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붉은악마들, 왜 봉은사 앞 코엑스광장으로 옮겼을까

담마다사 이병욱 2010. 6. 9. 12:34

 

붉은악마들, 왜 봉은사 앞 코엑스광장으로 옮겼을까

 

 

 

월드컵이 몇 일 남지 않았다. 이번 주말 토요일(6 12) 저녁 8 30에 열린다 하니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온 국민들의 눈과 귀가 대그리스전에 쏠릴 것임에 틀림 없다.

 

월드컵시즌이 돌아 오면 의례히 길거리 응원이 관행화 되었다. 이번 남아공 월드컵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길거리 응원을 주도 하는 붉은악마가 장소를 바꾸었기 때문이다.

 

코엑스광장의 면적은

 

당초 서울광장에서 응원을 하려 하였으나 봉은사 앞에 있는 코엑스광장으로 바꾼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서울광장의 경우 순수한 응원이 대기업들의 지나친 마케팅 경쟁도구로 전락 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둘째, 광화문 광장의 경우 서울시가 허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광장의 경우 기업의 홍보도구로 전락할 우려 때문이고, 광화문 광장은 서울시에서 허가를 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봉은사 앞 코엑스광장을 택하였다는데 그 광장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봉은사 앞 코엑스광장

60미터, 길이 300미터에 18,000제곱미터의 면적이다.

 

 

 

길거리 응원을 할 경우 도로를 포함하여 폭 60미터, 길이 300미터에 이르는 공간(18,000제곱미터)이 나온다. 더구나 봉은사 경내의 주차장을 합한다면 이 보다 훨씬 더 넓은 면적을 차지 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서울광장의 경우 대한문에서부터 주변 도로를 포함하여 170X140미터(23,800제곱미터)이고, 광화문광장의 경우 70X600미터(42,000제곱미터)임을 지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면적으로 따진 다면 서울광장 못지 않은 공간이다.

 

붉은악마의 유래

 

대한민국대표 서포터즈인 붉은악마가 자리를 옮기게 된 여러 이유가 있지만 혹시 현정권이 불편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사람들은 현정권을 장로정권이라 부른다. 기독교신앙에 투철한 장로가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까 주변은 거의 대부분 기독인사들로 채워져 있다시피 하다. 타종교인사의 경우 가물에 콩나듯 보기 드믈고,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형평을 고려한 구색인사가 특징이다.

 

이런 정부에서 대통령에게 영향력을 행사 하는 사람들 역시 보수층인사와 목사가 대부분이다. 청와대에서 목사를 초청하여 기도회를 하는가 하면, 영부인은 십자가 목걸이를 보란 듯이 공식적인 행사에 차고 나온다.

 

이렇게 기독인사들로 채워져 있는 정권에서 붉은악마들이 활동하는 것에 대하여 대단히 불편하게 생각 하였을 것이라는 짐작은 기독교방송문화원에서 제작한 한 동영상을 보고 알 수 있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만들어진 동영상의 제목은 붉은악마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다.

 

이 동영상에서 가장 먼저 붉은악마라는 이름이 탄생된 배경부터 설명한다. 붉은악마의 영문명이 ‘Red Devils’ 인데, 원래 ‘Red Furies’이었다는 것이다.

 

1983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당시 우리 대표팀이 4강을 하였는데, 외국언론에서 그런 명칭을 붙여 주었고, 이를 번역 하는 과정에서 Red Devils로 바꾸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1995년에 대표팀서포터즈로서 붉은악마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채택 되었다고 설명한다.

 

기독인들은 왜 붉은악마를 싫어할까

 

기독인들이 왜 악마라는 말을 싫어할까. 그것은 악마가 모든 귀신들을 이끌어 가는 탑리더(Top leader)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마귀와 사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을 뿐만 아니라,  마귀 앞에는 붉은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다고 성경을 인용하여 말한다.

 

기독인들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붉은악마가 왜 나쁜 것일까. 그 이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붉은악마의 행동이나 가치가 악마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고, 파괴의 문화가 형성 될 수 있다.

 

둘째, 붉은악마의 심벌이 치우천황인데, 이는 전쟁에서 승리를 상징하는 도깨비형상으로서 결국 귀신의 힘을 빌어 국가대표팀의 승리를 기원하자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입장을 가진 기독인들이 보았을 때 2002년 이후에 달라진 우리사회의 가치관과 환경에 대하여 열거 하면서 이야기한다. , 2002“Be the Reds!” 라는 구호와 함께 4천만 국민들을 잘못된 길로 이끈 결과 다음과 같은 사태가 초래 되었다는 것이다.

 

 

첫째, 자살률이 2002년 이후에 OECD국가중에 가장 높아졌다.

둘째, 이혼률이 2002년 이후에 15%나 증가 하여 세계에서 두번째이다.

셋째, 살인, 강간등 범죄가 증가 하고, 실업률도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이념과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넷째, 유래없는 홍수가 휩쓸었는데, 2002년의 경우 태풍루시로 인하여 사망 246명과 5 4696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고, 2003년의 경우 태풍 매미로 인하여 127명이 사망하고 4 4082억원에 달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 모든 것이 2002년 월드컵 당시 붉은악마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많은 사람들이 응원문화라 하여 참가 하였지만, 그 배후에는 알게 모르게 어둠의 영들이 참여하여 벌어진 결과로 보는 것이 기독교 목사들의 이야기이다.

 

기독교에서 보는 악마는

 

기독인들은 왜 악마라는 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까. 그리고 붉은 옷을 입고 길거리 응원을 주도 하는 축구국가대표 공식 서포터즈에 대하여 사회의 모든 잘 못된 현상을 뒤집어 씌우는 것일까. 그 배경을 알려면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김종욱 교수의 강의를 요약하여 올려 놓은 글 (http://blog.daum.net/bolee591/16154475)을 참고 하면 다음과 같이 설명 될 수 있다.

 

 

악은 어디에서 왔을까

 

기독교의 창조주를 ‘선 그 자체’라고 한다. 이 말 뜻은 ‘악이 없다’라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악은 분명하게 존재 한다. 그렇다면 그 악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크게 세가지로 추론 해 볼 수 있다. , 신에게서 왔거나, 악마에게서 왔거나, 인간에게서 왔거나 이 세가지 중의 하나 일 것이다.

 

그런데 신은 선 그 자체이기 때문에 신으로부터 올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인간과 악마 밖에 없다.

 

먼저 인간을 보면 ‘원죄’가 있다. 선악과를 따 먹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자유의지에 대하여 기독교에서 말하기를 ‘창조주가 세상과 사물 창조 하였지 인간의 행위까지 창조 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선악과를 따 먹으면서 악이 시작 된 것이다. 이 말은 인간의 자유의지 이전에 ‘선악이 먼저’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악은 인간에게서 시작 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악마밖에 없다.

 

악마는 누가 만들었을까

 

악마는 누가 만들었을까. 설명하기 매우 어려운 주제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을 설명 하기 위해서는 악마도 ‘필요’ 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세상에는 ‘두 개의 신’이 존재 한다. 즉 선신과 악신이다.

 

선신과 악신 둘 중에 누구를 믿어야 할까. 당연히 선신을 믿어야 한다고 말할 지 모르지만 지구상에 악신을 믿는 종교도 있다고 한다. 왜냐 하면 악을 응징하고 악을 콘트롤 하려면 악신 밖에 없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선신에게 악은 없고, 악이 그 어디에도 소속 되어 있지 않아, 악이 콘트롤 되지 않는 다면 그 신은 무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에서 인간의 할 일은

 

기독교에서 신을 위하여 인간의 할 일은 무엇일까. 신을 닮아 가려는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악을 제거’ 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신은 ‘선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악의 제거는 절대적(絶對的, absolute)’이다. 이 말은 ‘절상대(絶相對)’라는 말과 같다. 상대를 ‘끊어 버리는’ 것이다. 선과 악 중에 맞은 편에 있는 악을 끊어 버리는 것이다.

 

결국 선악의 싸움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선만 남게 될 것이다. 그 선이란 무엇일까. 그 선은 그들에게만 좋은 것이다. 그 이면에는 나라는 아()가 철저 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가 선악이분법적인 논리로 악을 끊어 버리고, 오로지 선 그 자체가 되려 한다면 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선악을 어떻게 볼까

 

그러나 불교에서는 상대를 끊는 절상대(絶相對)에 대하여 부정 한다. 그 대신 절대립(絶對立)’을 주장 한다.

 

절대립이란 무엇인가. 이 말은 대립을 끊어 버리는 것을 말한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논리가 아니라, 선과 악 그 자체를 제거 하는 것을 말한다. , 선악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제거 하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 악업 뿐만 아니라 선업도 짓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따라서 불교에서는 싸울 일이 없다. 싸우는 것이 아니라 화()를 도모 하는 것이다.

 

세상밖에서 이치를 찾으려 하면 초월적 존재에 의지 할 수 밖에 없고, 또 그 이치를 신의 섭리라는 이름으로 절대화 하게 되면 분쟁이 그칠 날이 없다. 그러나 세상 안에서 자연 안에서 또는 내 안에서 이치를 찾으면, 모든 것이 연기론적인 흐름으로 보여서 무아(無我)임을 알게 된다. 무아인데 내 것 네 것, 선과 악의 구별이 있을 수 있을까.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신바람이 나면 놀라울 능력을 발휘하였다. 더구나 집단적으로 신바람이 고양 되면 놀라운 일을 벌인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인이 보여준 집단적인 열광과 에너지가 이를 증명한다.

 

이런 신바람에 대하여 대체적으로 우리민족의 무의식에 깔려 있는 무속적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김형효 교수의 칼럼(신바람과 불교문화의 역할)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신바람 또는 신명(神明)은 무속적 제정(祭政) 일치시대인 고대 한국문화의 생리를 단적으로 표시한다.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고구려의 동맹, 마한의 소도, 신라의 한가위 등은 다 제정일치 시대의 무속적 한국문화의 원형을 상징한다 하겠다.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가무음주를 통하여 동족간의 단결을 고취하는 놀이문화는 한국인의 자발적 신바람을 제고하여 강력한 생명력을 치솟게 하려는 동기부여를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법보신문http://www.beopbo.com/article/view.php?Hid=51363&Hcate1=226&Hcate2=338&Hcmode)

 

 

한국인의 집단무의식 속에는 아직도 무속적인 신바람이 꿈틀거리고 있다. 그래서 발바닥에 땀이 날 정도가 되면,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하는 기질이 있다는 것이다.

 

봉은사 앞 코엑스 광장으로 온 이유는

 

한국인은 신명이 나서 기분이 고양되면 또한 대단히 격정적으로 된다. 이런 에너지를 잘 활용 하면 엄청나게 생산성을 올릴 수 있다. 반면에 잘 못 활용하면 파괴적으로 쓰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를 활용 하는 지혜이다.

 

열정이 없는 국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지혜가 부족한 열정은 국민들을 집단 광기로 몰아 넣을 뿐이다.

 

신바람 그 자체는 우리의 집단무의식이기 때문에 없앤다는 것은 가능 하지 않다. 다만 이를 지혜롭게 선용 할 수 있도록 유도 하는 것이 종교가 해야 할 몫이다.

 

 

 

2010-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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