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호연지기 (浩然之氣)를 기르려면

담마다사 이병욱 2009. 8. 6. 09:43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려면

 

 

 

 

 

 

일요일 오전에

 

일요일 오전에 볼 수 있는 두 가지 풍경이 있다. 하나는 교회에 가는 사람들이고 또 하나는 산에 가는 사람들이다.

 

좀 규모가 크고 이름 있는 교회의 경우 신자들이 구름처럼 몰려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것도 단 한차례가 아니라 시간 간격을 두고 계속 이어진다. 1부 예배가 끝나면 빠져 나오는 인파와 2부 예배에 들어 가려는 인파가 엉킨다. 이를 정리 하는 주차요원도 여러 명에 달한다. 심지어 경찰이 나와서 교통정리를 해 주기도 한다. 이렇게 일요일 오전에 정장차림에 잘 차려 입은 교회 가는 사람들과 비교 하여 이번에는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 수는 점점 늘어나서 등산복도 패션화 된 듯한 느낌이다.

 

사람들은 왜 등산을 할까. 일요일 오전에 가까이에 있는 교회에 가지 않고 등산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무종교인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이 산을 찾는 이유는 건강을 위하여 산행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자연의 변화와 자연에 동화 되고 싶어서 산행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 보다 도 산행의 묘미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기르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산에서 내려다 보면

 

호연지기란 무엇일까. 그 사전적인 의미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라고 나와 있다.  단순히 사전적인 의미로 본다면 큰 마음을 내는 것 정도로 나와 있다. 그러나 호연지기를 다른 각도에서 살펴 볼 수 도 있다.

 

산에 가면 정상으로 향하게끔 되어 있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세상의 모습은 게 딱지 같은 집들과 성냥갑 같은 아파트 단지 모양이다. 마치 성냥갑을 줄지어 세워 놓은 듯한 모습의 아파트 안에는 층층이 수십개의 가구가 있고 개미들처럼 살아 가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개미들 처럼 살아 가는 구조물을 보면 작은 평수도 있고 큰 평수도 있다. 모두다 콘크리트 구조물에 지나지 않지만 그 금액은 평생 월급쟁이 생활을 해서 모두 다 갖다 바친 것 보다 더 많다. 콘크리트 구조물을 얻기 위하여 안먹고 안쓰고 자신에게 주어진 대부분의 시간을 바친 댓가를 고스란히 쏟아 붇는다. 그리고 오르기를 기대 하면서 더 넓은 평수로 가기 위한 꿈을 꾸며 살아 간다.

 

콘크리트 구조물이 두배 세배 뛰어서 백만장자의 대열에 동참하게 되면 이 번에는 고급자동차를 사고, 해외 여행을 즐기는 가 하면 삶의 질을 높이기 갖가지 시도를 하게 된다. 이 모두가 불로소득의 결과이다. 피땀 흘려 한푼 두푼 모아가지고는 도저히 달성 될 수 없는 꿈이다. 그러나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 보면 고급승용차는 마치 장난감처럼 보이고, 아파트는 성냥갑을 세워 놓은 것처럼 보잘 것 업이 작게 만 보인다. 바로 이런 모습을 보는 것이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이 아닐까.

 

똥통의 구더기들처럼

 

일요일 오전에 종교행사에 가면 열심히 살아라라고 말한다. 그리고 잘 되라고 축원해 주고 기도 해준다. 그래야 종교단체에 기부 하는 금액도 많아 질 것이다. 립서비스를 잘 해 주어야 사람이 몰리고 마음의 위안을 찾고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 할 것이다.

 

따라서 콘크리트 구조물은 계속 올라야 한다. 그래서 오른 불로소득으로 고급승용차를 몰고 여가를 잘 즐겨야 남 들 보다 더 잘 산다고 말한다. 환경이 파괴 되든 말든, 자원이 고갈 되든 말든 지금 이 순간에 잘 먹고 잘 즐기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에 밥 3끼 먹는 것을 5끼 먹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얼마나 많이 먹어야 그만 먹을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이 가져야 멈출 수 있을까. 그렇다고 하늘 보다 더 많이 가질 수 있을까. 산에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집을 짖고 사는 것 같이 보이고 똥통의 구더기들과 같이 보인다고 어느 스님은 말하였다.

 

호연지기와 관련 하여 법구경에서 적합한 글이 없는지 찾아 보았다. 석지현스님이 번역한 법구경 제5어리석은 이와 제13이 세상에서 발췌 하여 보았다.

 

 

여기 두 개의 길이 있나니

한 길은 (와 명성의 길이요

또 한 길은 니르바나로 가는 길이다.

 

수행자여, 그대는 결코

저 부와 명성의 길은 가지 말라.

수행자여, 그대는

니르바나, 저 영원의 길을 향하여

부지런히 그리고 묵묵히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법구경, 5장 어리석은 이 75게송)

 

 

물거품 같다고 이세상을 보라

신기루 같다고 이세상을 보라.

이렇게 이 세상을 보는 사람은

저 야마(죽음)의 손아귀에

잡히지 않는다.(법구경, 13장 이 세상 170게송)

 

 

 

 

200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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