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명상음악

반야심경을 영어 음악으로, Imee Ooi의 The Heart of Prajna Paramit Sutra

담마다사 이병욱 2009. 11. 25. 09:59

 

반야심경을 영어독송 음악으로, Imee Ooi‘The Heart of Prajna Paramita Sutra’

 

 

 

매일 아침 불교방송에서 반야심경을 들려 준다. 아침예불시간에는 한문반야심경을 들려 주지만, 경전공부 시간이 끝나고 불교강좌 시간이 시작 되기 전 5시 55부터 6 사이에 한글 반야심경을 들려 준다. 독송은 법안스님이 한다.

 

한글반야심경을 라디오에서 듣게 된 것은 최근 들어서이다. 라디오 에서는 한글반야심경 뿐만 아니라 주말에는 한글천수경도 들려 준다. 이와 같이 불교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여 독송하는 곳은 라디오 뿐만이 아니다. 최근 교계뉴스에 따르면 포교결집대회에서 12,000명이 모여 한글 금강경독송회를 가졌다고 한다. 수 많은 사부대중이 모여 한문경전이 아닌 한글금강경 독송회를 가졌다 하니 한글경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외국어나 다름 없는 한문경전

 

불교경전은 거의 다 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반야심경, 금강경, 법화경, 화엄경등 대승경전이 한문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유는 중국에서 불교를 전수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글이 나오기 이전에 우리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한자를 쓸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초기에 한글이 발명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글화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나라 불교역사에 있어서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어려운 한문으로 된 경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한자를 아는 소수 지식인층에 지나지 않는다. 대부분의 민중들은 한자를 모르기 때문에 불교경전을 읽을 수 없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방편불교나 기복불교로 흐르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누구나 읽기 쉽고 이해 하기 쉬운 한글경전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 것은 기독교의 영향도 무시 할 수 없다. 그들은 우리나라에 들어오자 마자 한글성경부터 만들기 시작 하였다. 만일 그들이 영어 성경을 고수 했더라면 오늘날 같이 기독교가 많이 퍼져 나갈 수 있었을까. 만일 조선시대에 모든 불교경전을 한글화 하고 한글로 된 경전을 보급 하였다면 한국불교의 역사는 달라졌을 지 모른다.

 

한문으로 된 경전을 고수 하는 것은 불교발전에 있어서 커다란 장애요소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문을 자유자재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은 외국어나 다름이 없다. 중국사람들이야 한문경전을 보면 책 읽듯이 죽 읽어 나갈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서 한문경전은 오로지 경전상에만 존재 하는 죽은 언어에 지나지 않는다. 또 뜻도 모르고 독송만 한다면 범어로 된 다라니를 독송하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경전을 한글화 작업을 한다는 것은 살아 숨쉬는 생활경전을 만들자는 것이다.

 

영어반야심경음악을 발견 하고

 

인터넷 검색중에 Imee Ooi 영어반야심경음악을 발견 하였다. 이 음악에 사용 되는 가사를 인터넷(http://www.drba.org/dharma/heartsutra.asp)에서 찾아 보니 인터넷에 노래가사와 똑 같은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역심경은 어떤 내용일까 그리고 한문과 한글과 비교 하여 어떻게 다를까 궁금하여 표를 만들어 보았다.

 

 

한문/한글/영어 반야심경

 

한문반야심경

한글반야심경

영문반야심경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The Heart of Prajna Paramita Sutra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할때

When Bodhisattva Avalokiteshvara was practicing the profound Prajna Paramita,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오온이 모두 공한 것을 비추어 보고온갖 괴로움과 재앙을 건지느니라.

he illuminated the Five Skandhas and saw that they are all empty, and he crossed beyond all suffering and difficulty.

舍利子 色不異空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사리불이여...
물질이 공과 다르지 않고 공이 물질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이 곧 공이요공이 곧 물질이니
,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그러하니라.

Shariputra, form does not differ from emptiness; emptiness does not differ from form. Form itself is emptiness; emptiness itself is form. So too are feeling, cognition, formation, and consciousness.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사리불이여...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으며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느니라.

Shariputra, all Dharmas are empty of characteristics. They are not produced, not destroyed, not defiled, not pure; and they neither increase nor diminish.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그러므로 공 가운데는 물질도 없고 느낌과 생각과 지어감과 의식도 없으며,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과 뜻도 없으며, 빛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닿임과 법도 없으며,

Therefore, in emptiness there is no form, feeling, cognition, formation, or consciousness; no eyes, ears, nose, tongue, body, or mind; no sights, sounds, smells, tastes, objects of touch, or Dharmas;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눈의 경계도 없고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으며,

no field of the eyes up to and including no field of mind consciousness;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무명도 없고 또한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또한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and no ignorance or ending of ignorance, up to and including no old age and death or ending of old age and death.

無苦集滅道 無智 亦無得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과 괴로움이 없어짐과
괴로움을 없애는 길도 없으며 지혜도 없고 얻음도 없느니라.

There is no suffering, no accumulating, no extinction, and no Way, and no understanding and no attaining.

以無所得故 菩提薩타 依般若波羅蜜多故

얻을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이 걸림이 없고,

Because nothing is attained, the Bodhisattva through reliance on Prajna Paramita is unimpeded in his mind.

心無罫碍 無罫碍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Because there is no impediment, he is not afraid, and he leaves distorted dream-thinking far behind. Ultimately Nirvana!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故 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도 이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느니라.

All Buddhas of the three periods of time attain Anuttara-samyak-sambodhi through reliance on Prajna Paramita.

故知 般若波羅蜜多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가장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주문이어서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라.

Therefore know that Prajna Paramita is a Great Spiritual Mantra, a Great Bright Mantra, a Supreme Mantra, an Unequalled Mantra. That is why the Mantra of Prajna Paramita was spoken.

故說 般若波羅蜜多呪 卽說呪曰,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노니 주문은 곧 이러하니라.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Recite it like this:

Gaté Gaté Paragaté Parasamgaté

Bodhi Svaha!

 

당삼장법사역

<한글 반야심경> 법안스님

불교방송

Translated by The Buddhist Text Translation Society

http://www.drba.org/dharma/heartsutra.asp

 

 

 

표를 보면 영어로 된 심경의 경우 몇 가지 특색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영어 표현의 특징은

 

첫째, 오온의 온()스칸다(Skandha)’로 표기 하였다는 것이다. 영어단어를 사용 하지 않고 산스크리트어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둘째, ()‘empty’라 표현 하였고, 괴로움을 ‘suffering’으로, 고액을 ‘difficulty’로 한 것도 특이하다.

 

셋째, 반야심경에서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인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은 어떻게 표현 하였을까. 영어로 다음과 같이 표현 하였다.

 

Form itself is emptiness; emptiness itself is form.

 

색을 ‘form’으로 표현 하였고, 공을 ‘emptiness’로 표현 한 것을 알 수 있다.

 

넷째, 사성제에 대한 내용의 경우 한문경전은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다섯글자로 매우 간결 하게 표현 하였지만, 영어심경의 경우 다음과 같이 비교적 상세하게 풀이 하였다.

 

There is no suffering, no accumulating, no extinction, and no Way,

 

한문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와 비교해 보면 영어문구가 더 이해 하기 쉽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실에서 사용 하는 언어와 현실에서 사용 되지 않고 오로지 경전에서만 존재 하는 언어의 차이라 볼 수 있다.

 

넷째, 한문심경이나 한글심경은 물론 영어심경에서도 공통적으로 사용 되는 단어는 산스크리트 원어라 볼 수 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뇩多羅三먁三菩提)‘Anuttara-samyak-sambodhi’,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Prajna Paramita’로 표현 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만트라를 보면 많은 차이를 느낀다. 우리말로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이지만 영어는 원어에 충실하여 ‘Gaté Gaté Paragaté Parasamgaté Bodhi Svaha!’이다.

 

반야심경을 한글로 번역하여 독송할 때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만트라만이라도 다음과 같이 원어에 충실하여 바꾸었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가떼 가떼 빠라가떼 빠라상가떼 보디 스와하!

 

 

 

 

Imee Ooi(黃慧音)의 영어 반야심경 독송음악

 

 

 

 

음성

                                     般若波罗密多心经 1 英译  

 

 

 

Imee Ooi(黃慧音)

 

 

 

 

 

2009-11-25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