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진흙속의연꽃 블로그와 함께 살아온 19년

담마다사 이병욱 2024. 8. 3. 12:07

진흙속의연꽃 블로그와 함께 살아온 19년
 
 
연꽃이 환상적이다. 어찌 이리 고울 수가 있을까? 붉은 연꽃, 하얀 연꽃, 노랑연꽃, 자주색 연꽃 등 갖가지 색깔의 꽃이 있다. 사람들은 카메라를 대기에 바쁘다.
 
해마다 가는 곳이 있다. 시흥시에 있는 ‘관곡지’이다. 매년 일년에 한번 제사지내듯이, 매년 무더위가 절정일 때 관곡지연꽃테마파크에 간다.
 
오늘은 8월 3일 토요일이다. 식당은 문을 닫았다. 국민휴가기간이라 볼 수 있다. 공단이 있는 지역에서는 집단으로 일제히 쉬는 주간이다.
 
자영업자에게 휴가는 없다. 당연히 주말도 없다. 마치 선원에 있는 것처럼 주말이나 평일날이나 다름없다.
 
무더위가 절정이다. 밤에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다. 그런데 연꽃은 무더위가 절정일 때 활짝 피는 여름의 꽃이라는 사실이다.
 
언젠가 관곡지에서 들은 것이 있다. 사진사에 따르면 한낮은 피하라고 했다. 한낮에는 연꽃이 꽃봉우리를 오무린다는 것이다. 오전 일찍 오는 것이 좋다고 알려 주었다.
 
오늘 아침 일찍 시흥으로 출발했다. 관곡지까지는 20키로 거리에 30분가량 걸린다. 한낮의 뜨거운 날씨를 피해 오전 7시 반에 출발했다.
 
오전 8시 관곡지에 도착했다.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양산을 받쳐 든 사람들이 있다. 아마 우리처럼 매년 이맘때쯤 으레히 오는 사람들일 것이다.
 

 
관곡지는 2008년이나 2009년부터 다녔던 것 같다. 한번 알게 되자 연례행사가 되었다. 매년 7월말이나 8월초에 한번은 갖다 와야 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오전의 연꽃은 싱싱하다. 온도가 30도 이하이기 때문에 더운 날씨는 아니다. 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람, 사진을 취미로 가진 사람들은 커다란 사진기로 포커스를 맞추기에 바쁘다.
 
연꽃은 언제 보아도 신비롭다. 어떻게 저런 모양이 나왔을까? 더구나 컬러풀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연꽃은 불교를 상징하는 꽃이라는 사실이다.
 
 

 
어제 블로그 생일날이었다. 매년 블로그 생일날이 되면 소회를 쓴다. 그런데 블로그 제목이 ‘진흙속의연꽃’이라는 사실이다. 필명도 역시 ‘진흙속의연꽃’이다.
 
블로그를 만든 것은 2005년 8월 2일의 일이다. 그때 나이가 만으로 45세 되던 때이다. 회사를 타의로 그만 두고 낙담하던 시절에 만든 것이다.
 
회사를 20년 다녔다. 그렇다고 한직장에서만 내리 있었던 것은 아니다. 국민연금 수령을 앞두고 하나의 자료를 보았는데 월급 타먹은 데가 무려 12군데였다.
 
2005년 4월에 회사를 그만 두었다. 공식적으로 마지막 다니던 회사였다. 구직 노력을 했다. 그러나 여의치 않았다. 예전에는 한두 달 지나면 자리가 났었다. 그러나 사십대 중반이 되자 오라는 데가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참으로 막막했다. 할 것은 자영업 밖에 없었다. 회사 다닐 때 배운 기술로 창업하는 것이다. 개인사업자 등록을 했다.
 
사업은 누구나 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장사하는 것이 아님과도 같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집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무조건 밖에 나가야 했다. 안양 호계동에 있는 공구상가에 싼 월세 사무실을 임대했다.
 
공구상가 사무실은 냉난방이 되지 않았다. 여름에는 찜통이 되었고 겨울에는 냉장고가 되었다. 아무런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십개월 가까이 있었다. 절망적인 나날의 연속이었다.
 
여러 종류의 부자가 있다. 그 중에는 시간부자가 있다. 오로지 앉아 있는 용도에 불과한 작은 사무실에 앉아 있으니 시간이 철철 넘쳤다. 인터넷 가지고 노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때 블로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이 본격화 된 것은 아마 2000년부터일 것이다. 특히 2002년 월드컵과 대선을 기점으로 해서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 중에 블로그가 있었는데 2004년 히트상품으로 선정되었다.
 
포털 ‘다음’에 블로그를 하나 만들었다.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었다.
 
인터넷은 신천지나 다름 없다. 새로운 가상 공간이 생겨 났는데 새로운 대륙이 생겨난 것과 같다. 카페, 블로그, 게시판 등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블로그를 만들려면 블로그이름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필명을 만들어야 한다. 마치 회사를 창업하는 것처럼 멋진 블로그 이름을 만들고자 했다. 마치 사람이 태어나면 이름을 만들어 주듯이 필명을 만들고자 했다.
 
멋진 블로그 이름을 만들고 싶었다. 인터넷에서 불교음악을 발견 했는데 마음에 드는 이름을 발견했다. 불교명상음악시리즈에 대승의 바다, 태양의 후예, 동방의 불빛, 진흙속의 연꽃 등과 같은 멋진 이름이 눈에 띄었다.
 
함부로 이름을 짖지 말라고 했다.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 이름을 지을 때 이왕이면 품위 있고 격조 높은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대승의 바다’와 ‘진흙속의 연꽃’이다.
 
블로그 명칭을 ‘대승의 바다’라고 했다. 필명을 ‘진흙속의연꽃’이라고 했다. 2005년 8월 2일의 일이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시간 부자인 자가 심심해서 지어 본 것이다.
 
인터넷에 글을 쓰게 된 것은 2006년 6월의 일이다. 블로그를 만든지 일년이 지나서 써 본 것이다.
 
불교에 입문한지 일년이 되었을 때 블로그를 만들었다. 불교공부하기 위해서 갖가지 자료를 인터넷에서 취합 했는데 이를 블로그에 올렸다. 처음 일년 동안의 블로그는 일종의 자료저장창고로서의 역할을 했다.
 
블로그를 만든지 일년 후부터 글을 썼다. 어느 때 “나도 글을 한번 써볼까?”라는 마음이 일어나서 써 본 것이다. A4로 한장도 되지 않는 짧은 글을 썼다.
 
주로 오전에 글을 썼다. 그런데 글을 쓰니 시간이 잘 간다는 사실이었다. 글쓰기처럼 시간 보내기 좋은 것이 없었다. 더구나 댓글로도 격려 받았다.
 
글과 인연은 없다. 회사에서 오로지 전자제품만 개발하던 사람이다. 그것도 20년 동안 셋톱박스만 개발했다. 공학도 출신에게 글이라는 것은 작가나 시인, 기자 등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나 쓰는 것으로 알았다.
 
2000년 인터넷 시대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모두 작가가 되었다. 인터넷 게시판에 낙서하듯이 쓴 글도 작가의 글이라고 볼 수 있다.
 
글을 쓰는데 있어서 하나의 원칙을 세웠다. 이왕 쓰는 글이라면 길이 남을 글을 쓰고자 한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쓴 다음에는 날자와 서명을 남겼다.
 
처음부터 글을 쓴 것은 아니다. 회사 다닐 때 기안서나 보고서 작성한 것이 전부이다. 블로그를 만들어 글쓰기를 했을 때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유심히 관찰했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있다. 불교계 신문 사이트에서 본 혜민스님과 법상스님의 글이 그랬다. 특히 혜민스님의 글은 간결했다. 메시지도 분명했다. 무엇보다 글을 쓴 다음에 서명을 하는 것이었다.
 
글을 잘 쓰는 스님들이 있다. 그 중에 한명은 마성스님이다. 마성스님의 글을 보았을 때 “글은 이렇게 쓰는 것이다.”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블로그를 만들고 나서 글을 썼다. 이전에 한번도 글을 써 본적도 없고 또한 글을 배워 본 적이 없었다. 글 잘 쓰는 사람 글을 참고해서 따라 하고자 했다. 써 먹을 만한 표현을 발견하면 새겨 두었다.
 
블로그에 글을 쓸 때 함부로 쓰지 않고자 했다. 낙서 하듯이 쓰지 않는 것이다. 한번 쓴 글은 모아 두고자 했다. 언젠가 책으로 만들 것을 염두에 두고 썼다.
 
블로그 생일날은 매년 8월 2일이다. 블로그를 만든지 만 일년이 되었을 때 후기를 하나 남겼다. 블로그 개설 일주년 기념으로 ‘인연(因緣)’(2006-08-02)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사람도 작가일까?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조회수가 증가했다. 블로그 만든지 일년이 지났을 때 누적조회수가 10만명이 되었다. 이에 감각하여 ‘블로그 조회수 10만회 돌파에 즈음하여’(2006-11-13)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누구나 인터넷을 이용한다. 그러나 글을 쓰는 사람은 드물다. 인터넷시대가 되어서 블로그라는 히트상품이 나왔을 때 글을 썼다. 해가 갈수록 보는 사람들이 많아 졌다. 블로그를 만든지 4년만에 누적조회 백만명을 돌파했다. 이에 대하여 ‘블로그와 조회수,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일까’(2009-01-23)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겼다.
 
블로그를 만들어 매일 글을 썼다. 글쓰기는 일상이 되었다.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숙제하지 않은 것처럼 견딜 수가 없었다. 매년 블로그 생일날이 되면 소회를 남겼다. 누적조회수가 백만명 단위가 되었을 때 역시 소회를 남겼다. 2005년 블로그 개설이래 작년까지 블로그 역사는 다음과 같다.
 
 
(블로그 역사)
 
1) 블로그개설일 : 2005-08-02
 
2) 블로그개설 1주년 :2006-08-02
인연(因緣)
 
3) 누적조회 10만명 돌파: 2006-11-13
블로그 조회수 10만회 돌파에 즈음하여
 
4) 블로그개설 2주년: 2007-08-02
넷심(Net心)이 바로 민심(民心)이다, 블로그활동 2주년을 맞아
 
5) 블로그개설 3주년: 2008-08-02
블로그 개설 3년, ‘쓰레기성 글’이 되지 않기 위해서
 
6) 누적조회 100만명 돌파: 2009-01-23
블로그와 조회수,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일까
 
7) 블로그개설 4주년: 2009-08-02
블로그개설 4주년에, ‘진흙속의연꽃’이 부담스러워
 
8) 누적조회 200만명 돌파: 2010-01-10
블로그 누적조회수 200만명 돌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하여
 
9) 블로그개설 5주년: 2010-08-02
매일 글을 쓰는 이유는, 블로그 만든지 만 5년 되는 날에
 
10) 블로그개설 6주년: 2011-08-02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 블로그 6주년을 맞아
 
11) 누적조회 300만명 돌파: 2012-05-26
오늘도 내일도 쓸 뿐이다, 누적조회수 300만명을 맞이 하여
 
12) 블로그개설 7주년: 2012-08-02
블로그 개설 7주년에, 글쓰기 원칙 세 가지
 
13) 블로그개설 8주년: 2013-08-02
글쓰기도 중독이라고 볼 수 있을까? 블로그 개설일에
 
14) 누적조회 400만명 돌파: 2014-06-09
시간은 지나도 글은 남는다, 누적조회수 4백만명을 맞이 하여
 
15) 블로그개설 9주년: 2014-08-02
블로그와 함께 제2의 인생이, 블로그와 함께 9
 
16) 블로그개설 10주년: 2015-08-02
비주류비급삼류정신으로, 인터넷에 글쓰기 십년
 
17) 누적조회 5백만 돌파: 2016-05-24
금자대장경과 금자탑, 블로그 누적조회수 5백만명을 맞이 하여
 
18) 블로그 개설 11주년: 2016-08-09
블로그는 전문가영역, 블로그 개설 11주년에
 
19) 블로그 개설 12주년: 2017-08-02
자타(自他) 모두 이익 되는 삶을 위하여, 블로그 생일 12주년
 
20) 누적조회 6백만명 돌파: 2018-07-09
돌아갈 집이 있기에, 블로그 누적조회 6백만명을 맞이하여
 
21) 블로그 개설 13주년: 2018-08-02
가르침에 근거한 여법(如法)한 글쓰기를 지향하며, 블로그 개설 13주년을 맞이하여
 
22) 블로그 개설 14주년: 2019-08-03
최소한 한달에 한권 이상 책을, 블로그 개설 14주년에
 
23) 누적조회 7백만명 돌파: 2020-06-03
블로그 누적조회수 700만명, 의무적 글쓰기 14
 
24) 블로그 개설 15주년
 (작성하지 못함)
 
25) 블로그 개설 16주년
나의 정신적 연령은? 블로그 개설 16주년(2021-08-03)
 

26) 누적조회 8백만명 돌파: 2022-07-20

글을 올릴 때는 신중하게, 블로그 누적조회 8백만명을 맞이하여(2022-07-20)


27) 
블로그 개설 17주년
공감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블로그 개설 17주년에(2022-08-03)

 

28) 블로그 개설 18주년

블로그는 삶의 전부, 블로그 개설 18주년에(2023-08-02)


 

 
2005년 블로그개설 이래 줄기차게 달려 왔다. 하루라도 블로그하지 않는 날이 없다. 오늘 블로그 생일 19주년을 맞이하여 이렇게 소회를 작성하게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어떤 스님은 동영상을 올려 놓는다. 누가 보든말든 초기경전을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하여 올려 놓는 것이다. 당연히 주석이나 논서도 무시한다. 이런 스님을 보았을 때 ‘집착’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가?
 
매일 장문의 긴 글을 쓴다. 긴 글을 누가 보건말건 블로그에 페이스북에 동시
에 올린다. 긴 글은 전문가 영역이라 볼 수 있는 블로그에는 맞지만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페이스북에는 맞지 않는다.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페이스북 글쓰기에 해당된다.
 
매일 장문의 글이 생산된다. 마치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 내듯이 글이 나오는 것이다. 이런 삶을 블로그 개설 이래 19년 동안 하고 있다. 이런 행위도 집착이라면 집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까지 무엇으로 살아 왔는가? 사십대 중반 이후 글쓰기로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을 쓰면서부터 새로운 인생을 산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내 나이는 이제 만 19세가 된다.
 
인생을 살면서 후회되는 일도 있고 자랑스러운 일도 있다. 자랑스러운 일이라면 글쓰기 한 것이다. 블로그 개설 이래 직접 쓴 글은 7,811개이다. 이는 18년동안 쓴 것이다. 하루 평균 1.18개의 글을 썼다.
 
18년동안 쓴 글은 버리지 않았다. 날자를 쓰고 서명한 것은 글에 대한 무한책임을 뜻한다. 처음부터 책 낼 것을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에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은, 내용과 형식을 갖춘 글을 쓰고자 노력했다.
 
수행자에게는 삶의 결실이 있다. 그것은 수행결과로 나타난다. 성자의 흐름에 들었을 때 수행자의 삶의 결실이 있게 된다. 그러나 이는 정신적 현상이다. 그렇다면 블로거에 삶은 결실은 어떤 것일까? 이는 책으로 나타난다.
 
현재 백권당에는 126권의 책이 있다. 글쓰기 한 것을 책으로 만든 것이다. 시기별로 또는 카테고리별로 묶어서 만들었다. 피디에프(pdf) 파일로는 132권이다.
 
책은 판매용이 아니다. 책은 배포용이다. 블로그 안에 있는 ‘책만들기’ 카테고리가 있어서 피디에프 파일을 올려 놓는다. 누구든지 가져 갈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블로그는 나의 저작물을 확산시키는 플렛폼으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블로그를 처음 만들었때 미래는 불투명 했다. 사십대 중반의 가장은 삶은 막막 했다.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것 중에 하나는 블로그였다. 매일 글 쓰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매일 의무적으로 썼다.
 
블로그를 처음 시작 했을 때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쓸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조회수가 될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매일 쓰다 보니 어느 날 누적조회수가 백만이 되고 이백만이 되었다. 19년이 지난 현재 누적조회수는 8,683,817명이다.
 
불상을 보면 항마촉지인이 있다. 악마가 보살의 성도를 방해 했을 때, 악마가 보살의 금강좌를 차지하고자 했을 때, 보살은 오른손가락를 아래로 향하여 땅을 가리킨 것이다.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자 한 것이다.
 
땅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보살이 사아승지십만겁동안 십바라밀행을 했을 때 이 땅에서 얼마나 태어나고 죽었을까? 그래서 보살이 땅을 가리켰을 때  “그때 내가 그대의 증인이다.” (Jat.547)라며 백의 외침, 천의 외침, 십만 의 외침이 들려왔다. 대지가 증언해 준 것이다.
 
블로그와 함께 19년 세월 살았다. 이 세월 동안 “그대는 무엇을 했는가?”라고 물어 본다면 책장에 있는 백권 이상의 책을 가리킬 것이다. 책을 증인으로 세우는 것이다.
 

 
오늘 블로그 생일날 관곡지에 갔었다. 관곡지에는 매혹적인 연꽃이 피었다. 진흙속에서 피는 연꽃이다.
 
블로그명칭은 ‘진흙속의연꽃’이다. 블로그필명도 역시‘진흙속의연꽃’이다. 진흙속의연꽃이라는 이름으로 19년 살아 왔다. 그러나 세월에 따라 이름도 바뀐다. 글을 쓰고 난 다음에는 ‘담마다사 이병욱’이라고 서명한다.
 
오늘은 블로그 생일날이다. 나에게는 뜻 깊은 날이다. 2006년 8월 처음 생일 소감 쓴 이래 매년 빠지지 않고 기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 역사가 되었다. 언제까지 계속될까?
 
 
2024-08-0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