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사 달빛음악회
“돌아보지 마라 후회하지 마라. 아, 바보 같은~”연암골에 50-70 떼창이 울려 퍼졌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고도 했다. 그러면 필연일까? 보름날 밤 천장사에서 50-70들이 어깨동무를 하며 노사연의 만남을 불렀다.
천정사 카톡방에 공지가 떴다. 가을 달빛음악회를 개최한다고 했다. 10월 29일 저녁이다. 음력으로 9월 보름이니 달밤이 되기에 충분했다.
공지가 떴을 때 망설임 없었다. 가보야 한다고 생각했다. 멀리 있어서 자주 가보지 못하지만 부처님오신날이나 입제일, 반철법회, 해제일 등 굵직굵직한 행사가 있는 날은 가 보아야 한다. 이렇게 문화행사가 있는 날은 놓칠 수 없다.
달빛행사는 이미 오래 전에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 올해 봄 방생법회 갔었을 때 내가 제안했었다. 그것은 코로나 기간 중에 있었던 달빛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보름달밤에 모여 달을 보면서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를 말한다.
스님은 약속을 지켰다. 그때 코로나 때인 2021년 10월에 ‘달빛정진’이라는 이름으로 모임이 있었다. 그때도 어제 밤과 같은 음력 9월 보름날이었다. 그때는 천정사 외곽 산기슭에 있는 ‘고암정’에서 열렸다. 서쪽 서산평야와 서해바다가 보이는 곳이다.
달빛모임은 만 2년만에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산사음악회형식을 빌어 달빛음악회라고 했다. 그렇다고 큰절에서 열리는 것과 같이 초청가수와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천장사 신도들과 고북면 사람들과 함께 하는 작은음악회를 말한다.
달빛음악회는 6시에 열린다. 6시까지 도착해야 더 일찍 가기로 했다.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2시반에 출발했다. 네비를 보니 안양에서 서산까지는 110키로 거리에 1시간 30분으로 찍혔다.
안거가 끝났다. 테라와다 우안거를 말한다. 테라와다 우안거는 한국의 하안거 보두 두 달 늦게 시작된다. 음력으로 6월 15일에 시작하여 9월 15일에 끝난다. 9월 29일이 끝나는 날이다.
이번 우안거에서 안거에 참여했다. 재가안거를 한 것이다. 사무실에 명상공간을 만들어 놓고 매일 한시간 좌선했다. 그리고 88일 동안 후기를 남겼다.
재가 우안거가 끝나는 날, 그날 저녁에 달빛음악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안거도 끝났기 때문에 한가한 마음으로 가보고자 했다. 이런 것도 일종의 ‘만행’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왜 그 먼 곳까지 가는 것일까? 가는 데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법우들을 보고 싶어 가는 것이다.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 가는 목적도 있다. 그래서 카톡방에 “안양에서 출발합니다.”라고 짤막하게 글을 남겼다.
글을 남기는 이유가 있다. 글이 암시가 되어 오는 법우들도 있기 때문이다. 수월거사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수월거사는 내가 가면 꼭 온다. 어제도 다르지 않았다. 부인 길상화 보살과 함께 왔다.
천장사 가는 길은 막히지 않았다. 늦은 오후에 출발해서인지 제한최고속도로 달렸다. 이는 반대편 차선과 대조적이었다.
해미 IC를 빠져 나왔다. 서산의 29번 국도에는 차가 거의 없다. 한가한 농촌풍경이 전개 되었다. 고북면으로 들어 가는 입구에서 연암산이 보인다. 제비바위도 보인다. 제비바위에서 일몰을 바라보면 천하제일경이 된다.
천장사에는 4시 45분에 도착했다. 도착하니 사람들은 벌써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바빠도 법당에는 갔다 와야 한다.
배낭에는 공양물이 있다. 네 개들이 배와 치약세트를 불단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구배를 했다. 왜 구배인가? 테라와다식으로 불, 법, 승 삼보에 삼세번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테라와다 오체투지는 하지 않았다. 한국방식 오체투지를 했다.
저녁식사를 했다. 모두 채식이다. 육류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안거 기간에도 육류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천장사에도 선원이 있다. 작은 절, 가난한 절에도 선원이 있는 것이다! 염궁선원이라고 한다. 해마다 하안거와 동안거철이 되면 일곱 분 가량의 스님들이 안거를 난다. 그런데 먹는 것을 보면 거의 대부분 채식이다.
이번에 테라와다 재가 우안거를 하면서 음식에 주의 했다. 아침에는 제철에 나는 감자, 고구마 등으로 간단히 했다.
육류를 먹으면 마음이 탁해질 것 같다. 육류를 먹으면 술이 먹고 싶어진다. 그래서인지 선원에서는 육류를 멀리하고 채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 같다.
저녁 공양은 갖가지 나물로 된 식단이다. 청정식단이라 하니 할 수 없다.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비웠다.
음악회는 6시에 시작된다. 잠시 시간이 남아서 일몰을 구경하기로 했다. 제비바위로 가서 보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없다. 지장암에서 보기로 했다.
지장암은 높은 곳에 있다. 천장사와 거리가 떨어져 있다. 그러데 이제까지 이런 암자가 있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지장암에 처음 가 본다. 전망이 좋다. 지장암에 서니 서쪽 하늘이 보였다. 저 멀리 서해바다도 보였다. 하늘은 석양노을로 벌겋게 장식 되었다.
저녁 6시가 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었다. 자리는 20개 가량 마련 되었다. 성우암 앞마당에 마련된 즉석 무대이다.
반가운 얼굴들이 올라왔다. 거의 반년만이다. 서산에 사는 법우들이다. 새로운 얼굴들도 많다. 천장사와 새로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다.
천장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서산을 비롯하여 당진, 홍성에서도 온다. 더 멀리 인천, 수원 등 각지에서 온다. 대체 천장사에 어떤 매력이 있어서 오는 것일까?
천장사는 도인이 많이 나기로 잘 알려져 있는 절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해 동안거 때 어느 스님은 “천장사는 도인공장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천장사는 한국 선종의 중흥조로 불리 우는 경허스님이 살던 절이다. 경허스님 제자도 살았다. 이른바 삼월이라 하여 혜월, 수월, 만공 스님이 살던 절이기도 하다. 이러니 어찌 도인공장이라 하지 않겠는가?
천장사는 가난한 절이다. 그런데 오히려 가난한 절에 사람들이 온다는 것이다. 가난한 절 선방스님들에게 공양을 하면 공덕이 클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지 모른다.
음악회는 저녁 8시까지 계속 되었다. 중현스님은 스님이 잘 아는 음악가를 초청했다. 섹소폰을 불며 반주를 넣어 주는 사람이다. 기타리스트는 천장사 신도가 맡았다. 이런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중현스님은 신청곡을 받으면 음악을 화면에 쏘아 주었다. 프로젝트가 준비된 것이다. 유튜브 검색을 해서 해당 영상을 띄어 주는 것이다.
달빛음악회 참석자는 이십여명 되었다. 아래 마을 사람들도 왔다. 원래 여러 마을 사람들이 오기로 했으나 고북면 국화축제 준비 등으로 인하여 몇 명 오지 못했다. 그 대신 고북면 대안학교 선생과 학생들이 왔다. 대부분 50-70인데 초등학교 아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달빛음악회 절정은 합창이었다. 50-70사람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노사연의 만남을 떼창한 것이다. 이런 만남은 우연일까 아닐까?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 자주 만나게 되면 필연이 된다.
천장사에는 옛인연도 새인연도 있다. 일년에 고작 두 세 차례 밖에 오지 않지만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서 온다. 이런 것을 스님도 가상하게 여겼던 것 같다.
스님은 나를 나오라고 했다. 스님은 멀리서 안양에서 왔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블로그 ‘진흙속의연꽃’ 운영자라고 말했다. 노래를 시키고자 했으나 적극적으로 사양했다.
음악회가 끝났다. 그 사이에 달은 천장사 하늘에 떠 있었다. 쟁반처럼 둥근 달이다.
사람들은 달을 바라 보았다. 그런데 달 옆에 별이 하나 밝게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중현스님에 따르면 목성이라고 했다.
현재 보는 별빛은 오래 된 것이다. 이미 사라져 버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달빛은 살아 있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목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죽은 빛보다 살아 있는 빛이 더 가치 있게 보인다.
사람들은 둥근 달을 보면 마음이 찬다. 어떤 이는 마음이 설레기도 할 것이다. 소원이라도 빌 것 같다.
멀리서 온 사람들이 많다. 스님은 자고 가라고 했다. 방은 많다는 것이다. 안거가 시작되면 방이 없을 것이다. 산철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고 갈 수 있다.
돌아가야 한다. 다음날 할 일이 있다. 업체에 납품가야 한다. 늦은 시간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공양주 보살은 떠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가래떡을 챙겨 주었다.
사산시내에 사는 법우들과 함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묘광명, 무량덕, 무진행 보살이다. 내려 가는 길에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것은 ‘북콘서트’에 대한 것이다.
오늘 천장사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났다. 이제까지 천장사에 대하여 쓴 글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들자는 것이다.
천장사에 다닌지 십년이 넘는다. 허정스님이 천장사 주지로 취임하던 때부터 다녔다. 2012년일 것이다.
어디를 가든 기록을 남긴다. 과거 기록을 찾아 보니 천장사에 처음 갔었던 때는 2012년 3월이다. 그때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좋은 법문을 해야 하는 이유, 천장사에서’(2012-03-11)라는 제목으로 기록을 남겼다. 그때 능인선원 도반 네 명과 함께 갔었다.
천장사는 처음 갔었을 때와 많이 달라졌다. 그때 사진을 보니 지금은 사라진 템플스테이 기와건물이 있다. 현재 성우당 마당 위치에 있었다.
천장사에 다니면서 수많은 기록을 남겼다. 아마 30편 가까이 될 것 같다. 사진도 곁들인 긴 글이다. 이를 책으로 만들면 두께가 꽤 될 것 같다.
책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과거에 써 놓은 글을 한데 모아서 목차를 만들고 서문을 쓰면 된다. 이런 식으로 책을 만든 것이 현재 103권이다.
도반들은 북콘서트에 대하여 찬성 했다. 장소는 천장사가 좋을 것이다. 적당한 날자를 잡아서 주지스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천장사와 인연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여 책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천장사에 가는 날은 늘 가슴 설렌다. 그것은 사람들을 보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들이 없다면 굳이 그 먼 길을 힘들게 애써 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천장사에 가면 반겨 주는 사람이 있어서 간다. 마치 가족 같은 사람들이다. 옛인연이든 새인연이든 천장사에 가면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만남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2023-10-3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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