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내가 갈 데가 있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지.” 아침에 일어 났을 때
좌선해야 채워지는 것 같다. 아침에 하루 일과를 시작할 때 막바로 일을 하면 허전한 마음이 된다. 이럴 때 행선과 좌선을 하면 뿌듯해진다. 특히 좌선이다.
재가우안거 77일째이다. 아침에 일어 났을 때 “아, 내가 갈 데가 있지,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지.”라고 생각한다. 특히 직장 꿈을 꾸고 났을 때 절감한다. 집을 나서 갈 데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아파트를 나서면 갈 데가 있다. 백권당이다. 일터이기도 하고 수행처이기도 하다. 아침이 눈을 떴을 때 마치 연어가 태어난 곳을 향해 맹목적으로 가듯이 일터로 향한다.
나에게 일터가 있다. 소중한 일터이다. 직장을 잃어 보았기 때문에 아는 것이다. 지금은 자기실현의 장소이기도 하다. 매일 글을 쓰고 수행하는 또 다른 공간이다.
메일을 하나 받았다. 주거래업체 담당에게서 온 것이다. 퇴사를 알리는 글이다. 대부분 알리지 않고 나가는데 이 담당은 자신과 인연 있는 거래처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같다.
담당은 ‘김O지’이다. 오랫동안 일을 함께 해 왔다. 몇 년 되었을까? 대략 사오년 된 것 같다. 이전 담당은 ‘김O선’이었다. 더 이전 담당은 ‘양O나’였다. 모두 여성이다. 딸 뻘 된다.
주거래고객사는 용인에 있는 L사이다. 이천시와 경계에 있어서 납품 갈 때 영동고속도로 양지인터체인지에서 빠져 나간다. 산속에 있는데 중간 크기의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L사가 먹여 살려 주고 있다. L사가 없으면 어떻게 될까? 아마 사업을 접어야 할지 모른다. 일하는 날보다 노는 날이 압도적으로 많았을 때 사무실 임대료와 관리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출근할 때 우편함을 본다. 방이 삼백개 가량 되는 오피스텔이다. 우편함도 그만큼 된다. 어떤 우편함에는 우편물이 가득 쌓여 있다. 아마 사연이 있을 것이다.
옆 사무실에는 반년 이상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문은 굳게 잠겨 있다. 문에는 딱지가 붙어 있다. 세무서에서 붙인 것이다. 내용을 보니 “귀하에게 납세고지서를 교부하고자 방문하였으나 부재중이어서..”로 시작 되는 문구이다. 세금을 내지 못한 것이다.
오피스텔은 안양에서 가장 오래 된 것이다. 평촌신도시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설은 낡고 가치가 없다. 당연히 임대료와 관리비도 저렴하다. 그래서일까 청년사업가들이 싼 맛에 들어오는 것 같다.
또 다른 옆 사무실에는 젊은 여성 두세 명이 쇼핑몰을 운영하는 것 같다. 인터넷 쇼핑몰 같다. 문이 열렸을 때 지나가는 길에 안을 보게 되는데 배송해야 할 물건이 바닥에 촘촘히 깔려 있다.
부재중일 때는 물건이 문 앞에 잔뜩 쌓여 있다. 문에는 “삼촌 픽업 감사합니다”라는 문구가 커다란 종이에 인쇄되어 있다. 택배기사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는 문구이다. 청년들이 열심히 살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인다.
요즘은 더 이상 키워드 광고를 하지 않는다. 키워드 광고 효과가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단골 고객사가 확보 되었기 때문이다. 주고객사인 L사를 비롯하여 서너 개의 작은 업체가 있다.
재주가 없으면 세상살기 힘들다. 젊었을 때 안정적인 직장을 들어 갔다면 정년 때까지 문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을 제외하고 가능하지 않다. 직장에서 언제 쫓겨날지 모른다.
지난 시절을 되돌아 본다. 직장생활 20년은 참으로 고단했다. 그것은 자주 옮겼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타기 위해서 자료를 보니 무려 열 군데 이상 옮겼다. 자의로 옮긴 것도 있지만 타의도 있다. 사주가 사업을 접으면 옮길 수밖에 없다.
요즘도 직장 꿈을 꾼다. 새로 옮겨 간 직장에서 쩔쩔 매는 꿈이다. 무언가 보여 주지 못해서, 실적을 내지 못해서 눈치 보는 꿈이다. 참으로 답답한 꿈이다. 마치 군대에 끌려 가는 꿈을 꾸는 것과 같다.
지금은 더 이상 군대 꿈을 꾸지 않는다. 군대 갔다 왔는데 또 영장이 나온 것이다. 저항도 못하고 끌려 가는 꿈이다. 무려 20년 가량 꿈 꾼 것 같다. 그런데 꿈도 세월에 따라 진화하는 것 같다. 저항하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군대 꿈은 꾸지 앉는다.
군대 꿈은 사라졌다. 이제는 직장 꿈이 대신하는 것 같다.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꿈이다. 실력이 들통나서 부끄럽고 창피한 기분의 비참한 꿈이다.
직장생활을 그만 둔지 19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직장 꿈을 꾼다. 군대 끌려 가는 꿈처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악몽을 꿀 때가 있다. 꿈 속에서 “차라리 꿈이었으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정말 꿈이었던 때가 많다. 직장 꿈을 꿀 때 답답한 마음과 함께 잠에서 깬다. 그때 현실로 돌아 온다. 나에게 갈 데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이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안심하는지 모른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나에게 딱 맞는 일이다. 자본이 투입 되는 일이 아니다. 컴퓨터 한대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책상에 앉아 모니터를 보면서 수천, 수만번 클릭하며 하는 일이다. 인쇄회로기판(PCB) 설계업이다.
한번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일감을 주는 사람들은 십년이 넘은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대부분 일인사업자들이다. 소프트웨어 설계업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들이 못하는 일의 일부를 맡아서 해준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한 이래 5백군데 가량의 업체와 개인과 학교와 일했다. 그래서 키워드 광고 할 때 이들 고객사를 대상으로 하여 “귀사의 제2연구소가 되어 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스마트폰 주소록에는 거의 천개 가까이 되는 전화번호가 등재 되어 있다. 17년 동안 사업을 하면서 수백명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 얼굴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대면 없이 메일과 전화통화만으로도 일하는 경우도 많다.
인연 중에는 선연도 있고 악연도 있다. 선연은 결재를 잘 하는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악연은 결재를 하지 않는 케이스이다. 내 돈을 떼어 먹은 것이다. 이런 경우 기억에 남는다.
어떤 거래이든지 결재가 끝나면 잊어 버린다. 그러나 결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끝까지 남는다. 내 돈 떼어 먹고 달아난 사람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이름도 얼굴도 생각나지 않지만 돈 떼어 먹은 일은 남아 있는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 갈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사람은 이해관계에 매우 민감하다.
일로 만난 사람은 일이 끝나면 더 이상 만날 일이 없다. 수백군데 업체와 수백명의 사람들과 일을 했지만 일이 끝났을 때는 더 이상 연락은 없다. 최후로 돈을 받음으로 인하여 깨끗이 잊어 버린다. 그러나 돈을 받지 못했을 때 늘 ‘미결상태’로 남아 있게 된다.
인생의 미결도 있을 것이다. 화해해야 할 사람과 화해하지 않고 사는 것도 미결상태인 것과 같다. 악업으로 남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기 전에 정리할 것은 정리해 놓아야 한다. 마음의 부담을 덜어 버려야 한다.
본격적으로 사업한지 17년 되었다. 앞서 두 해 더하면 19년 되었다. 20년 가까이 사업하면서 느낀 것은 ‘신용’이다.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고매한 인격을 가지고 있어도 결재를 하지 않으면 사기꾼이 된다. 박사타이틀을 가지고 있어도 신용불량자가 된다.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의 일이다. 2005년 마지막으로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개인사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 사업하는 것이라서 모든 것이 서툴렀다. 특히 결재하는 것이 미숙했다.
거래할 때 돈은 나중에 준다. 물건을 먼저 받고 다음 달 결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사업을 처음 하다 보니 제때에 결재하지 못했다. 먼저 돈을 받아야 준다는 식으로 생각했다. 받을 돈은 먼저 받고 줄 돈은 천천히 주자는 구호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사업할 때 다른 것 없다. 돈거래가 분명해야 한다. 지불해야 할 돈을 제 때에 지불하지 않으면 사기꾼 소리 듣는다. 이런 것을 처음에는 몰랐다. 몇 달 지나서 알게 되었다.
그 사람에게 연락을 했다. 너무 오래 되어서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얼굴 이미지는 남아 있다. 늦게 결재한 것에 대하여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떼어 먹어도 되었던 것이다. 어떤 연유인지 그렇게 생각한 것이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스스로 사기꾼이 되는 것이다.
나는 왜 돈을 떼어 먹으려고 했을까? 아마 그것은 직장생활 할 때 하나의 관행 때문이었을 것이다. 업체에서 샘플을 가져 오면 돈을 주지 않고 받는 것이다. 나중에 양산할 때 보상 되는 것이기 때문에 무상으로 받는 것이다. 이런 속셈이 깔려 있어서 무시하고자 했다.
사업을 시작하고 나서 신용이 생명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업체 샘플 비용을 떼어 먹으면 안되는 것이다.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서 주지 않아도 될 돈을 보내 주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복받을 겁니다.”라고 말해 주었다.
용인에 있는 L사는 나의 밥줄이나 다름 없다. 매출의 90프로 이상을 차지한다. 물건이 잘못 되었을 때 군말 없이 다시 만들어 주었다. 납기에 쫓기면 직접 전달해 주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도 폭설이 내리는 날에도 목숨 걸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린 것이다.
영업담당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 영업담당의 신용을 얻어야 한다. 영업담당에게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해결해 주어야 한다. 무상으로 물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은 케이스이다. 그럴 경우 담당은 “사장님, 고맙습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한다. 이런 것도 영업전략이다.
L사 영업담당과 오랜 세월 함께 일했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담당에게 잘 보여야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발로 뛰는 수밖에 없다. 영업을 잘하게 위해서 도와 주어야 한다. 그래서일까 영업담당이 바뀌어도 일감을 몰아 주었다.
L사와 인연은 얼마나 오래 되었을까? 과거 자료를 열어 보니 2008년부터 일을 하기 시작했다. 올해로 16년 함께 일한 것이다. L사에 대한 글을 모은다면 책으로 하나가 될 것 같다.
L사는 소개 받아 알게 되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이미지만 있는 PCB제조업체 영업담당이 소개시켜 준 것이다. 자신의 친구가 거기에 있는데 일감을 맡기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2008년이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수많은 일을 했다. 그동안 일한 파일은 아마 천 개가 넘을 것이다. 천 개의 작품은 모두 L사 것이다. L사의 재산인 것이다. 지금도 L사 것을 하고 있다.
L사에 새로운 담당이 왔다. 벌써 몇 대째가 되는지 모른다. 기술담당들도 대를 잇는 것 같다. 가장 많이 도와 주었던 김O현 부장은 L사를 떠난지 사오년 되었다. 대리였을 때부터 일감을 주었다.
스마트폰 주소록에는 L사 그룹이 있다. 그룹에는 39명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다. 이미 퇴사한 사람과 현재 있는 사람의 주소가 총망라 되어 있다. 영업과 기술 담당들의 전화번호이다. 지난 16년 동안 대를 이어서 거래해 오고 있는 사람들이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갈 데가 있는 것에 안심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해야 할 일이 있음에 감사한다.
눈만 뜨면 가는 곳이 있다. 백권당 사무실이다. 일을 하면 일터가 되고, 글을 쓰면 서재가되고, 행선과 좌선을 하면 수행처가 된다. 이 모두는 일감이 있어서 가능한 것이다.
L사 담당이 그만 두었다. 이에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예아트와의 인연은 사오년 된 것 같습니다. 많이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실수도 많았는데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담당과 함께 더욱더 노력하겟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가능하면 영업담당을 대면하지 않고자 노력한다. 메일과 전화로만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백발을 보여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주치지 않을 수 없다.
영업담당은 나이가 어리다. 이십대가 대부분이다. 언젠가 어느 영업당당과 처음 만나게 되었을 때 “나이가 많이 드셨네요.”라고 말했다. 이 말에 부끄럽고 창피한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 먹도록 발로 뛰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다. 젊은 사람을 고용해서 상대하게 해야 하는데 그럴 처지가 되지 않은 것이다.
L사와 오래 거래하다 보니 수많은 영업담당과 일하게 되었다. 사십대부터 시작하여 육십대에 이르렀다. 어쩌다 볼 일이 있으면 미안한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해여 할 일은 해야 하는 것이다. 비즈니스에 있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다.
영업담당 김O지는 한번 보았다. 전화통화만 하다 처음 얼굴을 보게 되었을 때 귀여운 목소리와 달리 성숙한 이미지의 얼굴이었다. 담당은 “사장님 그동안 너무 감사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건승하시길 바라겠습니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답신을 보내 왔다.
어떻게 해야 사업을 잘 할 수 있을까? 2005년에 처음 개인사업자등록을 한 이래 19년동안 느낀 것은 신용이다. 믿음을 주는 것이다. 한 개를 달라고 할 때 두 개를 준다면 만족할 것이다.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 고객을 신처럼 모시는 것이다. 고객이 원하면 어디든지 달려 가야 한다. 무엇이든지 고객위주로 하면 버리지 않을 것이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목숨줄이나 다름 없는 L사와의 관계는 언제까지 유지될까?
2024-10-04
담마다사 이병욱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년동안 우정이 변치 않은 것은 (3) | 2024.10.13 |
---|---|
보시공덕 지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 (16) | 2024.10.09 |
비급이 살아가는 방식 (7) | 2024.09.03 |
그게 뭐였더라? 좋은 생각이 났었는데 (7) | 2024.08.18 |
이십 년 후 정상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1985년 ‘집영각의 밤’에서의 촛불의식 (10) | 2024.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