴 글은 고스란히 블로그에 남아 있다. 요즘 블로그는 살아 있는 전자책 같은 것이다. 검색창에 키워드만 입력하면 10년전에 쓴 글이라도 소환할 수 있다. 오자나 탈자 등 오류가 있어도 수정이 가능하다. 이렇게 본다면 별도로 책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블로그 자체가 책이기 때문이다.

 

블로그가 전자책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가시화하고자 한다. 종이책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행위는 지난 시절 업경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때 당시 쓴 글이 고스란히 결과로 남은 것이다. 이를 현대판 업경대라 할 것이다.

 

이번에 39번째 책을 만들었다. 책 제목을 ‘39 담마의 거울 2012 V’로 했다. 2012년 담마에 대한 다섯 번째 책이라는 뜻이다. 기간은 2012815일부터 2012927일까지 한달 보름가량 기록에 대한 것이다. 목차를 만들어 보니 모두 22개이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2. 양극단은 서로 통한다

3. 사띠(sati)의 정확한 의미는? 마음챙김과 새김

4. 세상에 대하여 눈곱 만큼도 미련이 없을 때

5. 한국불교가 조교(祖敎)인 이유

6. 법구경에서 본 삼법인

7. 큰 강물은 소리 없이 흐른다

8. 초기불교에 가장 가까운 수행법이 간화선이라고?

9. 쏘아져 버려진 화살처럼

10. 제관(祭官)으로서의 성직자

11. 팔정도 정형구에 대한 번역어 비교

12. 따뜨라 따뜨라 아빈난디니, 여기저기서 즐길거리를

13. 빠알리원전과 주석적 번역

14. 현실탈출을 꿈꾸는 도시인의 귀의처는

15. 바위도 고통을 느낄까? 일체개고와 아라한의 깨달음

16. 부처님께 안식처를 얻었네

17. 인터넷폐인과 결정론자

18. 선사들의 불이(不二)법문, 왜 불일(不一)은 말하지 않는가

19. 두번째 화살은 맞지 않는다

20. 감각적 욕망과 선정삼매의 즐거움

21. 하늘에서 금비가 내려도

22. 꾸살라와 아꾸살라, 그리고 뿐냐와 빠빠는 어떻게 다를까?

39권 담마의 거울 2012 V.pdf
2.56MB

담마에 대한 글로서 불교 교학과 교리에 대한 것이 많다. 수행에 대한 것은 거의 없다. 그때 당시 오로지 초기경전과 아비담마, 청정도론을 보고서 글만 썼기 때문이다.

 

목차를 보면 세 번째 글에 사띠(sati)의 정확한 의미는? 마음챙김과 새김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사띠논쟁과 관련된 것이다. 수행을 제대로 해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교계신문을 보고서 견해를 블로그에 써 본 것이다.

 

사띠에 대한 것은 그때 당시나 지금이나 뜨거운 이슈에 해당된다. 이는 한국불교에서 사띠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얀마에서 불교를 배워온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사띠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불교에 대하여 좀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사띠에 대하여 한마디씩 하기도 했다. 그때 당시 사띠 논쟁에 대한 것을 교계신문에서 보고서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이다.

 

2012년 당시 한국불교를 비판했다. 이는 비판에서 자유로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종단에 소속되어서 녹을 받아먹고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지위가 있어서 불이익 받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어서 마음대로 썼다. 그래서 ‘5. 한국불교가 조교(祖敎)인 이유’ ‘8. 초기불교에 가장 가까운 수행법이 간화선이라고?’ ‘18. 선사들의 불이(不二)법문, 왜 불일(不一)은 말하지 않는가라는 글을 썼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다. 모르면 용감하다는 말도 된다. 불교에 대하여 잘 모를 때 경전과 논서, 주석서만 보고서 한국불교를 비판했다. 만약 자신의 견해가 담겨 있다면 구업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경전에 근거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18번 글에서와 같이 한국불교를 불교가 아닌 조교(祖敎)라고 했다. 조사의 불교라는 뜻이다.

 

목차에서 22번 글이 있다. 제목을 꾸살라와 아꾸살라, 그리고 뿐냐와 빠빠는 어떻게 다를까?’라고 했다. 이런 제목은 생소한 것이다. 빠알리어 문자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 대하여 어떤 이는 문자쓴다고 말할지 모른다.

 

문자로서 도발해 보고 싶었다. 한국불교에서 한문을 쓰면 문자쓴다고 하는데 빠알리어를 써서 문자를 써서 충격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직접적인 충격을 주지 못한다. 블로그에 글을 올려 놓으면 누군가 검색해서 볼 것이기 때문에간적접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는 글로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도 생각했다.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검색만 하면 글이 걸린다. 글이 많이 깔려 있으면 있을수록 걸릴 확률이 높다. 그래서 가능하면 경전에 근거한 많은 글을 올렸다.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올린 측면도 없지 않아 있다. 하루 일과 중에 오전은 글쓰기로 다 보냈기 때문이다. 이번에 책으로 만든 ‘39 담마의 거울 2012 V’도 이에 해당된다.

 

22번 글은 불교TV를 보고 쓴 글이다. 불교TV사이트에 들어가서 스리랑카 아상가 교수가 강연한 것을 일일이 녹취하여 글로서 완성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 날 여러 시간이 소비되었다. 그러나 나름대로 사명감을 가지고 임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요즘 종종 블로그 댓글을 받는다. 담마에 대한 글을 책으로 엮은 것을 보내 달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 pdf자료를 메일로 발송해 준다. 특히 2009년에 썼던 담마의 거울 2009’이 가장 많다. 어느 정도로 많을까? 세어 보지 않았지만 거의 백명 이상 되는 것 같다. 불교 초심자도 있지만 불교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는 학인도 많은 것 같다. 이런 요청이 많아서 해당 포스팅 글에 pdf파일을 올려 놓았다. 누구든지 가져 가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앞으로 책 제작과 관련된 포스팅에는 pdf파일을 올려 놓고자 한다. 보관용 책은 두 권 만들지만 pdf파일로 된 것은 누구나 다운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놓는 것이다. 이렇게 해 놓으면 누군가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행위를 하면 반드시 과보가 뒤따른다. 신체적으로 언어적으로 정신적으로 행위를 하면 반드시 과보가 따르기 때문에 선업이 되는 행위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업이 된다. 신구의 삼업 중에서 구업에 해당될 것이다.

 

글쓰는 것을 필업이라고 말한다. 글쓰기는 언어적 행위에 해당되기 때문에 구업의 범주에 속한다, 그러고 보니 구업을 많이 지었다. 그 동안 쓴 수천개의 글이 모두 구업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매일 구업짓고 있다. 과거에도 구업 지었고 미래에도 구업 지을 것이다. 그러나 안심한다. 자신의 견해를 밝히면 구업이 되지만 경전을 근거로 하면 면책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구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설령 선업이 되는 행위라도 업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매일 필업 짓고 있다. 나는 매일매일 구업 짓고 있는 것이다.

 

 

2021-11-2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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