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을 소유한 자의 마음처럼
어떻게 해야 마음의 평정을 이룰 수 있을까? 요즘 대선철이다. 지지율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지지율이 높게 나오면 안도하고 낮게 나오면 불안해한다. 마치 주가에 일희일비하는 것 같다. 이렇게 살아서는 애가 타서 살 수 없다.
주식을 하지 않는다. 손절한지 오래 되었다. 16년 된 것 같다. 얼마남지 금액을 털어먹었을 때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전업투자한 것은 아니다. 취미로 했으나 모든 삶을 집어 삼킨 것이다.
결국 모두 털렸을 때 일어나게 되었다. 도박자가 돈을 다 잃었을 때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상황을 말한다. 불교공부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의 일이고 글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의 일이다.
주식을 가지고 있을 때 마음은 늘 그쪽에 가 있다. 주가등락에 일희일비 한다. 날씨가 그날의 기분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주가지수가 영향 주는 것이다. 이것을 소유의 괴로움이라 해야 할 것이다.
소유하는 순간 소유한 것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소유의 노예가 되기 쉽다. 주식만 그런 것이 아니다. 부동산도 그렇고 사람도 그렇다. 소유함으로 집착이 생기는 것이다.
소유에는 물질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신적인 것도 있다. 하나의 개념같은 것이다. 대선후보 지지율에 근심하고 걱정한다면 마음 한켠에 바램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근심하고 걱정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다면 걱정이 없어서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애만 탈뿐 다.
"지나간 일을 슬퍼하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 때문에 시든다네.
낫에 잘린 푸른 갈대처럼."(S1.10)
갈대가 낫에 잘리면 그 순간부터 시든다고 했다. 생명력 넘치는 푸른 잎이 갈색으로 변색되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근심과 걱정은 사람을 시들게 만든다. 왜 그럴까? 게송에서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는 어리석은 사람들은"이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마음이 미래에 가 있으면 근심과 걱정이 있을 수밖에 없다.
수행처에서는 마음을 늘 현재에 두라고 말한다. 마음이 과거에 가 있으면 후회가 일어나고 마음이 미래에 가 있으면 근심과 걱정이 일어난다고 말한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마음이 과거나 미래에 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근심걱정에서 자유롭고자 한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수행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그대는 홀로 있고자 숲으로 들어왔으나
그대의 마음은 밖으로 흔들리네.
사람으로서 사람에 대한 욕망을 제거하면.
탐욕을 떠나 즐겁게 되리라.”(S9.1)
상윳따니까야 '홀로 있기의 경'에 실려 있는 게송이다. 사람에 대한 욕망때문에 마음이 흔들린다고 했다. 마치 주식을 사 놓으면 그 순간부터 주식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이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 괴롭다. 마치 주식과 같은 존재가 된다.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부처님 가르침에 답이 있다.
"불만족을 버리고 새김을 확립하라.
그대를 새김을 확립한 참사람으로 기억하리라.
지옥의 티끌은 제거하기 아주 어려우니
감각적 욕망의 티끌로 자신을 타락시키지 말라."(S9.1)
새김을 확립하라고 했다. 초기경전 도처에서 볼 수 있는 말이다. 사띠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띠해야 할까?
사띠는 기억에 대한 것이다. 가르침에 대한 기억이다. 가르침을 늘 기억하고 있으면 사띠하는 것이 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마음이 항상 현재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지나간 일을 슬퍼하지 하지 않고
오지 않은 일에 애태우지 않으며
현재의 삶을 지켜 나가면
얼굴빛은 맑고 깨끗하리."(S1.10)
지나간 일을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후회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또한 오지 않는 것에 애태우지 말라고 했다. 또한 근심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마음이 항상 현재에 있어야 한다. 사띠가 유지됨을 말한다.
늘 가르침과 함께 살고 있다.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가르침을 기억한다. 이것도 사띠일 것이다. 그러나 쉽게 흔들린다. 지나간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에 휘말렸을 때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낫에 잘린 갈대처럼 시들어 가는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확고하게 사띠를 유지할 수 있을까?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체험이 뒷받침되야 한다. 몸으로 체득된 지혜는 꽤 오래 간다.
위빠사나 16단계 지혜가 있다. 범부가 올라갈 수 있는 최상의 지혜는 11단계의 지혜이다. 이를 '상카루뻭카냐나'라고 한다. 이는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라고 번역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음을 말한다.
현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오온에서 행에 해당되는 것이다. 상카라라고 말한다. 넓은 의미에서 수와 상도 행에 해당된다. 그런 행은 아비담마에 따르면 52가지가 있다.
탐욕도 행이고 상냄도 행이다. 시기도 행이고 질투도 행이다. 당연히 후회도 행에 해당된다. 모든 심리현상을 행이라고 한다. 행에는 불선법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탐, 무진과 같은 선법도 있다. 불선법과 선법을 합하여 모두 52법이 있다고 말한다.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를 얻은 자의 행위는 어떠할까?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는 이혼한 전처의 비유를 들었다. 이혼한 전처가 어떤 행위를 하든지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이혼한 전처를 보듯이 마음을 내라는 것이다.
위빠사나 11단계 지혜인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 단계에 이르면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칭찬과 비난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는 체득된 지혜이기 때문이다. 단지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과는 다르다. 지식이 아니라 지혜인 것이다.
마음이 주식 사놓은 것처럼 불안하다. 대선후보 지지율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마음이 시드는 것 같다. 낫에 잘린 갈대처럼.
오늘 새벽 마음을 잡기 위해서 경을 암송했다. 십이연기분석경을 10여분 암송하자 기분 전환이 되었다. 이어서 행선을 했다. 6단계 행선을 했다. 방에서 맨발로 한 것이다.
행선은 맨발로 해야 맛이 난다. 발 뒤꿈치를 들어서 뗄 때 "짝"하는 소리가 난다. 양말이나 신발신고 행선한다면 결코 날 수 없다. 발을 수평으로 밀어 디딘다. 디딜 때는 수평을 유지한다. 그리고 누른다. 이렇게 6단계 행선을 반복하다 보면 마음이 현재에 집중된다.
흔히 명상하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좌선하는 모습을 말한다. 그런데 나에게 있어서는 좌선하는 것 못지않게 행선하는 모습도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을 현재에 두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굴빛도 밝고 맑을 것이다.
오늘도 하루일과가 시작된다. 나는 얼마나 마음이 흔들릴까? 마치 주식을 사놓은 자처럼 안절부절하지 못할 것 같다.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 아직까지는 나에게는 먼 지혜인 것 같다. 이전에 생멸의 지혜라도 체득해야 할 것이다. 위빠사나 4단계 지혜를 말한다.
모든 현상이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몸으로 체득해서 알았을 때 상카루뻭카냐나, 현상에 대한 평등의 지혜라고 한다. 이는 지혜는 업의 지혜이기도 하다.
업의 지혜는 업이 자신의 주인이고 자신은 업의 상속자인 것을 아는 지혜를 말한다. 그래서 "그가 지은 선하거나 악한 행위의 상속자이다.”(A10.216)라고 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업의 가르침으로도 마음의 평정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주식을 소유한 자처럼 마음이 불안할 때는 부처님 가르침에 의지해야 한다. 경을 암송하고 행선을 하다 보면 근심걱정은 이전마음이 되어버린다. 오늘 하루도 이 마음 같았으면.
2022-01-2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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