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유목민보다 아날로그 정주자가 더
정평불교포럼, 정의평화불교연대포럼을 말한다. 제6회 정평불교포럼이 어제 11월 25일 저녁 6시 반부터 9시까지 동산불교회관에서 열렸다. 신대승네트워크와 공동주관한 것이다.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어떻게 가야할까? 가장 좋은 것은 전철과 지하철을 활용하는 것이다. 약속장소 종로2가역 부근까지는 1시간이면 간다. 기다리는 시간과 걷는 시간을 합하면 1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되돌아 올 때가 힘들다. 지친몸을 이끌고 한시간 동안 서 있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서 차를 가져 가기로 했다.
예상대로 막혔다. 안양에서 종묘주차장까지 2시간 걸렸다. 주차장에서 행사장까지 20분 가량 걸렸다. 7시 가까이 되어서 도착했으므로 지각했다. 그러나 귀가길은 편했다. 한시간 이내로 쾌속질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맛에 차를 끌고 간 것이다.
차를 가져간 또하나 결정적 이유는 통행료와 주차료가 싸기 때문이다. 999cc 경차에 대한 혜택을 말한다. 실제로 종묘주차장 4시간 주차에 반값 할인되어 8천여원 들었다. 우면산터널도 1250원으로 반값 할인 되었다.
정평포럼이 6회째이다. 일년에 한번 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작년과 올해 합하여 처음 열린 것이다. 그것도 대면모임이다.
포럼의 주제는 '디지털시대의 불교'이다. 모두 세 명의 발제자가 있었다. 이도흠 선생의 '디지털사회의 빛과 그림자', 박병기 선생의 '디지털시대의 시민역량과 불교윤리', 박수호 선생의 '사이버 폭력의 통제방안과 불교의 대안' 순으로 발표가 있었다. 종합토론 시간에서는 신대승네트워크의 박재현 소장이 '디지털 시대의 고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라는 주제로 발표가 있었다.
포럼의 발제를 보면 공통적으로 디지털이라는 문구가 들어간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또 하나의 세상이 있음을 말한다. 이를 디지털세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세상은 오래 전부터 구현되어 오고 있었다. 온라인이라는 말이 최초일 것이다. 은행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본다. 돈이 전산처리 되는 것을 말한다. 이후 온라인이라는 말은 가상공간의 대명사가 되었다.
온라인이 있으면 오프라인이 있기 마련이다. 마치 연기송에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라는 말과 같다. 그런데 요즘에는 온라인이 더욱더 강화되어서 4차산업혁명과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4차산업이란 무엇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4차산업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젊은 계층의 사람들이나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전문가들은 4차산업이 유토피아가 될 것인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예측하고 있다.
아직도 4차산업에 대해 실감하지 못한다. 4차산업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는다. 2017년 정평포럼때 처음 제대로 접했다. 그때 당시 이도흠 선생이 4차산업혁명에 대해 강연 했는데 이에 대하여 '미래세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물질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2017-10-27)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디지털세상은 4차산업혁명과 거의 동의어가 되었다. 그런데 미래는 밝지 않다는 것이다. 희망보다는 우려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번 포럼에서도 이도흠 선생은 디지털세상의 미래에 대해서 우려했다.
미래 디지털세상에 대한 영화를 여러편 보았다. TV의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본 것이다. 그 중에서 영화 '트렌센던스(Transcendence, 2014년)'를 보면 4차산업혁명의 어두운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에이아이(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을 때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4차산업과 자본이 결합되었을 때 피도 눈물도 없는 세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것이 하이(High)와 로(Low)로 이루어진 제로와 1의 디지털세상에서 인간이 할 일은 별로 없다. 이에 대하여 박재현 선생은 허드랫일이나 하는 존재로 전락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콘베이어 시스템에서 기계가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사람 손으로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럼은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여 발생되는 예상문제까지 짚어 내는 것이 포럼을 개최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도흠 선생은 연기론적 인식에 따른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해서 말했다. 어떤 것인가? 배포된 자료의 말미에서 "아날로그 시대의 지사적 인간형과 디지털 시대의 리좀적 인간의 노마드적 삶을 종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노마드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디지털노마드가 대표적이다. 이는 다름아닌 디지털세상을 말한다. 디지털세상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유목민과 같다는 것이다. 특히 컴퓨터와 친숙한 젊은 세대에게 디지털노마드라는 칭호를 붙여 주는 것 같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실상 디지털노마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인터넷과 정보통신기기의 영향이 크다. 그 결과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에스엔에스(SNS)가 대표적이다.
요즘 거의 페이스북과 함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틈만 나면 열어 본다. 올린 글에 대한 반응도 보고 남의 글도 훔쳐 본다. 때에 따라 실시간 소통도 한다.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 페이스북친구와도 실시간 소통을 한다. 젊은 사람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도 이미 디지털유목민이 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다. 포럼의 발제자들은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했다. 대체로 불교의 연기적 사고방식에 대한 것이다. 그런 연기는 어떤 것일까?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연기법을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라는 연기송에 익숙하다. 이는 상호의존적 연기와 조건발생적 연기를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은 연기적 관계에 있게 된다.
가상공간은 현실공간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메트릭스와 같은 영화에서는 가상공간만을 말하고 있지만 현실공간 없는 디지털공간을 상상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현실세상과 디지털세상은 상호의존적이다.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디지털기술과 자본의 결합으로 차가운 에이아이(AI)의 세상이 된다면 스스로 재앙을 초래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차가운 미래 보다 정감있는 현실에 살고자 한다. 그래서일까 포럼도 줌모임으로 하지 않고 대면모임으로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포럼이 끝나고 차를 마셨다. 커피점에 다섯 명 모였다. 비록 한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디지털공간에서 백번, 천번 만나는 것 보다 낫다. 그것은 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디지털 유목민보다 아날로그 정주자가 더 좋다.
2021-11-26
담마다사 이병욱
정평불교포럼, 정의평화불교연대포럼을 말한다. 제6회 정평불교포럼이 어제 11월 25일 저녁 6시 반부터 9시까지 동산불교회관에서 열렸다. 신대승네트워크와 공동주관한 것이다.
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어떻게 가야할까? 가장 좋은 것은 전철과 지하철을 활용하는 것이다. 약속장소 종로2가역 부근까지는 1시간이면 간다. 기다리는 시간과 걷는 시간을 합하면 1시간 반이면 충분하다. 그러나 되돌아 올 때가 힘들다. 지친몸을 이끌고 한시간 동안 서 있기가 힘든 것이다. 그래서 차를 가져 가기로 했다.
예상대로 막혔다. 안양에서 종묘주차장까지 2시간 걸렸다. 주차장에서 행사장까지 20분 가량 걸렸다. 7시 가까이 되어서 도착했으므로 지각했다. 그러나 귀가길은 편했다. 한시간 이내로 쾌속질주 했기 때문이다. 이런 맛에 차를 끌고 간 것이다.
차를 가져간 또하나 결정적 이유는 통행료와 주차료가 싸기 때문이다. 999cc 경차에 대한 혜택을 말한다. 실제로 종묘주차장 4시간 주차에 반값 할인되어 8천여원 들었다. 우면산터널도 1250원으로 반값 할인 되었다.
정평포럼이 6회째이다. 일년에 한번 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는데 코로나로 인하여 작년과 올해 합하여 처음 열린 것이다. 그것도 대면모임이다.
포럼의 주제는 '디지털시대의 불교'이다. 모두 세 명의 발제자가 있었다. 이도흠 선생의 '디지털사회의 빛과 그림자', 박병기 선생의 '디지털시대의 시민역량과 불교윤리', 박수호 선생의 '사이버 폭력의 통제방안과 불교의 대안' 순으로 발표가 있었다. 종합토론 시간에서는 신대승네트워크의 박재현 소장이 '디지털 시대의 고를 해결하기 위한 과제'라는 주제로 발표가 있었다.
포럼의 발제를 보면 공통적으로 디지털이라는 문구가 들어간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또 하나의 세상이 있음을 말한다. 이를 디지털세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디지털세상은 오래 전부터 구현되어 오고 있었다. 온라인이라는 말이 최초일 것이다. 은행에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본다. 돈이 전산처리 되는 것을 말한다. 이후 온라인이라는 말은 가상공간의 대명사가 되었다.
온라인이 있으면 오프라인이 있기 마련이다. 마치 연기송에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라는 말과 같다. 그런데 요즘에는 온라인이 더욱더 강화되어서 4차산업혁명과 거의 동의어처럼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4차산업이란 무엇일까? 대부분 사람들은 4차산업이 무엇인지 모르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젊은 계층의 사람들이나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전문가들은 4차산업이 유토피아가 될 것인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지에 대해서도 예측하고 있다.
아직도 4차산업에 대해 실감하지 못한다. 4차산업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오래 되지 않는다. 2017년 정평포럼때 처음 제대로 접했다. 그때 당시 이도흠 선생이 4차산업혁명에 대해 강연 했는데 이에 대하여 '미래세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물질을 기반으로 한 4차 산업혁명'(2017-10-27)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기록을 남긴 바 있다.
디지털세상은 4차산업혁명과 거의 동의어가 되었다. 그런데 미래는 밝지 않다는 것이다. 희망보다는 우려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번 포럼에서도 이도흠 선생은 디지털세상의 미래에 대해서 우려했다.
미래 디지털세상에 대한 영화를 여러편 보았다. TV의 케이블 영화채널에서 본 것이다. 그 중에서 영화 '트렌센던스(Transcendence, 2014년)'를 보면 4차산업혁명의 어두운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에이아이(AI)가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을 때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4차산업과 자본이 결합되었을 때 피도 눈물도 없는 세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모든 것이 하이(High)와 로(Low)로 이루어진 제로와 1의 디지털세상에서 인간이 할 일은 별로 없다. 이에 대하여 박재현 선생은 허드랫일이나 하는 존재로 전락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런 일은 이미 벌어지고 있다. 콘베이어 시스템에서 기계가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사람 손으로 해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럼은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다. 미래를 예측하여 발생되는 예상문제까지 짚어 내는 것이 포럼을 개최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도흠 선생은 연기론적 인식에 따른 패러다임의 전환에 대해서 말했다. 어떤 것인가? 배포된 자료의 말미에서 "아날로그 시대의 지사적 인간형과 디지털 시대의 리좀적 인간의 노마드적 삶을 종합하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노마드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디지털노마드가 대표적이다. 이는 다름아닌 디지털세상을 말한다. 디지털세상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유목민과 같다는 것이다. 특히 컴퓨터와 친숙한 젊은 세대에게 디지털노마드라는 칭호를 붙여 주는 것 같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실상 디지털노마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인터넷과 정보통신기기의 영향이 크다. 그 결과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에스엔에스(SNS)가 대표적이다.
요즘 거의 페이스북과 함께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틈만 나면 열어 본다. 올린 글에 대한 반응도 보고 남의 글도 훔쳐 본다. 때에 따라 실시간 소통도 한다. 멀리 떨어진 뉴질랜드 페이스북친구와도 실시간 소통을 한다. 젊은 사람 뿐만 아니라 기성세대도 이미 디지털유목민이 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다. 포럼의 발제자들은 나름대로 대안을 제시했다. 대체로 불교의 연기적 사고방식에 대한 것이다. 그런 연기는 어떤 것일까?
불교인이라면 누구나 연기법을 알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난다."라는 연기송에 익숙하다. 이는 상호의존적 연기와 조건발생적 연기를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현실공간과 가상공간은 연기적 관계에 있게 된다.
가상공간은 현실공간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메트릭스와 같은 영화에서는 가상공간만을 말하고 있지만 현실공간 없는 디지털공간을 상상할 수 없다. 이렇게 본다면 현실세상과 디지털세상은 상호의존적이다.
앞으로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디지털기술과 자본의 결합으로 차가운 에이아이(AI)의 세상이 된다면 스스로 재앙을 초래하는 것과 같다. 사람들은 차가운 미래 보다 정감있는 현실에 살고자 한다. 그래서일까 포럼도 줌모임으로 하지 않고 대면모임으로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포럼이 끝나고 차를 마셨다. 커피점에 다섯 명 모였다. 비록 한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았지만 디지털공간에서 백번, 천번 만나는 것 보다 낫다. 그것은 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디지털 유목민보다 아날로그 정주자가 더 좋다.
2021-11-26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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