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암송

빠알리 경을 외우다 보니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2. 2. 08:37

빠알리 경을 외우다 보니

하루일과를 암송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새벽에 일어나 멍하니 있는 것 보다 어제 외운 구절을 상기하는 것이다. 신기하게도 그 많은 내용이 다 떠오른다. 아무리 생소한 빠알리 단어도 새벽이 되면 사진 찍은 것처럼 선명하다.

요즘 십이연기분석경(S12.2)을 외우고 있다. 먼저 빠알리어를 우리말로 음역해 놓았다. 모두 1,543자가 되었다. 십이연기 고리를 분석해 놓았기 때문에 긴 것이다.

장단음은 무시했다. 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머리에 저장하기 위해서는 장음과 단음을 구별할 여유가 없다. 그러나 로마자 글자는 사진 찍듯이 떠 올려야 한다. 이런 것이다. 백발이 됨을 뜻하는 '빨릿짱'에 대하여 로마자 'pāliccaṃ'을 떠올리는 것이다. 생소한 단어이기 때문에 영어해석 'greyness of hair'도 동시에 떠 올려야 한다.

어떤 단어도 세 번에 걸쳐서 외우면 어느 정도 내것이 된다. 아침에 게송 하나를 외우면 점심 때 확인하고 또 저녁 때 확인하면 어느 정도 내것이 된다. 다음날 새벽 머리가 맑을 때 떠 올려 보면 올라온다. 입으로 뜻을 새기면서 천천히 암송하면 확실히 내것이 된다.

현재 자라(늙음)까지 외웠다. 늙음에 대한 게송은 "자라 지라나따 칸딧짱 빨릿짱 왈릿따짜따 아유노 삼하니 인드리야낭 빠리빠꼬(jarā jīraṇatā khaṇḍiccaṃ pāliccaṃ valittacatā āyuno saṃhāni indriyānaṃ paripāko)"이다. 이 빠알리 게송은 " 늙고 노쇠하고 쇠약해지고 백발이 되고 주름살이 지고"의 뜻이다. 늙음에 대해서 상세하게 묘사한 것다.

경의 시작은 "에왕 메 수땅(Evaṃ me sutaṃ)"에서부터 시작된다. 한역경전에서는 "여시아문"이라고 한다.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뜻이다. 이렇게 시작되는데 배경설명이 꽤 길다. 이런 것도 모두 외워야 한다. 그런데 빠알리 경을 외우다 보니 빅카뵤(bhikkhavo)가 있고 빅카봬(bhikkhave)가 있다. 어떤 차이일까? 모두 "수행승들이여"라며 부처님이 부르는 말이다. 전자는 빠알리어 목적격 호칭이다. 후자는 마가다어 목적격 호칭이다. 왜 이런 차이가 있을까?

부처님은 민중어로 설법했다. 부처님 당시 마가다어가 중심 언어였다. 지방으로 갈수록 약간씩 변형되었다. 빠알리어는 인도 서북지방언어이다. 오늘날 산치대탑이 있는 웃자인 지역이다. 마가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호칭이 약간 변형되었다. 그래서 빅카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승된 경전에서는 마가다어 호칭 빅카봬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빠알리 문법에 맞지 않는 것이다. 왜 그렇게 사용해 왔을까? 일본학자의 추측에 따르면 부처님 당시를 그리워해서 "빅카봬"로 불렀을 것이라고 한다. 수행승을 부르는 호칭만큼은 마가다식으로 부른 것이다. 그래서일까 빠알리니까야 원문을 보면 "빅카뵤(bhikkhavo)"로 하지 않고 "빅카봬(bhikkhave)"로 호칭하고 있다. 이런 차이도 모두 외워야 한다.

십이연기분석경에서 빅카뵤(bhikkhavo)가 딱 한번 나온다. 이렇게 부르는 것이 문법적으로 맞다. 그러나 빠알리 경전에서는 어느 경이든지 비구를 부르는 호칭만큼은 마가다 문법대로 "빅카봬(bhikkhave)"라고 부른다. 그런데 놀랍게도 십이연기분석경 서문에 "빅카뵤(bhikkhavo)"가 딱 한번 나온다는 것이다. 편집상의 실수일까? 일관성이 결여된 것으로 보아 그런 것일수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것이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어 왔다는 강력한 증거일 것이다. 빠알리니까야는 의도적으로 편집되었거나 창작되지 않았음을 말한다.

요즘 매일 십이연기분석경을 외우고 있다. 이제 오분의 일 가량 외운 것 같다. 그래도 300자 가량 되기 때문에 꽤 긴 길이이다.

천자가 넘는 경을 어떻게 다 외울 수 있을까? 외우다 보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새로운 게송을 외울 때는 이전에 외웠던 것을 확인하고 들어 가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을 도입하면 어떤 긴 길이의 경도 외울 수 있다.

경을 외우는 것은 머리가 좋고 나쁨과 관련이 없다. 또한 기억력이 좋고 나쁨과도 관련이 없다. 하나 차이가 있다면 노력이다. 외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긴 길이의 경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2021-12-02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