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청문회 후보자의 불로소득과 도적질, 왜 그들에 연민을 느끼나

담마다사 이병욱 2010. 8. 18. 10:26

 

청문회 후보자의 불로소득과 도적질, 왜 그들에 연민을 느끼나

 

 

 

 

 

 

그들은 왜

 

위장전입, 땅투기, 논문표절, 막말등 요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나오는 말들이다. 이런 말을 들을 때 마다 늘 생각 하는 것은 소위 잘 난사람들, 사회적으로 성공한 자들은 재테크에도 일가견이 있다는 것이다.

 

남들보다 좋은 신체적 정신적 조건으로 태어나 대학교육이상을 받은 그들은 왜 한결같이 이처럼 투기를 위하여 불법과 탈법을 일삼을까. 지금 현재의 조건이 대다수의 국민에 비하여 월등하게 좋은 조건임에도 불구 하고 불법과 탈법을 감행하는 이유는 아마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하여 걱정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노후 대책일 것이다. 힘도 빠지고 직장에서 물러나면 늙어 죽을 때까지 먹고 살 돈을 마련해 놓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것은 대부분 사람들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를 위하여 어떤 이들은 저축을 하고, 보험을 들고 여러가지 수단을 써 보지만 부동산 투기만한 것이 없음을 잘 안다. 그래서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여유돈만 있으면, 돈이 없으면 빌려서라도 투기대열에 합류한다.

 

이렇게 해서 얻은 불로소득으로 한평생 먹고 살 돈을 모으고 나면 이제 안심이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보는 눈은 곱지 않다. 시기와 질투심을 넘어 은근히 파멸하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불로소득과 도적질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수고노고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노고가 들어가지 않으면 그 어떤 결과물도 성취할 수 없다. 만일 수고 없이 모든 것을 얻으려 한다면 천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천상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다. 이처럼 불로소득의 세상이 천상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을 살면서 수고 없이 모든 것을 이루려 한다면 천상의 세계를 누리려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런 자들은 불법과 탈법을 일삼아 투기등으로 인하여 불로소득을 얻는다.

 

투기등으로 인하여 한평생 먹고 살 재산을 모아 노후걱정이 없어졌다면 인생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도적질을 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과도한 이윤을 남기는 것도 도적질로 본다.

 

그 도적질한 돈으로 부자동네에 끼리끼리 모여살며, 자녀들 또한 그들끼리의 모이는 학교로 보내는가 하면, 고급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편안하고 안락한 삶의 질을 누린다면, 그런 삶을 그 사람의 복이라 할 수 있을까.

 

연민과 평온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부동산 투기에 더욱 더 열을 올려 불로소득을 올리고, 또한 부와 권력과 명예를 모두 누리려 한다는 뉴스를 들으면 대부분 분노한다.

 

이러한 사회적 공분에 불자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그들과 같이 공분해야 할까, 아니면 전생에 지은 공덕으로 인하여 복을 받은 것으로 보아야 할까. 그 답을 우연치 않게 발견하게 되었다. ‘청정도론을 통해서이다. 비록 1600년전에 쓰여진 책이지만 그 가르침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하다.

 

청정도론의 가르침은 탈법과 불법을 일삼아 부동산투기등으로 인하여 불로소득을 얻은 자들을 시기하거나 질투하기 보다 연민의 감정을 느껴야 하고,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그들을 시기하거나 질투하거나 성을 내거나 하여 적개심을 내며 적의를 가진다면 그들과 똑 같은 사람이 되어 버린다. 시어머니 욕하면서 따라 배우는 며느리처럼 그들에 대하여 시기하거나 질투 하게 된다면 언젠가 그들처럼 따라 하는 사람이 되고 말 것이다.

 

불법과 탈법으로 부동산 투기를 일삼아 불로소득을 올린자들은 범법자들이다. 설령 법적으로 걸리지 않았다 할지라도, 도덕적으로 몰래 도적질 한 것이나 다름 없다.

 

도적질은 살생과 사음과 더불어 몸으로 짓는 신업(身業)으로서 중죄에 속한다. 불교에서 신업은 구업이나 의업과 달리 내생을 결정할 수 있을 정도로 중한 죄업으로 본다. 그렇다면 불법과 탈법으로 인한 불로소득을 올린자들은 중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결코 선처에 태어 나지 못할 것이다. 갈 수 있는 곳은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와 같은 4악도 뿐이다. 이러니 이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연민을 일으켜야 그들에 대한 적개심은 가라 앉는다. 또한 그들이 행한 업에 대한 주인은 그들 자신임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이 행한 업은 타인의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지은 만큼 받는 다고 생각 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의 평온을 유지 할 수 있다.

 

어떻게 연민을 일으키나

 

불교에서 연민(karuā, )과 평온(upekkhā, )자애(mettá, )’더불어 기뻐함(muditā, )’과 함께 네가지 거룩한 마음이라 한다. 이를 한자어로 자비희사(慈悲喜)’라 하여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 한다.

 

네가지 거룩한 마음중에 연민 52가지 마음의 작용중에서 깨끗한 마음에 속하는데, 고통에 빠져 있고 불운이 닥친 어떤 사람을 보면 연민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청정도론에서 다음과 같이 연민의 감정을 일으킬 것을 말한다.

 

 

볼품없고, 고난에 빠져있고, 고통에 빠져있고, 불운이 닥쳤고, 거지신세이고, 손발이 잘렸고, 걸식할 밥그릇을 앞에 놓은 채 빈민구제소에 앉아 있고, 손발에 구더기가 끓고, 신음하는 불쌍한 사람을 보고 이 중생이 고난에 빠져 있구나. 이 고통으로 부터 벗어나기를!’ 하고 연민을 일으켜야 한다.

(청정도론 2, 171p)

 

 

그들이 갈 곳은

 

연민의 감정을 일으켜야 할 대상이 비단 위의 경우와 같이 불쌍하고 불행에 빠진 서람들만이 아닐 것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행복해 보일지라도 그를 사형선고 받은 사람에 비유하여 연민의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비록 그가 불법과 탈법으로 인하여 불로소득으로 인한 행복과 즐거움과 향락을 누리고 있지만, 좋은 업을 쌓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 없다. 그들이 갈 곳은 악처이고 그 곳에서 큰 고통과 슬픔을 겪을 것이기에 연민의 마음을 내는 것이다.

 

 

 

2010-08-18

진흙속의연꽃