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년 후 정상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1985년 ‘집영각의 밤’에서의 촛불의식
이른 아침 이마트 안양점 앞에 전세버스가 서 있다. 앞 유리 팻말을 보니 ‘마북연구소’라고 쓰여 있다. 이천 반도체공장에 가는 차이다.
이마트 안양점이 있는 비산사거리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안양에서 정가운데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 남북으로는 경수산업도로라고도 불리우는 1번 국도가 달린다. 동서로는 최대 왕복10차선에 이르는 관악대로가 가로 지른다.
이른 아침 비산사거리에는 통근 전세버스를 이곳 저곳에서 볼 수 있다. 그 중에는 ‘화성캠퍼스’라고 이름붙여진 팻말도 볼 수 있다. 아마 화성에 있는 반도체공장을 말하는 것 같다.
전세버스는 오전 6시 반이 되면 출발한다. 이 시각에 맞추어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온다. 대부분 젊은 이삼십대 사람들이다. 복장도 자유롭다. 슬리퍼를 신은 젊은이도 있다. 아마 반도체공장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아침에 전세버스에 탑승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자랑스럽다. 산업역군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마음 속으로는 아마 전자공학을 전공한 사람들로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버스에 탑승하는 젊은이들은 엔지니어로서 전자공학을 전공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렇게 생각하자 나의 이십대 시절이 떠올랐다.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고 생각이 일어난다.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들을 보자 “나도 한때 저와 같은 때가 있었다.”라는 생각이 일어난 것이다.
나의 이십대는 어땠을까? 자만에 가득했던 시절이라 볼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최고라는 우월적 자만을 말한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가? 대기업에 취업한 것이 큰 이유이다.
수원에 있는 S그룹 S전기에 들어간 것은 1985년 8월의 일이다. 7월 29일 입사해서 21일간 신입사원연수를 받고 그때 당시 S전자부품에 배치 된 것이다. 동기는 11명이었다.
80년대는 성장의 시기였다. 웬만하면 취업이 되던 시기였다. 학점이 낮아도 사람이 부족해서일까 어지간하면 들어 가던 때였다. 어쩌면 행운의 시기를 살았다고도 볼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평점 3이상은 되어야 원하는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1학년때와 2학년 때 성적이 좋지 않아서 복학한 후에 이를 만회하고자 했다.
성적은 평점 3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1985년 여름 S그룹 공채 때 합격 되었다. 그것도 시험도 보지 않고 면접만 보고 들어간 것이다. 아마 그때 한창 산업인력이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본다.
무엇이든지 첫 경험은 강렬하다. 평생 잊어버리지 않는다. 군대 갔을 때 첫 경험도 강렬했지만 신입사원 입사 때의 기억도 강렬했다.
신입사원 연수는 용인자연농원 안에 있는 S그룹종합연수원에서 받았다. 바로 옆에는 동방생명연수원이 있었다.
연수가 거의 끝나갈 무렵 ‘집영각’에서 촛불의식이 있었다. 130명 되는 26기 4차 동기들은 촛불 하나씩 들고 “20년 후에 정상에서 만납시다.”라고 말했다.
사원에서 정상에 서는 데까지 20년이 걸릴까? 아마 그때 80년대 성장의 시기 때는 가능했었던 것 같다. 그때 1973년에 입사했던 사람들은 꼭 십년만인 1983년에 부장 진급을 했던 것이다.
해마다 수천명의 사람들이 들어 온다. 이들 모두에게 “20년후 정상에서 만납시다.”라는 촛불의식을 행하게 했을 것이다. 과연 몇 명이나 정상에 섰을까?
사람들은 종종 과거를 회상한다. 아마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쓰라렸던 과거도 세월이 흐르면 추억이 된다.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면서 “한때 나도 이런 때가 있었다.”라고 여길 것이다.
페이스북을 보면 과거 오늘에 쓴 글을 알려 준다. 어떤 이는 몇 년 전의 일을 알려 준다. 심지어 십년전에 올렸던 글을 공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번도 과거의 글을 공유한 적이 없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떠 올려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지금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기 때문인가?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늘 현재에 살아야 한다. 마음이 과거에 가 있으면 왠지 처량해 보이는 것 같다.
과거에 대하여 단지 회상으로 그친다면 쏘아져 버려진 화살과 같은 신세가 된다.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서 버려지다시피한 인생이 된 것 같다. 마치 물 마른 호숫가에 서 있는, 날개 부러진 늙은 왜가리 같은 신세와 같은 것이다.
지나간 과거를 회상해 본다. 아마 이십대 때 입사해서 회사 다닐 때 몇 년 동안이 ‘리즈’시기였던 것 같다. 그것은 허황된 자만으로 가득 찬 시기이도 하다. 회사가 바람을 불어 넣은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 칭찬을 하면 으쓱해진다. 연수 받을 때도 그랬다. “여기 오기를 잘 했습니다.”라며 프라이드를 잔뜩 갖게 만들었다. 그 중에 하나가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말이다.
사업보국은 그룹의 삼대이념 가운데 하나였다. 사업을 함으로써 이 사회와 이 나라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거창한 이념이다. 창업주가 만든 것이다.
신입사원시절 사업보국이라는 말에 매료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가장 보람 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밤낮 없이 주말 없이 일했다. 그것은 수출하는 상품을 개발하는 것이었다.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산다. 1980년대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재료를 들여와서 가공해 수출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제조업 기반이 될 수밖에 없다.
신입사원시절 제조업에 근무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공장에 다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했다. 이는 연수원 시절 바람 넣은 탓도 크다. 그런데 실제로 공장에 있다 보니 제조업이야말로 나라를 먹여 살린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한번 신념이 형성되면 여간 해서는 잘 바뀌지 않는다.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공장에 다니는 것이 애국하고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을 때 다른 분야는 시시하게 보였다.
공무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력 있는 직업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를 먹여 살리지 못한다. 부를 창출하지 못하는 것이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떠할까? 역시 부를 창출하지 못한다. 내수에 의존해야 한다. 그러나 제조업은 다르다. 수출을 해서 외화를 벌어 들이는 것이다.
한국은 여전히 제조업 강국이다.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는 드물다. 반도체부터 갖가지 상품이 있어서 달러를 벌어들인다.
제조업이라 하여 같은 제조업은 아니다. 내수를 타겟으로 하는 제조업체가 있는가 하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제조업체가 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에서 당연히 달러를 벌어 들일 수 있는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것이 자부심 있는 것이다.
신입사원시절 바람이 잔뜩 들어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망상 아닌 망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생각은 꽤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직장생활을 한 것은 20년이다. 1985년 S전기에 입사해서 여러 회사를 전전했다. 마침내 2005년 직장생활을 마무리 했다. 타의에 의한 것이다.
그때 집영각에서 촛불을 들고 20년후 정상에서 만나자고 했다. 나는 정상에 섰는가? 2005년 마지막 직장에서 연구소장을 했으니 어쩌면 정상에 선 것이나 다름 없다.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신생 벤처회사 상무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 형성된 이념은 꽤 오래 가는 것 같다. 신입사원시절 매료 시켰던 사업보국이라는 말은 개인사업자로 살 때도 여전히 유효 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 사회에 이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도 사업보국이 될 수 있을까?
셋톱박스를 20년 개발했다. 케이블과 위성 셋톱박스를 말한다. 개발할 때마다 집에 한대씩 가져다 두었다. 나중에 기념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백권당에는 그때 개발했던 셋톱박스가 십여대 있다.
한번 형성된 이념은 꽤 오래 가는 것 같다. 신입사원시절 매료 시켰던 사업보국이라는 말은 개인사업자로 살 때도 여전히 유효 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 사회에 이 나라에 보탬이 되고자 했다.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도 사업보국이 될 수 있을까?
직장 다닐 때는 셋톱박스 하드웨어 엔지니어로 일했다. 개인사업자가 되고 나서는 인쇄회로기판설계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업도 사업보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부품에 지나지 않지만 업체에 납품되면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난날을 회상한다. 대부분 기억 속에만 있다. 그러나 어떤 이는 증거를 남겨 두기도 한다. 나에게는 셋톱박스와 업무다이어리가 증거가 된다.
직장생활 할 때 기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록하고자 했다. 업무용 다이어리에 기록하는 것이다. 회의했던 것, 아이디어 낸 것, 심지어 낙서까지 기록해 놓았다. 직장생활 20년 업무용 다이어리는 70권 가량 된다.
직장생활 할 때 오로지 집과 직장만 왕래 했다. 세월이 금방금방 잘 흘러 갔다. 그러나 끝이 있기 마련이다. 사십대 중반이 되었을 때 퇴물이 된 것이다.
직장생활은 2005년까지 했다. 이후 삶은 개인사업자로서의 삶이다. 원맨컴퍼니의 일인사장인 것이다. 그럼에도 사업보국의 이념은 잊지 않았다.
개인사업자로 살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하며서 글쓰고 글쓰면서 일하는 삶을 산 것이다. 역시 기록을 남겼다. 2006년부터 쓰기 시작하여 2024년 8월 현재까지 7,800개 가량의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블로그 누적조회수가 2005년 개설이래 860만명가량된다. 불교계에서 이것보다 많은 것을 아직 보지 못했다. 어떤 이는 불교계의 파워블로거라고 한다. 이것도 어쩌면 2기 20년에 있어서 정상에 오른 것이라 볼 수 있다.
세월이 흐르면 남아 있는 것은 추억밖에 없다.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고자 했다. 증거가 필요했다. 직장생활 할 때 개발된 셋톱박스를 집에다 보관한 것도 ‘나 이런 일을 했다’라는 것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업무다이어리를 버리지 않고 모아 둔 것도 삶의 흔적을 남기기 위한 것인지 모른다.
매일매일 삶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렇게 아침에 요란스럽게 자판을 두드리는 것도 오늘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 결과 현재 133권의 책을 만들 수 있었다. 과거 써 놓은 글을 시기별로 또는 카테고리별로 엮어서 만든 것이다.
20년에서 또 20년이 흘러 가려 한다. 1985년 입사해서 2005년 물러날 때까지 20년은 직장에서 살았다. 2005년부터 현재 2024년까지 19년은 개인사업자로 살고 있다. 그렇다면 2025년부터 앞으로 20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20년을 단위로 해서 인생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이제 일년만 지나면 3기 20년이 시작된다. 나는 무엇으로 살아야 하나?
직장생활 20년, 자영업자 19년째 살고 있다. 다음 20년은 아마도 수행자로 살 것 같다. 그렇다고 하던 일을 그만 두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정년이 없기 때문에 나이가 더 들어서도 할 수 있다. 일하면서 수행하고 수행하면서 일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잘 살았는가? 지난 시절을 되돌아 본다.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직장인으로 20년 살 때는 오로지 집과 직장 밖에 몰랐다. 개인사업자로 20년 살 때는 오로지 글만 썼던 것 같다. 그렇다면 향후 20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당연히 수행자로 살아야 한다. 재가수행자로 사는 것이다.
오늘로서 재가우안거 24일째이다. 오늘 아침 좌선을 하려 했으나 너무 더워 그만 두었다. 백권당에서는 오전 9시가 되어야 냉방이 된다. 좌선은 어느 시간이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대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한번 형성된 이념은 바꾸기 힘들다. 사업보국도 이념이다. 그러나 좋은 이념이다. 신입사원 시절 마음에 쏙 들었다. 평생 실천하고자 하는 이념이 되었다.
제조업 찬가를 부른다. 자원이 없고 인구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제조업으로 먹고 살아간다. 특히 수출로 먹고 산다.
이른 아침 비산사거리 이마트안양점에 대기하고 있는 반도체공장 전세버스를 보았을 때 옛날 일을 회상시켜 주었다. 더구나 이른 아침 6시 30분에 탑승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았을 때 틀림 없이 전자공학이나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되자 39년전에 있었던 일이 고구마 줄기처럼 떠 올랐다. 그 중에 하나는 ‘집영각의 밤’이다.
집영각에서 촛불의식을 행할 때 20년 후에 정상에서 만나자고 했다. 정상까지 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각자 나름대로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이다.
나의 정상은 어디일까? 3기 20년이 되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수행자로서 궁극적인 경지에 이르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2024-08-1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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