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에 행선하기
새벽 2시, 너무 빠르다. 철철 넘치는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까? 다시 잠을 청할 수 있다. 옅은 잠으로 인하여 꿈만 꾸게 될 것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일단 행선을 했다.
행선은 배운대로 하면 된다. 6단계 행선이 효과적이다. 다리를 떼고, 들어서, 밀고, 내리고, 딛고, 누르는 여섯 단계를 반복하는 것이다. 이때 미는 동작이 중요하다. 보폭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미는 처음부터 끝까지 '면밀히' 관찰하라고 했다.
왜 면밀히 관찰하라고 했을까? 빠짐없이 보라는 것이다. 틈이 생겼을 때 망상이 치고 들어 올 수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면밀히 관찰하라는 것이다. 담마마마까 교재에서 본 것이다. 혜송스님이 편집한 것이다. 미얀마 담마마마까 국제선원 갔었을 때 얻은 것이다.
한마디 말이 크게 다가올 수 있다. 행선과 관련하여 밀 때 면밀히 관찰하라는 교재의 말이 크게 기억되었다. 그래서 발을 밀 때 "면밀히"라는 말을 의식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것이다.
행선은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이다. 마하시 전통에서는 한시간 하라고 한다. 좌선 한시간 하면 똑같이 행선도 한시간 하라는 것이다. 이처럼 행선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행선으로 얻는 이익이 많기 때문이다.
양곤에 있는 마하시센터에 가면 마하시 사야도의 유품을 볼 수 있다. 사야도가 머물렀던 여래 개의 방도 볼 수 있다. 침실도 있고 접견실도 있다. 그리고 명상실도 있다. 사야도가 사용했던 소품도 남아 있어서 마치 박물관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놀랍게도 경행대도 있었다는 것이다.
경행대는 가장 안쪽에 있다. 마치 복도처럼 된 경행대이다. 길이는 10미터 이상 되는 것 같다. 바닥은 목재로 되어 있다. 미끈한 것이 매우 단단한 것 같다. 맨발로 행선하면 짝짝 소리가 날 것 같다.
마하시 사야도의 침실에 행선대가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위대한 위빠사나 스승도 죽을 때까지 행선했던 것이다. 아무도 없을 때 자신만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행선에 몰입되었을 때 탐, 진, 치는 사라진다. 오로지 아는 마음만 있게 된다. 한발을 내딛을 때 우주를 디딛는 것과 같다. 행위와 아는 마음만 남게 되었을 때 망상이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면밀히 관찰하라고 했을 것이다.
방바닥에서 행선을 해 본다. 그래 보았자 4-5보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집중하면 잡념이 사라진다. 발을 뗄 때는 "쩍" 소리가 난다. 바위처럼 단단한 목재 위에서 행선한다면 맛이 날 것 같다. 맨발로 했을 때 그렇다는 것이다.
행선은 맨발로 해야 맛이 난다. 양말을 신은 상태에서 행선하면 맛이 나지 않는다. 왜 그럴까? 발바닥이 바닥에 밀착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상의 조건은 마루바닥에서 맨발로 행선하는 것이다. 이때 발을 떼면 "쩍" 하고 소리가 난다. 마치 끈적한 것이 떨어질 때 나는 소리같은 느낌이다. 이 맛에 행선한다.
발을 뗄 때는 먼저 뒤꿈치를 든다. 그 상태에서 떼면 '쩍" 소리가 난다. 밀착된 발이 떨어지는 소리이다. 다음으로 발을 들어 올려서 밀어야 하는데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 같다. 그 짧은 시간임에도 많이 걸리는 듯한 느낌인 것이다. 그것은 미는 시작부터 끝까지 면밀히 관찰하기 때문이다.
면밀히 관찰한다는 것은 사띠를 놓치지 않기 위한 것이다. 사띠를 놓치면 어떻게 될까? 그 짧은 찰나에 망상이 치고 들어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생각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피곤한 것이다.
딛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수평으로 딛으라고 했다. 밀 때도 수평으로 밀고, 내려서 딛을 때도 수평으로 딛는 것이다. 이는 발을 뗄 때 뒤꿈치부터 떼는 것과 대조적이다.
딛었으면 눌러야 한다. 수평으로 디딘 발바닥에 압력이 가해지는 것이다. 이는 다른 발의 동작과 관련이 있다. 다른 발을 떼려 할 때 디딘 발에 압력이 가해져서 누르게 되는 것이다.
발 뒤꿈치를 들어서 발을 뗀다. 뗀 발을 들어서 올린 다음 민다. 이때 미는 발을 처음부터 끝까지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이때 수평을 유지하여 밀어야 한다. 발을 디딜 때는 발바닥이 수평이 되게 한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으면 누른다. 이렇게 해서 6단계 행선이 진행된다.
행선을 하면 법의 성품을 볼 수 있다.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들어올림’에서 생겨난 세계들과 거기서 파생된 물질들이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은 ‘앞나아감’에 도달하지 않고 바로 그곳에서 소멸한다. 그러므로 무상한 것이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다.”(Vism.20.65)
6단계 행선에서 각단계마다 알아차림이 있다. 행위를 하면 아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음 단계가 되면 이전 단계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아는 마음도 동시에 사라진다.
의도에 따라 행위가 있게 되고 또한 아는 마음도 있게 된다. 그러나 다음 동작이 뒤따르면 행위와 아는 마음은 이전 것이 되어 버린다. 마치 손뼉을 치면 소리가 사라지고 아는 마음도 사라지는 것 같다. 이는 정신과 물질에 대한 것이다.
흔히 명색이라고 말한다. "내가 명색이 사장인데!"라고 말했을 때 그 명색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명색은 함께 일어났다가 함께 소멸한다고 했다. 이는 행선을 해보면 알 수 있다. 또 호흡관찰 해보면 알 수 있다.
"일출시의 이슬방울처럼, 물거품처럼, 물위에 그은 막대기의 흔적처럼, 송곳끝의 겨자씨처럼, 번개처럼, 잠시 지속하는 것으로 나타나거나, 환술, 아지랑이, 꿈, 선화륜, 신기루, 파초 등으로 견실하지 않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Vism.20.104)
2022-01-1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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