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암송

내가 수천, 수만권 책이 부럽지 않은 것은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2. 7. 06:37

내가 수천, 수만권 책이 부럽지 않은 것은


이거 뭐에 쓰는 거에요?” 복사집 사장이 물어본다. “보관용입니다. 딱 두 권만 만듭니다.”라고 말했다.

사오일전 복사집에 인쇄와 제본을 의뢰했다. 이제 단골이 된 제일복사이다. 오늘 약속날자가 되어서 찾으러 갔다. 이번에는 네 종류 여덟 권이다. 2012년 담마에 대하여 글쓰기 한 것으로 4, 5, 6, 7번째 책이다. 누적으로 따졌을 때 38, 39, 40, 41번째 책이다.

 


책 네권은 평균 350페이지가량된다. 네 종류 여덟 권 제작 비용은 65천이다. 이전과 비교하면 반값이다. 이렇게 해서 책장에는 또다시 네 권이 추가되어 모두41권이 되었다. 책부자가 된 듯한 느낌이다.

유튜브를 보면 종종 서재장면을 본다. 줌모임 할 때도 종종 서재를 볼 수 있다. 벽면 한면은 책으로 가득하다. 어떤 방은 삼면이 책으로 꽉 차 있다. 갖가지 종류의 컬러풀한 책을 보면 풍요로워 보인다. 책이 많은 것을 자랑할 만도 하다.

 


집에 서재는 없다. 그 대신 일터에 서재가 있다. 서재에 니까야 경전을 빠짐없이 갖추어 놓았다. 그럼에도 일반 책은 감당되지 않는다. 책장을 늘리다 보니 이제 네 개가 되었다.

책을 많이 버렸다. 이사할 때마다 버렸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책이 있다. 아마 평생 갈 것 같다. 그러나 경전 만한 것은 없다. 경전만 있으면 다른 것은 없어도 될 것 같다. 율장대품에 다음과 같은 후렴시가 있다.


만약에 경전과 논서를
잃어버리더라도
계율을 망가뜨리지 않으면,
교계는 언제나 지속합니다.”(Vin.I.97)



경장과 논장이 없어도 율장만 있으면 교계가 지속된다고 했다. 율장이 경장보다 더 중요함을 말한다.

승가공동체가 존속하는 한 교계는 지속된다. 그런데 율장에는 계율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담마(경장)에 대한 것도 많다. 율장은 대품, 소품, 비구계, 비구니계, 부기 이렇게 다섯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

율장의 내용은 매우 방대하다. 경장과 논장이 없어도 교계가 지속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경장보다 율장이다. 왜 순서를 율, , 론으로 하는지 이유가 될 것 같다.

자작서가 점점 늘어 가고 있다. 조만간에 50권이 되고 100권이 될 것 같다. 이렇게 되었을 때 컬러풀한 수천, 수만의 서재가 부럽지 않다. 남이 쓴 책으로 가득한 것과 자신이 쓴 책으로 가득한 것은 질적으로 다르다.

 


책장에 책이 많은 것은 자랑할 만하다. 줌모임 할 때 서재에 책이 가득한 것을 보면 좋아 보인다. 더좋은 것은 경전이다. 경전이 시리즈별로 갖추어져 있다면 품격있게 보일 것 같다. 최상은 자신이 쓴 책으로 가득 채우는 것이다.

자작서가 이제 41권이 되었다. 한달에 3-4권 만들 것이기 때문에 세월이 갈수록 늘어날 것이다. 언젠가 책장에 내가 쓴 책으로 가득할 것이다.

돈 자랑하지 말라고 했다. 처자식 자랑도 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러나 예외인 것도 있다. 가치 있다고 여겨지는 것을 자랑하는 것은 용서가 될 것 같다. 그런 것들 중에 자신이 쓴책도 해당하지 않을까?

실학자 다산은 유배지에서 500권을 썼다고 한다. 강진유배지에서 19년동안 쓴 것이다. 다산은 왜 그렇게 많은 책을 썼을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의 하나는 자신의 억울함을 후세에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고 한다. 만약 글을 남기지 않는다면 역적이 될 것이 두려워 집필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요즘 두 가지 낙이 생겼다. 하나는 책 만드는 재미이고, 또 하나는 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전자는 쓰기에 대한 것이고 후자는 읊기에 대한 것이다. 두 가지는 일반사람이 쉽게 할 수 없는 것이다. 큰 결심해야 가능한 것이다.

글쓰기 보다 더 어려운 것은 경을 외우는 것이다. 외우는 것은 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에너지가 소모된다. 긴 길이의 경을 다 외웠을 때 기쁨은 글 보다 몇 배 더 강렬하다.

일을 하면서 글도 쓰고 경도 외운다. 글쓰기와 경외우기 두 가지를 하면 번뇌에서 해방되는 것 같다. 글쓰기에 집중하면 글쓰기 삼매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경을 외울 때 역시 번뇌에서 자유롭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만 같던 긴 길이의 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다 외웠을 때 득도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요즘 글쓰기와 경외우기를 병행하고 있다. 틈만 나면 쓰고 틈만 나면 암송한다. 글은 책이 되어서 나온다. 눈으로 가시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암송하는 것은 남에게 보여줄 수 없다. 그렇다면 글쓰기와 암송중에 어느 것이 더 수승할까?

글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쓸 수 있다. 그러나 의미와 형식을 갖춘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경이나 게송도 누구나 암송할 수 있다. 그러나 수행목적으로 암송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글쓰기보다 경을 암송하는 것이 더 수승한 것 같다.

암송하는 것은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 또한 암송하는 것은 일종의 사마타수행이라고 볼 수 있다. 경을 암송하는 것 자체가 수념이기 때문이다. 이를 법수념(dhammanussati)이라고 말할 수 있다.

돈 자랑, 집 자랑, 자동차 자랑, 처자식 자랑하면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글 자랑이나 책 자랑하면 용서가 되는 것 같다. 암송하는 것도 그럴 것이다. 왜 그럴까? 이익과 관련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도 이유가 된다. 때로 쓸데없는 짓처럼 보이기도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하는 것은 가치가 있고 즐거움도 있기 때문이다. 감각으로 즐기는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다.

먹는 즐거움은 누구나 누릴 수 있다. 술 마시는 즐거움도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쓰는 즐거움과 암송하는 즐거움은 아무나 할 수 없다. 대단한 결심을 해야 한다. 애써 노력해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아파트에 책장이 하나 있다. 오늘 자작서 네 권이 추가되었다. 책장에 내가 쓴 책으로 가득하다. 타인의 서재에 있는 수천, 수만권 책이 부럽지 않다.

누가 알아주든 말든 오늘도 내일도 쓸 뿐이다. 2006년 이후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다. 그 결과 엄청난 분량의 글이 쌓였다. 이를 모두 책의 형태로 만들어 놓고자 한다. 2의 다산이 되고자 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2021-12-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