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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게임에서 사디스트적 가학(加虐)을 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21. 12. 29. 08:19

대선게임에서 사디스트적 가학(加虐)을 보며


게임을 해 보지 않았다. 온라인 게임이 있지만 한번도 해 본적이 없다. 게임하는 것이 나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게임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있다.

삶에 주인공이 있듯이 게임에도 주인공이 있다. 주인공이 있으면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게임 속에서는 물리쳐야 할 대상이 있다. 그것은 적군이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이를 롤플레잉게임이라고 한다.

게임에서 한번 악마로 설정되면 끝장이다. 죽을 때까지 쫓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선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거에도 악마가 있다. 반대측을 악마로 설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치 게임하듯이 즐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도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야당 후보의 부인이 말했다. 자신을 악마화 하는 것 같다고. 후보부인은 무척 억울해하는 것 같다. 왜 자신만 못살게 구느냐는 식으로 말한다. 후보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요즘 일일망언과 일일단독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야당후보는 하루가 멀다하고 망언을 한다. 언론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야당후보 부인에 대하여 단독보도를 쏟아 낸다. 이 모두가 자질과 관련 있다. 평범하게 살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될 곳에 있기 때문이다.

대선에서는 양진영으로 나뉠 수밖에 없다. 후보의 자질이 부족해도 세력이 붙으면 고정지지층이 형성된다. 이때 부터 대선게임이 시작된다.

국민들은 대선게임을 즐긴다. 양진영으로 갈리어 상대후보가 몰락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악마화도 불사한다. 유튜브를 보면 알 수 있다. 나도 이런 악마화에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번 악마로 설정되면 파멸될 때까지 몰아 부친다. 유튜브에서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악마 때리기 하는 것을 보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마치 가학을 즐기는 것 같다.

"
분노를 끊어 편안히 잠자고
분노를 끊어 슬프지 않네.
참으로 하늘사람이여,
뿌리엔 독이 있지만
꼭지에 꿀이 있는 분노를
죽이는 것을 성자는 가상히 여기니,
그것을 죽이면 슬프지 않기 때문이네.” (S1.71)

상윳따니까야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이 게송은 분노의 가학성(加虐性)에 대한 것이다. 화를 내면 쾌감이 생기는데 그 쾌감 때문에 더 화를 내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탐, , 치를 삼독으로 보고 있다. 왜 독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자신을 해치기 때문이다. 분노하면 그 순간은 좋을지 모른다. 강한 쾌감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독이 생긴다. 그래서 게송에서는 "뿌리엔 독이 있지만 꼭지에 꿀이 있는 분노"(S1.71)라고 한 것이다.

분노는 양면성이 있다. 분노를 표출하면 쾌감을 느끼지만 또 한편으로 독이 발생되어서 자신을 해치게 된다. 그래서 분노로 인한 쾌감을 꼭지의 꿀과 같다고 하고, 또한 분노로 인한 악업을 뿌리의 독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분노는 가학성이 있다. 분노는 쾌감을 수반하기 때문에 분노하면 할수록 더욱더 강한 쾌감을 수반한다. 그래서 욕먹은 자를 욕하고, 맞은 자를 또 때리는 것이다. 이를 사디스트적 가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사디스트는 성적학대자이다. 상대를 성적으로 학대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변태성욕자를 말한다. 욕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매질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것도 일종의 사디스트적 성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치판은 가학적이다. 한번 적으로 규정되면 물리쳐야할 대상이 된다. 욕하면서 쾌감을 느끼고 매질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조국사태때 그런 현상을 보았다. 그때 언론에서는 하루 일일단독을 터뜨리면서 연일 때렸다.

요즘 선거철이다. 특히 대선 때 양진영에서는 사활을 걸고 싸운다. 총이나 칼을 들지 않았을 뿐이지 매일 크고 작은 전투가 벌어진다. 입으로 하는 전쟁이다. 입에 칼을 물고 서로가 서로를 찌르는 것이다.

선거판에서는 투표로 승패가 결정된다. 양진영에서는 죽기살기로 싸운다. 상대후보는 모두 악마가 된다. 악마는 물리쳐야 할 대상이다. 마치 롤플레잉 게임하듯이 상대후보가 죽을 때까지 찌르는 것이다.

선거철이 되면 모두 사디스트가 되는 것 같다. 악마화 된 후보를 욕하고 때린다. 유튜브를 보면 입에 칼을 물고 찌른다. 이를 사람들은 보고 즐긴다. 악마화 된 자가 무너지는 것을 보면 환호한다.

대선 때가 되면 사람들은 집단으로 대선게임에 참여한다. 상대방 후보는 죽여야 할 악마가 된다. 그래서 욕먹은 자를 욕하고 매맞은 자를 또 때린다. 이는 분노의 가학성이다.

어느 경우에서든지 분노는 파멸적으로 작용한다. 왜 그럴까? 분노는 불선법이기 때문이다. 불선업을 지으면 반드시 불선과보를 받는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
분노하는 자는 추악하고
고통스럽게 잠을 이룬다.
또한 이익을 취했지만
그는 불익을 얻는다네."(A7.64)

분노하는 자는 추악하다고 했다. 화 냈을 때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추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악마로 보일 것이다.

분노하면 인간관계가 파괴된다. 고객에게 화를 내면 다시는 주문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에게 화를 내면 다시는 만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분노는 파괴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분노에 따른 불이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그는 추악해진다.

2)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그는 괴롭게 잠을 잔다.

3)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그는 오랜 세월 불익과 고통으로 이끌어진다.

4)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정당한 재물을 얻더라도 왕들은 그것을 국고에 귀속시킨다.

5)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명성이 있더라도 그는 명성에서 멀어진다.

6)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친구와 동료와 친지와 친척을 지녔더라도 그들을 그를 멀리 회피한다.

7)
분노에 지배되었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악행을 하고, 언어적으로 악행을 하고, 정신적으로 악행을 하고,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이와 같은 일곱 가지는 앙굿따라니까야 '분노의 경'(A7.74)을 보고 요약한 것이다.

분노를 하면 불이익 받는다. 분노하는 순간 쾌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분노는 불선법이 되기 때문에 불선업이 된다. 불선업이 익으면 불선과보로 나타난다.

분노는 어느 경우에서나 파괴적으로 작용된다. 인간관계가 단절되고 재산도 잃게 된다. 분노가 극에 달하면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분노야말로 아버지를 살해하고, 분노야말로 어머니를 살해하고, 분노야말로 성직자를 살해하고, 분노는 또한 어리석은 범부를 살해하네."(A7.64)라고 했다.

요즘 분노의 시대이다. 대선판을 보면서 사람들은 상대방의 공격에 분노한다. 또 한편으로 상대방을 욕하면서 쾌감을 느낀다. 그런데 분노에는 쾌감과 악업이라는 양면성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분노에는 가학성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욕먹은 자를 욕하고 매맞은 자를 또 때리는 것이다. 나도 여기에 참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21-12-2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