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문학 인정투쟁, 봉평 이효석문학관에서
블로그에 쓴 글도 문학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블로그의 글도 문학장르에 들어갈 수 있을까? 아직은 아닌 것 같다. 아직 누구도 블로그에 쓴 글에 대하여 문학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용평 이틀째 되는 날이다. 용평리조트에서 하루밤 머물렀다. 숙박시설은 넓직하고 쾌적했다. 자본의 위력을 실감한다.
콘도에서 하루 머물렀다. 수도 없는 사람들이 다녀 갔을 것이다.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허용이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결벽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잔 자리에서 자는 것이 찜찜하다고 느껴질지 모르겠다.
공유의 시대에 살고 있다. 버스도 공유이고 전철도 공유이고 지하철도 공유이다. 이는 다름 아닌 공공재산을 활용하는 것이다.
공유재 개념은 확대될 수 있다. 아파트도 일종의 공유재에 해당된다. 층층이 사는 것 자체가 공유인 것이다. 숙박시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해외여행을 자주 나가지 못한다. 일년에 한번 성지순례를 가기로 발원했으나 여의치 않다. 큰 비용이 든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생업이 있는 자는 며칠 시간 내기가 쉽지 않다.
외국에 가지 못하면 국내여행은 갈 수 있다. 일박이일 또는 이박삼일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휴일을 끼어서 가면 생업에 지장이 없다.
국내여행 할 때 주로 자연휴양림을 활용한다. 삼림청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환경이 잘 갖추어져 있다. 비용에 있어서는 펜션보다 저렴하다. 평일에는 할인되어 사오만원이면 가능하다. 그러나 경쟁이 치열하다. 미리 인터넷으로 예약 해 놓아야 한다.
콘도는 비용이 꽤 된다. 할인 혜택이 없으면 이용하기 부담스럽다. 콘도를 이용하는 경우 할인 인연이 있을 때 가능하다.
휴양림이나 펜션, 콘도는 공공재라고 볼 수 있다. 내것이 아니지만 내것처럼 활용할 수 있다. 이용하는 날 만큼은 내가 주인이다. 그렇다고 험하게 사용해서는 안된다. 다음 이용자를 생각한다면 파손하거나 훼손해서는 안된다.
용평은 평창군에 속해 있다. 평창은 고원지대로 오지 중에 오지에 해당된다. 휴가 둘째 날 일정은 봉평면에 있는 이효석 문학관에 가보기로 했다.
평창에는 용평이나 봉평 등 ‘평’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있다. 왜 평평할 ‘평(平)’자를 썼을까? 이는 지형적 특성과 관계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고원에 있는 분지이기 때문이다.
봉평 가는 길은 가파르다. 오르막 길만 계속 될 때 경차는 힘에 부친다. 차선을 양보해 줄 수밖에 없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기 마련이다. 놀랍게도 너른 평원이 펼쳐졌다. 논이 있어도 논농사가 가능한 너른 평원이다. 고원에 있는 분지형이다. 마치 철원평야처럼 넓직하다. 그곳에 봉평면이 있다.
봉평에 유명한 것이 있다. 그것은 메밀막국수이다. 메밀막국수 먹기 위해서 봉평에 온 것이나 다름 없다. 또 하나는 이효석 문학관에 가기 위한 것이다.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 봉평에 왔다.
비는 오락가락 했다. 가는 비가 내리기는 하지만 우산을 써도 그만 안 써도 그만이다. 비가 그칠 때 봉평은 초록의 낙원이 된 것 같다.
온통 초록의 세상이다. 유월 초의 산하대지는 온통 생명의 향연이나 다름 없다. 무엇보다 날씨이다. 서늘해서 좋은 것이다. 겉옷을 입지 않을 수 없을 정도이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해본다. 도시의 열대야에 시달리다 보니 이곳에서 한달살이 해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것이다.
매년 여름이 되면 두렵다. 열대야로 인하여 잠 못 이루는 나날을 보내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기진맥진해서 그로기 상태에 이르면 멀리 서늘한 나라에 가고 싶어 진다.
하루도 현실을 떠날 수 없다. 늘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계속될지 알 수 없다. 어쩌면 관성에 떠밀려 가는 것인지 모른다. 과감하게 때려 치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쉽게 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여름을 슬기롭게 보낼 수 있을까? 에어컨을 가동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루빨리 열대의 밤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 밤 기온이 25도 이하로 내려가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이럴 때 해외 한달살이 생각을 하게 된다.
요즘 여유 있는 계층 사람들은 여름에 서늘한 나라에 간다. 몽골과 같은 초원의 나라에서 여름 한철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더위를 감내 하며 살고 있다. 좀더 사치를 부려 본다면 산중으로 피서 가는 것이다.
봉평은 고원지대에 위치해 있다. 해발고도가 수백 미터 될 것이다. 더구나 산중에 위치해 있다. 도시의 열대야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최적의 피난처가 될 수 있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다. 이번 여름에 봉평에서 한달살이 꿈을 꾸어 보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는 고원의 분지는 습한 제주도 한달살이 보다 훨씬 더 나을 것 같다.
봉평은 온통 작가 이효석과 관계가 있다. 그 중에 이효석 문학관이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디를 가나 메밀막국수 집을 볼 수 있다. 봉평은 한마디로 이효석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효석문학관은 입장료가 2천원이다. 그러나 6월 문학의 달을 맞아 입장료를 받지 않았다. 아마 전국적인 현상이라 본다.
문학관은 잘 가꾸어져 있다. 수 만평 되는 문학관은 특별 관리되고 있다. 더구나 문학관 저편에는 생가까지 복원해 놓았다. 봉평면에서 하천 건너편은 온통 이효석과 관련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눈에 보이는 것이 메밀막국수 음식점이다.
이효석문학관에는 이효석에 관한 모든 것이 있다. 관심 있게 본 것은 옛날 발간되었던 책이다. 일제시대 때 빛 바랜 책이다. 주로 30년대 책이 눈길을 끌었다.
이효석은 ‘메밀꽃 필 무렵 소설’로 유명하다. 이 소설을 아마 중학교 때 읽었던 것 같다. 물레방아가 나온다. 물레방아에서 ‘썸씽’이 있었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효석은 1907년생이다.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은 1936년에 발표 되었다. 나이가 30세 되던 해이다. 문학관에 전시되어 있는 소설의 첫 장면을 읽어 보았다. 마치 이야기하듯이 쓰여 있다.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 이에 대하여 유시민의 강연을 유튜브로 들은 바 있다. 유시민은 “이야기하듯이 쓴 글이 가장 잘 쓴 글입니다.”라고 말했다. 마치 글쓰기 꿀팁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이 말을 늘 기억하고 있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블로그에는 원고지 매수 제한이 없기 때문에 무제한 쓸 수 있다. 표현하고 싶은 것을 원 없이 쓰는 것이다. 이때 잘 쓰려고 하면 안 써진다.
무엇이든지 잘 하려고 하면 잘 되지 않는다. 깨달음도 그렇고 심지어 잠 자는 것도 그렇다.
어떻게 해야 좌선을 잘 할 수 있을까? 명상을 잘 하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어떤 이가 꿀팁을 하나 알려 주었다. 명상을 할 때는 내려 놓으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잘하려는 마음을 내려 놓으라는 것이다.
수면의 질이 좋지 않다. 매일 잠과의 전쟁을 벌이는 것 같다. 잠을 잘 자는 것이 소원이다. 그런데 잠을 잘 자려고 하면 잠을 잘 자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유튜브에서 정신과 전문의 김현수 선생은 “잠은 잠이 와야 잠을 자는 것입니다. 잠을 잘 자야겠다는 마음을 버려야 잠을 잘 잘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잠은 잠이 와야 자는 것이다. 억지로 자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는 잠이 오지 않으면 쉰다는 개념을 가지라고 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교감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잠을 자려고 노력하는 것은 교감신경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면 잠을 잘 수 없다. 이럴 때는 잠을 자려 하지 말고 그저 편하게 쉰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부교감신경을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잠이 오면 잔다. 잠이 오지 않으면 쉰다.”라고 마음 먹으면 잠을 잘 수 있다고 말한다.
잠자기가 글쓰기나 같은 것이다. 글을 잘 쓰려고 생각하면 할수록 잘 써지지 않는다. 글을 멋지게 아름답게 쓰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이럴 때는 이야기하듯이 쓰라고 했다.
누구나 이야기는 잘 한다. 이야기하듯이 글을 쓰면 된다. 이야기하듯이 쓴 글이 가장 잘 쓴 글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효석의 소설을 보면 이야기하듯이 써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있는 그대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블로그에 글을 쓴지 십팔년 되었다. 그 동안 68,000개 가량의 글을 썼다. 하루 한 개 이상의 글을 쓴 것이다. 매일 오전은 글쓰기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눈으로 볼 수 있는 결실을 이루었다. 시기별로 카테고리별로 분류하여 책을 만들어 놓았는데 126권 된 것이다. 이런 것도 문학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효석은 일제시대를 산 사람이다. 1907년에 태어나 1942년에 사망했다. 일제시대 때 태어나 일제시대 교육을 받고 일제시대 치하에서 살다가 죽은 것이다.
이효석은 해방을 보지 못했다. 어쩌면 일제시대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독립운동했다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한글로 된 주옥 같은 작품을 수없이 남겼다. 이효석 전집을 보니 모두 여덟 권이다. 나도 이효석 같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런데 평범하게 살다가 죽으면 금방 잊혀진다는 사실이다. 가족들은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한 살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를수록 잊혀진다. 삼대 또는 사대가 지나면 기억 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인 중에 이효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무엇보다 ‘메밀꽃 필 무렵’이라는 소설을 쓴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더구나 이 작품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이효석문학관 아래에 물레방아가 있다. 물레방아 있는 곳까지 가 보았다. 소로를 따라 삼백미터 이상 걸어가면 초가집과 물레방아가 나온다.
초가집에는 디딜방아가 있다. 그런데 초가집 안에는 에로틱한 그림이 있다. 소설의 한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다. 바위로 된 기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 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 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남자와 여자는 물레방아에서 만났다. 소설 속의 현장은 복원되었다. 그런데 물레방아는 오늘도 돌아간다는 것이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은 전국민이 알게 된 것이다. 그것도 대대손손 알게 되었다. 이는 다름 아닌 기록의 힘이다.
이효석이 글을 쓰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평범한 사람과 다름 없이 금방 잊혀졌을 것이다. 글을 남겼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살아 남은 것이다. 사람들 기억에 남아 있는 한 영원히 사는 것이 된다.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쓴다. 동시에 페이스북에도 올려 놓는다. 사십대 중반부터 쓴 것이다. 이전에는 글이라는 것을 써 본적이 없다. 나는 왜 글쓰기에 집착하는가?
글을 쓰면 남는다. 인터넷시대에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블로그에 글을 올려 놓으면 누군가 읽는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 있다면 나는 살아 있는 것이다.
글을 쓰는 행위는 살아 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이효석 작가 시대 때는 신문이나 잡지가 글을 남기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정보통신과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누구나 글 쓰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글은 2006년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때 당시에는 인터넷이 크게 활성되었다. 2000년부터 인터넷시대가 본격화 되면서 블로그라는 매체도 생겨났다. 누구나 글 쓰는 시대, 누구나 작가가 되는 시대에 살게 된 것이다.
이효석 작가는 1930년대를 살았다. 신문과 잡지에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면 오늘날 이효석문학관은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삶의 흔적을 남기는 자가 승리자가 된다.
늘 이런 의문이 든다. 블로그에 쓴 글도 문학작품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다. 문학작품이라면 소설이나 시로 알고 있다. 이것 외에 다른 것은 문학작품이 될 수 없는 것일까? 마치 블로그문학 인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2024-06-0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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