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권당

183권 헤마와따숫따법문 독후기

담마다사 이병욱 2026. 4. 28. 11:05

183권 헤마와따숫따법문 독후기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차갑다. 어제와는 다른 양상이다. 지난 밤에 비가 와서 그런지 사월도 하순의 날씨는 쌀쌀하다.

 

춘사월 호시절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천상과도 같은 날씨이다. 이렇게 좋은 날은 가만 있지 않는다. 금방 지나가 버린다. 늘 열대야에 있는 것 같고, 늘 얼음장 같은 추위만 있는 것 같다.

 

때로 이런 생각을 해본다. 늘 고통스러운 것이 본질이라는 생각을 말한다. 열대야의 여름에는 괴롭기만 하다. 아팠을 때 고통스러운 것만 있는 것 같다.

 

부처님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며 고성제를 설했다. 세상에는 즐거운 일도 많은데 왜 괴롭다고 했을까?

 

불교를 잘못 이해하면 염세주의라고 볼 수 있다. 부처님이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며 사고와 팔고를 설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염세주의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문제와 문제의 해결방법을 제시했다. 오늘날까지 진리(Dhamma)의 수레바퀴가 굴러온 이유가 된다.

 

세상사는 본래 괴로운 것이다. 괴로움의 바다에서 잠시 행복이 있을 뿐이다. 본질은 괴로운 것이다. 이는 경전적 근거가 있다. 어떤 것인가? 이는 부처님이 수행승이여, 그런데 나는 어떠한 것이 느껴지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고 했다.”(S36.11)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불교는 역설의 종교이다. 세상사람들의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경향이 있다. 세상사람들이 즐겁다고 하는 것을 괴롭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세상사람들이 괴롭다고 하는 것을 보면 즐겁다고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매일 접촉하는 삶을 살고 있다. 여섯 감역 접촉이 있어서 세상이 전개된다. 그런데 접촉은 느낌을 유발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크게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무덤덤한 느낌을 말한다.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에 마음이 가 있다.

 

부처님은 어떤 느낌이든지 괴로운 느낌에 포섭된다고 했다. 지금 즐거운 느낌이라 하더라도 영원하지 않다. 일시적인 즐거운, 행복한 느낌일 뿐이다.

 

상황은 금방 바뀐다. 조건에 따라 바뀌는 것이다. 마치 아이가 웃다가 우는 것과 같다. 어른도 마찬가지이다. 지금 즐거운 느낌은 조건이 다하면 무덤덤한 느낌이 된다. 무덤덤한 느낌은 언제든지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으로 바뀔 수 있다. 본질은 무엇인가? 변화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떠한 것이 느껴지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는 것에 관하여 말한 것이다.”(S36.11)라고 말했다.

 

느낌이 본래 괴로운 것은 무상에 있다. 즐거운 느낌이 가만 있지 않는 것이다. 즐거운 느낌이 오래 지속되지 않아서 불만인 것이다. 이런 것도 괴로움이다. 그래서 어떠한 것이 느껴지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표현을 하나만 사용하지 않았다. 느낌에 대하여 무상 하나만 말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수행승이여, 어떠한 것이 느껴지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모든 형성된 것은 파괴되고야 마는 것에 관하여 말한 것이다. 수행승이여, 어떠한 것이 느껴지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모든 형성된 것은 괴멸하고야 마는 것에 관하여 말한 것이다. 수행승이여, 어떠한 것이 느껴지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는 사실은 모든 형성된 것은 사라지고야 마는 것에 관하여 말한 것이다.”(S36.11)라고 했다. 무상뿐만 아니라 파괴, 괴멸, 사라짐으로 설명한 것이다.

 

어떠한 것이 느껴지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고 했다. 이 말은 괴로운 느낌이 본질이라는 것이다. 지금 행복한 자도 결국 괴로운 느낌에 종속되게 되어 있다. 이는 경에서 설명된 것처럼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형성된 것은 가만 있지 않는다. 변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마치 엔트로피법칙을 보는 것 같다. 순간도 가만 있지 않고 무질서로 진행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형성, 상카라에 대하여 무상한 것, 파괴되는 것, 괴멸되는 것, 사라지는 것으로 설명했다.

 

부처님은 고성제를 설했다. 그러나 고성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부처님이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며 사고와 팔고를 설했지만 잘 다가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괴로움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괴로움에는 세 가지가 있다. 고고성, 괴고성, 행고성을 말한다. 고고성은 고통 그 자체를 말한다. 병이 들었을 때 아픈 것이 이에 해당된다. 괴고성은 변화에 따른 괴로움이다. 행복한 느낌이 오래 지속되지 않아 불만인 것도 괴고성에 해당된다. 부처님이 어떠한 것이 느껴지든 그것은 괴로움 안에 있다.”라는 말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행고성이란 무엇인가?

 

괴로움에는 세 종류가 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행고성이다. 왜 그런가? 이는 수행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고고성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이다. 지금 아픈 데가 있다면 고고성을 알 수 있다. 지금 불만족한 상태에 있는 자는 괴고성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행고성은 어떤 것인가?

 

지금 이 순간 몸과 마음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잘 관찰하면 찰나생찰나멸한다. 소리를 예로 들 수 있다. 소리가 들렸다가 사라졌을 때 소리의 생멸을 알 수 있다. 좀더 집중하면 구분해서 알 수 있다. 이렇게 조건에 따라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것도 괴로움으로 본다는 것이다.

 

생멸이 왜 괴로움인가? 이는 위빠사나 수행을 해보면 알 수 있다. 마하시 사야도는 이에 대하여 핍박받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이 고에 대하여생멸이 끊임없이 괴롭히기 때문에 괴로움이구나”(위빳사나수행방법론 2, 181)라고 말하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자는 미세한 것을 볼 수 있다. 오온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정신과 물질로 환원하여 관찰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찰나삼매에 들었을 때 마치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세밀하게 관찰할 수 있다. 현상이 찰나생찰나멸 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행고성(行苦性), 상카라둑카타(sakhāradukkhata)라고 한다. 수행자만이 느낄 수 있는 미세한 괴로움이다. 생멸로 인하여 핍박받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라고 한다. 행고성은 한마디로 형성된 것들의 생멸을 보는 것이다.

 

일반인은 행고성을 알 수 없다. 고고성과 괴고성까지만 알게 된다. 이런 이유로 일반인은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일반인은 왜 깨달을 수 없을까? 일반사람도 무상함을 느낌에도 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할까?

 

계절이 바뀌면 자연무상을 느낀다. 누군가 죽은 것을 알면 인생무상을 느낀다. 이는 괴고성에 대한 것이다. 이런 무상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자아에 기반한 무상이기 때문이다.

 

가을에 낙엽 지면 사람들은 센티해진다. 센티해도 내가 센티해지는 것이다. 누군가 죽었을 때 슬퍼진다. 이때 슬퍼도 내가 슬퍼지는 것이다. 자아에 기반한 무상이다.

 

수행자는 행고성을 본다. 오온에서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현상을 보았을 때 무상을 본다. 무상하게 생멸하는 것을 보면 핍박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것이 괴로움이다. 형성된 것들이 소멸하는 괴로움이다.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미세한 것이다. 이렇게 무상하게 생멸하는 것에는 자아가 있을 수 없다. 수행자는 무아에 기반한 무상을 보는 것이다.

 

수행자는 무아에 기반한 무상을 본다. 무상이 있어서 무아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오온에 대하여 무상, , 무아로 통찰이 있게 되었을 때 깨달음의 길로 가게 된다.

 

매일 경전을 읽는다. 또한 매일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을 읽는다.

 

책을 읽는데 편식이 있다. 경전과 법문만 읽다 보니 다른 것은 읽지 않는다. 왜 그런가? 진리의 말씀만 읽다 보니 다른 것은 읽을 맛이 나지 않는 것이다.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은 언제 읽어도 새롭다. 아직 체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읽고 또 읽는다. 그리고 새기고 싶은 것이 있으면 글로 남긴다.

 

이번에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을 읽고서 책을 만들었다. 책 제목은 ‘183 헤마와따숫따법문 독후기이다. 183번째 만든 책으로 16개의 글이 있고 246페이지에 달한다. 참고로 목차는 다음과 같다.

 

 

(목차)

 

1. 헤마와따숫따 법문 읽기 시동을 걸며

2. 나무영산회상불보살

3. 삼매를 필요로 하는 생멸의 지혜

4. 상대방의 종교를 모르면 백전백패

5. 사람이 죽으면 사람으로 태어난다는데

6. 우주가 무너지면 중생들은 어디로 갈까?

7. 학인(學人)의 조건

8. 생각의 영역을 좁혀야

9. 폴리우레탄 바닥의 덧신

10. 명상이 아니라 수행을 해야

11. 찰나삼매와 이익삼빠자나

12.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글쓰기

13. 명색구분새김만이 살길

14. 역설의 가르침

15. 피가 철철 나도록

16. 오늘도 가르침에 바다에 퐁당 빠져

 

183 헤마와따숫따 법문 독후기_260428.pdf
1.95MB

 

 

 

헤마와따숫따(Sn.1.8)는 수타니파타에 실려 있다. 두 야차의 대화에 대한 것이다. 부처님의 덕성을 찬탄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하시 사야도는 생전에 백권 이상의 법문집을 남겼다. 현재 한국마하시선원에서 번역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창스님이 미얀마어로 된 법문집을 우리말로 직역하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오월이 되면 한국마하시선원에 간다. ‘붓다의 날에 가는 것이다. 또한 해마다 시월이나 십일월이 되면 역시 한국마하시선원에 간다. ‘까티나 가사공양법요식에 참석하는 것이다. 삼년 되었다. 그때 마하시 사야도의 법문집을 받아온다.

 

법문집은 읽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수행을 해야 한다. 위빠사나수행을 하는 것이다.

 

수많은 마하시 사야도 법문집을 읽었다. 헤마와따숫따 법문도 이에 해당된다. 늘 공통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명색구분새김에 대한 것이다.

 

위빠사나수행의 가장 기본은 명색구분새김이다. 오온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정신과 물질로 구분하여 새기는 것이다. 이렇게 정신과 물질로 환원하여 새기면 라는 것은 사라진다. 마치 수레를 분해하면 더 이상 수레라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또다시 오월이 다가온다.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이 오는 것이다. 오월이 되면 한국마하시선원에 갈 것이다. 이번에는 어떤 법문집을 받아올까?

 

 

2026-04-2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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