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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만트라14] 문수보살심주(文殊菩薩心呪) 21분

담마다사 이병욱 2008. 3. 4. 17:28

 

[산스크리트만트라14] 문수보살심주(文殊菩薩心呪) 21

 

 

 

Manjushri

 

 

 

선재(善財)동자.

 

《화엄경》에서 또 다른 중요한 테마는 〈입법계품〉이다. 선재라는 동자의 구법행각을 적어 놓은 것인데, 여기서 선재란 진리에 목말라하는 구도의 나그네를 상징한다.  

 

쉰세 명의 선지식을 만나 법을 묻고 법을 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선재에게 처음 법을 전하는 선지식은 문수보살이다. 이후 그가 만나는 선장, 어부, 심지어는 창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군상들이다. 그 모든 이들을 통해 불법의 위대한 진리를 깨달아 간다. 맨 마지막에 보현보살을 만난다. 그 직전에 만난 선지식 미륵이 손가락을 튕김에 의해 선재는 궁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부처의 자리에 올라보니 그 자리가 자신이 출발했던 자리라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여러 가지 상징과 은유가 담겨있다. 선재동자의 경우 만났던 쉰세 명의 사람들은 다양한 사람들이었지만 그 중에는 깡패도 있었으며 창녀도 있었다. 결국 선재동자는 도 높은 이를 만나면 그 길을 따라 걷고, 자신보다 도가 낮은 이를 만나면 자극을 받으며 정진한 끝에 성불을 하였던 것이다. 또 처음 만난 이가 문수였고, 마지막 보살이 보현이었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문수가 지혜의 상징이고, 보현이 비원의 상징이라면, 결국 이 구성은 불교의 입문은 지혜, 그 회향은 행원(行願)이라는 뜻이다. 불교는 알고 믿어야 하는 종교이다. 결코 믿음만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교적 이상의 완성은 결코 알음알이에 있지 아니하다. 행동이 수반된 믿음, 동체대비를 실현하는 일이야말로 불교의 궁극적 목표라는 의미이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마주치는 사람들 모두 선지식 아님이 없다. 또한 깨달음을 얻고 보니 제자리였다 함은 앞서 배운 여래장사상에 등장하는 본각의 입장과 동일하다.

《화엄경》에서 말하기를 "밤에 잠이 든 사람이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그러나 그는 본래 제자리에 있었음과 똑같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진실로 깨달은 자는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다. 깨달음, 부처, 이러한 것들은 기묘하고 거룩한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일상성, 지나치기 쉬운 상식 속에 진리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신라 화랑들에게 있어서 이 선재는 바로 인격적 모델이었다고 생각되어 진다. 불교는 '본래의 제자리로 돌아옴' 등의 극적인 반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위대한 화엄조사 의상은 이렇게 말한다. "간다, 간다 하지만 본래 그 자리, 닿았다, 닿았다 하지만 떠난 그 자리(行行本座 至至發處)." www.suns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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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